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백 무협 단편집 - 마음을 베는 칼
좌백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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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장르소설 매니아라는게 소문이 나서 주변에서 정보도 제공해 주고 책이 생기면 가져다 주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장르소설을 들입다 파지는 않았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여느 내 또래가 로맨스 소설을 읽던 고 2 여름방학  무렵 우연히 읽게된 무협지가 시작이었다.

누가 번역한건지 기억 안나는 삼국지를 누런 서류봉투 종이로 표지를 입혀 갖고 다니며,

틈만 나면(화장실, 버스를 기다릴때, 길을 오가면서도...) 야금야금 읽었었다.

 

그날도 책에 코를 박고 길을 걷다가 열린 창 너머로 누가 끼얹은 물벼락을 맞았다.

물을 버린 곳은 독서실인듯 했다.

사과를 받아낼 요량에서 였는지, 다른 흑심이 있어서 였는지...쳐들어갔으나,

독서실까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입구 사무실에서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총무 아저씨에게 제지를 당하였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사무실 책상 위에 잠시 놔 두었다가 다시 들고 나오는 수고를 했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볼 일을 보고 책을 마저 읽기 위하여 펼치니,

글쎄, 삼국지가 아니라 지금은 제목도 기억 나지 않는 무협지였는데...

슬쩍 들춰보니 너무 재밌는지라 까만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읽었었다.

 

살짝 옆으로 새서...내가 노트 필기에 일가견이 있다.

선생님의 말씀을 밑줄 쫘악~, 별표 꽁약, 돼지 꼬리 땡땡, 

중요한 내용을 뽑아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고,

그 사이 유기적 연관성을 엮어 기억하기 쉽게 정리한다.

특히 연표나 족보 만들기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졸업시험을 앞두고 노트를 잃어버리고 당황했었을때,

시험은 코 앞이고 노트를 빌릴 곳은 없고, 누군가 CD아저씨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는 동영상 강의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라,

강의 녹음과 노트를 불법 복사해 가지고 다니면서 대여해주는 그런 사람을 CD아저씨라 불렀었다.

(이것도 족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지, 아마...)

때로는 제대로 된 족보일때도 있었고, 때로는 pseudo족보일때도 있었는데, 불러놓고 보니 내 노트의 복사본이었다.

 

암튼, 그 무협지를 인물관계도 - 족보를 일목요연하게 그려가며 열심히 읽었고,

내 무협지 인물관계도 - 족보에 재미를 붙인 아저씨는 그 후로도 몇 권을 더 빌려주었었는데...

등장인물만 조금 바뀔 뿐이지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에 흥미를 잃어, 그렇게 그렇게 끝이 났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무협지와 여러가지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는 '몸과 마음을 같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범상치 않은 숨은 고수나 지존에 대해 떠벌리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 없었고,

그래서였는지, 무협 소설이나 무협 영화의 제목도 심심찮게 회자되곤 했었다.

물론 개중에는 무협소설이나 영화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공부만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처럼 김용을 제 2의 참고서 취급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해야 하는데...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어쭙잖게도 이제 무협소설을 제외한 장르소설을 들입다 판다.

그런 의미에서 좌백이 더 이상 읽을 게 없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철학적으로 무장하고 실존적 질문들을 던져대는 그의 몇몇 작품은 참 재밌게 읽었다.

그의 단점을 꼽으라면, 장편(아니 대하)소설을 몇가지나 벌여놓고 너무 오래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그의 지병으로 인한 것이 되었든 나름의 사정이었든 간에, 그 기간이라는 것이 독자가 설레이며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넘어섰다.

 

이번 단편 무협 소설집은,

그간 좌백의 무협소설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좌백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단편소설집이라는데서 그의 다양한 시도들을 입맛에 맞춰 골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간 읽은 무협소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비슷비슷한 줄거리와 내용을 살짝 비트는 것만을 가지고도 그만의 독특한 무엇인가로 만들어내는 묘한 재주가 있다.

 

ㆍㆍㆍㆍㆍㆍ추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것도 상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살인이 무서워서라는 것을. 그는 여태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도 못 죽이는 게 무슨 고수냐!"

 

옛적에 고수는 칼을 빼면 반드시 베었고, 손을 쓰지 않으면 모르되 한번 쓰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거두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손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되는 것이었으니, 무술을 배우며 마음을 같이 닦는 것이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혹 모양으로 배우는 자도 있었던 모양이다.(14~16쪽)

 

화상이 그에게 맡긴 일은 사람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지방의 토호로 온갖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 하나쯤 죽여도 하늘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숱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했다.

