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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평점 :
유머러스한 사람이 좋고, 글도 유머 코드가 배어있으면 좋지만,
내 성향은 유머 감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왕진지 모드이다.
때문에 책이나 넷 상에 돌아다니는 글을 읽을때 몰입하여 대성통곡을 하고 울어본 적은 여러 번 있지만,
포복절도하며 웃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어제와 오늘 직장에서 읽는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ㅋ~.)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도 너무 꼬집었다.
개콘이나 SNL보다 재밌는거 같다.
이 책이 좋은 것은 '저자가 멋져 보이려 폼 잡지 않아서'이다.
헌책을 구하느라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다.
자신이 원하는 책 한권을 위해서라면 조금쯤 비굴해져도, 찌질해져도 좋지 않겠나.
이 책을 먼저 읽은 선배로서 책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웃다가 배꼽을 분실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라~^^
그렇다고 이 책이 개그 또는 유머집은 아니다.
옛 성현들이 해학으로 삶의 진정성을 비벼냈듯이,
저자는 이 책을 해학과 진지한 (하지만 비굴하고, 찌질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삶으로 버무렸다.
그걸 옛 성현들은 골계미라고 했었던 것도 같다.
내가 이 책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저자와 나의 연배가 비슷하거나 정신 연령이 비슷하고, ㅋ~.
저자가 나열하는 책들이 내가 읽은 것이 많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와 책들이 내 인생의 책들로 생각하고 아끼는 책들이어서 공통분모가 쉽게 형성되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저자는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는 버릇이 있다고 하는데,
나 또한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게 생기면 집요하게 관계자료를 책으로 구입해서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니까 말이다.
(책으로 해결되는 게 있고, 실제 경험으로까지 연결되어야 하는게 있다는걸 이젠 알지만, 그건 차치해 두기로 하자.)
책 얘길 하면 생각나는 것이,
언젠가 친구 하나는 내가 이렇게 저렇게 골라 읽는 책들이 책같지 않다며 구박을 했었다.
같이 뭉뚱그릴 수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좋아하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에 호감을 갖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을 내 기호에 맞게 뜯어 고쳐 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라딘 서재 내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공감을 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모두와 더불어 공감하고 소통을 할 순 없다.
그런 관계 속에서 누군가와는 비껴 갈수도 있다.
비껴가는게 한두 번이라면 노력을 해 볼 수도 있지만, 반복되면 로드가 걸리기 마련이다.
관계라는건 잘ㆍ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호ㆍ불호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고 호감을 갖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의식의 흐름까지 바꿔놓을 수는 없고, 그러려고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잡식성이 됐든, 그리하여 꿀꿀이죽이 됐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뿐이고,
이곳에서의 관계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내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부러 챙긴 것이 아닌데도 관심사가 겹치다보면 책이 재밌어지고 책읽기가 즐거워진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김갑수의 '나의 레종데르트', 강유원의 '책과 세계'까지 언급한다.
암튼 저자는 모든 얘기를 아내와의 냉전에 빗대어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설레발과 거들먹거림이 너무 좋았다.
1장 '하나도 쓸모 없는 책 이야기' 로 시작하여,
2장 '지질한 아저씨의 위대한 패배', 3장 '오늘도 나는 괜찮다' 까지 내겐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일부러 져준다고 읽혔다.
게다가 책을 읽은 리뷰나 서평 따위를 단도직입적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그점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책의 줄거리나 리뷰 따위는 최첨단 인터넷 시대인 만큼,
몇번의 클릭질을 해주는 수고만 거치면 찾아낼 수 있는거고,
책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기록으로 남기니까 말이다.
깔깔 대고 웃거나 펑펑 울고나면 카타르시스라고 하여 허무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뭐랄까, '다 괜찮아~'하고 위로해 주는 느낌이다.
청년들은 서재를 가꾸듯 자신을 가꾸는 법을 배울 것 같고,
장년들은 서재와 함께 늙어가는 법에서 위안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와 함께 주문한 세 권의 책은 조금 뒤적거리다가 버렸다. 나는 내가 읽고 나서 재미없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 산 책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버리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56쪽)
새 책을 사서 실망하는 것보다는 내 서재에 있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한 『모비딕』을 마치 공부하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복해가는 즐거움도 크지 않을까.(57쪽)
내 서재는 나와 함께 늙어갈 터이고 언젠가는 아내나 딸에 의해서 묘지(헌책방)로 실려 가겠지.(59쪽)
이젠 나도 재밌어보여 들였지만 책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이 곳 서재의 리뷰도 열심히 보고, 독서에세이나 서평집도 챙겨보게 된다.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지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책의 여백을 일러스트로 처리했는데,
일러스트라는게 어땠다는게 아니라,
(충분히 적절했고 좋았다...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리뷰나 독서에세이, 서평집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서재나 책들을 실물로(실물이 안되면 사진으로라도) 구경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ㅋ~.
서재의 책장도 그렇고,
귀하다는 책들도 그렇고,
책장에 책들을 배치하는 법들도 그렇고,
엿보고 싶어지는데,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아쉽다
책의 전통적인 또 다른 용도는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이나 라면 냄비 받침대다.ㆍㆍㆍㆍㆍㆍ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역시 두꺼운 책보다는 얇고 작은 시집이 좋다는 것. 두꺼운 책을 사용하면 무게중심을 조금이라도 맞추지 못할 경우 컵라면의 몸체가 쓰러져 아까운 라면을 버리게 될뿐만 아니라 덤으로 청소까지 해야 한다.(71쪽)
이런 기발함은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런 기발함에 동참하고 싶어서, 오늘 점심은 컵라면을 먹어야 할까 보다, ㅋ~.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 책으로 시집 대신 켄트 하루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