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 학고재 그림책 2
정현주 글.그림, 목우스님 한자도움 / 학고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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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님이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놓은 이 사진을 보고 어디냐고 물으셨는데,

이 사진은 그러니까 선암사 꽃담이다.

그러니까 이 사진을 거기에 올린 이유는 바로 이 책'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를 읽고 제대로 필 충만 하셔서이다.

 

선암사 꽃담 사진이 이 책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냐 하면 한자 도움을 주신 목우스님 이란 분이,

'마하연 명상선원'과 '선암사'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고 책 날개에 적혀 있길래 수선을 떨어봤다.

 

내가 리뷰의 제목에서 엄지 손가락이 두개 뿐인게 못내 아쉽다고 한건 실은 잘못된 표현이다.

내노라 하는 영화 평론가 둘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려가며 two thumb up한데서 연유한 말이니,

흉내를 내려면 좀 그럴 듯 하게 냈어야 하는데 말이다, ㅋ~.

 

암튼, 날 이렇게 홀라당 발라당 반하게 한 이 동화책을 만든 사람은 정현주란다.

글ㆍ그림 정현주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잠시 미국에 머물면서 텍스타일 작업에 몰두하였다.

'천자문아! 나와라''너, 나 우리' '아제 아제 바라아제''멸치' 들에 그림을 그렸다.

라고 되어 있는 걸로 보아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가 본데,

이번 동화책은 글도 이사람이 심혈을 기울였는데 빼어나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실은 내가 이렇게 설레발을 치는 이유는,

이 책의 겉표지와 관련 떠오르는 분이 계셔서이다.

 

해님을 가려 보겠다고 아무렇게나 밀짚모자를 눌러쓰셨던 분.

바람을 갈라 보겠다고 자전거의 페달을 설렁거리며 돌리셨던 분.

농약 대신 오리를 풀어 벼 농사를 지으셨던 분.

 

自 스스로 자, 然 그럴 연.

스스로 그러함.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고 정해지지 않은 것.

그걸 '자연'이라고 해.

 

어찌보면 자연같으신 분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신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범인의 눈으로 세태를 바라보니, 못내 아쉬울 따름이어서 그렇지.

 

분위기를 바꾸어,

내가 정현주 이분의 내공 운운하는 이유는,

이런 기법 때문이다.

이걸 패치워크라고 하는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땀 한땀에 땀방울들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듯하다, ㅋ~.

 

 

 

아주 옛날, 노자 할아버지가 말했어.

가장 좋은 마음은 물을 닮았대.

왜 그런지 궁금하지?

 

이 구절을 난 이렇게 읽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아주 옛날, 노 할아버지가 말했어.

 

 

물은 세상 모두를 도와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서 말이야.

가다가 큰 바위가 막아서면 클클클

작은 돌이 막아서면 잘잘잘

돌아서 내려가지.

다투지 않고 흘러가.

 

 

샘물은 퐁퐁

시냇물은 졸졸졸

물길따라 아래로 흘러가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러.

흙탕물에 섞여 더러워지기도 하지만

물은 가지 않는 곳이 없어.

 

 

어느새 바다에 이르지.

 

 

그래서 좋은 마음은 물을 닮았대.

 

얼마든지 어려워질 수 있는 애기를 쉽게 풀어냈다.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것도 그렇겠지만,

어려운 애기를 쉽게 하는 것은...

본인이 직접 깨닫고 체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연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아, 좋다.

그림이고,

글이고,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고 자연스러워서 좋다.

이런 그림책을 보다 보면,

그림 책을 아이들만 봐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오랫만에 단순해질 수 있어서 좋았고,

분홍분홍*^^*한 동심에 빠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 마음을 붙든 문구는 이것이었다.

動善時

(무엇을 하면) 좋을지 때를 맞춰 행동하는 (마음)

 

집을 만들때도 안이 비어 있어야 우리가 그 안에 머물러 쉴 수 있듯이,

우리 마음도 비어 있어야,

사랑도 담을 수 있고, 호기심도 솟아나 마음이 재미있어 진단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모든 생겨난 것들은 언제나 사라지지.하지만 다시 돌아와.

우리네 사랑이나 삶도 그런 것이리라.

달도 차면 기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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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24 16:31   좋아요 0 | URL
가끔 정신이 피곤할 때나 빽빽한 활자의 책 때문에 눈이 피로하면 그림책 한 권의 삶의 비타민인거 같아요. 선암사 꽃담 사진이랑 책 속 삽화가 좋습니다. 잠시나마 학교 생활에 대한 피곤함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진과 그림, 감사합니다. ^^

잘잘라 2012-09-24 17:55   좋아요 0 | URL
휘둥그레~~~~~ 사진도 글도 그림(이라기보다는 작품 사진..인건가요? 아무튼)도 참 좋네요.
리뷰 쓰신 님의 마음도요. 진달래 분홍빛이 너무 고와서 오랜만에 인사 남기고 갑니다요~~~

프레이야 2012-09-25 16:58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그림책이네요. 맛배기만 봐도 느낌이 온다는...^^
제 손가락 두 개도 같이요.ㅎㅎ

하늘바람 2012-09-25 22:17   좋아요 0 | URL
선암사 꽃담이었군요

하늘바람 2012-09-25 22:26   좋아요 0 | URL
홀딱 반할만한 그림책이네요 꼭 봐야겠어요
 
마음낙서 - 박병철 단상집 우드앤북 단상집 2
박병철 지음 / 우드앤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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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을 선택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눈에 반해서,

또는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겨서,

어찌하다보니 미운정ㆍ고운정 다 들어서,

등등등...각양각색의 이유가 있지만,

나처럼 남편을, 연습장에 흘려쓴 글씨가 넘 맘에 들어서라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암튼 난 남편의 글씨체가 정말 맘에 든다.