실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람이란 의외로 약한 존재라 적당한 곳을 적당히 찔러 주면 죽게 마련이라고 했다. 삶은 고해요, 산다는 것은 악업을 쌓는 일이다. 사람은 다 서로 뜯어먹으며 살고 있으니,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라도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라고 했다.(31쪽)

좌백이 추구하는건 무조건적인 권선징악이 아니라...다분히 인간중심, 나 중심적인 시각이다.

무술에 고수인 자가 사람 찌르지 못하는가 하면,

빌어먹고 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살기위해서라면...남을 죽여도 괜찮은가 '제법 진지하게' 묻고 있다.

 

"누가 그래? 어떤 놈인지 몰라도 뻥도 세지. 대개의 무림인은 당신이랑 똑같아. 뛰면 숨차고 땀나지. 담장은 원래 못 뛰어넘으라고 만든 거야. 그걸 왜 뛰어넘어? 문으로 안 들어가고 담장을 뛰어넘는 놈이 정신 나간 놈이지."(73쪽)

개념들을 살짝 비트는 언어유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이게 오히려 재미있다.

담은 못 뛰어넘으라고 만든게 맞지만,

문이 아니라 담장을 뛰어넘는 쪽이 조금 더 무림다운 feel인데 말이다.

 

그는 어쩜 이런 언어 유희를 구사하여 생기는 대립, 강조의 개념을 이용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야수는 이렇게 살생을 하지 않지, 당연히. 놈들에게는 그날 먹을 고기만 있으면 되니까. 사람은 달라. 사람이니까 이렇게 살생을 할 수 있는 거다. 사람이니까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죽일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거다."(118쪽)

라고 하는가 하면,

"죽을 놈은 죽어야지요. 요즘 열 걸음 걸으면 죽을 놈 한 놈만 봅니까. 걸음걸음 죽을 놈투성이지요. 마음 같아선 그냥 확!"

"죽 놈과 죽 놈은 다르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협객이 아니라 살인마야."(134쪽)

 

죽은 칼이라고 읽을 수도 있지만 죽이는 칼이라고 읽을 수도 있지...(172쪽)

 

인자무적이라는 말의 뜻을 생각했지. 인자는 무적이다. 참 좋은 말 아닌가. 보통 사람들은 인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인한 사람이란 즉, 좋은 사람이고, 인격자니까 그에게 적대할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지.(173쪽)

그게 아니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네. 그게 내 생각의 훌륭한 점이지.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 즉, 나는 인자무적이라는 말을 '인자는 무적이다.'라는 걸로 해석했네. '인자는 너무나 강해서 이길 자가 없다.'는 뜻으로. 검객이라면, 인자 검객은 무적 검객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174쪽)

'을'과 '일' '은'과 '일' 한 글자의 차이를 가지고 두드러지게,

또는 '인자무적'이라는 한단어를 가지고 해석의 관점에 따라 큰 차이를 만들어내...글 전체를 관통하는 글쓴이의 입장이 되게 한다.

 

이 책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을 베는 칼'이라고 했을 때 '세치 혀'를 떠올렸었다.

사람의 혀는 때론 뾰족하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하고,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작가가 얘기하려고 했던 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읽어낸 마음을 베는 칼이란 다른 어느것도 아닌 '자기 비하 내지는 자기 기만'이었다.

'자존감'과 '자존심' 경계도 잠시 넘나들었다.

 

펜이 되었든 칼이 되었든 간에, 몸과 마음을 '같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전제도 물론이지만,

그와 더불어 도구를 ' 벼릴 준비가 되었나?'를 가늠할 수도 있어야 하겠다.

'잘'이란 '과하지도 하지도 않게' 이다.

흔히 애정이 넘쳐 술을 잔에 넘치게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단편 '마음을 베는 칼'의 경우, 겉으로 눈에 띄는 것이 아닌 자기 내면과의 싸움이다 보니,

스케일이 큰 무협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갈등의 굴곡이 작게 느껴져...좀 맹숭맹숭할 수도 있겠다.

난 비슷한 내용으로 고민해봐서 그런가...제대로 감정이입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어르신 자신이 바로 그 칼입니다. 말로, 행동으로 제 마음을 베어 버리셨죠.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궁극적인 검의 경지인 심검에 당했다는 사실은 오늘 이 자리에서야 깨달았습니다."(173쪽)

 

ㆍㆍㆍㆍㆍㆍ하지만, 칼이란 뭔가 특별한 게 아닐까. 그릇이나 식칼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르다는 의미에서. 크게 보면 무기도 도구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릇과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전문적으로 목숨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 것이다. 무기라는 것은.(260쪽)

 

위와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침은 어떠한가?

