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정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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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인생수정 The Corrections

◎ 지은이 : 조너선 프랜즌

◎ 옮긴이 : 김시현

◎ 펴낸곳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24일, 1판 6쇄, 733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가장인 앨프레드와 아내 이니드, 첫째 아들 개리, 둘째 아들 칩, 셋째 딸인 드니즈로 이루어진 이 가족의 이야기 『인생수정』은 2001년 전미도서상, 제임스 테잇 블랙 메모리얼상을 수상했고, 아마존 선정 인생책 Top 100, <타임>선정 100대 영문 소설, 2000년대 최고의 소설 3위로 선정되었고, 퓰리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펜포크너상, 임팩더블린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렇지만 이런 배경들 때문에 별점 다섯 개가 된 것은 절대 아니다. 읽다보면 괜히 이러저러한 상들을 받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대단한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퇴임 후 집 지하실에 틀어박혀, 소일거리를 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있기를 즐기는 앨프레드와 도무지 버릴 줄 모르고 정리할 줄 모르는 아내 이니드는 안 맞아도 참 안 맞는다. 이니드는 아이들에게도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잔소리꾼이자 말이 안 통하는 엄마이며 앨프레드는 고집 센 늙은이로 여겨질 뿐이다.

-이니드의 표면적인 적은 앨프레드였지만 사실 그녀를 게릴라로 만든 것은 그들 둘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집 안에는 어떤 잡동사니도 용납하지 않는 가구뿐이었다.--불행히도 이니드는 그런 집을 관리할 만한 기질이 부족했고, 앨프레드는 제대로 작동하는 신경이 부족했다. (14쪽)

-언젠가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리라는 믿음은 불행이 닥쳤을 때 여자를 통해 참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꿈이었다. 극단적 변화의 꿈: 어느 날 잠에서 깨면 자신이 완전히 다른(더욱 자신감 있고 더욱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있어 기존의 감옥에서 완전히 벗어나 천하무적이 된 듯하리라는 꿈.(351쪽)

-애당초 그는 잠과 결혼했어야 했다. 완벽하게 순종적이고, 무한하게 관대하며, 교회든 교향악단이든 세인트주드 레퍼토리 극장이든 어디에나 데려갈 수 있을 만큼 점잖았다. 그녀는 결코 눈물로 그를 잠 못 들게 괴롭히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그가 긴 하루를 마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었다.(363쪽)

이니드는 크루즈선 <쿤나르 미르달>을 타고 앨프레드와 여행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전화해 크리스마스에 집에 올 것을 종용한다. 이니드가 배에서 다른 이들과 즐겁게 보내는 동안 인지 장애와 환상까지 겪던 앨프레드는 혼자 갑판에 올랐다가 바다로 추락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치지는 않는다. 앨프레드가 인지장애를 겪는 과정이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지!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문장이 숲 속의 모험이 되었다. 그가 벗어난 빈터의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마자 그는 깨달았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떨어트린 빵 부스러기가 새의 뱃속으로 모조리 들어갔음을,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뭔가가, 무수히 많은 뭔가가 굶주림에 떼로 뭉쳐 소리 없이 잽싸게 달려가고 있음을. 마치 그들 자체가 어둠이고, 어둠은 균일하거나 빛의 부재가 아니라 와글와글 모인 미립자 같은 것인 듯했다. (19쪽)

-그에게는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안심 스테이크의 양념장처럼 특정인자가 적절하거나 잘못된 곳에 고이게 되고, 그에 따라 아침에 그의 신경말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분히 갖거나 갖지 못하는 듯했다. 전날 밤 옆으로 누워 잤는지 반듯이 누워 잤는지와 같은 단순한 것에 그의 맑은 정신이 좌우되는 듯했다. 그것도 아니면 더욱 불안하게도 그는 세차게 흔든 후 소리가 크고 분명해지거나, 단절된 구절이나 가락이 간간이 섞인 잡음만 뱉는 고장 난 라디오가 된 것이었다. (427쪽)

개리는 아내를 설득하지 못해서 결국 혼자 고향으로 향하고, 칩은 폭동이 일어난 리투아니아에 있다가 공항까지 폐쇄되는 바람에 제때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드니즈는 레스토랑에서 해고당한 뒤 불안한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니드는 마지막 크리스마스 때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을 간절하게 바라느라 집에 온 둘에게 신경쓰기 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칩을 애타게 기다린다. 가진 돈을 다 잃고 겨우 집에 도착한 칩. 이렇게 해서 가족이 겨우 모두 모였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딸의 앞날을 위해 그녀가 직장에서 만난 유부남과의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감추느라 퇴직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사임한 것도, 그래서 겨우 몇 주를 참지 못해서 연금을 못 받게 되었냐는 비난을 평생 감수했다는 것도, 그가 칩을 가장 사랑했다는 사실도.

