어느 중국 무협영화의 주인공 서봉년은 정인인 '강니'가 자신의 고국으로 떠나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한다. 이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서봉년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어찌 떠나보내냐고 물었다.
서봉년은 이에, 
"놓아야 가질수 있고, 헤어져야 만날 수 있으며,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라는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답을 준다.

마침, 어느 분의 글을 읽어보니 "이별과 만남은 둘이 아니다" 라고 써있다.


이별 여행이라고 하니 마치 드라마의 제목처럼 연인들의 이별로 오해하는 수가 있겠다 싶다. 하지만 연인들의 이별에 관한 아픈 스토리가 아니다. 단지 가족 중 누군가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주 멀리 떠나 살아야 하는 이야기이다. 온전히 돌아오기까지는 계절이 몇 번 바뀐 후가 될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고 저마다의 길이 따로이 있는 것이 인생일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긴 이별을 위한 여행을 함께 하는 것 뿐.


삼천포로 잠시 빠져보면,
 나는 깊은 산골이자 바다가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서쪽 태생이다. 자연 경관으로만 말하자면 찾아오는 이 없는 관광명소가 고향인 것이다. 한 번 다녀간 사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둔의 명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의문이었다. 가정맹어호라고 나의 조상은 가혹한 세금이 무서워 야밤에 이곳으로 도주를 하셨나, 아니면 역적질을 하다가 쫓기어 이곳까지 도망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았다. 조선의 학정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라면 어느 쪽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도피를 했던, 쫓기었든 하필이면 이런 외딴, 아무도 찾지 않는 은둔 장소에 정착한 조상들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


그러나 명리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어느 분은 나의 주거 환경이 이와 달랐더라면 어린 시절을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틀림없이 절명했을 것이라 했다. 남쪽 혹은 동쪽 에서라면 말이다. 서쪽 바닷가나 북쪽에서 태어나야 어린 시절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 붙이기를  "그러나 서쪽에서 바다를 수영장 삼아 살았다 해도 그냥은 없습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갑니다. 절명의 위기를 만난 적이 있지요?" 라고 물었다. 그랬다. 나의 운명은 어린 내가 그 시절을 순순히 지내도록 방관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치명적 절명의 순간과 세 번 마주했다. 아차하면 저승 사자와 동행하는 삶이었다.



[[[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은 사적으로 박지혜의 버전이 가장 느낌이 좋다. ]]]


그런 순간들을 마주한 후로 낯에도 밤에도 무서운 꿈에 시달렸다. 식사 후 급체하는 일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앓아 눕곤 했다. 덕분에 초등학교를 수도 없이 빠졌다. 어린 놈이 무녀의 도움을 받을 정도면 소나기의 윤초시네 증손녀와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던듯 하다 ㅡ 지금 생각해보면 윤초시네 증손녀는 전라도 광주 혹은 경상도 마산 쯤으로 가서 요양을 했어야 했지 싶다. 소녀가 음의 기운이 있는 곳으로 와서는 삶을 등졌으니 하는 말이다. 아 그렇게되면 윤초시네 증손녀가 사는 대신 소설이 죽게되나?ㅡ. 


어째거나 나는 방안에 홀로 누워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또래 아이들의 외침 소리를 뒤로하고 꿈 같은 잠에 빠지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방안이 아니라 안뜰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이 모든 것들이 절명의 순간들과 마주한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잊었던 기억이 되돌아 온 후였다.


기억이 다시 되 돌아오기 전까지, 절명의 모든 순간들을 나도 모르게 까맣게 잊게되었으니 말이다. 그 망각의 순간이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2학년 후로는 온전한 정신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니 그때부터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 어째거나 내가 서쪽에서 태어난 때문에 가족들은 동쪽으로 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늘 남는 법이다. 다들 이 번 이별 여행은 동쪽 끝으로 가자고들 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첫 번째 계류지는 안동이다. 시내에서 찜닭을 먹고 명소를 둘러보며 그곳에서 하루를 머문 후, 다시 동쪽으로 떠날 것이다.


