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말로는 날이 추워지니 절친의 몸이 더욱 쇠약해지고 급기야 덜컥 병이 들어 혼절을 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약을 처방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간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사이 한참 만에 이 수류탄이 눈을 떴다. 절친의 말로는 몸이 점점 아파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순간, 기절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의사가 와서는 내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이 친구는 현재 폐가 찌그러진 상태인데, 이를 ‘기흉’이라 한다고 했다. 이 기흉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허파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워낙 체력이 약하고 폐 또한 약한 사람이라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거였다. 게다가 또 뭐라더라...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담배도 안 피우는 넘이 그 말로만 듣던 허파에서 바람이 샌다니...허헛, 참 내원, 젊은 넘이 가지가지 한다... 어쨌거나 결론은 이 친구를 웃기면 절대로 안된다는 거였다. 환자가 웃으면 폐의 손상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대수롭잖게, 네~! 했다.

 

의사가 나가자 나는 이 친구를 돌아보며,

너는 복도 많다~, 남들은 아파서 죽는다던데, 너는 웃으면서 죽게 생겼네?

 

별 뜻없이 한 말인데 이 말을 들은 이 친구가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렸다.

순간, 의사의 주의가 생각나,

어라라? 너 웃으면 안되는데?

했더니, 이번에는 통증이 오는지 가슴을 부여잡으며 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라라... 이게 아닌데...

웃음은 터지고 가슴은 아파오고, 이 친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웃다가는 그만 가슴을 부여잡으며, 악! 하고 쓰러져 버렸다.

아불싸~! 하고, 나는 간호실로 뛰어갔다.

 

간호사는 이 친구를 긴급 이송했다.

누나가 잘 봐달라며 당부하고 돌아갔는데 그러기는 커녕, 내가 말 한마디로 이 친구를 죽이는구나... 싶은 것이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한 참 만에 친구가 돌아왔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죽었나 살았나 다가가 손을 가만히 만져봤다. 다행이 손이 따듯했다. 한 참 만에 이친구가 눈을 떴다. 이친구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나는 그만 긴장이 풀렸던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누나는 심심하면 테레비라도 보라 100원짜리 동전을 한줌 쥐어주고 갔다. 그 병원에는 병실에 테레비가 있었는데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얼마간의 시청이 가능했다. 드리마라도 한 편 보려면 수백원을 투입해야 했다. 지금이야 병실마다 테레비를 매달아 놓아 돈을 내는 일이 없지만 당시에는 환자와 가족에게 테레비로 또 다른 영업을 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친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친구가 잠시 깨어있는 사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에게 한하운의 시를 읽어주곤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다른 책을 찾는다.

 

친구는 나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병이 나으면 나의 고향을 가보고 싶다고, 나는 데려가마 했다. 나의 고향에 가 보고 싶어하는 친구, 나도 너의 고향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동료들이 문병을 온다는 것이었다. 어라라 하고, 나는 문병은 절대 사절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절대 안정과 일맥상통하는 나의 적절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죄다 무지렁한 넘들은 내 말을 당췌 알아먹지를 못했다. 아니, 너네들 다녀가는 순간, 이 친구 죽을지도 모른다, 는 내 말을 통 믿지를 않은 거였다. 그런게 잇딧냐며 내일 보자고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거다. 이런 무지렁하기는, 어딧기는? 여깃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나 저나, 낭패다 ㅠ.ㅠ. 요즘처럼 스맛폰이 있다면 암 때고 전화를 하거나 가독, 문자 또는 이메일로 상황을 알려줄 수 있겠다. 아니 일명 가스에 인증 샷을 올려 환자의 상태를 보여줄 수도 있겠다. 허나, 당시는 현재와는 많이 달라서 금지곡과 금서가 있던 시절이 아니던가. 또한 편리하게 전화기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헌.책.방. 하면 청.계.천! 하던 그 시절 말이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당황하여 나는, 여기는 절대 안정, 엉? 특히, 절대로 환자를 웃기지 말것!! 하자, 그 중 상 무지렁한 넘 하나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는, 환자는 많이 웃어야 빨리 낫는데이~!! 했다. 별것도 아닌데 사람의 수가 많다보나 여기 저기서 웃음이 삐질거린다. 웃음은 전염성이 확실히 높다. 메르스는 저리가라다. 여기저기서 삐질거리던 웃음이 어느 순간 터져버렸다. 결국 이 수류탄의 웃음보까지 터트려버린 것이다. 큰일이다! 싶은 순간, 아니나 달라, 이친구가 다시 가슴을 부여잡고는 또 악! 하고 쓰러지는 거다. 아~! (안)되는 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이 친구는 다시 어디론가 실려 갔다.

