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의 문맹 소년이 어릴 적, 당시 신문지는 귀한 것이었다. 행여나 장에 나가실 때면, 어른들은 신문지를 얻어 오곤 했다. 지금이야 신문지의 용도가 많지 않지만 그 시절 산골 깊은 곳에서는 신문지란 매우 요긴한 것이었다. 때로는 아궁이의 불쏘시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깜깜한 밤에 신문지를 양초에 둘둘 말아 함께 불을 붙이면 그 밝기가 대낮 같았다. 문맹의 아버지는 친인척의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늘 양초에 신문지를 함께 말아 길을 밝히셨다. 자정을 지나야 하는 고로 달이 없는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신문지를 양초에 두른 다음 불을 붙이면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었다.

 

신문지는 선물할 물건을 포장하는 포장지로도 요긴했다. 그냥 내미는 것 보다 신문지에라도 싸서 선물을 하면 그나마 모양새가 나았다. 깊은 산골, 보리 농사꾼들의 특별한 날에 주고받던 특별한 선물인 고기를 신문지에 역시 둘둘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밥상을 덮어 놓기에도 제격인 것이 신문지였다.

 

그러나 신문지의 최고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학교에 가져가 점심 대용으로 먹을 누룽지를 포장하는 일이다. 문제는 점심으로 누룽지를 먹으려고 신문지를 벗겨내면 끈끈한 누룽지에 신문지가 착 달라붙어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눌러 붙은 신문지를 떼어내려 해도 어린 고사리 손의 한계가 있다. 신문지의 잉크 글자가 누룽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누룽지에 배인 글자를 읽으며 먹는 누룽지의 맛에 옅은 잉크향이 배어나온다. 바깥세상, 문명의 냄새다. 이 모든 신문지의 용도를 극적으로 뛰어넘는 용도가 하다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벽지였다.

 

시골 산속의 보리농사꾼들에게 전용 벽지는 사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새로이 벽지를 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신문지가 벽에 달라붙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 벽에 바른 신문지를 읽을 만큼 어휘력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다락방에서 찾아 낸 것이 형님들의 교과서였던 것이다.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않았던지 형님들의 교과서는 제법 깨끗한 상태로 다락방에 놓여있었다. 하긴 형님들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 보따리를 팽개치고는 밖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날이 저물거나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역시나 촌딱들이다.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들 빠들하며 퀄리티가 있는 종이 책을 그냥 내다 버릴 리가 만무했다. 신문지마저 귀했던 보리농사꾼들은 애들의 교과서를 다락방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과서 읽기를 다 마친 후 남아있는 읽을거리는 유일하게 벽지로 발라둔 신문지였다.

 

당시 신문은 한자를 많이 사용했다. (어느 즈음에는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언어는 없을 듯하다. 언어학자도 아니고 언어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는 처지라 증거를 댈 능력은 없다.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은 표현이 무궁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언어가 바로 우리의 모국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신문은 다수의 한자를 가지고 있었다. 상황이 주어지면 아버지께 한자의 뜻을 여쭈었고 아버지는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읽고 붓을 배우신 아버지께서는 한자에 밝으셨던 것이다.

 

어째 거나 탈 문맹을 하고 교과서를 읽은 후에는 유일하게 읽을거리라고는 신문지 뿐 이었다. 한자가 많아 읽다가는 멈추고 또 멈추는데, 한마디로 신경질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 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신문의 연재 만화였다. 만화의 제목은 바로「장군의 딸」이었다. 만화와의 최초의 조우였다. 그런데 문제는 벽의 군데군데 보이는 만화가 연재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가만 살펴보니 일련번호가 쓰여 있다. 그럼 뭐하나. 신문지를 무작위로 벽에 발라 놓았는데 순서가 따로 있을 리가 있나. 어떤 번호는 반쯤 만 보이고 나머지는 다른 신문지 밑에 겹쳐 있어 읽을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읽을라하면 다음 시리즈가 없고 한참을 건너뛴다. 또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난다. 이리 찾고 저리 찾고 방마다 시리즈를 찾아다니는 일이 여간 힘들게 아니다 ㅠ.ㅠ. 재미 좀 있을 만하면 없고, 그러니 내용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아직도 「장군의 딸」의 스토리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한국적이지 않은 만화였다는 것. 만화의 지리적 배경이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만 했을 뿐이다. 또한 그 신문이 어떤 신문이었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다. 신문지는 딱 하나만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장군의 딸」, 그 무더운 여름 이 곳 저 곳으로 시리즈를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 문맹과의 씨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절은 빈곤을 빈곤이라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시기 찢어지게 빈곤했던 탓에 부가 무엇이고 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아! 내가 째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구나, 하겠지만 황순원의 「송아지」에 나오는 돌이네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신문지로 벽지를 발라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신문지가 누룽지에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 붙어있듯 해도 누룽지를 잘만 먹었다. 한마디로 남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온 세상이 내 것이고 친구들의 것이었다. 아쉬울 것이 없었던 나의 세상, 우리들의 세상.

 

학교 선생님은 가정환경을 조사한다고,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했지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넘 하나 없다. 눈만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봐도 말이다. 테레비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냉장고는 또 뭣에 쓰는 물건인지 도대체 짐작도 하지 못했던 시절의 문맹들은 지들이 문맹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런 촌딱들은 그저 늘 신이 났고 자신들이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문맹 소년과 그 친구들이 행복할 수 있던 시절은 갔다. 문맹을 떨치고 공부를 하여 서울로 올라오니, 오호라... 빈이 무엇이고 부는 무엇인지 비로소 알겠더라. 빈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송아지, 아니 소를 팔아도 대학 등록금이 되지 않는다. 자본은 국부론과 진화론의 순수함 본질을 변질 혹은 훼손시겼고,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했다. 돌이처럼 주어진 상황과 용감히 맞서는 것 자체를 하용하지 않는 사회, 자본주의이다.

 

다수의 저자들은 부를 일구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외치지만 이 인문학 역시 자본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은 현대 인간의 정신을 대변한다. 인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 또한 자본이다. 창조력은 늘 자본과 함께 언급 된다. 자본을 벌어들이는 일이 곧 창조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본주의(Capital-ism) 이겠는가. ism은 ‘철학적 개념에 첨가되는 접미사’라고 되어있다. 자본은 누가 뭐래도 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되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막상 상황을 만나면, 어쩔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의 힘이다. 영어의 속담에는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의를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로 의역할 수 있다. 귀신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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