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관 - 한 생존자가 기록한 대서양전투
헤르베르트 A. 베르너 지음, 김정배 옮김 / 일조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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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대서양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독일 유보트 함장이 쓴 꽤 유명한 회고록입니다. 잠수함 전사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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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의 정치 썰전 - 보수와 진보를 향한 촌철살인 돌직구 이철희의 정치 썰전 1
이철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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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론이나 전망도 있지만 글을 쓸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논평이 눈에 띈다. 마치 철지난 옷을 입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령 이렇다.


기회의 야권

... 여전히 부진한데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위기감은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 여권의 예상 밖 난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고, 새누리당이 비록 정당 지지율은 지키고 있지만 친박과 비박 간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데 무엇을 그리 걱정할 게 있으랴 하는 투다. (116페이지)


실력으로 이겨라

박근혜 요인의 약화는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모든 정당, 정치 세력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누구도 유권자의 사랑을 못 받는 일종의 리더십 공백이 생겨났고, 때문에 백가쟁명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우습게도 이런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력이 친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례 없이 퇴임 2년 만에 회고록을 내면서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123페이지) 


이런 글을 요즘 상황에서 읽는 것이 적절한가. 현실에 밀착한 논평이 갖는 단점이다. 이철희의 논평 방식을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글을 읽는 현재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문이 든다. 리더십에 대한 얘기 정도가 현 상황에 적용되는 논점인 듯 싶다. 


강한 리더십과 이기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한 리더십이 구축되어야 한다. 권한을 단호하게 행사하고, 결과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지는 것이 강한 리더십니다. 이것 없이는 다가오는 2016년 총선 승리에 필요한 준비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강한 리더십이 구축된다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얻지 못해도 사실상 승리할 수 있다. (305페이지)


중간에 새누리당에 대한 논평도 있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전 정부의 박근혜와 같은 인물(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의 대항마)이 이번 정부에서는 안 보이는데 이것이 새누리당의 리스크이다. 야권에 대한 논평을 요약하면, 한 마디로 현실에 안주하는 무능한 오합지졸이라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한 분들, 반대를 넘어 승리를 열망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일독해 봐야 보이는 전망이 없다. 그냥 제3자의 입장에서 균형을 잡는 척하고 쓴 정치논평일 뿐이다. (쓰다 보니 신랄해져서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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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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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인 줄 알지만 그래도 번역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해 놓는다. 좋은 번역도 많지만 때때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거무스름한, 망가진 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도망치거나 파괴되는데, 하나는 이물이 부서져서, 다른 하나는 불에 타면서 불길이 어른거린다. (14페이지)

원문 - Dark, ruined ships appear, scuttled or destroyed, one with its bow shorn away, a second flickering as it burns.

도망치거나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scuttle되거나 destroy된 배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scuttle은 보통 자침自沈시키는 것을 말한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바다는 마주한 창문들 밑을 달린다. 옥상. (31페이지)

원문 - Seventeen eighteen nineteen twenty. Now the sea races beneath the aiming windows. Now rooftops.

aiming windows는 폭격기의 조준창을 의미한다. 폭격수가 숫자를 세면서 조준창을 보는 장면이다. 조준창 밑으로 바다가 지나가다가 이제 옥상이 보이는 것이다. 완전한 오역


그들 위론, 나무 수상 플랫폼에 양철 시계태엽 장치를 단 수상스키판과 전기 장치로 돌아가는 프로펠러가 최면을 거는 듯한 궤도로 빙빙 돌고 있다. (65페이지)

원문 - Above them, suspended from a wire, a tinplate clockwork aquaplane with wooden pontoons and a rotating propeller makes an electric, hypnotizing orbit.

aquaplane은 수상비행기이다. 줄에 매달린 수상비행기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장면이다. 나무로 된 플로트(pontoon)가 있는 수상비행기에 달린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계들에 대해 알아볼까요? 여러분이 여러분 눈썹을 긁을 수 있는 건 단연코 그 기계가 여러분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88페이지)

원문 - Today let’s consider the whirling machinery, children, that must engage inside your head for you to scratch your eyebrow...

눈썹을 긁적이게 할 만큼 머리 속을 빙빙 돌게 할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얘기이다.