출발 전에 집근처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고 첫번째 계류지인 안동을 향해 도심을 빠져나갔다. 자연스럽게 휴게소를 거치게된다. 유감스럽게도 가족의 휴게소 루틴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 그외 간식을 구매하거나 식사는 하지 않는다' 이다. 이런 루틴은 휴게소의 음식에 대한 불만 또는 불신의 반작용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지날수록 휴게소 식당 음식의 질이 점점 더 나빠지더니 몇년 전에는 거의 먹을 수 없는 사건과 마주했다. 그날은 음식을 사놓고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심지어 휴게소에서 파는 이름있는 점포의 아메리카노 조차 늘 너무 쓰고 텁텁했다. 가장 질 떨어지는 콩은 휴게소에서 소비하는구나 싶었다.

결국 그 날 새로운 루틴이 생겨났다.


1. 장거리 여행이 있는 날, 출발 전에 외식을 한다.
2. 간식거리는 집에서 준비해간다.
3. 휴게소에서는 편의점에 들른다.
이런 루틴이 정해진 후로 늘 그래왔다.



이번에 그렇게 들른 곳 중 하나는 첫 번째 계류지 안동으로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 '단양팔경 휴게소 부산방향'이었다. 하차 후 모두 편의점으로 웅성 웅성 발길을 옮기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와~ 다이소다~!!'

다른 누군가가 놀라듯 말했다.
'어, 어디?'

또 다른 누군가가 반갑다는듯 말했다.
'나, 다이소 갈라그랬는데! 어딧어?'

정말로 저 멀리 '다이소' 간판이 보인다.
나는 '와~  고속도로 휴게소에 다이소가 다있네! 여기 최곤데!' 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근데, 다이소 글씨가 파란색인데?' 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색깔이 중한가? 다이소가 있다는게 중허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다이소에 이끌려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이소가 점점 가까워지자, 
시력 좋은 누군가가 실망하듯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아~  이런!!'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급 궁금하여 '왜 왜? 했다.

외마디 소리를 지른 사람이 말없이 천천히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다이소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은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보냈다.
'아~~~!!"

그 중 시력이 나쁜 누군가는, 아 왜? 이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기 다이소는 그 다이소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모두들 호쾌하게 웃었다.
아~  하하!!

내가 말했다.
와~~ 아이디어 최고다, 진짜!!
많이 파세요~~!!

누군가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친구들에게 보여줘야지~' 했다. SNS에 올린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나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날이 추워 그런지 휴게소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짧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시리고 차다. 오늘 참 춥다.
그래도 목련은 곧 피어 오르겠지....


그리고 부디, 건강하게 잘 다녀오기를..... 춥지만 단양팔경의 맑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시력 좋은 사람이 먼 길을 나서는 장본인인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에 쓴 글이 있어 되돌아본다.

 

           으악새

      대모산에 올랐다.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논밭을 지나는데,

      "으악!" 하고 여자애 비명소리가 들렸다.


      깜짝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친 여자애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

     으악새가 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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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 ^^ ^^ ^^ ^^
다이소가 여러 군데 있네요.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에 어울리는 일기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2-12 19:5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잉크냄새님,
멀리에서는 다있소 일줄 꿈에도 몰랐지 뭡니까요^^

내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입춘, 새해의 첫 절기가 시작되었다. 먼 조상들은 따듯함이 시작되는 봄을 그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까. 그들의 부모형제 혹은 자신의 짝, 혹은 자녀가 추위 속에서 죽어가거나 굶어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혹독한 겨울, 그들에게 겨울은 늘 그렇게 죽음의 계절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겨울을 견뎌낸 생존자들의 기쁨을 생각하면 함께 기뻐야하겠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면 정작 가슴은 몹시 시리고 또 아프다.


안타깝게도 입춘은 중국의 화북지방을 기준한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절기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듯 하다. 그래서인지 혹한기 훈련은 입춘을 전후 했다. 혹한기 훈련중 새벽녘에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낙엽을 덮고 잠든 동료의 코골이 소리가 아직도 선명한 것은 그 날 밤 추위가 몹시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춥다 한들 봄은 온다. 



[[ 지 난 일요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밖은 설국을 이루었다. 밖으로 나가 아직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곳을 기념했다. 모레가 입춘인데 설국이로구나...싶었다 ]]   


나를 더욱 춥게하는 것은 "농경시대의 24절기는 이제 수명을 다한듯 하다"는 댓글이다. 댓글이 나를 춥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댓글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현실이 나를 춥게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읽고서 깜짝 놀랐다. 추위가 먼저왔고 놀람은 한 박자 늦은 것이다. 이건 내가 둔감한 탓이다. 깜짝 놀란 이유는, 이 말이 곧 사실이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농경이 사라지는 날, 인류의 생존도 무사하지 못할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경고가 또 있을까. 이는 죄를 지으면 수천억겁이 지나도록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할것이라 경고하듯 겁박하는 지장경의 말씀보다 더 강력한 경고이다.




