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사이언티스트> 특별기사(2016.09.03)의 일곱 번째 주제는 ‘실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What is reality made of?’이다. 여기서 ‘실재’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 곧 우주universe를 얘기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우주의 근본 원소를 흙, 공기, 물, 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 과학자들은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자는 적은 종류의 기본입자들 –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양자 장의 요동 – 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 내린 상태이다. 그럼 이제 모든 것은 해결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약 5 퍼센트 밖에 안되고, 나머지 95 퍼센트는 ‘암흑’ 물질(약 27 퍼센트)과 ‘암흑’ 에너지(약 68 퍼센트)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암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실재의 중요한 다른 요소인 시간과 공간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
이 실재의 문제는 양자역학의 해석과도 연관된다. 양자이론은 물질세계를 기술하는 가장 정확한 이론이지만, 해석 문제에 들어가면 아직 답이 없다. 표준 해석은 양자적 대상의 가능한 상태는 모두 '동등하게 실재적’이며(즉, ‘중첩’되어 존재하며), 측정에 의해 이 가능한 상태 중 하나가 실현된다고 말한다. 이 해석에 반기를 든 에르빈 슈뢰딩어는, 1930년대에 그의 유명한 고양이를 이용한 사고실험을 통해, 측정 전에 고양이는 동시에 ‘죽어 있고 살아 있는’ 상태냐고 질문한 바 있다. 측정이 죽은 고양이라는 결과를 준다면, 산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고자 제안된 것이 다세계(평행우주) 해석이다. 측정이 일어나면 둘 중 하나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실현된다는 것이다. 단 우주가 갈라져서 다른 우주에서.
양자이론은 물질세계의 측정 결과를 정확히 설명하지만 그 이론의 해석이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 이것은 수학만이 실재적 존재이고 물질은 부수적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믿는 물리학자들도 많다(특히 이론물리학자들). 이들은 물질과 에너지가 근원적 존재가 아니라 정보가 근원적 존재라고 말한다. 이 생각에 따르면, 우주의 본질적 모습은 추상적인 수학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거대한 컴퓨터이다.
수학만이 실재적 존재라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당시부터 있던 생각이다. 이데아의 세계가 있고 물질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단지 그 그림자를 볼 뿐이라는. 플라톤의 비유처럼 우리는 아직도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수학을 통해 우리는 실재를 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