전자기 스펙트럼은 한쪽 방향으론 0까지, 반대쪽 방향으로는 무한으로 질주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실제로는 말이죠, 수학 상으로는 어떤 빛도 눈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88페이지)

원문 - But the electromagnetic spectrum runs to zero in one direction and infinity in the other, so really, children, mathematically, all of light is invisible.

전자기 스펙트럼은 0에서 무한대까지이므로 우리가 보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보는 빛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는 얘기. 왜냐하면 유한한 숫자는 무한대와 비교할 때 0과 마찬가지이므로.


전기는 스스로 정지 상태에 있을 수 있음을 베르너는 배우는 중이다. 그러나 전기가 자기(磁氣)와 연결되면 갑자기 움직임이 생긴다. 파동이다. (), 회로, 전도, 유도. 공간, 시간, 질량. 공기의 밀도가 너무나 높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95페이지)

원문 - Electricity, Werner is learning, can be static by itself. But couple it with magnetism, and suddenly you have movement--waves. Fields and circuits, conduction and induction. Space, time, mass. The air swarms with so much that is invisible!

전기는 단독으로 있을 때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와 결합하면 파동이라는 운동을 만들 수 있다. ‘공기의 밀도가 너무나 높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가 아니라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로 꽉 차 있다는 말이다.

 

"유대교 책이야?" 헤리베르트 폼셀이 말한다. "유대교 책이지, 맞지?" (96페이지)

원문 - "Is it a Jew book?" says Herribert Pomsel. "It's a Jew book, isn't it?"

‘Jew book’은 유대교 책이 아니라 유대인 책이다. 유대인이 쓴 책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중에 헤르츠가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 말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들은 절름발이보다 장님 여자부터 덮칠걸."

첫 번째로 말했던 소년이 이상야릇한 신음 소리를 낸다. 마리로르는 자신을 보호하기라도 할 것처럼 책을 들어올린다.

두 번째 소년이 말한다. "그들 맘대로 하라고 해."

"추잡한 짓거리야."

저 멀리서 어른의 목소리가 크게 외친다. "루이? 피터?"

"누구세요?" 마리로르는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 안녕, 장님 소녀야." (107페이지)

원문 - Someone else says, "They'll probably take the blind girls before they take the gimps.

The first boy moans grotesquely. Marie-Laure raises her book as if to shield herself.

The second boy says, "Make them do things."

"Nasty things."

An adult's voice in the distance calls out, "Louis, Peter?"

"Who are you?" hisses Marie-Laure.

"Bye-bye, blind girl.“

문맥상 'Make them do things'는 ‘그들 맘대로 하라고 해가 아니라 그걸 하도록 시키지라는 뜻이다('them'은 'blind girls'이다). 그리고 그것추잡한 짓이라고 부연하고 있다bye-bye는 잘 있어라고 하는 작별인사이다. 

 

, 전기, 둘 중의 하나. 공간, 시간, 질량. 하인리히 헤르츠의 <역학의 원리>, 하이스마이어의 유명한 학교들. 암호해독, 로켓 추진, 전부 다 최신식으로. (136페이지)

원문 - Light, electricity, ether. Space, time, mass. Heinrich Hertz’s Principles of Mechanics. Heissmeyer’s famous schools. Code breaking, rocket propulsion, all the latest.

둘 중의 하나의 원문은 ether, either가 아니라. ether에테르는 전자기파가 진행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가상의 매질이다. 우째 이런 일이. ‘전부 다 최신식으로'가 아니라 최신의 모든 것들이라고 하면 명사가 계속 되어 자연스럽다.

 

25의 두 배랑 52배 더하기 20의 차이는 뭐예요? (225페이지)

원문 -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twice twenty-five and twice five and twenty?

‘twice twenty-five’2 곱하기 25이다. ‘twice five and twenty’2 곱하기 5 더하기 20이다. (곱하기부터 연산하므로 당연히 차이가 난다.) 그냥 곱하기라고 하는 것이 낫다.

 

"두 개의 기지점을 이용해서 세 번째 기지점과 미지점 위치를 찾아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33페이지)

원문 - "I believe it is a way to use two known points to find the location of a third and unknown point.“

세 번째 기지점과 미지점 위치가 오역이다. ‘location of a third and unknown point’세 번째 미지점의 위치가 맞다. 삼각법을 얘기하고 있다.