[[ 내방하시어 댓글을 주신 잉크냄새님께 이 곡을 드립니다. 음악은 취향인데 취향을 저격하지 못했을까 염려되기도 하면서 감사의 뜻을 대신합니다 ]] 


어린시절 간척 사업으로 수영장이자 놀이터였던 앞 바다를 잃었다. 바다가 육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는 앓고 앓았다. 놀이터도 잃고 친구도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을까.  바다가 사라져가는 모습에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한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일은 내게 여전히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이제는 계절을 잃어야 하는 시점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바다를 잃었던 어린 시절의 그 사무치는 가슴 앓이를 또 해야하나보다. 누군가의 이익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어린시절의 간척사업을 통해 알게되었다. 계절의 상실은 누군가의 부를 위해 희생된 공공 가치의 상실이다. 인류는 그것을 '발달' 이라고 이름 한다.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인류의 편의와 혜택이라고 한다. 

발달이 지속되고 편의와 혜택이 커질수록 입춘이 사라지는 시점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올것이다. 지구의 계절이 사라지는 날, 입춘도 사라지고, 어쩌면 인류도 함께 사라질 지도 모른다. 우리가 절기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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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4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댓글은 추위만을 품고 있었는데 차트랑님의 사유가 놀람을 끌어안았네요.
노래는 취향 저격입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차트랑 2026-02-04 20:33   좋아요 0 | URL
댓글이 아니라 현실이 ...^^

취향에 맞다니 천만다행이지 뭡니까요 ~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겨울이 길게만 느껴질 시기가 되었다. 알고보면 내일이 입춘이다. 겨울이 다 간 것이다. 그렇다고 추위가 끝난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춥다. 더군다나 엇그제는 눈도 펑펑 내리던데 왜 입춘이라고 하는걸까... 날은 춥고 눈도 내리지만 입춘이라는 시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연 속의 식물을 중심으로 바라본 시계이다. 북풍 한설의 눈보라를 맞으며 저 산과 들의 식물들은 그간 싹을 준비해왔다. 지금즘, 아니 한 참 전부터 나무의 줄기의 눈들은 벌써 몽글몽글 당장이라도 움을 틔울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춥던 겨울날, 이 모습을 보고 그만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리하며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매년 2월 4일 쯤이면 입춘인 것이다. 입춘은 그러니까 나무의 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인간은 여전히 춥지만 말이다. 겨울은 혹독한듯 보이지만 사실은 생명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것이 음양가의 생각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곡에 익숙한 사람들은 꽤 있는 프랑스 작곡가가 있다. 그의 곡은 어디선가, 또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데...작곡가는 누구더라....하는 곡으로 막상 들어보면 '아 그곡~!' 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위키는 이 작곡가를 샤를 에밀 발퇴펠(Charles Émile Waldteufel)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1837년에 태어나 77세를 사셨다고 한다. 덧 붙이기를 국적은 프랑스지만 독일어권 지역에서 태어난 독일계 유대인이기에 'Waldteufel'은 독일어인 '발트토이펠'이라고 발음한다고 써있다. 그의 곡 중 하나는 국내에 '스케이팅 왈츠'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어로는 'Les Patineurs Valse', 영어로는 'The skaters Waltz'이다.






 
마치 빙판을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날아가듯, 유영하듯 움직이는 동작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페어(Pair)에서 이 음악을 쓰기도 한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경쾌 상쾌한 왈츠 형식을 잘 활용한 곡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국내에 '여학생 왈츠'로 알려진 'Estudiantina'이다. 대부분 들어본 그 곡이다.