 

 

보통 약골들은 체육대회때 물 주전자를 나르거나 뒤에서 응원하기마련인데, 이 친구는 그렇지가 않았다. 꼭 앞에 나선다. 그러니 몸이 파김치가 되가지고는 피곤해서 죽을라 그런다. 다음 날 일어나지도 못할거면서 기를 쓰고 덤벼든다. 성질도 어찌나 화끈한지 못마땅한 꼴을 못 본다. 뻑-하면 쌈박질이다. 안동의 깊은 산골, 냥반댁 출신인 이 친구는 불의를 참지 못했다. 뿔끈해가지고는 죄다 참견이다. 한마디로 오지랖이 하해와도 같았다. 그러나 호방하고 그 기개가 높은 것은 부인할 길이 없다. 나는 그의 호방함과 기개를 높이 샀다. 사내란 저래야 하는 법!

 

또 오랜 시간 만에 만에 친구가 병실로 돌아왔다. 진짜, 더 이상 웃.으.면. 안.된.다. 더 웃으면 이 친구는 죽음이다. 문병객들은 사고를 쳐 놓고는 벌써 돌아가고, 친구와 마주했다. 마음이 착잡하다. 이러다 친구를 잃는 것은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의학적 지식이 없다는 것이 이리도 답답할 줄이야...

 

그리고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와, 책을 하나 골랐다. 왜냐면 친구가 내 책꼿이에 있는 책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정현종외 공저의 「시의 이해」였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마냥 읽던 그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니 국문과도 아니면서 시를 왜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와 나는 시를 제법 읽었다. 「김춘수 전집」은 기본 장착하고 있었고, 멋도 모르고「시의 이해」를 읽으려 덤버들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처럼 시를 읽는다면 배고픈 시인이 세상에 어딧겠나?”

 

당시에 시집을 꽤나 가지고 있었다. 영미 시와 국내 시집를 모두 더하면 100여권이 넘어갔다. 영미의 시인들은 강의 시간에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이름이고, 솔.까.말. 친구와 나는 영미 시에서는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문화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시의 맛깔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감동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글이 주는 표현의 자유로움과 한글이라는 언어가 주는 뉘앙스의 풍부함,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매우 제약이 따르는 것이 영미시라고 느꼈다. 물론 이는 영미시를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외우려고 시도했던 시는 겨우 몇 편에 불과했고, 그 중 하나는 미국의 롱아일랜드 출신인 ‘휘트먼’의「Song of the Open Road」였다 (나는 이 시를 「대로의 노래」라고 불렀다). 그나마 절반만 외우고는 포기했다. 영미 문학보다는 되려 서양 철학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미시는 소네트의 형식을 제외하면 감동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휘트먼의 1852년 작인「Song of the Open Road」의 일부이다. 물론 번역도 내맘대로다.  

 

 

 

Comerado! I give you my hand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나의 손을 내민다

 

I give you my love more precious than money

나는 그대에게 돈보다 더 소중한 나의 사랑을 준다

 

I give you myself before preaching and law

예배나 법 이전에 나는 그대에게 나를 보낸다

 

Will you give me yourself?

그대는 내게 그대를 주련가

 

Will you come travel with me?

함께 여행하지 않으련가

 

Will you give me yourself? Hey!

친구여! 나에게 그대를 주련가

 

Will you come travel with me?

함께 여행하지 않으련가

 

Will we stick be each other?

우리 서로 함께하지 않으련가

 

as long as we live?

우리 살아있는 한

 

As long as we LIVE?

우리 살아있는 한

 

 

 

 

그리고 시절에 맞게 회자되는 국내 시인들이 주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생존에 있었던 언어의 연금술사 「김춘수 전집」은 기본이었고, 이미 작고한 「김수영 전집」은 소장 필수 항목이었다. (김수영을 모르면 간첩이겠지... 아니, 당시 간첩도 김수영이라는 인물은 배우고 넘어왔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타계한 시인 정지용은 은밀한 대화의 대상이었다. 생존해 있었지만 백석의 시는 같은 이유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작고하신 절대 고독의 김현승, 생존에 있는 김지하,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당시에 생존하시던 조아무개 시인, 그리고 양성우, 신경림, 조해일, 정호승 등 시인들의 작품을 읽었다. 천상의 시인 천상병의 시도 잊지 않고 읽었다. 더 많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당장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의 보들레르는 영원한 화제 거리였다. 당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렀다, 로 시작하는 「미라보 다리」를 쓴 시인 ‘아폴리네르’를 모른다면 학생도 아니었다. 친구는 이「미라보 다리」를 특히 좋아해 달달 외우고 다녔다. 