"호텔 지배인이 그에게 빵과 치즈가 담긴 검정색 고리버들 바구니에 면 냅킨을 산뜻하게 덮어서 갖다 준다. 모든 것이 배 모양이다." (262페이지)

원문 - "The hotel keeper brings him bread and cheese in a basket made from dark wicker, covered nicely with a cotton napkin: everything shipshape."

멋지게 차려진 빵 바구니를 얘기한 후, 나오는 "everything shipshape". 이건 배 모양이라는 걸 애기하는 것이 아니고 "깔끔하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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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5-11-2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대용 병기가 짤깍대며 발포된다. (25페이지)
원문 - The clack-clack of small-arms fire.
짤깍대며 발포된다는 말이 이상하다. small-arms는 소총과 같은 소형화기이다. clack-clack은 그냥 탕탕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소형 화기들의 탕탕 소리’.

blueyonder 2015-11-2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은 성냥갑으로 고속 모터보트를 만들고 바늘로 자석을 만든다. (89페이지)
원문 - they make speedboats out of matchsticks and magnets out of sewing needles.
speedboat를 고속 모터보트라고 사전적으로 번역했지만, 마치 정말 모터가 있는 보트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준다. 그냥 스피드보트 아니면 경주용 보트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성냥갑이 아니고 성냥개비가 좀 더 정확하다.

두둥 2016-04-1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말 이런 책은 리콜이 되어야 합니다!

blueyonder 2016-04-16 22:33   좋아요 0 | URL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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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삶의 과정이 가속화된 이유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온갖 삶의 가능성들을 실현한다고 자연히 충만한 삶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짧은 이야기라도 고도의 서사적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극히 짧은 삶도 충만한 삶의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늘날 삶이 _의미 있게 완결될_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삶이 분주하고 초조해진 원인이다... 인생은 더 이상 단계, 완결, 문턱, 과도기 등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의 현재에서 또 다른 현재로 바삐 달려갈 뿐이다. 그들은 그렿게 나이를 먹어가지만 늙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불시에 끝나버리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오늘날 죽는 것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어려워진 것이다. (14페이지 이후)

가속화는 오직 시간에서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이 소멸할 때만 가속화로서 지각된다. 가속화가 그 자체로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문제적으로 되는 것은 바로 시간이 무의미한 미래를 향해 휩쓸려가는 때뿐이다.
신화적 시간은 한 폭의 _그림_처럼 고요히 놓여 있다. 반면 역사적 시간은 일정한 목적을 향해 진행되는, 혹은 내달리는 _선_의 형태를 띤다. 이 _선_에서 서사적인 긴장 혹은 목적론적 긴장이 사라져버리면, 선은 방향 없이 _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점들_로 흩어진다. 역사의 종언은 시간을 점의 시간으로 원자화한다. 신화는 이미 오래전에 역사에 밀려났다. 이에 따라 정적인 그림은 전진하는 선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제 _역사/이야기_Geschichte는 정보에 밀려나고 있다. 정보들은 서사적 길이나 폭을 알지 못한다. 정보들은 중심도 없고 방향성도 없으며, 우리에게 물밀 듯이 닥쳐온다. 정보에는 _향기가 없다._... 정보는 원자화된 시간, 즉 점-시간의 현상이다. (42페이지 이후)

점들 사이에서는 필연적으로 공허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반면 신화적 시간이나 역사적 시간은 어떤 공허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림과 선에는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점들 사이에서만 비어 있는 사이공간이 생겨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간극들은 권태의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점-시간은 비어 있는 간극을 제거하거나 단축하고자 하는 강박을 낳는다. 간극이 _오래 지속되지_ 않도록(독일어로 지루함은 ‘오랜 지속lange Weile‘이다--역자) _센세이셔널한 일들_이 더 빨리 일어나게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장면과 장면, 또는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 히스테리적이라고 할 정도로 가속화된다... 원자화된 시간은 서사적 긴장이 없는 까닭에 사람들의 주의를 지속적으로 묶어두지 못한다. 그 대신 인간의 지각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 또는 노골적인 것을 공급받는다. 점-시간은 사색적인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는다. (43페이지 이후)