이 곡은 말 그대로 여학생들의 발랄 명랑하고 즐거운 웃음이 가득한 모습을 아주 잘 표현했다. 한마디로 말이 필요없는 새싹의 젊은 청춘이다. 듣자마자 스케이터 왈츠보다 즐거움이 더 통통튀는 느낌을 받는다.  이 곡 역시나 익숙한 곡이지만 작곡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역시 발트토이펠이다.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봄 못지않게 신나고, 마치 새싹을 돗게하는듯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곡, 발트토이펠의 스케이터 왈츠, 사실 겨울은 생명을 준비하는, 즉 봄을 준비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신명나는 여학생 왈츠. 혹여라도, 이 곡을 클릭하게 된다면, 클릭하는 순간 기분이 아주 즐겁고 상쾌하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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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2-03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춘래불사춘 이라는 옛 중국시가 떠오르네요.내일이 절기상 입춘인데 금요일부터 또 강추위가 온다고 하네요

차트랑 2026-02-03 19: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내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이 다시 추워진다니요.
이젠 봄이 와도 뭐라고 안할텐데 말입니다.

좋은 저녁되세요 카스피님~

잉크냄새 2026-02-03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경 시대의 24절기는 이제 수명을 다한 듯 합니다.

차트랑 2026-02-03 22:1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잉크냄새님~

마힐 2026-02-03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말씀대로 클릭하는 순간,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 때가 생각이 나네요.
템버린, 캐스터네츠가 귀에 들리네요... ㅎㅎ
듣는 동안, 다시 국민학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습니다.
차트랑님 덕분에 시간 여행 한번 한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_()_

차트랑 2026-02-04 09: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힐님,
과거의 추억에 반가우셨다니 저로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귀에 익은 악기 소리가 제게도 무척 즐거운 음악인지라
종종 듣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마힐님~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박경리 산문선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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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 일본 산고 ]]]


손에 쥐는 순간, 끝장을 보게되는 책들이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특히 무협지가 그랬다. 대입을 나름 잘 끝내고,  지금처럼 추운 겨울 날, 방안에 틀어박혀서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무협지를 빌려와 쌓아 놓고 읽었다. 밥때도 잊었고, 잠도 잊었다. 그러기를 한 달, 드디어 코피를 쏟으며 앓아 누웠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정비석 삼국지를 읽으시며 코피를 쏟으실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에게는 무협지못지 않게 끝장을 보게되는 책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일본산고'이다 (이렇게 쎄게 나갈 수 있는 것은 사실 이 책이 두껍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ㅠ). '일본 산고'가 무협지와 다른 하나가 있다면  하염없이 나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한다는 것이다. 무협지는 내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나를 위로하고는 끝을 맺는다. 
'일본산고'는 피를 거꾸로 솟게하지만 탈출구를 제공하지 않는다. 마치 박경리선생이 제시하는 탈출구 없는 일본인의 의식구조처럼 말이다. 성질대로 읽다가는 병이 날것만 같다. 탈출구가 없는 문화의식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후에 괴기함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산고를 통해 알게되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사랑이든 극단으로 치밀고 간 끝에서 살인 혹은 죽음이나 할복으로 끝을 맺으려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에는 탈출구가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문화 의식의 탈출구는 매우 중요한 비가시성 사회 문화적 장치인 것인데 말이다.


널리 알려진 중국 고사, 천만매린(千萬買隣)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남북조시대의 송계아라는 사람이 여승진이라는 인물의 백만금(百萬金)짜리 옆 집을 천백만금(千百만金)을 주고 사들였다. 이에 깜짝놀란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송계아는, "백만금은 집 값이고, 천만금은 당신을 이웃으로 두는 값입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여 백금매택 천만매린(百金買宅 千萬買隣)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논어 이인(里仁)에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뜻이다. (요즘 일본이 외로운듯 보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모두 이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겠다. 그리하여 거필택린(居必擇隣)이라는 말이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지정학은 택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불가항력인 것인데, 재수 없게도 대한민국은 하필 일본과도 같은 고약한 나라를 이웃으로 두게 되었다. 박경리선생의 한탄에 너무나도 동감하면서 일본산고를 손에 들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보다 강자였던 일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약한 자를 짖밟지, 강한 자를 짖밟냐? 약한 자한테서 빼앗지, 강한자한테서 빼앗냐고? 세상이 생긴 이래 약자는 강자한테 짖밟히는거야!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기는거라고!!!"  이 말은 사실 드라마에서 극중 길태미가 죽기 직전에 큰 소리로 외친 말이다.
길태미의 이 대사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만 나의 귀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길태미, 그건 인간이 아닌, 다시말해 문화, 사상, 철학, 보편적 가치등이 존재하지 않는 짐승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박경리 선생은 이런 경우를 두고, "자(尺)로는 잴수 없고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도 있다. 그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p.17)" 라고 너무나도 우아하고 명철하게 표현 했다. 이는 나의 감탄을 자아냈고, 나는 '와~~ 다른데가서 써먹어야지' 생각했다. 극중의 길태미는 인간만이 가지는 그 가치, 인간만이 가지는 삶의 존귀함을 모르고 있는 미개인, 즉 야만인이었다. 마치 일본이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 것 처럼 말이다.


