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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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이국에서

◎ 지은이 : 이승우

◎ 펴낸곳 : 은행나무

◎ 2022년 9월 29일 1판 1쇄, 355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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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저 반가운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이승우다. 서점에서 눈으로, 손으로 만나야 반가움이 솟아나는 걸 제대로 느낄 텐데 요즘은 서점 나들이를 통 하지 않으니 아쉬운 대로 화면에서 눈으로만 아는 척을 하고 소근거리는 게 끝이다.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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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잔뜩 웅크리고 서 있는 저 시커먼 형체들은 눈을 감은 채 감시하고 있는 괴물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가둬둔 높은 벽처럼 보이기도 하며, 책속에 등장하는 체리나무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양복 차림의 두 남자, 그들을 둘러싼 안개와 같은 형상은 왠지 모르게 밀림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사실 표지에 깊은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닌데 <이국에서>라는 제목이 <이승에서>로 읽혀 한참을 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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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는 그가 살아온 인구 300만의 광역시보다 면적이 세 배쯤 크고 인구는 두 배쯤 적은 도시국가다. 공식명칭은 보보민주공화국. 유럽 대륙의 여러 큰 나라들이 이 땅을 오랫동안 지배해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립국이 되었지만 그 후로도 내전이 끊이지 않았고 최근까지 쿠데타를 통한 권력 주체의 변동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나라이다.' (8쪽) 이런 나라에서 최소한 6개월, 시장의 계산대로라면 5개월 19일 이상 살아야 하는 황선호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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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시장의 뇌물 스캔들이 불거지자 책임자의 완벽한 실종이라는 시나리오 아래 담당자 한 명이 모든 비리와 부정을 뒤집어 쓰고 관련 파일, 비밀, 진실을 안은 채 선거에서 승리할 때까지 잠적하기로 했고 가족이 아무도 없고, 시장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발탁된 이가 바로 황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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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서였지만 실제로 그는 '그 사람' (엄마가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이)가 마지막으로 머문 공간으로 추측되는 곳이라서 고른 것이다.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간 사람이 왜 거기에서 연락이 끊긴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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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없는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잊혀졌고 비리의 주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술독에 빠졌고 '계획을 세우지 않은 사람은 계획에 없는 일을 하며 산다.' (46쪽)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언급했던 '친구들의 집'을 찾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기로 한다. 하지만 보보의 권력을 잡은 군부세력은 외부인을 전부 몰아내려고 혈안이었고 황선호 역시 그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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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은 그런 외지인들에게 이들이 새롭게 붙인 이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외지인이나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있는데도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사람, 소속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으려는 의도입니다. '외부인'은,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여 자기들과 구별하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규정된 이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은 손님이니까, 손님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외부인, 소속이 없는, 바깥에 있는 사람은 존중과 배려의 대상에서 배제해도 되는 사람,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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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친구는 있는 법이다. 오래 전 그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는 펍의 주인 필의 도움으로 '친구들의 집' 과 관련된 쟝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그 남자 김경호의 행적을 알게 된다. 그 남자 김경호가 묻힌 보보체리 나무의 열매, 체리를 입에 넣는 순간 '그 향기에 휩싸인 말들이 혈관을 타고 그의 몸속 구석구석을 유영했다.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크고 웅웅거리고 찌릿했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해라. 남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 황선호는 그 순간 새로 태어난 것처럼 느꼈다. '(305쪽) 이 부분은 마치 성당에서 하는 영성체를 떠올리게 했다. 김경호의 피와 살을 아들인 선호가 먹는 신성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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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호가 급박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답조차 하지 않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나자 그를 찾아온다. 그가 돌아와 해명을 하고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재선에 성공한 시장을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뻔뻔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때때로 믿음은 우매함과 구분되지 않는다. 혹은 믿음이 분별의 눈을 가려 우매함에 .' (31쪽) 빠졌던 그였지만 이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기에 남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세계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자국 이기주의를 선동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불량배 같은 인물들이 지도자가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잘 살아야 되고, 자기들이 잘 살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부끄러운 주장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공공연하게 합니다. 이 나라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보보의 권력을 손안에 넣은 집단도 수준 미달이고 파렴치합니다.' (309쪽)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내부인의 외부와 외부인의 내부

사이를 자주 오갔다.

