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가네'는 요즘 들어 내가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꼼장어구이가 전문인데, 쭈꾸미도 일품이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음식들에 열을 올린 건 아니다. 먹기 시작한 건 한 2년 전부터?

친구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입속에 한 개 두 개 밀어넣다보니

먹을 수록 고소한 데다가 오돌오돌 씹히는 맛과, 함께 나오는 부추양념장이 어우러져

상큼한 향을 내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입맛 까다로워서 다른 집 김치를 입에도 안 대고 수학여행 내내 쫄쫄 굶어

입가에 허옇게 버즘까지 피었더라는 엄마의 제언이 아니어도

나 스스로 아무 음식에나 덥석덥석 젓가락을 집어 넣지 못하는 비위 약한 중생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던 것이 이제 세월이 좀 지났다고 아줌마스러워져서

징그럽게 생긴 외모와 구울 때 삐질삐질 비어져 나오는 내장이 속을 머슥하게 만들던 건

다 잊어버리고 내가 먼저 먹으러 가자고 친구들을 끌어당길 지경이 되었으니

사람은 참 변화하기 좋아하는 종족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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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잘 안 보는 편이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 보면 그럭저럭 히히덕거리며 웃을 수 있다길래 두어 번 봤다. '우리 결혼했어요'

개중에는 모르는 인물들도 더러 섞여 있지만 대부분 친숙한 얼굴인 데다가

설정 자체가 독특해서 흥미로웠는데 보면 볼수록 계약결혼이 자꾸만 떠올랐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도 그 제도에 일찌감치 묶여 사는 동안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결혼 생활이 미치도록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고 하던데, 둘만의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대충 아이를 낳기 전까지가

그나마 닭살 행각을 벌일 수 있는 기간이다.

나머지는 정말 흔하디 흔한 그 말처럼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것.

이런 지지고 볶는 일상은 쏙 뺀 채 일 주일에 하루 정도 연애하는 기분으로 만나

마음에 드는 인물과 함께 살아가는 시늉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언제라도 결혼하고 싶겠다.

마음에 안 들면 '우리 헤어졌어요' 하면 그만이니까.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혹여라도 결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심어 줘서 

모든 결혼이 다 그런 식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너무 가볍게 여겨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된다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살짝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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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그친 뒤라 그런지 공기가 상큼한데 마음은 그 공기의 파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속속 발표되는 선거 결과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중이다.

한나라당은 어쨌든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민주당과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꼭 됐으면 하고 바랐던 노회찬 씨가 탈락한 것을 보니 내가 다 미안해진다.

하지만, 어쨌든 엎질러진 물이고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바라는 것은 하나,

국민이 선택해준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겨서 독주는 하지 말라는 것.

기댈 데가 없으니 박근혜계를 믿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부디, 옳은 결정을 위해서 싸워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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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투표는 시작되었다.

심심할 만하면 들어오는 사람들.

잔뜩 위엄을 갖추고 공무원인 것을 자랑하려던 사람들은 맥이 빠질 정도다.

비는 계속 내리고 사람들은 잊을 만하면 한 명씩 들어와준다.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의 도입부분이다.

비 소식이 있다 했다.

햇볕이 쨍쨍하면,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나들잇길에 나설 게 뻔한 이치라

한나라당이 우세할 거라는 예측들이 있다.

독주를 막아볼 심산에, 오늘 때아닌 선거 운동을 했다.

투표를 꼭 하라고. 놀러갈 때 가더라도 제발 한 표 찍고 가라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주권을 올바로 행사하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외치고 나니 기운이 쪽 빠진다.

내일 이맘때 쯤, 결과가 나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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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반칠환

 

 공군3579부대 기동타격대 반 방위병, 무사히 기지 방어

야간 근무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어, 풍년 전기밥솥

열어 김치에 밤 한 술 혼자 뜨는데, TV채널 돌리니 '오월

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아-'. 이족으로 돌려도, 저

쪽으로 돌려도,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에이 재

미없어.' 'ON/OFF 스위치를 픽 눌러 끄는데,

'우리 막내둥이 오셨나?'

삽짝문 열고 칠순 노모가 들어오시네.

'마실 다녀오셔유?'

'아니다. 아침에 테리비를 보니까 오늘이 어린이날 아니냐.

우리 막내 뭘 슨물할까 하다가 막걸리 한 병 받아노는 질이

다.'

'야? 막거리를?'

어머니, 빙긋 웃으며 빈 스뎅 그릇을 내미신다.

 

***

어른들에게는 (그나마 자식을 가진 어른들에게만 해당하는) '어버이날'이  있지만,

그건 순전히 부모된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무거운 날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은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내밀고

잠깐 그 은혜에 눈시울 붉히는 척 하다가 은근슬쩍 넘어가는 날이다.

반면에, 애들은 참 좋겠다.

어린이날이라는 게 있어서 참 좋겠다.

어릴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넘어갔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아이들만이 갖는 '어린이날'이 부럽다.

앞뒤 분간 안 하고 남들이 받는 만큼 뭔가를 해달라고 조를 수도 있고,

모르는 누군가도 돌아보는 순간 어린이이기만 하다면 메가톤급 웃음을 기꺼이 날려주는,

온전히 내 것이 될 것 같은 가슴 벅찬 날.

 

그래도, 시인처럼 여전히 어린이로 취급되는 이런 경우도 종종 있으니

어른이 된 것도 그리 나쁘지 않구나.

아니지. 아직도 나를 어린애로 봐줄  어른이 살아계셔서 행복하다.

올 어린이날에는 엄마한테 달려가 나도 선물 하나 달라고 졸라야겠다.

엄마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이 번지는 걸 보는 게 내게 선물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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