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의 70%를 물이 차지한다는데,
요즘 같아선 내 몸의 전부가 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 같다.
물먹은 하마내지는, 잔뜩 습기먹은 구름 같아서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이내 '주르륵'내지는 '후두둑'이다.
명절이 지나고 같이 다니시는 할머니 세 분이 오셨다.
그 중 한분이 곱게 포장된 콩고물에 팥앙금이 들어간 떡 두팩을 내놓으셨는데,
밝은 눈으로 그냥 보기에도 곰팡이가 펴 있었고 살짝 랩을 걷어보니 쉰내가 났다.
난 그냥 '잘 먹겠노라'고 하고는 받아 두었다.
할머니 얼굴이며 팔뚝을 쳐다보니 불긋불긋한 것들이 나 있길래,
서둘러 합곡,태충 잡고 은백 대돈 사혈하고...그때까지는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하였다.
다른 할머니 한분이 출출하니 아까 준 떡을 나눠 먹자고 하시는 거였다.
난 깜짝 놀라 '떡은 명색이 병원인데...음식 냄새도 나고 하니 선식이나 한잔씩 대접하겠다'고 하는데,
그 할머니 손도 크시지, 어디선가 나머지 두 할머니 몫까지 주섬주섬 꺼내놓으시는거다.
난 어쩔 수 없이,
"엄마, 떡이 좀 상했더라. 그래서 안 내어놓으려고 한건데..."
라고 하자,
"냉장고에 들어가 있던 떡이 왜 상하느냐?
가지고 와라, 어디 곰팡이가 폈느냐?
이게 깨지, 어디 곰팡이냐?
난 다 먹었다, 먹어도 암치도 않더라.
나를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망신을 줄 수가 있느냐?"
고 하시고는 두 할머니께 마저 나눠주시며 쌩하니 나가버리셨다.
눈물, 콧물 흘려대고 있는데...
햇수로 7년, 꽉 채운 6년을 알고 지내는 분이 들어오시길래 여차여차 저차저차 설명을 드렸다.
도사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우는 이분 曰,
"서선생, 도 닦게 해줬으니 그 환자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거네..."
하셨다, 에효~ㅠ.ㅠ
다다음날인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어김없이 할머니 세분이 같이 오셨다.
내가 서둘러 처치를 했던 상한 떡의 장본인인 그 할머니는 거의 가라앉아 있었고,
나머지 할머니 두 분의 얼굴엔 빠알갛게 꽃이 피어 있었다.
얼굴에 핀 꽃을 보는데...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There is no end of things in the heart.
언젠가 지인이 안부 글 중에 같이 주신 구절인데, 마음에 와닿아 오래 간직하고 있는 구절이다.
에즈라 파운드라고, 미국의 시인인데 이백의 시를 영역해서 알려졌나 보다.
저 구절이 이백의 시 어느 한구절쯤 되나본데,
한동안 찾아보려고 하다가,
저 말의 의미를 어느새 '내 안에서 나化'하였기 때문에, 이백을 찾는게 더 이상 무의미하다 싶어져 그만두었다.
사는게 힘들면 얼마나 힘들며, 쉽다면 얼마나 쉽겠는가 말이다.
그 할머니가 살아오신 여든 여덟 해의 삶에 미루어 앞으로 살아갈 몇 년, 길어야 십몇 년은 덤일 수 있다.
내 생각에 망신이었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망신이었다고 해도...그게 목숨보다 대단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 할머니에게는 목숨만큼, 또는 목숨보다 중요한가 보다.
마찬가지로 마흔두해를 살았으며,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할텐데,
여든여덟 해를 살아오신 할머니도 목숨을 걸고 지키시는 무언가가 있는데,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지키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꼭꼭 닫아걸고 있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라치면, 간신히 자리잡은 평정이 깨질라치면...
그걸 지키려고 울고불고 악을 쓰는거 그거 하나는 잘하는거 같다.
'no'에는 '아니다, 없다'의 의미도 있지만,
'~을 넘어서는' 의미의 'over', '~을 극복하는' 의미의 'get over', '~을 초월하는' 의미의 'beyond' 등의 의미도 있는것 같다.
이런 의미들은 하나같이 나에겐 버겁기만 하다.
지난 가을 '왕따' '스따' 때도 느낀 거지만, 나도 한참 잘못 됐다.
참,
어쩜 이분도 나를 향하여 '뭐, 이렇게 지 멋대로인 기집애가 다 있나?'하고 속으로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다."꺅~"소리만 안 냈을 뿐이지 좋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여기저기 수선내며 들쑤셔 놓고,
블로그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때맞춰 안부도 챙기더니...다 잠깐이구나...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여...하던 것들을 멈춘 것은 아니다.
단지 에즈라 파운드를 내 맘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을 뿐이다.
늘상 더듬이의 한쪽을 그쪽을 향하여 열어두고 있고,
겨울이면 산에 못 다니시겠지 싶어,
아프시다던 손가락 관절이 더하지 마시라고 한번씩 염력을 날려드리기도 한다.