-그의 머리가 흐려지고 있다면 이니드가 고생을 과장한 것이 아니고, 앨프레드가 자식들 앞에서는 애써 정신을 차리기는 해도 사실은 심각한 상태이고, 드니즈가 20년간 생각한 것과는 달리 이니드가 성가신 잔소리쟁이나 역병 같은 사람이 아니고, 앨프레드의 문제는 아내를 잘못 만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고, 이니드의 문제는 남편을 잘못 만난 정도에 불과하고, 드니즈는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더욱 이니드를 닮았을 가능성이 컸다.(547쪽)

-앨프레드에 대한 묘한 사실은, 그에게 있어 사랑은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멀찍이 거리를 두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이 점을 칩이나 개리보다 더 잘 이해했다. 그런만큼 아버지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꼈다. 불행히도 칩에게 이 사실은 앨프레드가 자식들을 성공 정도에 따라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칩은 너무 바빠서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오해했는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앨프레드가 심지어 아들이 집에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밤중에 애타게 부르는 사람은 바로 칩이었다. (672쪽)

증세가 심각해진 앨프레드가 양로원에 들어가고 이니드는 생활이 즐거워졌다. 드니즈는 부르클린으로 이사해 새 레스토랑 일을 시작했고, 칩은 신경과 의사를 만나 쌍둥이 딸을 얻었고 여전히 파트타임 대리교사를 하며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했다. 그들은 모두 어머니와 더욱 가까워졌으며 아버지의 병문안도 잊지 않았다.

-그는 깊은 무작위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니드는 요양원에 갔다가 그가 악취를 풍기며 턱을 가슴에 댄 채 바짓자락에 쿠키만 한 침 자국을 남긴 꼴을 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가 중풍 환자나 화분과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몇 시간이고 계속해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투명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가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든 이치에 닿는 것은 없었다. (726쪽)

-추수감사절 만찬 후 딥마이어 홈으로 그를 데려갔을 때 그가 "다시 돌아와야 하느니 그냥 여기 머무르는 게 낫겠어."라고 말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런 문장을 말할 정도로 정신이 맑을 수 있으면서 다른 때는 정신이 맑지 않은 것도 잘못이었다. 밤에 침대 시트로 목을 매려고 한 것도 잘못이었다. 창문에 온몸을 던진 것도 잘못이었다. 저녁식사 때 쓴 포크로 손목을 그으려고 한 것도 잘못이었다. (728쪽)

-그녀를 더 사랑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고, 그녀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섹스를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고, 많은 시간을 일에 바치면서 아이들과는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고, 그토록 부정적인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고, 그토록 우울한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고, 삶에서 달아난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고, 그래 라고 말하는 대신 아니 라고 거듭거듭 말한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는지 하나하나 매일매일 알려주어야 했다. 그가 듣지 않는다 해도 그녀는 말해야 했다. (728쪽)

이니드는 이렇게 그의 잘못을 계속해서 말했지만,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던 그가 마지막에 이니드가 그의 입에 얼음을 넣으려고 할 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의 모든 비난이 헛짓이었던 것이다. 끝까지 그를 괴롭히는 그녀가 얼마나 밉던지. 맨정신일 때 그가 죽고 싶었던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의지 자체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그가 숨을 거두고 난 뒤 일흔다섯의 그녀는 무엇도 자신의 희망을 죽일 수 없다 여겼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출발한다.

끝없이 남편의 사랑을 갈구했던 이니드와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으니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내버려뒀으면 하고 바랐던 앨프레드, 서로 안 맞아 생긴 이 불행을 보면서 여자임에도 나는 앨프레드가 훨씬 더 가여웠다. 잠을 못 자는 고통이 어떤지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어떤지를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잔소리만 끝도 없이 퍼부어대며 끈질기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이니드의 모습에서 나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서이기도 하다.

이 가족의 불행은 부부의 삐그덕거리는 관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리는 아내와 아이들 모두와 관계가 원만치 못하고, 칩은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드니즈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을 알게 되었으며 새로 열게 된 레스토랑의 주인인 사장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다가 해고당한다. 셋 다 다른 의미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모두 모여 아버지인 앨프레드의 병을 똑바로 보게 되면서 그를 이해하고 어머니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앨프레드의 죽음 이후 이니드가 새로운 삶을 향해 희망찬 걸음을 내딛는 것은 그녀가 그동안 남편에 대해 품었던 헛된 희망들을 모두 내려놓은 때문이라고 본다. 정신이 깨어있으니 집의 전등이 다시 반짝이는 것이다.

누군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집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 그 이상이었다. 유일한 사실이었다.

가족은 그 집의 영혼이었다.

깨어 있는 정신은 집의 전등과 같았다.

영혼은 굴속의 땅다람쥐와 같았다.

뇌에 의식이 필요하듯 집에는 가족이 필요했다.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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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연상시킨다.
어렵다.
그런데 묘하게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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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착한 책들
우울한 토요일에 빛이 되어주는 너희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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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잠을 자는 게 힘든 나도 그를 이해한다.
잘 수 있게 해주지 않는 아내가 답답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부부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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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외로워하면서도 고독을 원한다.
가족간에 유대라고는 없는 이 집안,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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