길태미가 극중에서 했던 이 말은 일본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서로 잘 부합함을 알 수 있다. 존왕양이를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은 "강대국(미국)이 약소국(일본)을 정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양의 기술과 문물을 배워 서양과 대등해지고, 그들에게 빼앗긴 것은 조선이나 만주에서 되찾아오면 된다" 라고 주장했다. (조선과 만주에 돈 맡겨놨냐고?)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바로 몇년 전 피습으로 사망한 아베의 고조 할아버지, 이토 히로부미, 만주 전범 기시 노부스케, 강점기 일제 총독들 대부분이다. 물론 아베는 그들의 후계였고, 현재의 일본 총리 다카이치도 그 맥을 잇고 있는 극우이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늘 일제 탐욕의 대상이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일제 강점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계보가 현재도 일본 내각을 지배하고 있고 더욱더 극우화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1926년생인 박경리선생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스무살이 될때까지 일제강점기를 고스란히 체험했다. 하여 어쩌면 박선생의 이 글은 어떤이들에게 가해자 피해자의 논리 구도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또 이 땅에는 박경리선생의 생각을 그런구도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친일하는 냥반들)이 다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박경리 선생이 객관성을 가진 제 3자의 입장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박경리 선생이 행여 '나는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는거에요!' 라고 이 책에 썼다 한들, 나는 그 말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것 같지도 않다. 내가 박경리 선생이었다 해도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으니 말이다.


도올 김용옥선생이 박경리선생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김선생은 박경리선생의 일본에 대한 돌직구에 일제를 격은 울분과 회한 때문에 일본 문명을 제대로 파악하려하지 않는 감정적 반일주의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화를 마치고난 도올은 박경리선생을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대문호의 분노' 라고 평가했다. 도쿄 대학에서 철학 석사를 마친 도올선생은 누구 못지 않은 일본 체험 및 학문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본을 잘 알고있는 도올이 볼때, 박경리선생의 논리는 일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일본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으로 충만해있었다. 그 결과 도올은 박경리 선생의 일본에 대한 견해는 박경리 선생의 깊은 학문과 일본 문화에 대한 해박한 근거들의 조합에서 오는 통찰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짐승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보편적인 가치는 언제나 어디서나 시공을 넘어 존재한다. 박경리선생이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작가로서의 자세는 나보다 백배 천배는 더 객관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여 나는  이 글이 일제 강점기의 일본을 통해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반일 작가로서 박경리 선생의 이성과 감성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일본에 대해서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어려서부터 그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일본인들은 타국에는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폐를, 아니 죄를 지어왔다. 그리고 반성과 사과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합(不整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본인들의 모순은 늘 나의 의문일 수 밖에 없었다. 박경리 선생은 나의 의문을 이 책에서 정리해주었다. 박경리 선생에 따르면 일본은 사상, 철학, 도덕이 부재한 나라라는 것이다. 일 예로서 전쟁 당시 일본은 거점이 무너질 경우 비전투요원까지 자살을 요구했는데, 자살하지 못하는 모친을 아들이 목졸라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과연 사상, 철학, 도덕이 존재하고 있는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던가? 제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한들 자식이 자신의 손으로 부모를 목졸라 죽음에 이르도록 한단 말인가!
일본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열한 문화를 가진 나라인 것이다. 그들에게 부정합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들의 이율 배반을 철학으로 해석할 수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일본은 조선을 통해 불교와 유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문화의식 구조 속에서는 불교의 자비와 유학의 사단(四端)중 어느 하라라도 찾아볼 길이 없다. 평소의 궁금증이었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산고는 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상과 철학이 부재한 일본인들의 문학과 미학(美學)을 통해 드러내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를 파헤쳐 그 이유를 알수 있게한다. 박경리 선생의 통찰은  단순한 반일 작가로서의 그것이 아닌 이유이다. 지성이 있고 가치를 판단할 지식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파시스트나 극우가 아닌 이상 박경리 선생의 견해에 공감하는 독자는 대한민국 국민만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따라다니는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과연 일본의 특수성은 계속될 수 있을까?
일본인들이 가진 정치, 사회, 문화에 걸친 의식구조의 괴기스런 특수성이 집단으로 표출될 때, 인류가 지니는 보편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철저히 훼손시켜 왔다. 과연 일본의 의식 구조가 가지는 이러한 특수성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유지될 수 없다면 끝내는 소멸하고 말것이다.
어쩌면 이는 의문이라기보다는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스스로 빠진 함정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성으로의 회귀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인류가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으로의 회귀만이 인류의 공감을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니 말이다.