근대의 지향은 앞으로 쏘기Projektieren이다. 근대는 목적 지향적이다. 근대의 걸음걸이는 목표를 향한 행진이다... 바로 진보의 목적론, 즉 현재와 미래 사이의 차이가 가속화의 압력을 낳는다... 목적론의 부재로 인해, 후근대, 즉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완전히 다른 운동 형식과 걸음걸이가 나타난다. 전부를 포괄하는 지평,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목적, 모두가 그리로 행진해야만 하는 목표지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그문트 바우만은 산책과 유랑을 후근대의 특징적 걸음걸이로 부각시킨다. 그러니까 근대적 순례자의 후예는 산책자와 방랑자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사회에서는 산책의 유유함도, 떠도는 듯한 방랑자의 경쾌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조급함, 부산스러움, 불안, 신경과민, 막연한 두려움 등이 오늘의 삶을 규정한다. (60페이지 이후)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구속되어 있지 않거나 의무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다.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_받침대_ 없이는 자유도 없다.
오늘의 삶은 받침대가 없는 까닭에 쉽게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시간의 분산은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 _삶은 어지럽게 날아다닌다._... 따라야 할 시간 규정이 사라진 결과, 자유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 상실 상태가 초래된다. (61페이지 이후)

후근대에서 시간의 분산은 단순히 삶과 생산과정의 가속화가 더욱 첨예해진 탓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패러다임 전환의 결과이다. 본래 가속화란 _근대_ 특유의 현상이다. 가속화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 발전과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가속화는 특정한 서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탈서사화는 가속화된 전진의 드라마를 해체하여 방향을 상실한 난비亂飛로 만들어버린다. 가속화의 드라마는 무엇보다도 사건과 정보의 전달 속도가 광속에 도달함으로써 종언을 고한다. (62페이지 이후)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이다. 사건들이 빠르게 연달아 일어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것은 싹트지 못한다. 충족과 의미는 양적인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긴 것과 느린 것이 없이 빠르게 산 삶, 짧고 즉흥적이고 오래가지 않는 체험들로 이루어진 삶은 "체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그 자체 _짧은_ 삶일 뿐이다. (65페이지 이후)

우리가 전적으로 목표에만 집중한다면, 목표 지점에 이르는 공간적 간격은 그저 최대한 빨리 극복해야 할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순전히 목표 지향적인 태도는 사이공간의 의미를 파괴한다. 이로써 사이공간의 의미는 독자적인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복도로 축소된다. 가속화는 사이공간의 극복에 필요한 사이시간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시도이다. 이에 따라 길의 풍부한 의미는 사라진다. 길에서는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아니, 길 자체가 아예 사라진다. 가속화는 세계의 의미론적 빈곤을 초래한다.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많은 _의미_를 지니지 못한다. (69페이지)

현재화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_현재성에 파괴적으로 작용하는_ 사이공간과 사이시간 들은 폐기된다... 세계가 온통 _여기_가 되어버림으로써 _저기_는 제거되고 만다. 여기와 저기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진 것과 미지의 것을,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을 분리하는 문턱이 사라진다... 간격은 지각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구조화한다. 전환기와 단계를 통해 삶은 일정한 방향, 즉 의미를 획득한다. 간격이 없어짐에 따라 생겨나는 것은 지향점 없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잘 정의된 단계가 없는 까닭에 하나의 단계를 잘 마무리하고, 이를 다음 단계에 의미 있게 연결시키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수많은 연결 가능성으로 이루어진 공간에는 연속성이란 것이 없다... 단선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즉 운명의 시간은 폐기된다. (70페이지 이후)

들길은 어떤 _목표_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들길은 오히려 사색적으로 자기 안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사색적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왕복운동은 길을 목표에서 해방시키지만, 그렇다고 산만성의 파괴적 힘에 내던져버리지도 않는다. 들길에는 뭔가 독특한 집중성이 내재한다. 들길은 뻗어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 들길은 방향이 정해져 있는 시간, 경련하는 노동의 시간을 잠잠한 지속성으로 만들어준다. 사색적 머무름의 장소로서 들길은 어떤 목적이나 목표도 필요하지 않은 거주의 이미지, 신학이나 목적론이 없어도 괜찮은 그런 거주의 이미지가 된다. (111페이지)