 

 

(알라딘 검색을 하니 결과물은 나오는데 상품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절판일 것 같은데 품절이라고 나온다.  대신 중고는 검색 가능하다. 이이미를 다운로드하여  첨부함.)

 나보다 훨씬 더 시를 좋아했던 이 친구는 정현종의 책을 원했다. 친구는 정현종의 이 책을 서점에서 잠시 들쳐 본 후로 마치 연인을 사모하듯 했다. 정현종은 시인이었지만 그의 시보다는 그가 쓴「시의 이해」를 더 선호했다. 나는 흔쾌히 가지고 와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이 책 역시 알라딘에서 검색할 수가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지가 남아있다. 정말 귀한 이 책을 그만 친구에게 줘버렸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눈 딱 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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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7-17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웃으면 안되는데.... 자꾸 웃음이 납니다. ^^;;
너무 글을 잘 쓰셔서 이 글이 실화인지 차트랑님께서 쓰시는 글인지 마구 헷갈리면서 다음글을 기다립니다.

차트랑 2015-07-17 12:5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보슬비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슬비님께서 읽어주신 위의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건방지게도 시를 한편 썻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그 시를 이곳에 적어놓을 생각입니다.
다시 찾아주시고 그를 위한 시도 읽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여름 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차트랑 드림

아, 상황이 될때, 보슬비님의 서재에 답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슬비님

보물선 2015-07-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죽는 병. 패러독스네요!

차트랑 2015-07-17 13:0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보물선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이랬는데 어쩌다가는 ㅠ.ㅠ.

건강에 유의하시고 편안한 하루되세요 보물선님!
조만간 답방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붉은돼지 2015-07-1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귀한 것을 선뜻,, (물론 손은 벌벌 떨렸지만) 친구분에게 드린 님의 용기와 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ㅎㅎㅎㅎ

차트랑 2015-07-17 16:5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붉은돼지님~ 그 귀한 것을 ^^

돌아보면 그 당시 얼마나 무지렁했냐면요
어느 대학에서는 국문과 전공학생들의 `시의 이해` 라는 학과정의
강의자료로 정현종님의 저 책을 교수님들께서 쓰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답니다
한마디로 겁나 무지렁 했지요 ^^

다음 시리즈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붉은돼지님~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판미동 출판사 입니다.

출간 도서 <한글 대학·중용>, <한글 맹자>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 신창호 교수가 풀어낸 내 삶을 이끄는 <한글 사서> 시리즈 완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 기준점의 하나로 인문학을 꼽는다. 그러나 막상 고전을 읽자니 그 벽이 너무 높고, 고전을 자기계발로 풀어낸 서적들을 보자니 뭔가 아쉽다.

이번에 판미동에서는 앞서 출간한 『한글 논어』에 이어 『한글 대학』과 『한글 중용』, 『한글 맹자』를 출간하면서 <한글 사서> 시리즈를 완간하였다.

특히, 『대학』과 『중용』을 묶어 공자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처음과 끝을 읽어볼 수 있게 하였다.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인 신창호 교수는 ‘사서’의 읽는 순서로, 『대학』을 앞에 두고, 『논어』, 『맹자』를 가운데 두며, 『중용』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먼저 『대학』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학문과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규모를 정하고, 그 뒤 『논어』를 읽으면서 삶의 근본을 세우며, 그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인생에서 그 공부가 어떻게 응용되었는지 살핀다. 이런 작업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중용』을 통해 옛사람들의 미묘한 지혜를 구한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7월 15일 ~ 7월 21일 (당첨자 발표 : 7월 22일)