얼마전 에이즈도 뜸으로 치료할 수 있다던 구당 김남수의 침사자격증이 허위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렇다면 30여 년동안을 자격증도 없는 사람에게 침을 맞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침은 사람의 몸에 있는 혈(穴)을 찔러서 병을 다스리는 데에 쓰는 의료 기구이지만, 잘못 찌르면 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절삭력이나 이런 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기라고 할까, 아니면 공명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ㆍㆍㆍㆍㆍㆍ.칼의 울림이 손을 통해서 척추까지 전해져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있긴 있더군요. 전통 일본도에는."

울림이 손을 통해서 척추까지 전해져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이런 느낌은, 공명만 된다면 칼 뿐이 아니고 침이나 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요번 좌백의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는 '살기(殺氣)-남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무시무시한 기운'가 아닐까 싶다.

무사라면 누구나 살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그 살기를 적절하게 갈무리하고 살면 고수가 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하수가 되는거다.

'마음을 베는칼'의 그 어르신은 살기를 잘 갈무리하여 심검을 구사하는 걸로 묘사되고,

또 사도(死刀)와 활검(活劍)에서 친구 간에 '베고 베이고'는 또 어떻고 말이다.

이러니, 언어 유희를 구사하여 생기는 대립, 강조의 개념을 이용하여 주제를 드러내는...역설의 미학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혀를 내두를 수 밖에~

 

易擊胡蝶 難擊落葉

"나비를 베기는 쉬우나 낙엽을 베기는 어렵다ㆍㆍㆍㆍㆍㆍ. 무슨 뜻의 글귀입니까?"

ㆍㆍㆍㆍㆍㆍ

"아, 뭐 진짜 벌것 아닌데. 제 개인적인 무언武言이라고나 할까."

무언이라면 무인이 무술에 대해 깨달은 바를 표현하는 말이다.

 

"왜, 나비는 살기를 감추고 가까이 검을 움직여서 꼬드긴 다음 벨 수 있잖아. 하지만 낙엽은 떨어질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그러다 보면 다른 생각도 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해서 아차 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놓쳐 버린다는 거지. 별거 아니야."(272쪽)

 

내가 일상에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듯한 구절이 있어서 옮겨 보자면 이렇다.

 "대체 도사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장선생

 "능력자가 있긴 하지만 그런 분은 잘 안 보이죠. 하지만 허풍쟁이는 셀 수 없이 많고 사기꾼도 그만큼 많다ㆍㆍㆍㆍㆍㆍ고 하면 대답이 되려나요."

 윤기자

 "그냥 전통 무술이라고 하면 장사가 안 되니까 거기에 자꾸 신비한 색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군 할아버지 때 보필했던 풍백, 우사, 운사가 쓰던 무술이라고 하는 것도 본 일이 있으니까요."

 "재밌네요."

 곽사범.

 "재밌기만 하면 다행인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으니 문제지.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다 보면 뇌에 산소 부족 상태가 일어날 수 있거든. 이게 단전호흡을 하다가 부닥칠 수 있는 부작용의 원인인 건데, 처음에는 환각 상태에 빠지고 심각하면 죽기도 해. 숨 쉬는 걸 잊어버려서. 나도 한 번 체험한 일이 있어. 작정하고 산에 올라가서 백일 수련을 하던 때의 일이지. 산 정상의 바위 위에 앉아 단전호흡을 하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수련도 하던 때ㆍㆍㆍㆍㆍㆍ.근데 하루는 수련을 마치고 밤중에 산을 내려오는데 눈앞에 내가 밟아야 할 곳이 밝게 보이는 거라. 흰 페인트로 그려 놓은 것처럼 점점이. 여길 밟고 뛰어서 저기로 갔다가 그 아래로 뛰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했더니 정말 되는게 아니겠어. 평소 두 시간은 걸리던 하산길이 단 30분 만에 끝났지. 단전호흡이 어떤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어. 위험할 때가 더 많아서 탈이지. 그러니 단전호흡을 시도할 때는 책 보고 혼자 하지 말고 요즘 많이 있는 큰 단체들 있잖아, 거기서 여러 사범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나아.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니까."