세계는 "땅과 하늘, 신적인 존재와 유한한 인간"의 "윤무"이다... 윤무는 모든 시간적, 공간적 분산을 방지한다... 세계의 엄격한 대칭적 구조는 시간적인 차원에서 시간이 멈추어 서 있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111페이지 이후)

세계의 전반적인 탈소여화는 사물에서 고유의 광채를, 고유의 무게를 모조리 빼앗고 그것을 제작 가능한 대상으로 격하시킨다. 사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만들 수 있고 제작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소여성이 물러나고 제작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존재는 소여성을 상실하고 과정으로 전락한다... 과정은 어떤 목표를 향하여 전진한다... 가속화는 순전히 기능적인 과정의 내재적 성질이다. (114페이지 이후)

결국 가속화는 불안정하다는 것, 정주할 곳이 없다는 것, 받침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속화된 장면들과 사건들의 연속이 오늘날 세계의 걸음걸이라면, 이는 곧 받침대의 부재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119페이지)

사실 세계는 거의 대부분 인간 자신이 제작한 사물과 질서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하이데거의 세계는 인간의 개입 이전부터 언제나 존재해온, 이미 주어져 있는 그런 세계이다. 이처럼 이미 늘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하이데거적 세계의 소여성을 이룬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 있는 하나의 선물이며, 영원한 반복의 세계이다. 근대의 기술로 인해 인간이 점점 더 땅에서, 대지에서 멀어져가고 동시에 땅의 강제에서 해방되어가는 상황에서, 하이데거는 오히려 "토착성"을 고집한다. 인류가 결국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탈소여화와 세계의 제작 덕택이겠지만, 하이데거는 어떤 탈소여화도, 어떤 형태의 세계 제작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이데거는 조종할 수 있고 제작할 수 있는 과정으로 탈소여화된 세계에 맞서 "만들 수 없는 것" 또는 "비밀"에 강하게 호소한다. (119페이지 이후)

신은 "만들어낼 수 없는 것," 개입하는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신이야말로 제약받지 않는 자der UnBedingte이다. 세계는 탈소여화되고 전면적인 제작의 대상이 됨에 따라 완전히 신이 없는 상태가 된다. "궁핍한 시간"은 신이 없는 시간이다. 인간은 마땅히 "사물적으로 제약된 존재" "유한한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죽음을 폐기하려는 시도는 신성모독이며 인간적 간계일 뿐이다. (121페이지 이후)

니체는 "활동적 인간의 주된 결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아포리즘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는 보통 고차적인 활동이 없다. 개인적 활동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관리로서, 상인으로서, 학자로서, 즉 일정한 부류에 속한 존재로서 활동할 뿐, 결코 개별적이고 유일한 특정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 활동적인 사람들은 돌이 구르듯이 구른다. 어리석은 기계의 원리에 따라서." (166페이지)

오직 사색적 삶을 되살리는 것만이 인간을 노동의 강제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하는 동물은 또한 이성적 동물과도 근친관계이다. 이성의 활동 그 자체는 일종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래도 동물 이상의 존재인 것은 사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색하는 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지속적인 것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사색적 삶은 인간을 더욱 완전하게 만드는 삶의 형식이다. "사색적 삶 속에서 추구되는 진리의 사색은 곧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 모든 사색적 계기가 소실된다면, 삶은 일로,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행위로 퇴락하고만다. 사색하는 머무름은 _노동_으로서의 시간을 중단시킨다. "시간 속의 활동과 일, 그리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176페이지 이후)

노동의 민주화에 이어 한가로움의 민주화가 도래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민주화가 만인의 노예화로 전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181페이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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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르텔 2019-01-23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로움의 민주화,,공감합니다.