발송: 7월 23일


2. 모집인원 : 3명 (상기 2권 모두 증정드립니다)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개인블로그'와 '알라딘' 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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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어느 겨울,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문맹이 탈 문맹을 하고서는 다락방에서 공부를 한 탓인지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온 것이다. 말로만 듣던 서.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학생이 된 어느 날, 요즘 학생들의 표현을 빌자면 베프, 우리말로는 절친, 그 절친의 시집간 누나가 내게 자기 동생의 비보를 알려온 것이다. 절친의 누나는 자기 동생, 즉 나의 절친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서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화들짝 놀라 병원으로 달음질 했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이화여자 대학교 병원이었다. 도착해보니, 아불싸... 진짜로, 진짜로 나의 절친이 병상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처음엔 죽은 줄만 알았다. 숨은 쉬고 있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게다가 양쪽 콧구멍에는 무슨 관을 끼고 있었고, 옆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계가 그 콧구멍으로 공기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저거 없으면 친구는 죽는 것인가.... 온갖 상상이 죄다 일었다. 그러나 망령되이 행동을 할 수 없어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나는 산꼭대기로 한참을 올라가야 서쪽 바다가 멀리 내다보이는 충청도의 산골에 살다가는 서울로, 절친은 경상도의 깊고 깊은 두메산골의 산골에서 서울로. 이 완전 대척점 출신의 시골뜨기들이 서울의 어느 강의실에서 만난 것이다. 딱 보기에도 촌티가 쥘쥘 흐르는, 암만 이쁘게 봐줄래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촌딱들, 딱 그 모냥이었다. 촌딱이 촌딱을 알아본다고, 서로 눈인사를 꿈뻑하고는 서로에게 그저 만만한 상대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그에게 준 책에 있는 한하운의 시이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 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낮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며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당시 친구에게 준 '한하운 전집'은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을 할 수가 없다. 하여 검색이 되는 책으로 이미지를 대신한다.

  

「전라도 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천형이라 칭하는 나병의 뼛속 깊은 애환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보듬어 넣었다. 시인이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그 고통을 감싸 않은 이 시는 그것을 드러낸 것보다 훨씬 더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옆구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수처럼 다가와서는 결국 그 비수는 나의 심장에 박혀버린다. 나는 당시 그 비수를 다시는 빼낼 수가 없다고 느꼈다. 더불어 시인의 발가락과 함께 나의 발가락도 하나가 덩달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한하운의 '전라도 길'을 읽던 시인 '고은'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자신도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말을 아주 오래 전에 들은적이 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가 없다.

 

절친은 당시 ‘정○용’보다 ‘한.하.운.’을 더 좋아했다. 시절은 '정지용'을 '정지용'이라 부르지 못했다. 하여 우리는 시인 '정지용'을 ‘정 똥글라미 용’이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정지용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불법이었다. 요즘에야 교과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인이 정지용이지만 말이다...  

 

 

이 친구는 가끔 강의실에 수류탄을 투척하곤 했는데, 그 수류탄은 다름 아닌 그 넘의 발.음.이었다. 이 친구가 입을 뻥끗만 하면 바로 강의실에서 와하하- 폭소가 터져버리곤 했다. 도대체 이 넘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기는 한 것인지, 그 흔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소 6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운 것은 맞나? 싶을 정도로 발음이 완전 꽝! 꽝! 꽝! 아니 상상을 뛰어 넘은 창조력을 발휘했다. 영어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넣는 것도 모자라, 문장의 인토네이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창조력이란 정녕 이런 것이란 말인가.... 입을 뻥끗 할 때 마다 강의실은 어김없이 와-하-하-! 의 바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재밌은 것은 교수님이 이친구의 그 창조적 발음을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중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환기의 수단으로 딱 이었다.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이 수류탄을 꺼내 드시고는 안전핀을 바로 제게, 강의실 안에 주저 없이 투척해버리시는 거다. 불발나는 경우는 없었다. 수류탄이 미처 터지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이미 삐질 삐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이 친구가 입을 뻥끗하면 겨우 참았던 폭소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당시는 학기 초 인지라 교정은 동아리 홍보물로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했다. 여유가 나는 시간에는 주로 도서관과 동아리에 들렀다. 주로 도서관에서 이 친구를 마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수류탄이 뜬금없이 동아리 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날은 정기 회의가 있어 모든 회원이 모이는 날 이었던 것이다. 이미 서로를 알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던 고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눈만 껌벅거리게 되었다. 어라라, 이 수류탄! 하고 있는데 어색한 순간도 잠시, 그 친구가 나를 언제 봤다고 말을 바로 까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어라? 니도 여깃나? 경상북도 특유의 억양이다.

오냐, 그러는 너도 여깃나?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마친 후, 우리는 커피 자판기 앞으로 갔다. 역시 그 친구가 먼저 입을 열였다.

 

‘말’까서 기분 나쁘나? 나 재수해따 아이가~, 니는 재수 아이제?

(아, 이 때의 모습은 사실은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속으로, 재수가 무슨 벼슬이라고... 하면서,

 

아 그랬나? 니네 산촌은 ‘말’도 까서 먹나? 밤이냐 까먹게? 그리고, 학번이 같으면 똑같은 거다 이넘아, 하면서 씨익 웃었더니, 이 친구, 와-하하하--!!! 하고 허리까지 뒤로 제끼면서 겁나게 크게 웃는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트리는 거다. 으이그~, 이 화상!