어디에나 있는 다른 나라, 그리고 한 사람 안의 외부인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354쪽

뉴스 보기가 싫은 시기다. 봐야 하지만 보기 싫어서 애써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라디오를 들어도 음악만 찾아다니는 형국이다. 그럴 때였는데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도망치듯 다른 나라로 간 이야기를 내가 읽는구나 싶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그저 지나가는 자막에 불과했다. 이것은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행이고, 자신을 찾는 여행이며,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 나누며 사는 삶이 가치있다는 것을,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열띤 웅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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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이국이라 했을까. 타국이나 이국은 같은 개념이지만 타국이라 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닌 다른 나라는 맞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알고 있는 나라, 이국은 신비로움을 기본 골격으로 얹은 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다른 나라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것은 황선호가 나중에 '친구들의 집'에서 떠나 돌아가길 거부하는 데서도 연결이 된다. 작가가 말했듯이 어디에나 있는 다른 나라. 보보라는 디스토피아 속 유토피아가 바로 '친구들의 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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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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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지은이 : 켄 키지

◎ 옮긴이 : 정회성

◎ 펴낸곳 : 민음사

◎ 2021년 9월 30일 1판 25쇄, 525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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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선정 현대 100대 영문 소설, ≪뉴스위크≫선정 100대 명저라는데 일단 표지 사진부터 반갑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잭 니콜슨.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게 될 경우 문장 위로 배우들 얼굴이 둥둥 떠다녀서 방해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1977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아직 안 본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읽어가며 내가 감독이라면 잭 니콜슨에게 어떤 배역을 주었을까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고. (어차피 주연급 배우니까 고를 건 별로 없어도 화자인 추장일 것인가, 선동가 맥머피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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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때부터 병원에 있는 가장 오래된 환자.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거구지만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무기력한 상태로, 귀머거리와 벙어리 행세에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빗자루 추장'이라 불리는 이가 이 책의 화자다. 그가 공포심에 타 버릴 것 같아서 입을 연다고 밝히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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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비교적 젊은 급성환자와, 평생 병원을 벗어나지 못할 만성환자 그룹으로 나뉘는 이 병원을 움직이는 건 랫치드 수간호사인데, 얼굴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교묘히 환자와 의사까지도 조종하고,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을 어기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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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칠 잘 된 기계처럼 돌아가던 정신병원에 새로운 환자 랜들 패트릭 맥머피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카드 게임과 내기를 좋아하고 큰 목소리에 당당한 걸음걸이를 가진 붉은 머리 남자. 그는 작업 농장에서 싸움을 하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갇혔으나 땡볕에 고생하느니 오렌지주스까지 주는 정신병원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고 놀러온 것처럼 행동한다. 맥머피는 웃음소리도 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규칙에 따라 그저 그림자처럼 지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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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이제 나는 안다. 안개가 자욱할수록 그 속에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맥머피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안전하게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우리를 안개 밖으로, 발각되기 쉬운 탁 트인 바깥으로 끄집어내려고 계속 애를 쓴다.'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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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돌출행동을 일삼던 맥머피는 수간호사가 싸인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이곳에 갇혀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는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도 그는 거침없이 행동했고 수간호사가 정해놓은 규칙들을 이것저것 바꾸며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낚시를 가기도 해서 , 추장 자신도 '맥머피는 구리선과 크리스털로 미국을 네트워크화하고 있는 '콤바인'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거인'. (421쪽) 으로 생각했으나 수간호사가 심어놓은 의심이 모두에게 퍼져 그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인물로 낙인찍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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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맥머피가 다른 환자를 도우려다 추장과 함께 전기충격을 받은 뒤 점점 더 환자들 사이에서 영웅시되자, 맥머피가 의식을 되찾을 때마다 수간호사가 전기충격요법을 쓸 것을 예상한 환자들이 그를 탈출시키려고 하지만 빌리와 약속한 대로 여자를 병동으로 불러들여 만나게 해준 뒤 가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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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두 여자가 가져온 술과 약방에 있던 감기약에 취해 잠이 드는 바람에 맥머피는 탈출하려던 기회를 놓쳤고, 여자와 함께 자다가 들킨 빌리는 엄마와 친구지간인 수간호사가 엄마에게 말할 것을 염려하여 결국 자살하고 만다. 