누군가는 글씨를 뜯어먹고 살것도 아닌데,

왜 그리 글씨체에 환장하냐고 하지만...

글씨체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난 잘 알기 때문이다.

 

나랑 제법 많은 시간을 놀아주던 애인이...시험을 앞두고 공부에 용왕매진하겠단다.

어둠 속에서,

'너는 글씨를 쓰거라, 에민 떡을 썰테니...' 하는 석봉 모친을 닮아,

'시험에 붙을 때까지 절대 집에 드어올 생각 말아라~!'라고 할 재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고,

한가하고 심심한 내 시간들을 떼울 떡을 썰 기술을 전수 받아야겠다.

 

어둠 속에서 떡을 써는 기술은 옛 말이고,

요즘은 글씨 잘 쓰는 자식을 원하면, 서체 정도는 연구해 주시는게 기본이란다.

 

그래서 석봉이처럼 글씨를 써볼까,

공부에 용왕매진한다고 하니 나도 공부라는걸 해볼까,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몰라서 그랬지,

내가 엄청 흥미로워하는 분야이고,

또 조금만 노력하면 잘 할 자신도 있다.

 

한가하고 심심한 자투리 시간들을 떼울 떡 써는 기술로 이보다 더 딱 맞춤한게 없지 싶을 정도로...

내가 흥미로워 하는 분야다.

 

책 겉날개 앞쪽에,

마음 박병철

캘리그라피스트(Calligraphist, 글씨예술가)라고 되어있다.

 

이 책을 보면서 사석원이 생각났는데,

그림이나 글씨가 예술인건 공통점이지만,

한명은 그림을, 한명은 글씨를 주로 하는,

화풍이나 필체가 각자 다른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상이 된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미친 색감이라고 표현하는 색감 때문인 것 같다.

색감은 내가 이들에 비해서 쫌(very much) 떨어진다~--;

 

암튼,

캘리그라피를 하든, 흉내를 내든...

내가 좋아하는 꼼지락거리는 걸 하게되는거여서...

심심한데 맞춤인...염전이나 소금밭은 공수받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내가 이 책에, 그리고 캘리그라피라는데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예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심미안은 갖고 있지 않은고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보고 즐기는게, 나의 감상법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마음낙서>이고,

이 사람 이름 앞에 붙는 호가 '마음'인가보다.

그리고 '마음을 글씨에 담은 작가'라는 수식어가 보이는데,

그 호와 수식어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일곱번째 낙서라는 마지막 꼭지는 '글씨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의 캘리그라피에 관한 철학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글씨이야기7.

 

있는 그대로.

나의 글씨는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한글로 우리의 마음을 말했으면 좋겠어요.

글씨에 학문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고 웃고 울리게 한다면

그것으로 예술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위대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나의 글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분이 맘에 든 또 하나의 이유는 '돌맹이'를 가지고 논다는 건데,

나랑 닮아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애틋하게>리뷰 ;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

 

 

 

그의 단상들은 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시는 문장부호가 없는데,

그의 글들은 문장부호가 단정히 들어가 박혔다는 거다.

 

요즘은 만능엔터테이너라고 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도...자신의 전문분야 뿐 아니라, 넘나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서체를 갖고 있는 캘리그라피스트라는 사람이 그림과 색감도 수준급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글들도 하나같이 훌륭하였다.

 

나의 경우,

그의 글들이 좋은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나 틀을 정해놓고 절대불변의 가치인양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입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다보니,

변해야 할게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그 경계와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나름 소신이 요구되는 일이고,

그걸 자신만의 색이나 스타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041 용서

 

 

 

ㆍㆍㆍㆍㆍㆍ

용서가 아닌 용서를 하는 것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내가

쓰레기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감춰질 것이라는 착각은

그대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손바닥 뒤집기 차이입니다

그대가 피해자 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044 이런 사람', '045 막걸리 같은 사람'은 자연 사석원의 '막걸리연가'를 연상시켰다.

사석원은 거의 술을 혼자 마신다는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술이 독이 아니라 약인듯 여겨지는 것이 주선(酒仙)이 따로 없지 싶은데,

이분도 만만치 않다.

'162 아무도 없는 날'이 그 절정이다.

아무도 없는 날

 

혼자 술마시지 않는 방법,

술병과 건배하기

 

 

 

 

'월하독작'을 읊은 이백이 울고 갈 것 같다.

 

글씨체를 가지고 논할 깜냥은 안되고,

그림과 글 들 다 맘에 들었는데,

유독 좋았던 그림은 이거다.

 

해님은 쨍쨍한데,

마음에 비가 와 우산을 받쳐든 그림.

 

 

 

'그 사람이 웃었어요'도 좋았다.

 

 

반면, 딴지를 걸고 싶었던 글과 그림도 있는데,

 

059 멍멍!

 

나의 힘든 이야기를

너와 나누고 싶은 건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야.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위로일 뿐,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쥐꼬리만한 마음이 필요할 뿐.

 

 

 

제목과 글과 그림이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싶은건 나만의 생각일까?

 

제목은 '멍멍'이고,

마음을 '쥐꼬리'에 비유했다.

 

086 중이염

 

내 귀에 번개,

스르륵 스르륵 파도가 밀려온다.

불편하다. 괴롭다. 집중이 무너진다.

당연한 것들이 깨지고 저항을 한다.

생활에 파고들어 거추장스럽게 한다.