 

그 후로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이렇게 친구가 된 이 넘의 체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약골이었다. 멀대같이 키는 큰 것이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있고, 자주 헛기침을 하곤 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의사가 아니라도 약골도 상 약골이로구나 싶을 만했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도, 순간 혼자서 중심을 읽고 벌러덩 자빠지기 일쑤였다. 이거는 뭐, 「황순원」의 송아지 도입부 인,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이거랑 다를 바가 하나 없었다.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는 시집「보리 피리」(1955년)에 실린 것으로 서울 신문에 발표한 시라고 한다. 조념선생께서 곡을 붙여 가곡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절친은 시인 한하운을 매우 좋아했다. 나는 병석의 친구에게 그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보리피리는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여느 시와 다를 바가 없이 시작한다. 시인의 상황은 차치하고라고 그 어느 시보다 더욱 평범한 시어로 시작을 한다. 동심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어들이다.  특징 중 하나는 운율이 잘 살아있어 시를 읽는 사람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리듬감이다. 그런데, 시인이 자신이 처한 아픈 상황을 모두 도려냈구나 싶을 즈음, '인간사 그.리.워.' 라는 시어를 던진다. 짧은 이 시어 안에 그가 도려냈던 모든 것을 압축시킨 느낌이다. '보리피리'라는 시어가 드디어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맑은 영혼의 동심이 시어 '보리피리'를 통과하면서 시인이 그동안 자신의 가슴 깊이 여미어 두었던 새파란 아픔이 어느새 독자의 가슴에 배어든다. 동심이 어느새 시인의 아픔, 지신의 일생을 통한 파란 아픔으로 변해있다. 

  

 친구가 한하운을 좋아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시어에 다다르는 순간, 한하운의 임팩트가 가슴 깊숙히 파고든다. '이 시어에서 눈을 떨 수가 없으며, 자꾸만 되돌아 읽는 바람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하는 그런 시어' 라고 친구는 말하곤 했다.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그 얼마나 그리운 일인지,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깨닫지 못한다. 시인이 깨달았듯 말이다. 시인이 처했던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그 귀하디 귀한 관계의 소중함을 말이다...

 

 

 

 

 

병실에서 만난 이 친구 누나의 말로는 동생이 본디 체력이 약한데, 특히 폐가 약했다. 중고생 때 툭하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했고 늘 골골골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급기야 추운 겨울을 맞이하여 겨울 정기 행사를 하는 중이라는 것인데 요번에는 평소와는 달리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이거는 백화점 정기 세일도 아니고, 진짜 ㅠ.ㅠ. 문제는 집이 경상도 깊은 산골 오지인 상 촌동네라 부모님 오시라 할 처지도 못되고 누나는 직장인이라 병자를 옆에서 일정시간 돌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고 절친인 나에게 연락했다는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겨울 방학 중이니, 나는, 아이고 있다 마다요~! 하면서 친구 퇴원 할 때까지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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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7-1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죠? 그 친구는?
뒤가 궁금하군요....

차트랑 2015-07-15 12: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막상 말씀드리려니...ㅠ.ㅠ.)

안녕하세요
붉은돼지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북플을 하지 않는 관계로 어느 분께서 방문해주셨는지 알수가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답방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친구에게 준 책이 또 있어서 다음 페이퍼를 보시면
상황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저도 상황이 되는대로 시리즈의 페이퍼를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붉은돼지님 ~!





그레이진영 2015-08-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처음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한하운시인의 시집이 눈에 띄어서요 시인의 시도 무척 좋아하지만 야자시간에 시를 외우면 집에 갈수 있다는 담임샘 말에 거의 한학기를 시를 외우고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서육사> 였습니다. 이육사가 아니고요. 그러다 한하운님의 개구리를 외웠더니 갑자기 교실에 3초간의 적막이...... 그리고 와~~ 하는 웃음소리가 선생님의 얼굴엔 역시!! 하는 미소가 그때 생각이 나서요 종종 들어오고 싶습니다.
 

깊은 산골의 문맹 소년이 어릴 적, 당시 신문지는 귀한 것이었다. 행여나 장에 나가실 때면, 어른들은 신문지를 얻어 오곤 했다. 지금이야 신문지의 용도가 많지 않지만 그 시절 산골 깊은 곳에서는 신문지란 매우 요긴한 것이었다. 때로는 아궁이의 불쏘시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깜깜한 밤에 신문지를 양초에 둘둘 말아 함께 불을 붙이면 그 밝기가 대낮 같았다. 문맹의 아버지는 친인척의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늘 양초에 신문지를 함께 말아 길을 밝히셨다. 자정을 지나야 하는 고로 달이 없는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신문지를 양초에 두른 다음 불을 붙이면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었다.