맥머피는 그를 비난하는 수간호사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라 결국 뇌전두엽절제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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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에 명찰을 붙인 채 이십 년이든 삼십 년이든 누워 수간호사의 체제에 도전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견본'(510쪽)이 되는 꼴은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추장은 그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버린 뒤 무거운 제어반을 들어 창을 깨고 바깥 세상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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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에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어떤 습관에 빠져 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병에 걸린 셈이지. 습관 자체가 원인이 되어 병에 걸린 것은 아니야.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사회의 집게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수백만 명이 입을 모아 '부끄러운 줄 알아. 수치. 수치를 알라고.'하고 외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병에 걸린거야. 사회는 조금이라도 별난 인간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취급해 버리거든.' (4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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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잣대는 누가 만드는 것이며, 소수와 다수라는 이분법으로 사람을 갈라 놓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어릴 때 나는 누군가 정해놓은 '비정상'의 범위 안에 들까봐 엄청 불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도 저 언덕 위 하얀 병원이란 곳에 갇혀 있을까봐 두려웠다. 모든 자유를 잃고 통제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그 삶이 겪어보지도 않았건만 싫고 끔찍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떤 상태를 살아있다고 할 수 있나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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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원에 있는 모든 환자들은 내가 두려워했던 그 삶 속에 있는 인물들이다.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이는 건 물론이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만 이빨을 닦을 수 있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주말에는 침실을 잠궈서 낮잠을 못자게 하고, 노인들은 안 들린다는 이유로 음악 볼륨을 최대치로 틀어놓아 괴롭힌다. 작은 보상을 주어 서로를 감시하게 하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약을 투여해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 제대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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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머피는 그 불 속에 뛰어든 한 마리 거대한 나방이다. 날개를 휘저어 산소를 공급하고 그들이 생각이라는 걸 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자발적으로 병원을 나가는 이들이 생겼으며 수간호사의 위치도 예전같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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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 팅글, 팅글, 떨리는 발가락이여. 그녀는 훌륭한 고기잡이, 암탉을 잡아 우리에 넣고…… 철사를 둘러치고 자물쇠를 잠근다. 세 마리 기러기가 무리 지어 …… 한 마리는 동쪽으로 날아가고, 또 한 마리는 서쪽으로 날아가고, 나머지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다……. OUT 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기러기가 재빨리 내려와 너를 낚아채 밖으로 데려간다.'(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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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장이 할머니와 노래를 부르며 했던 놀이라고 한다.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니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뻐꾸기 둥지에서 낚아채 추장인 나를 정신병원 밖으로 데려간 기러기는 결국 맥머피인 것이다. 인디언 추장이었던 아버지가 정부에게 땅을 빼앗기고 결국 죽음에 이른 뒤 목소리를 내는 법도 잃어버리고 살아온 추장이 쫓겨난 인디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가겠다고 했으니, 그도 역시 또다른 기러기가 되어 뻐꾸기들에게 자유를 선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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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텀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석기용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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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책제목 : 팩토텀