ㆍㆍㆍㆍㆍㆍ

"저, 그 하산법은 그다음에 또 시도해 보셨나요?"

ㆍㆍㆍㆍㆍㆍ

"다리 부러졌지."

웃고 말았다.(274~275쪽)

 

암튼,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고마움'쯤 되겠다.

기존의 그를 잃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면 고마웠달까?

단편이라서, 그의 다양한 시도들을 입맛에 맞춰 골라 읽을 수 있었던 건 덤 쯤으로 여겨도 좋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대하소설 류를 좋아하지만, 완결이 안됐다고 툴툴거릴 일도 없고 말이다.)

 

그대로라는건 발전하고 나아지지 못했다는 의미니까...도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좌백은 아주 복잡하고 자세한 설명은 독자가 머리 아파 대충 건너 뛸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대충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황당무개함을 자랑으로 하는 무협소설이라지만 여전히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김용의 작품들을 예로 들어 보면...비슷한 설정, 비슷한 내용 뿐 아니라 무술도 같은 무술이 두번 등장하지 않는다.

 

'자객열전'을 생각나게 하는 '신자객열전'이나,

'이백'의 '협객행'에서 출발하는 '협객행'이나,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 모티브에서 출발하는 ' 쿵푸 마스터'따위의,

비슷한 설정, 비슷한 내용에서 출발하여 이런 글을 써낸다는 것은 보통의 내공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고,

자신감이 있으니까 이런 모험을 불사하는 것임을 이제 난 알겠지만 말이다.

 

매년 하얗게 골짜기며 나무를 뒤덮는 눈이 내린다고 해서,

작년에 내린 눈과 올해 내린 눈이 같지 않고,

어제 내린 눈과 오늘 내린 눈이 같지 않듯이...

어떤 눈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릴것이고,

어떤 눈은 나뭇가지를 덮어 새순을 돋게할 봄눈일 수도 있다.

 

그가 마음껏 벼리고 펼쳐놓으면, 나는 그의 재주를 신비한 눈으로 감상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그가 잠수한 동안 툴툴거릴게 아니라 같이 아가미를 키워야 하고(이건 아닌가 보다~ --;)

내가 손 놓고 쉴 일이 아니라, 감상할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하려나?

아니, 어쩜 그건 눈이 아니라 마음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감상은 어쩜 '시간'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잠든 듯했던 여인이 일어나 문밖에 붉은 등을 내걸고 술청 안 곳곳에 있는 초들에도 불을 붙였다. 불빛을 따라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햇살 대신 바닥을 쓸었다.

 

"바람이라. 그래 바람일 수도 있지.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곡식의 생장이나 사람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그런 존재가 우리니 바람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냥 우리가 한번 쓸고 가면 남은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사는 거지. 그게 그들과 우리의 차이였던 것이지."

 

그가 구사하는 이런 미문도 당근 매력적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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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2-0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과 마음을 같이 갈고 닦기 위해 수영 강습 등록하고 왔어요. 몸이란게 신기하죠. 30년 만에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갔는데, 30년 전에 배운 그 영법(자유영)이 단번에 되더란 말입니다. 이번 여름엔 정말 30년 만에 수영복 입고 바닷물에 한 번 들어가 보려는지 어쩌는지.. 흐흐

양철나무꾼 2012-02-14 15:03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전 한때 스킨 스쿠버가 엄청 배우고 싶어서...잠실 롯데월드 수영장을 들락거렸었어요.
거기 한쪽 구석에 스킨 스쿠버 전용 풀이 있잖아요.
열쉬미 노력했는데...폐활량이 넘 작아 중도포기했다는~ㅠ.ㅠ

저, 물이랑은 안 친한데...
잠수한다는 사람 찼으러 다니려고...아가미 키우는거, 이거 하난 잘할 자신 있습니다여~^^

올 여름엔 님 계신 곳으로 수영복 한장만 달랑 들고감 되는 거예요?^^

2012-02-0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2-14 15:13   좋아요 0 | URL

숲노래 2012-02-0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바람
좋은 마음
좋은 하루
즐거이 읽은 책으로
따사로이 보듬으소서~

양철나무꾼 2012-02-14 15:20   좋아요 0 | URL
된장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저도 뭔가 '좋은'이랑 '~소서'따위를 넣어서 '덧글'을 달아야 할 듯~!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복 많이많이 받으소서~^^

2012-02-0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눈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인용문이 마음에 특히 남습니다.
저도 이런 아름다운 게 좋아요..^^

감상은 '시간' 문제. 그렇게 오래도록 기꺼이 기다릴 작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 작가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꾸준히 책을 내 준다는 게 전제된, 그런 기다리는 상호 관계.. 좋아요.^^) - 전 가지지 못했지만요.