아. 모든 아픔은 당사자만 아는 것,

이 작은 고통도 당해봐야 아는 것이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아픔들에게 미안하다.(140쪽)

 

 

095 환하게

 

겉으로만 웃지 마요.

진짜 웃음은 자기 안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것.

마음까지 마저 웃어요. 그러면 좋잖아요.

그대가 더 아름답잖아요.(152쪽)

 

 

097 오직 그대를

 

나는 그대의

질투를 알고

낭비를 알고

위선을 알아도

그래도 그대 곁에 있겠습니다.

 

사랑하니까.(154쪽)

 

106 하하하

 

오, 자네의 얼굴이

분홍빛이네.

사랑이 시작됐군.

아름다워.

 

 

 

183쪽의 '삐짐'은 문맥 상 맞춤법이 틀린 것 같다.

153 마음의 여백

 

여백이란 비움과 같아.

사람을 대할 때도

한 번에 많은 걸 원하기보다는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해.

그것이 사람에 대한 비움이야.

사람에게 거는 큰 기대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것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지.

믿고 기다리는 마음의 여백이 필요해.

그것이 곧 너를 풍요롭게 하는 거야.

여백과 비움이 이와 같다면,

적당한 여백과 비움은 필수불가결이다.

어쩜,

여백은 여유와 동의어인지도,

비움은 넉넉함이랑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라면에서 인생으로 발상전환도 신선하다.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짬뽕공 같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라면 봉지에 적혀있는 끓이는 방법을 정확하게 잘 지켜서 끓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플 때 끓여 먹는 라면'이란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난 '자다가도 번쩍'이라고 할 정도로 과일이 좋다.

눈 감고 골라도 맛난 과일을 고를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오늘 아침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가 장만한 과일은,

물에서 건져낸 것 마냥 깨지고 상하고 멍들고

게다가 맛이 없었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이쁘기도 하지요'라는 노래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며 스스로 자위를 해야 할지,

아님, 배가 고프지 않을때 먹는 라면 같은 것이어서 그런거라며 '거봐라, 쌤통~!'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병철은 글씨는 마음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글씨로 미루어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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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2 20:59   좋아요 0 | URL
글씨로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믿음, 어느 정도 수긍돼요. 제 글씨체의 변천사도 그려지고요. 페이퍼로 쓸 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아요. 나무꾼님의 글씨체가 오롯이 담겨 있는 메모는 제 책상 유리판 아래 자리하고 있지요.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순오기 2012-09-12 22:59   좋아요 0 | URL
아주아주 오랜만에 양철나무꾼님 리뷰를 꼼꼼하게 두 편 읽었어요.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얘기고요.^^
벌써 가을이 코앞에 왔어요!!

2012-09-1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9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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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언어유희를 즐기지 않더라도,

'무봤나?'의 대답으로는 '봤다' 또는 '못 봤다'가 나와주는 게 일반적이지 않겠는가?

근데 대답으로 '맛나더라'가 나와주시면,

나처럼 오지랖 넓은 아줌은 정정 들어가고 싶어진다.

'맛나 보이더라'가 맞겠지~--;

 

근데, '무'는 '먹어'의 사투리였던 것이었다.

해석을 하자면 '무봤나?'는 '먹어봤나?'의 뜻이었고,

그 메뉴는 '안동 간고등어'였다.

 

같은 언어유희를 이 책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싸안고 뽀뽀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안동 간고등어'가 맛났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는데,

글쎄~, 메뉴까지 일치한다.

"고등어자반하고 문어 무봤나? 무봤다고? 맛있제?"

 

난 좀 독특한 체질이어서,

등푸른 생선을 먹으면 온 몸에 뻘겋게 두드러기가 나 주신다.

하지만, 안동 간고등어를 한번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맛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고,

목숨을 걸고라도 먹어주시는 맛의 향연에 빠져 주시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들녀석은 다른 많은 장점들은 놔두고,

까칠한 나의 혀만 닮았는지 어찌되었는지,

갑자기 갑자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크러스트 에그가 먹고싶다는 둥 어려운 주문을 하여 나를 곤란에 빠트린다.

(손목 부위의 세컨드 스킨은 크러스트 에그를 만들다가 팬 가장자리에 데인 자국,

 그 아래 두드러기는 안동 간고등어(소위, 고등어 자반)를 먹고 두드러기가 난데 약을 발라 좀 가라앉은 후~.)

 

 그때 볶음밥은 짜장 같은 건 곁들여주지 않았다. 불땀이 바싹바싹 입혀진 진짜 볶음밥이었다. 대충 부실하게 기름에 버무린 볶음밥을 짜장에 비벼 먹도록 하는 요즘 유행과는 달랐다. 주문을 하면 쇠 국자로 웍을 긁고 치면서 센불에 밥을 볶는 소리가 들렸다. 숙달된 요리사일수록 그 소리는 아름다운 박자를 가졌다. 다 볶은 밥을 국자로 긁어 그릇에 탁탁,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면 행복했다. 무엇보다, 높은 온도에 튀기듯 만든 계란 프라이가 올라갔다. 흰자는 바삭하게 튀겨지고, 노른자 속은 주르륵, 흐를 정도로 익힌 완벽한 계란. 서양에서는 이걸 '크러스트 에그'라고 부른다. 얌전하게 지진 '후라이'가 아니라 흰자가 기름에 튀겨져서 부정형으로 날카로운 각도를 만들며 익은 걸 뜻한다.(217쪽)

가스불을 약불로 해서 자반 한 토막을 석쇠에 얹으시라. 이왕이면 고등어에 석쇠 자국이 나도록 꾹 눌러서 구우시라. 배기 팬을 크게 틀고 인내심을 갖고 석쇠를 돌린다. 껍질이 바삭하고 갈색으로 부풀어 오를 때까지 구워야 한다. 자글자글한 기름이라도 떨어져 불꽃이 올라오면 더 맛있는 고등어구이가 된다. 이렇게 고등어를 구워 놓으면 뱃살 쪽은 기름기가 남아 있어 촉촉하고 등살은 살집이 넉넉하다. 뭐,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한가?