◎ 지은이 : 찰스 부코우스키

◎ 옮긴이 : 석기용

◎ 펴낸곳 : 문학동네

◎ 1판 6쇄 2020년 5월 11일

◎ 내 마음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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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 후배 작가들이 가장 많이 모방한 작가로 언급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열혈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책날개, 작가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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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명 '부코우스키 삼부작' 중에 이 작품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니 엄청 기대가 됐다. 이 작가와는 첫 만남인데 가장 좋다는 작품과 조우하는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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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독 속에서 자란 인간이다. 내게 고독이 없다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독이 없는 하루하루는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고독을 전혀 떠벌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에 의존할 뿐이다. 방 안의 어둠은 내게는 햇살과도 같았다.'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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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본 다음에 이 사람은 어쩌면 이 끔찍한 현실에서 어떻게든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애쓰는 불행한 사람이겠구나. 그를 응원하는 마음을 갖고 읽어내려갔다.

술, 여자, 그리고 잡일.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를 묘사하는 데 필요한 세 단어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315쪽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이게 전부다. 일을 대충 하고 술을 왕창 마시고 여자와 뒹굴고 그곳이 지겨워지면 다른 곳으로 떠나서 또 똑같은 일의 반복. 어떤 이야기라는 게 없다. 반복되는 날들을 기록해놓은 일기와 같다. 글을 쓰기 원하지만 그걸 열심히 하는 법도 없고, 하루종일 술에 취해 어렵게 구한 일조차 제대로 안 하고 농땡이치기 일쑤라, 며칠 못 가 잘리는 건 당연한 일이 되고, 입게 담기 민망한 섹스 이야기도 거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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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천(그의 전작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이 궁금하다고) 으로 읽게 되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몰려오는 생각은 '당황스러움' '어이 없음' '이게 뭐지?' '이걸 문학작품으로 인정해줘야 해?' 등등. 결코 좋은 반응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만 잔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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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다. 희망. 사람을 낙담시키는 것은 바로 희망의 결핍이다. 나는 뉴올리언스 시절을 기억했다. 그 무렵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얻기 위해 일주일 내내 하루에 오 센트짜리 막대사탕 두 개만 빨며 지낸 적이 있엇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았다. 그저 방해할 뿐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胃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은 동전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0.5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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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조차 그 남자의 허세로밖에 안 보인다. 이 남자가 라디오를 켜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마저도 허세도 보인다. 물론 취향이지만 이 남자의 삶과 정말 안 어울리는 일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편견이라는 쓴소리를 듣겠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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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텀 Factotum 잡역부, 막일꾼을 이르는 말이란다. 헨리의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잡역부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주인공 헨리에게는 하루종일 술을 마시고 몸을 누일 곳이 있고, 마음에 드는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게 문제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투영된 작품이라고 하니 작가도 영 마땅치않아 보인다. '아니, 모든 사람이 다 열심히 살아야 해?'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런 삶도 인정해주자니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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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묘비에 'Don't Try'라고 적혀있다는데 그 말을 작가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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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제목 : 도련님

◎ 지은이 : 나쓰메 소세키

◎ 옮긴이 : 오유리

◎ 펴낸곳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10일 제2판 1쇄, 264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 수록작품 : <도련님>,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 <런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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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독서모임 후보작 중 하나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음』밖에 접해보지 않았으니 후보에서 떨어졌지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읽어보기로 했다.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긴 하지만 어젯밤 10시가 넘은 시각부터 시작해서 12시가 되기 전에 다 읽을 만큼 가독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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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부모님께 물려받은 천성이 워낙 막무가내인지라 손해만 보고 살았다.'(9쪽) 라고 했지만 이 도련님은 참으로 대책이 없다. 손해를 보고 살았다가 아니라 손해를 자청했다라고 해야 한다. 남들이 부추기면 안 될 걸 알면서도 하는 건 물론이고, 화가 나면 물불 못 가리고 덤벼들고, 씀씀이도 헤프고 노력이라는 걸 할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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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순간 한마디 털어놓자면 내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울컥하긴 하지만 그걸 해결할 지혜가 모자란다. 이런 때에는 어떡해야 좋을지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결코 물러설 수는 없다. 이대로 가만 있으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도쿄 토박이는 패기가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죽기보다 싫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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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물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시골학교 수학선생으로 가게 되었으나 슬퍼하는 건 집에서 일을 봐주던 기요라는 할머니뿐이다. 기요는 내놓은 자식인 '나'를 훌륭한 인물이 될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으며 좋은 집을 사서 꼭 자신도 함께 살게 해달라고 한다. 손바닥만한 시골 학교인지라 '나'가 하는 일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늘 학생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고 같은 선생들과도 친해지지 못하니 때려치울 생각만 가득하다. 그러다 교감인 빨간셔츠의 교활한 짓을 보고는 의기투합한 '거센바람'과 함께 실컷 때려준 뒤 도쿄로 돌아온다.그후 철도회사의 기수로 취직해 기요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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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나쁜 길로 들어서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나쁜 것에 물들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믿고들 있는 것 같다. 가끔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 부잣집 도련님'라면서 비꼬곤 한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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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으로 일할 때 월급 40엔도 너무 적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은 기수가 되어 월급 25엔에 다달이 방값을 6엔으로 지불하면서 군말 없이 살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시기와 배신에서 벗어나 늘 원하던 것처럼 솔직하고 순수하게 살 기회를 얻은 것도 큰 몫을 하겠지만 평생 자신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믿어준 기요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가 다니던 절에 묻어달라면서 도련님 오시길 기다린다니 도련님은 그녀가 계속 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성실하게 잘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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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

친구 츠다의 하숙집에 놀러 온 주인공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할멈이 미신에 심취해서 골치 아프다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개짖는 소리가 다르니 변고가 생길 거라고 했다면서 아내될 사람이 감기에 걸리니 자신의 말이 맞는다며 같은 소리를 해대니 미칠 노릇이라고 한다. 츠다에게 인플루엔자에 걸렸다가 죽은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주인공은 비 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뭔가 음산한 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 결국 이튿날 허겁지겁 약혼녀에게 달려간 그는 아무 일도 없는 걸 보고는 멋쩍어서 돌아온다. (*고토: 13줄짜리 일본 현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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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상당히 독특해서 세 작품 중 가장 즐겁게 읽었다. 긴장을 한껏 올렸다가 해소시키는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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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