아가미를 키워 같이 잠수할까 하는 말에 ㅋㅋ-.

*참, 저 좌백님 알고 있었어요. 책은 안 읽어봤고.. 진산마님의 삼돌이이시죠...ㅎㅎ (인터넷에 대유행한 진산님의 <마님 되는 법> 알고 계시죠?!)

양철나무꾼 2012-02-14 15:40   좋아요 0 | URL
흰 눈에 관한 얘기는 인용문이 아니고 제 글이고요~^^
마지막 인용문, 바람 얘기 좋죠?

전 요즘 바람이나 햇살 따위 경계나 영역 없이...맘껏 오갈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저도 당근 진산 마님, 알고말고요~^^

재는재로 2012-02-0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백은 이책말고 대도오 후속작 흑풍도하4권이후 책이 안나와서 4권마지막에서 대도오가 등장하는데 이케 책이 않나오서 책에 유성탄과 일행의 후일담이 나오죠 드라큘과 싸우는 역시 무인은 무로 자신을 나타내고 작가는 글로 자신을 나타내는 요즘의 양판과는 틀린 사람냄새 물씬한 무협의 향기가 그립어요

양철나무꾼 2012-02-14 15:56   좋아요 0 | URL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무협의 향기라...저는 '극악서생'이요~^^
1부는 열쉬미 읽었는데...2부는 못 읽었네요~ㅠ.ㅠ

마녀고양이 2012-02-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제는 무협소설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자기한테 두손 두발 다 든다. ^^

하기사 나도 김용 읽느라 얼마나 밤을 지새웠는지, 김용 소설 출간된 것은 몽땅 다 읽었는데.
지금두 영웅문 1부 2부는 샀는데, 금전적 사유로, 3부와 녹정기, 천룡팔부를 못 사고 손가락 빤다눈.
아.. 갑자기 김용 생각난다, 사고 싶다.

양철나무꾼 2012-02-14 15:59   좋아요 0 | URL
내가 전공이 무협이었다고 얘기했을텐데...
부전공이 족보 그리기~^^

김용, 다 갖고 있지롱~
줄 수는 없고, 빌려 줄수는 있어.
비디오도 있는데...안 튼지 한참 돼서 화질은 장담 못한다는~ㅠ.ㅠ

oren 2012-02-0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부분이 이 글의 제목과 딱 맞아 떨어지는군요..ㅎㅎ
* * *
"나도 젊었을 때는 대문에서 초인종이 울리면 "야, 무슨 일이 있으려나 보다"하고 기대했지만, 나이가 들어 인생의 참모습을 알게 된 뒤로는 똑같은 초인종 소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아, 무슨 골칫거리라도 생겼나?"하고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 쇼펜하우어

양철나무꾼 2012-02-14 16:08   좋아요 0 | URL
oren님을 보면 항상 놀랍고 존경스러운 것이,
어떻게 적재적소에 적절한 구절들을 찾아다 넣을 수 있는 것인지, 원~ㅠ.ㅠ

책 한권을 그냥 읽기도 힘든데, 이렇게 읽기는 더더욱 힘들 것 같습니다여~^^

비로그인 2012-02-0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협지와 학교 때 노트 이야기, 재밌어요. ^^

좌백은 글을 잘 쓰는군요. 아니면 나무꾼 님의 해설을 따라 읽어서 그런가요? 저도 마침 얼마 전에 '말로도 사람을 벨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한 번 베이고 나면, 피해야겠지요? ^^;;

양철나무꾼 2012-02-14 16:31   좋아요 0 | URL
전 좌백 같이 온기가 느껴지는 글이 좋아요.
님과 제가 같이 좋아하는 애니 프루나, 재스퍼 포드 같은 경우...다 따뜻하잖아요.
manci님의 글도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 통 볼 수 없으니...이사 잘 하시고 빨리 컴백하세요.

한번 베일때 아프지, 두번째부턴 내성이 생기겠죠?
곪고 덧나지 않는다면 흉터나 옹이는 때론 영광스런 훈장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요.
넘 교과서 같은가요, ㅋ~.