ㆍㆍㆍㆍㆍㆍ

 내가 즐겨 가는 시장의 고등어 상인은 한자리에서 오직 고등어만 파신다. 고등어 전문답게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시는데, 간혹 바깥양반 되시는 분도 한마디씩 거든다. 이게 압권이다.

 "찬물 고등어랑 더운물 고등어랑 달라요. 찬물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수? 더운 데서 음식 잔뜩 먹고 배 늘어지게 있으면 좋지 않잖수? 또 먹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갱이랑 오징어 먹은 녀석들이 맛이 좋아요. 새우랑 메루치 먹은 건 살이 푹푹 물러요. 사람도 그렇잖수. 멸치젓, 새우젖 먹고 늘어져 있는 모양을 상상해보슈."(142~143쪽)

이런 글을 읽고도 안동 간고등어(=고등어자반)를 탐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의 저자 박찬일이 멸치손질을 하듯 고등어자반의포를 물리도록 뜬 사람이거나,

필시, 미각과 후각 내지는 공감각이라 불리우는 그 둘을 동시에 상실한 사람일게다.

 

 

 

암튼, 우리의 박 쉐프 님은 병어의 맛을 

"으음ㆍㆍㆍㆍㆍㆍ구름 맛이죠."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솜사탕 맛'이라고 한단다.(19쪽)"

음~, 나는 병어를 안 먹어봤기 때문에 함구하여야 하겠지만,

내가 먹어본 것 중 무엇을 구름에 비견할 수 있을지 알겠기 때문에,

내게 구름은 '구름의 맛' 이다.

솜사탕의 폭신함, 입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그런 부드러움인줄은 알겠는데,

내 구름은 솜사탕처럼 단 맛이 아니라, 비 냄새를 닮아 약간 비릿하다.

 

감정이나 정서 상태도 맛이나 냄새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난 좀 까칠하다고 할 정도로 음식의 맛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좋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 또한 섬세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동시에,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난, 감정이나 정서 상태를 맛이나 냄새로 표현하는 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늘 블루 스카이에 보송보송한 솜사탕같은 흰 구름이 배경이고,

배경 음악으론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오늘은 그녈 만나는 날~ ' 이러고 있걸랑.

음... 맛으로 치자면,

달콤하고 고소한 감자전에 생무를 조금 곁들인 말랑한 포근함의 질감에,

새콤한 식초를 가미한 양념장하고 찍어먹는 달콤함을 곁들인 고소함... ^^

 

이런 거였다면,

어제는...

비가 올듯말듯 구름이 꾸무리~~(꾸무리는 구름낀 날씨의 일본어~ ㅋ)

바람도 제법 설렁설렁 풀들을 흔들고,

괜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그게 걱정이 앞서서 그랬던 거 같아.

 

암튼, 박 쉐프 님의 책을 읽으면서도,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게 아니라...

글에도 맛깔스러움이 배어있어서,

오감에 육감으로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며,

공감각이나 복합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아이스커피나 얼음을 쓰는 무엇을 할 때면 얼음에 신경을 집중한다. 마치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처럼 날카로운 예각의 얼음이, 비수 같은 날이 들어 있어야 제맛이 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른다고 다 떡이 아니고, 안친다고 다 밥이 아니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운 얼음 비수를 가져야 진짜 얼음의 맛이 난다.(47쪽)

이쯤되면, 아이스커피의 얼음은 날카로운 예각에 신경을 쓰며 잘라줄 수밖에 없겠다.

남도의 한상 차림 밥상을 한정식으로 부르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있다.한정식이란 여러 가지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 그러니까 시간 전개형 밥상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남도식으로 한상에 가득 차려 나오는 음식은 한정식으로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맞든 틀리든 나는 남도의 그 한상 차림 밥상에 주목한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공간의 배열이야말로 한식의 찬란한 창조성을 드러내는 매개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리가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요리를 먹게 된다. 그러나 한상 차림은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요리를 먹게 된다.ㆍㆍㆍㆍㆍㆍ끝도 없는 순열 조합이 각자의 입안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01쪽)

이런 걸 두고 글의 맛이라고 하는 걸게다.

이런 말과 글의 성찬과 향연은 또 다시 맛보기 힘들지 싶다.

그렇다고 화려하고 강한 맛을 자랑하는 그런 글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여 맛을 내는 품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나오는 남도의 한상 차림이나 한정식 같지 않고,

솜씨 좋은 아낙이 뜰에 정성껏 키운 재료를 갖고,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원형의 맛을 최대한 살려...

좋은 사람과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먹기 위한 것처럼

정갈하고 소박하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글의 벼리는 솜씨로 미루어,

아직 그의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요리솜씨를 짐작하고도 남겠다.

호남의 한식 기행은 수직적인 변화를 가진다. 저 남도의 끝이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이라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맛은 유순해지고 슴슴한 재료의 맛을 강조한다. 담양의 밥상에서는 그 온후하고 웅숭깊은 자연을 보여준다. 갯것과 들과 산의 물산이 고루 섞인 밥상은 천천히 당신의 혀를 어루만진다. 그 넉넉한 밥상을 받아 든 고가의 사랑채 바깥으로 바람이 건들 불어 대나무 잎새가 흔들리는 광경이라도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102쪽)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아슬아슬하여 묘한 쾌감을 불러온다.