 

신문지는 선물할 물건을 포장하는 포장지로도 요긴했다. 그냥 내미는 것 보다 신문지에라도 싸서 선물을 하면 그나마 모양새가 나았다. 깊은 산골, 보리 농사꾼들의 특별한 날에 주고받던 특별한 선물인 고기를 신문지에 역시 둘둘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밥상을 덮어 놓기에도 제격인 것이 신문지였다.

 

그러나 신문지의 최고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학교에 가져가 점심 대용으로 먹을 누룽지를 포장하는 일이다. 문제는 점심으로 누룽지를 먹으려고 신문지를 벗겨내면 끈끈한 누룽지에 신문지가 착 달라붙어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눌러 붙은 신문지를 떼어내려 해도 어린 고사리 손의 한계가 있다. 신문지의 잉크 글자가 누룽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누룽지에 배인 글자를 읽으며 먹는 누룽지의 맛에 옅은 잉크향이 배어나온다. 바깥세상, 문명의 냄새다. 이 모든 신문지의 용도를 극적으로 뛰어넘는 용도가 하다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벽지였다.

 

시골 산속의 보리농사꾼들에게 전용 벽지는 사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새로이 벽지를 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신문지가 벽에 달라붙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 벽에 바른 신문지를 읽을 만큼 어휘력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다락방에서 찾아 낸 것이 형님들의 교과서였던 것이다.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않았던지 형님들의 교과서는 제법 깨끗한 상태로 다락방에 놓여있었다. 하긴 형님들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 보따리를 팽개치고는 밖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날이 저물거나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역시나 촌딱들이다.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들 빠들하며 퀄리티가 있는 종이 책을 그냥 내다 버릴 리가 만무했다. 신문지마저 귀했던 보리농사꾼들은 애들의 교과서를 다락방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과서 읽기를 다 마친 후 남아있는 읽을거리는 유일하게 벽지로 발라둔 신문지였다.

 

당시 신문은 한자를 많이 사용했다. (어느 즈음에는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언어는 없을 듯하다. 언어학자도 아니고 언어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는 처지라 증거를 댈 능력은 없다.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은 표현이 무궁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언어가 바로 우리의 모국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신문은 다수의 한자를 가지고 있었다. 상황이 주어지면 아버지께 한자의 뜻을 여쭈었고 아버지는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읽고 붓을 배우신 아버지께서는 한자에 밝으셨던 것이다.

 

어째 거나 탈 문맹을 하고 교과서를 읽은 후에는 유일하게 읽을거리라고는 신문지 뿐 이었다. 한자가 많아 읽다가는 멈추고 또 멈추는데, 한마디로 신경질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 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신문의 연재 만화였다. 만화의 제목은 바로「장군의 딸」이었다. 만화와의 최초의 조우였다. 그런데 문제는 벽의 군데군데 보이는 만화가 연재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가만 살펴보니 일련번호가 쓰여 있다. 그럼 뭐하나. 신문지를 무작위로 벽에 발라 놓았는데 순서가 따로 있을 리가 있나. 어떤 번호는 반쯤 만 보이고 나머지는 다른 신문지 밑에 겹쳐 있어 읽을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읽을라하면 다음 시리즈가 없고 한참을 건너뛴다. 또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난다. 이리 찾고 저리 찾고 방마다 시리즈를 찾아다니는 일이 여간 힘들게 아니다 ㅠ.ㅠ. 재미 좀 있을 만하면 없고, 그러니 내용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아직도 「장군의 딸」의 스토리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한국적이지 않은 만화였다는 것. 만화의 지리적 배경이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만 했을 뿐이다. 또한 그 신문이 어떤 신문이었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다. 신문지는 딱 하나만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장군의 딸」, 그 무더운 여름 이 곳 저 곳으로 시리즈를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 문맹과의 씨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절은 빈곤을 빈곤이라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시기 찢어지게 빈곤했던 탓에 부가 무엇이고 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아! 내가 째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구나, 하겠지만 황순원의 「송아지」에 나오는 돌이네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신문지로 벽지를 발라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신문지가 누룽지에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 붙어있듯 해도 누룽지를 잘만 먹었다. 한마디로 남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온 세상이 내 것이고 친구들의 것이었다. 아쉬울 것이 없었던 나의 세상, 우리들의 세상.