알케 2012-02-0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백의 문장 좋죠. 저도 좌백의 다음 작품 기다리다 늙어죽을 기세 -.-;; 제 기준 좌백의 명작은 <대도오> <비적유성탄>.. 흠...제가 생각하는 무협 중단편의 백미는 이재일의 <칠석야>입니다. 언제 기회되시면 이재일의 작품들 장편 <쟁선계> 같은, 보시길 권해요. 트루기..캐릭터..서사구조가 완성도 높죠.

양철나무꾼 2012-02-14 16:38   좋아요 0 | URL
아, 이재일 기억해 둡죠.
전에 '제프리 구루물 유누핑구'때도 엄청 바람만 잡으시고 트랙백 안거시는 바람에 땡스투 없이 CD구입했습니다.
이재일 찾아보니, 칠석야 절판입니다.
트루기, 캐릭터,서사구조 완성도...요번에도 엄청 바람만 잡으시고, 쫌 밉습니다여~ㅠ.ㅠ

쉽싸리 2012-02-0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싯적에? 무협지 참 많이 읽었는데요. 그때는 만화방에 무협지도 함께 취급했지요. 손바닥 정도 크기에 세로쓰기였던 것 같아요. 와룡강(생?)이라는 필명의 작품을 많이 보았죠.
좌백의 것은 만화로 나왔던 작품 몇 개를 본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2-02-14 16:48   좋아요 0 | URL
전 만화방에는 못가봤지만 손바닥 크기 세로 쓰기 무협지는 알아요.
이쯤이면 쉽싸리 님과 제 소싯적이 같은 때인가요?^^
좌백이 만화로도 나왔군요?
전 글로만 읽어놔서리, ㅋ~.

루쉰P 2012-02-0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P야, 루쉰P야! 뭐하니? - 죽었니, 살았니? 왠지 제목이 저를 부르는 듯 해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ㅋㅋ 전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숨을 고르고 있는 중 입니다. 여전히 양철댁님이 보내주신 책을 노려보며 손을 델 까 말 까 하고 고민 중이며, 어둠이 찾아오는 관리사무소 안에서 스스로의 그림자는 어디에 있을까? 앉아서 사색을 하며 살아 있음에도 죽음을 느끼고, 죽음 속에서 삶의 기척을 찾아내고 말리라 결의를 하는 하루 하루의 일상입니다. 음...너무 멋있게 썼네요.

저도 무협지는 정말 많이 읽었죠. 하찮은 자신에 비해 무협 소설의 주인공도 처음에는 하찮았으나 점점 강해지는 그런 모습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저도 읽지 않고 있지만, 양철댁님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벗어나려 했던 제 모습을 발견하네요. ^^ 전 걱정 안 하셔도 될 정도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게 교주의 능력이지 않겠습니까! 교주라고 하면 이 정도의 상처는 쪽팔려서라도 버티고 일어나는 법. 무림의 고수는 아니어도 이 정도의 능력은 있는 교주이니 걱정마삼. ㅋㅋㅋ

인생은 무협지처럼 저에게 절세 무공을 전해 주는 사람은 없으나 무협지처럼 스펙터클 하니 이 몸 하나 건사하지 못 하겠습니까? ㅋ 오늘도 하루를 보내며 절찬리 무공 연마 중입니다. ㅋㅋㅋ

양철나무꾼 2012-02-14 16:58   좋아요 0 | URL
ㅎ,ㅎ...역쉬 교주님이셔요.

루쉰P야, 루쉰P야! 뭐하니? - 죽었니, 살았니?
이 다음 버젼도 알고 계시죠?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짜라 쿵짝~!

제겐 절대무공도, 무림의 고수도, 능력 있는 교주도...다 필요없는거 알까요?
치열하게 몸무림치시는 중이어도 괜찮고, 몸무림치시다가 넘어지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켜주고 계신것만으로 족할 따름이니까요~^^

2012-02-09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4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03-1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백은 무엇인가 묘하게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허무함 가운데 통쾌함이랄까 아니면 통쾌함 속의 허무함이랄까? 좌백의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좌백스러운 작품을 꼽자면 전 천마군림을 꼽습니다. 다만 거의 10년이 되어 가는데 미완으로 머물러 있죠. 구룡쟁패의 시나리오 작가도 했었습니다. 좌백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그 회사에서 잘리기를 원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좌백이 너무 게으른지라, 그의 부인도 그다시 생활비로 구박을 하지 않는 편인지라 경제적인 위기와 배고픔을 겪어야 글을 쓴다는 것이었죠. 아마도 꽤 오랫동안 천마군림은 꽤 오랫동안 7권이 안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