 

부두에 매어둔 배들이 심상치 않은 밤바람에 쓸리며 우드득 삐걱,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105쪽)

이런 문장은 유순하고 슴슴하고 온후하고 웅숭깊다.

"양양 사람들은 김치를 산에 묻어. 김치를 꺼내려면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산에 가는 거야. 두어 해 이상 묵은 김치가 그 산에 있어. 산이 김치를 익혀. 여름을 여러번 넘겨도 김치는 짱짱해. 코가빨갛게 얼어서 꺼내온 김치를 썰어 먹는거야. 한 겨울에는 김치에 살얼음이 얼어서 엄마가 부엌칼을 대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 아버진 김치도 나오기 전에 그 김치 써는 소리에 벌써 소주를 한병 마셨을 테고."(108쪽)

이런 문단은 또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런 문단을 보고 있으면, 글 만큼 말도 맛깔나게 하리라 내가 보증할 수 있겠다.

귀신 같은 글맛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다.

기막힌 김치 맛을 아는귀신이 어쩌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듯,

난 꿈에서라도 양양 땅의 김치가 묻혔을 산들을 누벼보련다, ㅋ~.

 

날은 따스해서 바다에 군불이라도 지핀 양 가물가물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그야말로 술 욕심이 도도한 늦은 봄이었다.(127쪽)

그의 글이나 음식도 충분히 도도해도 좋을 것 같은데,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아슬아슬 하지만 경계 넘지 않는다.

 

말도 살찌는 계절이다.

나는 박쉐프 님처럼 맞춤할 재주는 없으니,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넘치는 것을 택할 것 같다.

넘치면 덜어내고 나누면 될테니까 말이다.

 

옛날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보고 싶어,

부산에 가고 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

이런 페이퍼를 썼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박 쉐프 님은,

그리하여, 부산에 조르지 않는 애인이나 묵은 친구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빌게 되는 것이다. 우울할 때면 기차를 타고 훌쩍 들르고 싶도록ㆍㆍㆍㆍㆍㆍ.(148쪽)

이러고 제대로 염장을 질러주신다.

박 쉐프 님이 염장을 질러주신 음식 중 제일 혹하는 건 이것이다.

앞서의 음식들은 정말 맛있다기보다 부산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는 기본적인 성지순례에 가깝다. 진짜 맛은 복국이나 돼지국밥 같은 국물 요리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이 좀 든, 그래서 부산의 맛에 산전수전이 밴 어른들은 - 특히 남자들은 - 열에 일고여덟은 복국을 거론한다. 술 좋아하고 거친 부산 사내들의 호쾌한 음식이 복국이 아닐까 싶다. 해장으로 한 그릇, 그리고 다시 소주에 한 그릇. 그러고 보면 부산은 해장국이 유독 발달했는데, 해운대 시래기 해장국이나 대구탕은 이미 서울내기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147쪽)

그렇다고 박쉐프님이의 글과 음식을 '맛깔스럽다'라고만 표현하긴 약간 아쉽다.

왜냐하면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이 엿보이는 이런 글들 때문이다.

그들은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오직 랍스터를 잡기 위해 수심 40미터의 심해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잠수병으로 장애를 얻는다. 그들이 랍스터 한 마리를 건져 올릴 때마다 받는 돈은 고작 3천원. 달의 뒤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궁금해하는 감상적인 이는 많아도 지구의 뒤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들 모른다. 제비집을 채취하기 위해 바닷가 벼랑을 기어오르는 중국 남부 해안가의 초라한 어부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하루 벌이가 랍스터 하나 값이 안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지구 뒤편에서는 늘 그런 식이니까.ㆍㆍㆍㆍㆍㆍ

내가 아는 한, 랍스터를 처리하는 칼잡이들은 그 회를 먹지 않을 것 같다. 때로 요리사들도 그럴 때가 있다. 재료가 생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달의 뒤편 대신 지구의 뒤편을 생각학도 하는 것이다.(181쪽)

그의 마을에서 팔리는 소박한 초콜릿은 모두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카카오와 설탕, 부재료를 쓰고 있다. 비록 전체 시장에서 매우 미미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런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 소비자들을 각성시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래, 낙관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긍정의 힘으로 믿는 것이다.(195쪽)

내가 삶은 실재라는 둥, 그만큼 가열찬 거라는 둥,

해도 맨날 '메리 베리 해피'해가며 긍정 마인드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내게 이 문장을 돌출시켜 들이댈 것이 틀림없다.

그래, 낙관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긍정의 힘으로 믿는 것이다.

 

 

책의 편집, 교정 상태가 좋다.

그래서 흠 잡자면~,

 

290쪽 밑에서 다섯째 줄-

달콤한 향 내신 비린내가(X),

달콤한 향 대신 비린내가(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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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15:12   좋아요 1 | URL
훗 이렇게나 꼼꼼하게, 박셰프님 명문장 진열이라니,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어찌 이 책을 안 사고 배기겠어요..ㅎㅎ
물론 저는 이미 읽고 있습니다만!
오랜만에 댓글 남겨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2-09-11 11:18   좋아요 1 | URL
ㅎ,ㅎ...넘 꼼꼼해서 좀 지루하죠?

안 사도 배길 수는 있죠, 안 읽고는 배기기 힘들겠지만...ㅋ~.
선물 받는다던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다던가,
함 말이죠, ㅋ~.