런던탑에 구경을 간 주인공이 런던탑에서 있었던 역사를 보는 듯한 환각을 일으킨다는 짧은 이야기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같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끼워넣어 사실과는 동떨어진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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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영국 유학시절 경험이 녹아있을 <런던탑>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영국 역사를 끼워넣으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삐그덕거린다. 영국 역사에 정통하지 않으면 쉽게 동화될 수 없달까. 그렇다고 일일이 주석을 달아놓기도 애매했을 터. 그저 작가만 만족하는 그날의 일기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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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었지만 발간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시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시 나쓰메 소세키의 최고작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솔직히 이것도 읽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 그때의 감흥으로는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이었지만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언제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 이라는 수식어를 단다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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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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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종이동물원

◎ 지은이 : 켄 리우

◎ 옮긴이 : 장성주

◎ 펴낸곳 : 황금가지

◎ 2018년 11월 29일 1판 1쇄, 56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 수록작품 : <종이 동물원>, <천생연분>, <즐거운 사냥을 하길>, <상태 변화>, <파자점술사>,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시뮬라크럼>, <레귤러>,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인지그림책>, <파(波)>, <모노노아와레>,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 (略史)>,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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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한 TV프로그램 <동서남북>을 보는 중이었다. 거기 출연한 누군가가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종이 동물원』을 추천한다는 얘길 듣고 퍼뜩 생각났다. 내 책장에도 이 책이 있다는 것이. 책갈피가 200쪽 부근에 끼워져 있는 걸 보니 또 이걸 읽다가 다른 책에 매달렸구나. 단편집은 이래서 문제야.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가져왔다. 단편은 이야기가 이어지질 않으니 놔뒀다가 읽어도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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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늦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텔레비전 속 그 남자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보게, 당신 아니었으면 이 책을 다시 볼 생각을 못 했겠어. 땡큘세.' 그리고 켄 리우에게도. '좋은 작품을 써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상상력을 1/10만 제게 기부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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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받았을 정도로 켄 리우의 작품들은 대단했다. 물론 개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몇 편 있긴 하지만(그래서 별 반 개는 빼고). <종이 동물원>, <즐거운 사냥을 하길>, <상태변화>, <파자점술사>, <모노노아와레>,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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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혼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깃털, 양초, 각얼음, 소금, 담배 한 갑 등- 태어나 그걸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그린 <상태 변화>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각얼음 1개가 영혼인 리나는 그걸 지키려 보온병에 각얼음을 들고 다니고 어딜 가도 냉장고를 찾아야만 한다. 그게 녹아버리면 자신이 사라지니까.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 얼음이 녹아버리는 것도 각오한 그녀가 맞이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저 상태변화일 뿐. 자신이 가둬둔 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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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는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답게(?) 중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자부심, 그리고 동시에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느껴졌다. 대체로 모든 작품은 중국 역사가 배경이 되는데 과거의 역사를 가져왔어도 거기에 미래가 파고들어 (요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과거와 미래의 결합이 아주 찰지다.) 독특한 SF 작품이 된다. 예를 들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같은 경우는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핑팡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 일본제국 육군 제731부대가 저지른 만행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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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동안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직시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행위는 전쟁 기록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정형화된 행태로 자리 잡아서, 이른바 '위안부'문제, 난징 대학살, 한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5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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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을 바로 잡고자 '뵘기리노 입자'라는 걸 써서 시간여행을 하고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목격된 그 순간은 보고 온 순간 사라져버리고 본 사람 이외에는 어떤 기록도 남길 수 없다는 헛점이 있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문 일본과 이익 때문에 함께 입을 다문 중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만이 남는다. 이야기는 다큐 형식으로 되어 있어 처음엔 좀 당황스럽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실제로 남아 있는 문건들도 차용했기 때문에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 보는 느낌을 준다. 함께 분노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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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몸을 한다거나, 안구에 카메라를 장착해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한다거나, AI에 의지하는 삶을 보여주거나, 영생을 선택할 수 있다거나, 지구 멸망 후 살 곳을 찾아 다른 별로 떠나는 일 들만 놓고 보자면 그리 신선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장치를 가지고 구현해낸 이야기들은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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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은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한 습관에 '이야기 짓기의 오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의 일면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속에 있는 은유를 좀 더 선명하게 구현할 뿐이다.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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