모든 문장 하나 하나들이 귀중하고 가슴에 사무치지만 그중 몇 문장을 따로이 소개해본다. 다음은, 이 책이 단순한 반일이 아니라 통찰에 의한 '일.본.론.'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문장들이다.


[[[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 p.76  
(혐일해도 시원찮은 판에 혐한은 이렇게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는 극우들의 양식이 되고 있다)


[[[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실험과 규명을 철저히 거쳤으며 이미 신라 시대에 천문학을 시도했던 만큼 사상 면에서는 이미 열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일본으로 건너간 불교ㆍ유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체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 기독교의 사랑이 칼의 체제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나요? ]]] p.87 

(일본의 정신이 왜 인간의 보편성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지적한 글일 것이다)


[[[ 피와 칼의 역사, 폐쇄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간신히 수혈된 해외 문화는 그나마 만세일계라는 체제에 맞게 변조되어 종교든 철학이든 또 사상이 진실의 추구라는 방향을 잡지 못했고 황당한 신국사상을 만들어냈는데, ]]] p.111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탐구가 결여된 일본의 야만성을 보여준 글이지 싶다)


이 책의 좋은 점 :::: 종이장의 두께가 있어 뒷쪽의 잉크를 투영시키지 않아 좋다. 내가 읽는 명리고전들은 대부분 뒷 쪽의 글씨들이 비추어보여 별로였다.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쪽을 넘길 때, 마치 두 쪽을 넘어가는 속도감은 덤이다. 출판 관계자의 탁월한 선택이다.


출판 관계자분께 당부의 말씀 :::: 하드 커버의 이 책은 크기도 약간 작아 아주 아담하고 깜찍하며 정말 이쁜 책이다. 책의 커버 색깔과 디자인도 아주 마음에 든다.  흠잡을데 하나 없는 고퀄이다. 그런데 하드 커버의 작은 책이 가진 사소한 단점을 하나 가진 책이기도 하다. 차 한잔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읽던 쪽을 되찾기가 아주 어렵다. 다시 돌아가 또 읽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읽던 부분을 찾으려면 한참을 또 찾아야 한다. 물론 독자들이 책갈피를 쓰면 된다. 나아가 출판관계자들께서도 이 점을  고려해주셔도 좋다는 말씀 드린다. 책의 특성상 여행을 갈때도 꽤나 좋은 책이다. 깡뚱한 책이니 말이다.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금새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이점 출판 관계자분들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오니, 다음 판본 때는 갈피끈 부탁드립니다 출판 관계자님,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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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27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도서에 넣어 두고도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는데 ˝단순한 반일이 아니라 통찰에 의한 ‘일.본.론.˝ 이라는 평가에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차트랑 2026-01-27 19: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박경리선생의 이 책은 읿본의 사유(문학 예술 정치) 저변을 통해 일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제게는 그랬는데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잉냄새님~

잉크냄새 2026-02-06 20:57   좋아요 0 | URL
당선 축하 드립니다. <서평에 대하여> 라는 페이퍼가 한몫한 기분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2-06 21:48   좋아요 0 | URL
오 이런~!
저의 취약한 부분으로 당선이 되다니요!!

잉크냄새님 덕분에 용기를 낼수 있었는데
이런 일이 제게 벌어졌군요!!