 

학교 선생님은 가정환경을 조사한다고,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했지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넘 하나 없다. 눈만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봐도 말이다. 테레비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냉장고는 또 뭣에 쓰는 물건인지 도대체 짐작도 하지 못했던 시절의 문맹들은 지들이 문맹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런 촌딱들은 그저 늘 신이 났고 자신들이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문맹 소년과 그 친구들이 행복할 수 있던 시절은 갔다. 문맹을 떨치고 공부를 하여 서울로 올라오니, 오호라... 빈이 무엇이고 부는 무엇인지 비로소 알겠더라. 빈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송아지, 아니 소를 팔아도 대학 등록금이 되지 않는다. 자본은 국부론과 진화론의 순수함 본질을 변질 혹은 훼손시겼고,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했다. 돌이처럼 주어진 상황과 용감히 맞서는 것 자체를 하용하지 않는 사회, 자본주의이다.

 

다수의 저자들은 부를 일구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외치지만 이 인문학 역시 자본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은 현대 인간의 정신을 대변한다. 인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 또한 자본이다. 창조력은 늘 자본과 함께 언급 된다. 자본을 벌어들이는 일이 곧 창조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본주의(Capital-ism) 이겠는가. ism은 ‘철학적 개념에 첨가되는 접미사’라고 되어있다. 자본은 누가 뭐래도 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되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막상 상황을 만나면, 어쩔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의 힘이다. 영어의 속담에는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의를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로 의역할 수 있다. 귀신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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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맹소년은 한마디로 깡촌도 그런 깡촌이 없는 산골 출신의, 촌딱의 상 촌딱이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제 이름하나도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러니 문맹이지.. 아 그런데 1학년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이 문맹에게 읽기를 시키는거라...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그렇게 몇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는데... 며칠 후에는 그 차례가 올 것 같은 불길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업시간에 불안에 떨며 문맹 소년은 좌불안석이다.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처지의 문맹들이 더러 있었지만, 도대체 다른 애들은 그 어려운 국어책 읽기를 언제 배웠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애들은 잘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문맹 소년의 차례가 된 것이다.

선생님: 너, 얼어나서 읽어봐~!

 

명을 받은 문맹 소년은 책을 들고는 슬로우 비디오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은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는 구슬 땀이 솟는 느낌이다. 얼굴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그러니까....하고 문맹 소년은 주저주저, 떠듬떠듬,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아니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으로, 뭘 알아야 읽지요 성생님....ㅠ.ㅠ. 했다. 이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애들은 빤히 문맹을 쳐다보고 있다. 속으로 그럴 것이다. 쟤, 못 읽나봐?

 

그러는 사이 성생님은 눈치를 채셨나보다. 그만 앉아! 하는 소리에 문맹 소년은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온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마저 아득해왔다. 그러는 사이 다른 녀석이 일어나 그 문맹이 읽지 못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코.끼.리. 였다. 고.기.리.도 모르는 문맹이 그 어려운 코.끼.리.를 어찌 알겠나...ㅠ.ㅠ.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문맹 소문이 조만간 전교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창피의 수준을 넘어 이거는 진짜...ㅠ.ㅠ. 당장 내일부터 놀림감이 아닌가... 애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문맹은 애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완전 풀죽은 강아지 신세가 따로 없다.

 

하루를 완전히 망친 문맹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책 읽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했더니 아버지 말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던? 하셨다. 어머니께서 문맹소년을 거드셨다. 그래도 집에서 배우면 좋지요, 하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등잔불 아래에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애들 앞에서 창피당한 일은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기분에다가 그 창피함을 또 느끼는 것은 그 문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에혀~ 그날처럼 복잡한 심경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문맹 소년은 등잔불 아래에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글자를 익히고 익혔다. 날이 갈수록 읽고 쓰기에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웬만한 한글은 죄다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글자를 익힌 애들이 그러하듯 신이 나서는 글자란 글자는 죄다 읽어대는 습관이 든 것이다. 한글 참 쉽데이~!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읽을 거리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졌다. 그런데 도회지와는 달리 부근에 읽을 글자가 없는 것이었다. 간판도 없고 마구 뿌려주는 광고지도 없다.