섬님이 읽으시니까 어떻던가요?
제가 리뷰를 안 읽고 못 배기게 쓴게 아니라,
우리의 박쉐프 님이 안 읽을 수 없도록 맛깔스럽게 쓴거죠?^^

감은빛 2012-09-11 11:42   좋아요 1 | URL
무봤나? 지기제(죽여주게 맛있지)?

아, 갑자기 고향말을 들으니,
어린 시절 뛰놀던 산과 계곡이 떠오르네요.
어릴 때,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 구워 먹었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맛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딱 그 맛이 떠오르네요.

양철나무꾼 2012-09-11 11:54   좋아요 1 | URL
언제 감은빛님 본토 발음으로 함 들려주세요, ㅋ~.
잘 지내시죠?^^
 
받아들임 - 자책과 후회 없이 나를 사랑하는 법
타라 브랙 지음, 김선주.김정호 옮김 / 불광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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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로 전에 읽은 '화담집'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되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모든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의 '공(空)'도,

자연과 하나됨을 강조하는 무위자연의 '도'도 집착을 버리고 비워내라고만 하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얘기해 주지 않았었다.

 

우연히 읽게된 화담집에서,

'공(空)'도 기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라고 보는 '태허'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고,

그러던 차에 만나게 된 책이 마음챙김(mindfulness)에 관한 이 책 '받아들임'이다.

 

원제 'Radical Acceptance'는 '받아들임'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책 표지의 '자책과 후회 없이 나를 사랑하는 법''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소제목이 더 나를 사로잡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용어를 명확하게 짚고 갈게 하나 있다.

ㆍㆍㆍㆍㆍㆍ,고통(pain)이 반드시 괴로움(suffering)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붓다는 우리가 경험에 연연해하거나 저항할 때, 삶이 지금과 달라지기를 원할 때 괴롭다고 가르쳤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159쪽)

이 부분은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모호하다.

'마음챙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

pain과 suffering에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통이나 괴로움 등 뜻이 모호한 단어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pain과 suffering이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게,

pain이 육체적 내지, 정신적 고통이라면 suffering은 마음의 고통 정도로 해석되는게 낫지 않을까 말이다.

 

한동안 이 서재의 제목을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라고 했을만큼 'mindfulness=마음챙김'이 내겐 화두 같은 것이었다.

우연히 '화담집'의 '태허'를 만났고,

'태허'의 '멈출 지(止)'의 연장선 상에서 이 책 '받아들임'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 할때면,

어떻게 해주지 못해서 안쓰럽다고 하시면서...그냥 바라보라고 하셨던 분이 계셨다.

그땐 그말 뜻을 이 책의 그것들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그냥 서운해 하기만 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말뜻을 어렴풋이 깨닫겠고,

그러고 나니까,

그동안의 서운함이 다 소급되어, 위안이 되는 것이다.

 

암튼 서화담의 멈출 지(止)에서 받아들임의 멈춤으로까지,

'받아들임'의 그 고통과 괴로움을 넘나드는 선문답과 깨달음이 아슴아슴 눈물겹다.

 

이 책에서처럼 '받아들임'의 전제 조건으로 일단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이렇게 적고 있다.

진실에 의해 불타는 것보다 도망가는 것이 더 나았다. 자신이 나쁘고 사랑 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보다 도망가는 것이 더 나았다. ㆍㆍㆍㆍㆍㆍ우리도 로라처럼 대체로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안다. 반면 멈추는 일은 두려울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

  다음 치료회기 때 나는 로라에게 멈춤의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내면적 힘의 자리에서 용과 대면하는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분노가 북받칠 때, 그녀는 밖으로 향하는 모든 활동을 멈추고 내면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고통을 만났을 때 소리치거나 뛰쳐나가는 대신에 멈출 수 있다면, 현명하게 대응하도록 이끌어줄 내적 힘을 발견할 것이라고 그녀에게 일러줬다. (101쪽)

 

멈추는 게 힘든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니...내가 간과한 것은,

단지 멈추는데는 '좋고 나쁘고'의 판단이 개입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판단이 개입될 필요가 없으니, 감정 또한 개입될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멈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투우에는 피신과 회복의 장소로서 멈춤과 아주 유사한 것이 있다. 사람들과 황소가 싸움 중에 경기장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안전구역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황소는 거기서 기운과 힘을 되찾을 수 있다. 이 장소와 내면의 상태는 케렌시아(querencia)라고 불린다. 황소가 흥분하여 대응하는 한, 칼자루는 투우사가 쥐고 있다. 그러나 황소가 케렌시아를 발견하면 기운을 되찾고 두려움을 잊는다. 왜냐하면 황소가 자신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멈추어 받아들인 다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조건없는 친절'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까지만 받아들이고 '예스'라고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노'를 날려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닌 것이다.

내가 예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두렵기 전'까지인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조건없는 친절로 경험을 마주하는 특정 순간에 균형감각이나 회복 탄성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는데, 이때 예스를 시도하게 되면 두려움에 함몰될 수도 있다. 이때는 친구의 위안을 구하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처방된 약을 복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당분간은 너무 과하다고 느껴지는 것에는 "노"라고 말하고, 우리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만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대처법이다. (128쪽)

 

여기서 '예스와 노'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이를테면 너무 과하다고 느껴지는 것에 '노'라고 말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지만,

우리가 하려는 작업이, 그렇게 자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것이라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욕구하는 자신에 대한 보상을 음식으로 하려고 탐식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위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하는 자기를 벌주려고 자신의 몸이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사람, 도 있다.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애당초 우리를 중독으로 몰고 간 사랑에 대한 갈망과도 단절되고 만다.