격려와 제게주신 고무, 감사드립니다 잉크냄새님~

추운 날, 건강에 유의하시고 편안한 밤 되십시요~!!♡
 


과거 조선은 사람의 본명을 명이라 했고, 명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 그 명은 군(君) 사(師) 부(父) 만이 부를 수 있었다. 하여 어려서는 아명을, 성장해가며 자 혹은 호를 사용했다. 그리하여 조선은 명 자 호 라는 최소 3가지의 이름을 사용했다. 어쩌다가 수 십 개의 호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어째거나 상대가 스승님이라면 호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그냥 스승님, 하던지 불가피할 경우 호를 사용하거나 당호가 있는 경우에는 당호를 사용했다.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부르지 않을 이름을 대체 왜 지었냐 싶을 것이다. 어째거나 본명이 직접 거론되는 경우는 나라의 공식 행사 뿐이었다. 그러나 서양은 이름을 쉽게 사용했는데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시대는 변하여 대한민국의 현재 정서는 이름을 사용한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과거 정서와는 달리 서양의 노래 가사에서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돈나가 부른 'Vogue' 라는 노래는 무려 17명이나 되는 실제 사람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킴 칸스(Kim Carnes)라는 미국인 가수가 부른 유명한 곡 역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노래는 대한민국에도 잘 알려져있다. 원곡자는 따로 있는데 쉽게 히트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킴 칸스가 리메이크를 해서는, 전혀 색다른 느낌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킴 칸스의 그 노래는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81년 신디사이저 효과를 도입하여 그 노래를 전혀 색다른 음악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그 노래는 바로 'Bette Davis Eyes' 이다. 노래에는 진 할로우 (Jean Harlow),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등 세 사람의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 그런데, 대체 왜 싸다구를 날리는거지?? ]]] 


지금이라면 이름 사용권을 내라고 했을것 같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상표권 지적재산권 등의 법률과는 큰 관계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듯 하다. 해적판이 대낮에 버젓이 돌아다녔고 그걸 법적으로 해석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어째거나
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고 전세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들이며 배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레타 가르보'는 들어본적이 있지만 '진 할로우'와 '베티 데이비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에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어떤 인물들이기에 가사에까지 등장하는지 말이다.


제일 먼저 가사에 등장하는 
진 할로우 (Jean Harlow) (1911~1937)


[[[  블로그 '감나무골 정식이'에서 퍼옴 ]]]


불꽃처럼 짧은, 26년 간의 삶을 뜨겁게 살다 갔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녀는 내가 2,600년을 산다해도 넘어설 수 없는 강렬한 임팩트를 세상에 남기고 간듯하다. 짧은 기간 동안 26편의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녀의 금발머리는 특히나 아름다워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써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그녀가 영화를 완성하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불과 27세의 나이로 말이다. 병명은 급성 신부전으로 알려져 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젊은 나이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있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두번로 째 등장하는 
베티 데이비스 Bette Davis (1908~1989)


[[[ 위키백과에서 찾음 ]]]



이 분은 특히 크고 이쁜 눈을 가진 배우였다고 한다. 인터넷 자료에는 '아름다움을 연기하는 배우' 라는 소개글이 있다. 킴 칸스가 자신의 이름을 가진 노래로 세계를 강타하던 당시 베티의 나이는 73세 였다고 한다. 베티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친필로 작곡가와 킴 칸스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말이다. 킴 칸스가 이 곡으로 그래미상을 받을 때, 베티 데이비스는 축하의 장미꽃을 보냈다고도 전한다.


머지막 등장하는
그레타 가르보(1905~1990)


[[[ 역시 위키 백과 ]]]


 
스웨덴 태생으로 무성과 유성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배우라고 한다. 영화에 무지렁한 나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니 월드 대 스타임에 틀림이 없다. 이 분은 투명한 눈동자를 가졌다고들 한다. 그녀의 영향력이 어찌나 지대했던지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만 촬영을 했다. 촬영장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못 박았던 대찬 배우였다.