가끔 가뭄에 콩나듯 안부만 전해듣는데, 그만하면 됐다.
'no'를 혜민스님 버젼으로 해석해 보자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에서 이렇게 얘기하더라.
언젠가 이 동네 누군가 내게 해준 얘기랑 똑같은 얘기다.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대해야 합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난 정말 말을 많이 아낀다, 글은 좀 덜하다.
말을 많이 한 어떤 날은 주워 담고 싶을 때도 있다.
혜민스님은 이런 말씀도 하신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음표와 음표 사이이 거리감, 쉼표때문입니다.
말이 아름다운 이유는
말과 말 사이에 적당한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쉼 없이 달려온 건 아닌지,
내가 쉼 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때때로 돌아봐야 합니다.
입에 지퍼가 달렸으면 싶을때도 있다.
또는 텔레비젼처럼 사전 심의제가 있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우려가 있으면 X-box 처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X-box 처리가 뜨는 순간, 눈치 빠른 상대방은 X-box의 내용 자체를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은
운전 중에 브레이크 페달을 자주 밟습니다.
대화를 잘 못하는 사람은
대화 중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브레이크를 자꾸겁니다.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이건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이다.
상대방의 얘기를 끝까지 듣는 것.
근데 문제는 얘기의 행간을 파악하려 한다는 거다.
환자들이 나에게 말 안하고, 말 못하는 사이의 것들을 읽으려고 애쓰다가 정작 핵심을 놓치기도 한다.
덕분에 지혜로운 자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때론 지지리 오지랖이 되기도 한다.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고 싶소. 말들 사이로 흐르는 음악 말이오."
짐작했던 대로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했다. 그가 아는 이탈리아 여자들은 모두 그러했다. 그녀는 음절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매혹적인 리듬을 지닌 말투였다.
나도 이런 목소리를 지닌 여자이고 싶다.
말들 사이로 음악이 흐르는...언제 말을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때를 잘 아는 여자.
음절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 또박또박 발음하는,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매혹적인 말투는 또 어떻고...
이건 앞의 것은 잘하면 가능할 것도 같고, 뒤의 것은 '매혹'에서 걸린다.
대학시절 방송국 PD로 합격했는데, 아나운서로 알고 공들이려던 선배가 몇 있었고, ㅋ~.
아직도 전화하면 너 말고 어른 바꾸라는 소리를 듣는걸 보면, 매혹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다.
목소리 관련 생각나는 여자는 없고, 생각나는 남자는 있다.
내가 아껴두고 야금야금 꺼내 듣는 목소리는 '강승원'이다.
강승원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김광석이 부른 '서른즈음에'를 만든 사람, 오리온 초코파이 정'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그제서야 '아하~'한다.
요즘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감독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조금더 알고 있는 걸 읊어 보자면, 서강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산하지대가 참빛이다''과학으로 세상보기'를 쓴 양형진님도 물리학과 출신인데, ㅋ~.
대학가요제 '저 너머 빈들에 서서'를 부른 '에밀레'와 같은 이름의 '에밀레' 동아리 '창단멤버'이다.
예전에 술먹으러 홍대 앞에 자주 출몰하였었다, 요즘은 내가 바른 생활을 하여 모르겠다, 끙=3
암튼 난 이 분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no의 또다른 뜻들을 자연 터득하게 된다.
날 도닦게 해주는 건 그 같은 환자일지 모르지만,
날 도통하게 해주는 건 이런 경구를 주시는 분, 이런 목소리의 음악 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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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우리 동네 사람들
이 한마디 말로 내 마음 전할 수 있을까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없이 떠나보낸 수 많은 기억들
이제 잡으려 하여도 난 여기에 서있고
하나 둘 셋 넷
나의 분주함에 잊혀진 모든 이에게 미안해
커다란 선물 상자 안에 서있는 나에게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미안해
내가 떠나보낸 나를 떠난 여인에게도
나의 미모와 총명함 순진한 몸동작까지도 미안해
그 안에 울고 있는 나의 다른 모습에게도
내가 알고 있는 모른 척 했던 이에게 미안해
그러며 태연하게 거짓을 말하던 나에게도
세상은 쉬지 않고 돌아가며 시간은 우릴 떠밀어내고
오늘도 습관같은 실수로 떠나가는 너를 바라보고 있는데
(간주)
어젯밤꾸었던 꿈들이 생각나질 않아
재미없는 일들로 매일 바쁘다 해
거울 속 내 모습 낯설게 느껴져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나를 생각하며
너의 눈에 비친 내 모습 바라보며
오늘도 어쩌다 지금의 내가 되었나 봐
모두들 어쩌다 지금의 내가
나와 생각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해
내 목소리에 가리운 속삭임들 까지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고마워
내가 떠나보낸 나를 떠난 여인에게도
내가 떠나보낸 나를 떠난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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