 

그녀는 강한 열망을 느꼈을 때 냉장고로 직접 가는 대신 자신의 스폰서에게 전화를 했다. 이 방법은 내가 '보조 멈춤'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을 함께 살펴보고,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선택지들을 탐색할 수 있었다.(210쪽)

  갈망과 과식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사라는 자신을 중독으로 치닫게 했던 고통스러운 자동반응의 연쇄를 차단했다.OA에서처럼 그녀가 음식을 대체물로 삼아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틀을 깨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욕구하는 자기의 존재를 용서하고 수용하는 것이 사라의 변신을 이끈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비록 갈망이 일어날 때 의식적으로 용서하고 내려놓기를 게속해야 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책망하기를 멈췄을 때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그녀의 능력은 더 이상 엄청난 수치심 앞에 무릎 꿇지 않게 되었다.(213쪽) 

'보조멈춤'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긍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알라디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갔을지도 모르는,

중증의 질환으로 나도 한동안 고민했었다.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이 쌓여 책을 이고 살게 생겼는데도,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사들였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분야는 수명이 짧다는 구실이 있기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병이었다.

그때 그 분은 자처해서 '보조멈춤'이 되어주마고 하셨다.

 

나의 책에 대한 탐닉 또한,

정서적 결핍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는지라...

지독한 중독행독, 적어도 신간을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까지는 여전히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과 이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은 ,

그런 욕구가 계속 일어난다고 해도,

그리하여 설사 책의 구매로 이어진다고 해도,

그 고통이 반드시 마음의 괴로움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욕구나 갈망을  제한할 때 우리는 괴로워 하게 되지,

그저, 멈춰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어떤 제약이나 제한을 느낄 것도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찌하면,

'보조멈춤'을 자처한 분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난 그걸 이 한 구절로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안는 자이며 안기는 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욕구라는 것 자체가 선악의 판단 대상도 아니거니와,

지금 이 순간 보조멈춤을 자처했다고 하여,

내내 '보조멈춤'으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라는 법도 없다.

우리의 욕구가 복잡다단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욕구나 갈망에 있어서는 내가 '보조멈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안는 자와 안기는 자 모두 사랑의 의식으로 녹아든다.(302쪽)

 

이 책 전체를 통하여, 내게 가장 큰 용기를 준 건 아무래도 이 구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인간은 아담과 이브의 후손으로 원죄를 타고나는 것과 달리, 불교에는 원죄를 타고난 인간이라거나 본래 사악한 인간이라는 관점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칠 때 그것은 우리가 악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다. 무지하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의 삶과 이어져 있고, 집착과 미움이 더 많이 소외와 괴로움을 가져온다는 진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무지하다는 것은 의식의 순수성과, 우리의 근본적 선을 표현하는 사랑의 능력을 모른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 안에 근본적 선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347~348쪽)

사악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다...이러면 아무래도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무지하다고 해서 모두 다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배워고 깨쳐야 한다는 중압감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으로 난 '학습'을 꼽고 싶다.

답습만 하게 된다면 그건 모방이지만,

학습을 통하여 분명히 좀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암튼, 나의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엘리엇(T.S. Eliot)의 극본『칵테일파티』를 인용하는 것으로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알고 있던 순간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후로 변했다ㆍㆍㆍㆍㆍㆍ.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370~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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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애틋하게 - 네버 엔딩 스토리
정유희 지음, 권신아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난 그러니까,

우리말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더욱 아니다.

어떤때는 말로써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있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때도 있다.

그런 주제에,

처음 저 제목을 보고 좀 껄끄러웠다.

그러다가 이내 나처럼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강조를 하고 어필하기 위해서,

서로 상반되는 두 단어를 사용했음으리라 짐작하게 되었지만, 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 제목은 좀 아니지 싶다.

어떻게 '함부로'이면서 '애틋하게'가 될 수 있냔 말이다.

 

암튼,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하건...

보고 싶을 때 보고싶다고 애기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엄청 부러워서 괜히 딴지를 걸어보고 있는 것이다, ㅋ~.

 

누군가 보고 싶어서,

살짝 돌 뻔 하거나 환장할 뻔 하거나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걸 표현하는데는 참 인색하다 싶었는데,

이 책에선 흐드러지고 넘친다.

그걸 엿보고 한 자락이라도 배워 갖고 싶었다.

 

그게 정 여의치 않으면,

이 책에 씌여진 글들을 좀 옮겨 적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라도 느껴볼까 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근데, 이 책에는 '보고싶다'의 극단적이고 과장된 표현 뿐만 아니고,

처방도 나오는데,

그게 꼭 '다리를 원하거든 너의 '가장' 이쁜 목소리를 다오'하는 <인어 공주>의 마녀 feel이다.

커다란 종이 봉투에 구멍을 두 개나 뚫고 그걸 쓴 후 한참을 돌아다니는 거 라든지,

주전자, 낡은 액자, 책상 다리, 삼각자, 전화기 등...딱딱한 것들을 죄다 깨물어보는 거 라든지,

한쪽 벽에 점을 찍고 계속 보고싶은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중얼대는거 라든지...

 

 

그런데 황당무계하고 흐드러지고 넘치는,

극단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흘러 넘치는 이 책이 좋은건 말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냥 그렇게 가만히 옆에 있어줘 라고도 하고,

날 보러 와  라고도 한다.

