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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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종이동물원

◎ 지은이 : 켄 리우

◎ 옮긴이 : 장성주

◎ 펴낸곳 : 황금가지

◎ 2018년 11월 29일 1판 1쇄, 56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 수록작품 : <종이 동물원>, <천생연분>, <즐거운 사냥을 하길>, <상태 변화>, <파자점술사>,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시뮬라크럼>, <레귤러>,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인지그림책>, <파(波)>, <모노노아와레>,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 (略史)>,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새로 시작한 TV프로그램 <동서남북>을 보는 중이었다. 거기 출연한 누군가가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종이 동물원』을 추천한다는 얘길 듣고 퍼뜩 생각났다. 내 책장에도 이 책이 있다는 것이. 책갈피가 200쪽 부근에 끼워져 있는 걸 보니 또 이걸 읽다가 다른 책에 매달렸구나. 단편집은 이래서 문제야.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가져왔다. 단편은 이야기가 이어지질 않으니 놔뒀다가 읽어도 그만인 것이다.

어젯밤 늦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텔레비전 속 그 남자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보게, 당신 아니었으면 이 책을 다시 볼 생각을 못 했겠어. 땡큘세.' 그리고 켄 리우에게도. '좋은 작품을 써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상상력을 1/10만 제게 기부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받았을 정도로 켄 리우의 작품들은 대단했다. 물론 개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몇 편 있긴 하지만(그래서 별 반 개는 빼고). <종이 동물원>, <즐거운 사냥을 하길>, <상태변화>, <파자점술사>, <모노노아와레>,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영혼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깃털, 양초, 각얼음, 소금, 담배 한 갑 등- 태어나 그걸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그린 <상태 변화>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각얼음 1개가 영혼인 리나는 그걸 지키려 보온병에 각얼음을 들고 다니고 어딜 가도 냉장고를 찾아야만 한다. 그게 녹아버리면 자신이 사라지니까.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 얼음이 녹아버리는 것도 각오한 그녀가 맞이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저 상태변화일 뿐. 자신이 가둬둔 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켄 리우는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답게(?) 중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자부심, 그리고 동시에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느껴졌다. 대체로 모든 작품은 중국 역사가 배경이 되는데 과거의 역사를 가져왔어도 거기에 미래가 파고들어 (요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과거와 미래의 결합이 아주 찰지다.) 독특한 SF 작품이 된다. 예를 들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같은 경우는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핑팡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 일본제국 육군 제731부대가 저지른 만행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2차대전 동안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직시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행위는 전쟁 기록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정형화된 행태로 자리 잡아서, 이른바 '위안부'문제, 난징 대학살, 한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522쪽)

그런 것을 바로 잡고자 '뵘기리노 입자'라는 걸 써서 시간여행을 하고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목격된 그 순간은 보고 온 순간 사라져버리고 본 사람 이외에는 어떤 기록도 남길 수 없다는 헛점이 있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문 일본과 이익 때문에 함께 입을 다문 중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만이 남는다. 이야기는 다큐 형식으로 되어 있어 처음엔 좀 당황스럽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실제로 남아 있는 문건들도 차용했기 때문에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 보는 느낌을 준다. 함께 분노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기계의 몸을 한다거나, 안구에 카메라를 장착해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한다거나, AI에 의지하는 삶을 보여주거나, 영생을 선택할 수 있다거나, 지구 멸망 후 살 곳을 찾아 다른 별로 떠나는 일 들만 놓고 보자면 그리 신선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장치를 가지고 구현해낸 이야기들은 독특하다.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은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한 습관에 '이야기 짓기의 오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의 일면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속에 있는 은유를 좀 더 선명하게 구현할 뿐이다.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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