blueyonder 2019-07-05 14:23   좋아요 0 | URL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
존 배로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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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 무한을 만나다] 유체와 공기역학을 기술하는 방정식에서 등장하는 물리적 무한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무한은 연구하는 모형이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신호일 뿐이다. 더 세부적인 변수들--예컨대 공기의 저항, 액체의 점도, 분자의 유한한 크기--이 추가되면 무한한 변화는 크지만 유한한 변화로 바뀐다. 이런 무한들을 만나고 극복하다 보면, 물리적인 무한의 실재성을 의심하게 되고 무한의 등장은 항상 인간의 지식 부족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론에 따르면 이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해야 마땅한 다른 무한들도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앞서 제시한 평행한 두 거울을 생각해보자. 원리적으로는 당신이 두 거울 사이에 서면, 반사된 당신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무한히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울의 도금이 완벽하지 않고 공기가 완전히 투명하지 않아 빛이 거울 표면과 공기 속에서 점차 약해진다. 심지어 지적한 측면들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 할지라도--반사가 완벽하고 진공이 완벽하다 할지라도--빛은 유한한 속도로 움직이므로 무한히 많은 반사상들이 생기려면 무한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본입자를 다루는 물리학이 무한을 만나다] ...되틀맞춤(renormalization)...의 성공은 무한의 문제가 사물을 바라보는 서툰 시각 때문에 발생하는 인위적인 산물임을 드러냈다.
1980년대 초 이후 끈이론은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물리적 무한들을 제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가장 기본적인 물질 입자는 크기가 `0`인 점이고 공간 속을 움직일 때 선을 그린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끈이론은 가장 기본적인 물질 요소가 작은 에너지 고리이며 움직일 때 관 모양의 궤적을 그린다고 주장한다. 그 고리는 고무밴드처럼 장력을 지니고 있고, 그 장력은 주위 온도가 매우 높아지면 줄어들고 오늘날 우주의 에너지 수준으로 낮아지면 늘어난다. 따라서 에너지가 낮을 때는 장력에 의해 고리가 점점 더 축소되어 점처럼 된다. 따라서 자연의 기본입자가 점이라는 생각은 실재[sic]로 매우 훌륭한 근사일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가 매우 높을 때는 그 생각이 타당하지 않다.

상호작용를 통해 새로운 고리를 산출하는 에너지 고리들에 관한 이론은, 기존 이론에서 발생하는 난처한 무한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무한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유한해진다.
...입자물리학자들은 물리적 무한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유체 연구와 마찬가지로 기본입자에 관한 계산을 할 때 무한이 나타나면, 물리학자들은 이론에 결함이 있다고 판단한다. 무한은, 이론이 유용성을 잃은 근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로 간주된다. 물리학자들은 더 크고 좋은 이론은 항상 무한을 추방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주론자, 무한을 만나다] 우리는 우주의 크기가 유한하지 않고 무한하다는 것을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반면에 우주에 물리적 무한이 실재하느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훨씬 더 구체적이다. 밀도나 온도 같은 측정 가능한 물리량이 무한해지는 장소가 우주 안에 있을까? ...
대답은 매우 다양하다. 입자물리학자나 공학자와 비슷하게 일부 우주론자들은, 우주가 처음 순간에 무한한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예측은 물질의 밀도가 매우 높아지면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타당성을 잃는 신호라고 여긴다. 그들은 더 개선된 이론이 그 무한을 유한하게 만들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끈이론이 말하는 끈의 장력이 높은 저에너지 상태에만 맞는 근사이론일지도 모른다. 끈이론은 이미 다른 모든 종류의 무한을 제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끈이론은 어쩌면 우주가 시작할 때 있었다고 믿는 무한도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속의 무한이 양자 중력이론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믿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희망이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이성은의 매우 큰 임의성을 이론에 들여온다...... 특이점은 사실상 법칙들을 무력화한다. 우리의 입장에 따른다면, 모든 장이론은 특이점을 없애야 한다는 근본적인 원리를 고수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절친한 친구며 동료인 페터 베르크만은 이렇게 썼다.
"아인슈타인은 항상 고전적인 장이론(즉 물리학)에서 특이점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견해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특이한 영역의 존재는 전제된 자연법칙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가피하게 특이점을 포함하는 이론은 자신 안에 자신을 파괴할 씨앗을 지녔다는 말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최초의 무한이 물리학적인 우주론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는 물리학자들도 있다. 로저 펜로즈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우주의 시작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무한이 더 근본적이고 심오한 이론에서도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주의 시작에 있는 무한과 끝에 있는 무한이 구조적으로 전혀 다르다고 믿는다(그림 6-5). 그 두 무한의 구조는 우리가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부르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필연적인 진화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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