 

 

는 능력은 가졌으나 사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맹 소년은 (아니 이제는 문맹이 아니지) 우연히 다락방에 오르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귀한 신문지와 형님들의 학년이 지난 교과서를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바로 이거다! 하고 결정한 것이 도덕, 사회, 국어교과서 였다. 산수 교과서도 있었지만 윗 학년 산수를 어찌 혼자 익히랴... 포기하고 형님들의 국어교과서를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이야기, 즉 소설이었다. 그때 읽었던 감동적이며 지금껏 그 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다는 소설이 바로 「송아지」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돌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 봄 방학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 꼴이 돼갔다. 그 동안 돌이는 아침마다 송아지를 마당비로 쓸어주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 때만 해도 아직은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뒤 6월 25일에 전쟁이 터져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 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버렸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상황이 그러하자 돌이네도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떠나는 날 새벽 돌이는 아버지에게, “송아지두 데리구 가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짐만 꾸릴 뿐 대답이 없었다. 돌이가 재우쳐 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손만을 잠깐 멈추고 돌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안 된다, 강 얼음이 아직 엷어서……. 사람이나 겨우 밟구 건널까 말까 한데 소야 되나” 하고 한숨을 짓는 것이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소설「송아지」는 잘 나가다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만 탈문맹을 궁금해 죽게 만든다. 한 겨울 피난을 가야하는 소년이 차마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지 못해 안절 부절인데, 마침 송아지가 고삐를 끊고는 소년 쪽으로 달려온다. 다음은 가장 극적인 바로 그 장면, 아직도 탈문맹으로 하여금 그 소설을 궁금하게 하는 장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나가는 돌이의 얼굴을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렇게 소설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책의 한 쪽에는 소년이 송아지의 목을 끌어 앉고 송아지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을 그린 삽화가 있었다. 아... 그 뒤를 얼마나 궁금하게 하는지... 몇날 며칠을 온갖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밥맛도 없는 것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자신의 교과서로 이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또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될 때까지 탈문맹은 그 뒤를 궁금해 하며 소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소년과 송아지가 모두 강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여러 가지 설정이 가능했다. 둘 다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아...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소년이 살고 송아지가 죽는다면... 소년의 비통한 마음을 어찌 글로다 말할 수 있을까.. 송아지는 살고 소년이 ... 이 또한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극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소설이 아니던가... 물론 둘 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물이 엷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설마 그렇게 죽기야 하겠어....읽기를 마친 후 어린 마음에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뒤가 궁금해 영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송아지」였다.

 

사실은 아직도 그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소설이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락방에서 형들의 책을 뒤져 읽은 「송아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어야 소설가의 직성이 풀리려나. 이게 바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전쟁을 모르는 어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순원의 소설에는 송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 유명한「소나기」에도 송아지가 등장한다.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 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황순원,「소나기」중에서

 

 

조선산 송아지의 다 자란 버전인 소는 유순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터라 용감하다는 말이 우리의 소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순하여 평소 어린이의 손에 이끌려 다니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과거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산 호랑이가 종종 민가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호랑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 용감히 맞서 새끼를 지켰다고 한다. 

 

 

조선의 소는 누렁소 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소재 중 하나는 ‘얼룩배기 황소’이다. 그 얼룩배기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 역시 누렁소인 것이다. 그런 누렁소는 농업 중심이었던 조선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역시 게으른 금빛 논과 밭을 갈거나 화물용 달구지를 끌어주는 그야말로 요즘의 트럭이나 다름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선조들은 소가 꿈에 나타나면 조상님이라 여겼다. 조선 후기 조선의 소는 약 100 가구당 하나 꼴이었다. 농사꾼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수단을 제공했던 소는 귀하디 귀해 그 이름을 생구(生口)라 했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 한다. 한마디로 밥을 함께 먹는 입(口)이 바로 식구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종종 안식구라고도 한다. 구(口)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뜻 깊은 용어를 우리 선조들은 생구(生口)라 하여 소를 거의 가족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외출을 해서도 아무리 늦어도 꼭 집으로 돌아왔던 것은 바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생구 때문이었다. 소에 대한 대우가 이렇듯 지극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시골의 많은 가정에서는 키우던 소를 팔이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아마도 소를 판 FM 장학금(파더 마더께서 주시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여 송아지는 소년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요 친구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게 귀한 송아지가 등장하는 소설로 문맹 소년은 그야말로 문맹을 떨쳐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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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7-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요즘은 더 이상 소가 파더 마더 장학금의 원천이 아니라죠.
송아지 한마리가 소로 자라는데 들어가는 밑천도 그렇지만,
소값보다 등록금이 몇배는 비싸서 말이지요~^^

차트랑 2015-07-13 14:34   좋아요 0 | URL
그거 아세요~?
활순원님이 송아지를 쓰던 시절에는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했다는거요?

소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이,
아니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의 행복지수가 더 높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현대에는 대출 받아 학자금했다가 갚지 못해서
금융제도권의 규제를 받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