 

어쩜 내가,

'보고싶다'거나 '그래, 그냥 그렇게 가만히 옆에 있어줘'라거나 '날 보러 와'라고 얘기 못하는 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후에 오게 될 것들이 자신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 오게 될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여라도,

머저리 같은 이 사람이라고 무모한 사랑의 마음이 없을쏘냐

너를 생각하고 염두하며 하염없이 골몰하느라 내 생생하던 마음에 붉은 물이 들었다.

이런 진심이라도 만나게 되면 그땐,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상처를 남기게 되고...그렇게 되면 그땐,

정말 제대로 대책 없어진다는 걸 알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엄밀히 얘기하자면,

이 책이 좋은게 아니라,

이 책의 젊음이,

그들의 젊은 마인드가,

다시 말해 그들의 눈치보지 않음이 좋고 부러운 것이다, ㅋ~.

 

때문에 난 오늘도 이 책에,

씌여진 글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그림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젊음을 최대한 가까이서 흡입하고 수혈하며 자위하려 할 뿐이다.

사로잡히다

 

 

만날 수 없거나 만나지 않아도

그대 소식 내게 닿을 길 없어도

어디에서인가 숨 쉬며 기꺼이 살아만 있어도

그렇게나 좋을 사람이 있다

 

 

심봉사 같았던 내 영혼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그대라는 기이한 괴물한테 사로잡힌 탓에

그대의 존재감이 내겐 너무나 벅차

그대를 털끝만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

 

 

결국 그대가, 날 사랑하기에는 글러먹게 생긴 존재일지라도

그대는 이미 내 머릿속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걸

난 나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는 그대를

내게서 몰아낼 묘책도 전혀 없으니ㆍㆍㆍ(86쪽)

 

눈물커피

 

 

네가 혼곤한 아침을 깨우며 마시는 모닝커피는

전날 밤 내 눈물로 드립한 것인 줄 알아라

나른한 오후 3시에 네가 홀짝대는 홍차는

오전의 내 그리움을 우려낸 것이로다

너라는 삭풍으로 인해 온종일 흔들리던 나는

어느덧 구름으로 뭉쳐지다가

이윽고 비 되어 메마른 대지를 적신다

 

 

여우의 약삭빠른 전술로 노련히 사랑을 셈하는 당신

나 언제든 당신에게만큼은 자나 깨나 한결같은,

사시사철 우직한 미련곰탱이로 그대에게 임하리라 (112쪽)

 

Cat mode

 

 

사람들은 참 어리석기도 하지

'인연'이라는 걸 빙자해서 애써

관계를 연명해가곤 하니 말이야

 

 

고양이들은 인연을 구걸하거나 적선하지 않지

관계의 연을 기억할 때는 복수가 필요할 때뿐

새날이 밝았다

오늘도 신선한 우유가 배달 될 테지?

그리고 적당량의 일조량과 졸음도

신난다! (212쪽)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는 보고싶어도 보고싶다는 소리를 못하는 나를 눈치는 챘으나,

내가 흡입하고 수혈할 수 있도록 나눠줄 만큼 더 이상 젊지 않기 때문인지,

이런 돌멩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히야~, 돌멩이라니~!

하긴 루비나 사파이어나 에메랄드나 다이아몬드, 이딴 것들도...

다 보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 전에는 한낯 돌멩이에 불과하였으리라.

이 돌멩이의 용도가 송곳 대용인지 은장도 대용인지 미련한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알 수 없는지라,

난 얠 이렇게 가지고 논다.

그러고보면 나 혼자놀기의 달인?

자, 그럼 지금부터 혼자놀기의 진수를 감상해 보시겠습니다여~!

 

 

그러고 보면,

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사람 모두, 혼자 놀기의 달인들이 아닌가 싶다.

감각적인 글이나 그림 따위는,

혼자 앞서도 독선이나 독단으로 비춰져,

자칫 본질을 흐릴 수도 있으나...

뭐, 내 개인적인 취향까지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말이다.

 

 

젊다는 건 변화무쌍하다는 의미이다.

변화는,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할때 바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말하면, 변화==>감정에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거==>자연스러운 거, 자연의 원리.

자연==>변하는 거.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하는 부분이 있는 그런 것.)

내가 육체적으로 젊은가를 놓고라면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겠지만,

젊게 살려는 마음을 먹고 사는가는 다른 문제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때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언어의 의미나, 마음 씀씀이,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망한 그리움 따위에 연연해 한다.

차라리 '사물'을 관찰하고,

사물의 실체 속에서 자연을 느끼되,

자연에 이렇게 저렇게 법칙들을 만들어서 자연의 원 뜻을 훼손시키고,

그 안에 사물의 실체나 도덕성 따위를 가두는 것을 경계하여야 겠다. 

 

암튼, '함부로'와 '애틋하게'가 관련된 '보고싶다'타령을 내 맘대로 재해석하다가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어차피 삼천포로 빠진 김에 가제트도 마저 구경하자.

세상에 팔과 다리가 쑥~쑥~ 길어지는 가제트형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단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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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8-19 21:34   좋아요 1 | URL
몸은 안 젊어도 마음이 젊으면 젊은 사람이지요~

하늘바람 2012-08-20 01: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돌멩이 갖고 놀기 재미나네요
잊었던 걸 상기시켜 주셨어요
제가 권신아를 넘 좋아했다는걸
왜 전 그걸 잊고 있었을까요
아 그링이 넘 좋아서 까무라칩니다.
전 늘 외국 나가는 사람한테 말하지요
돌하나만 주워와라.
제주도 갈때도 돌하나 꼭 주워 오는데
사실 그럼 안되는데~
웬지 돌들 자세히 보면 이쁘고 많은 사연을 간직한 거 같아서리
그런데 그 주워왔던 몇몇 돌들 어디로 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