그레타 가르보는 36세의 나이에 은퇴를 했다. 배우로서의 삶을 짧고 굵게 살다간 것이다. 그녀는 최정상에 있을때 홀연히 대중들의 눈 앞에서 사라졌는데, 84 세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조국 스웨덴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지폐로 확인이 가능하다.  그레타 가르보의 얼굴을 스웨덴에서 현재 사용 중인 지폐 100크로나(한화 약 16,241원) 위에서 발견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스웨덴에서 그레타 가르보의 위치는 우리 나라로 치면 세종대왕 이상의 인물인 것이다. (사실 신사임당 5만냥은 늘, 언제나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 She는 과연 누구일까. 노래는 끝내 그녀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가사에 등장하는 진 할로우, 베티 데이비스 그리고 그레타 가르보의 각 장점을 합쳐놓은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정작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남자들은 그녀를 스파이라고 생각한다는 힌트는 주었다. 스파이가 누구인가. 정체를 알수 없는 사람이 아니던가? 한마디로 그녀가 누구인지 알려고들지 말라는 경고인가 싶다. 알려고 하면, 다쳐~!!!


가사를 살펴보다가,
"그녀가 그레타 가르보의 standoff sighs 를 가졌다" 는 대목에서 순간 난감해졌다. standoff는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sigh(한숨)의 앞에가서 붙어버리니, 이런? 뭐지? 순간 나를 당황시켰다.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했지만 끝내 마땅한 뜻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 명색이 영어를 전공했고 지금껏 영어로 밥벌어 먹고살았는데, 이걸 해내지 못하네 ㅠ. 작사가가 나를 아주 작살내고 있구나 하면서 "standoff sigh"를 넣고 핸드폰 AI에게 일을 시켰다.


핸드폰 AI는 나를 더 당황시켰다. AI는 "standoff sigh" 의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standoff sighs, standoff sign' 등을 제시해주었다. 구글 AI가 무료로 일을 시켰다고 일을 대충하는게 아닌가 싶기는하다. 그러나 대략 짐작되는 것은, 'standoff sigh'라는 말이 향토색을 띈 말이거나 작사가가 신조어로 만들어낸 것이었구나 싶기는 하다. 아무리 싸구려 AI이기는 하지만 결과물이 너무 시원치 않아서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AI가 제시해주는 standoff sighs를 검색했다. 결과물은 아래와 같았다.



이걸 다시 AI에게 번역을 시켜봤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AI의 distant 번역이 또 어색하지만 말이다.

"standoff sighs"는 1981년 킴 칸의 히트곡 "Bette Davis Eyes"의 서정적인 구절로, "She's got Greta Garbo's standoff sighs"라는 가사에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명한 은둔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언급하며, 멀고 냉담하거나 외로운 태도를 묘사합니다. 이 노래는 여성의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행실에 대한 시적 묘사로 유명합니다.

AI의 설명을 읽어봐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력이 떨어지는 무료 AI의 한계인가 싶기도 하면서, 생각보다 가사가 어려웠다고 나의 무능력을 합리화했다 ㅠ  물론 노래는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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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2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티 데이비스는 30~40년대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명 여배우로 5년 연속 오스카 여주상에 오를 정도로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였다고 하지요.73세에 킴칸스의 베티 데이비스 아이스가 히트하자 노래속 주인공이 자신의 할머니인줄 깨닫고 손자가 존경하게 됬다면서 베티가 직접 가수와 작곡가에게 캄사의 편지를 보냈다고 하지요

차트랑 2026-01-26 14:32   좋아요 0 | URL
오... 생각보다 훨씬 더 놀라운 소식이로군요.
5년 연속 오스카 여우주연이라니요!!!

자신의 할머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라면
손자가 정말 자랑할만 하네요~

왠지 편지로는 좀 부족한듯요^^

카스피 2026-01-26 17:04   좋아요 0 | URL
앗 모바일 폰이라 잘 안보여서 글을 다 못썼네요.5연속 수상이 아니라 5년 연속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차트랑 2026-01-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5년 연속 후보에 오르다니요!

감기 드신듯 한데요
쾌유하시기 바랍니다 카스피님~

페넬로페 2026-01-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티 데이비스 아이‘
이 노래 많이 들은때가 있었는데
추억 돋습니다.
근데 이 노래에 베티 데이비스뿐만 아니라 진 할로우, 그레타 가르보도 언급되는군요.
킴 칸스의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이었어요.
오랜만에 노래 들었어요.

차트랑 2026-01-26 20:58   좋아요 1 | URL
인풀루언서인 페넬로페님께서 친정(親政)하시니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추억을 잠시나마 돌려드렸다니 다행입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페넬로페님~!!

잉크냄새 2026-01-2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돈나 vogue의 17명 정도는 우리나라 노래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두둥~~

차트랑 2026-01-26 22:0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잉크냄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