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인 하나가
자신의 행적을 지우려 눈밟은 길을 지워가듯
그렇게 길을 지워 내가 있는지 나도 모르게
산골 어딘가 틀어박혀 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설령, 단 하루도 못 있고 사람들이 그리워 문명이 그리워
미쳐버릴 지라도...
이 시는 가끔 가을이라는 계절에 시달릴 때쯤
내 눈앞에 나타나 나를 흔들고 가는 시입니다.
우리가 갔던 산음이 생각납니다.
여전히 산음은 조용하고, 공기 맑고 낙엽송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바람에 꽃비처럼 떨어지던 황금빛 낙엽송 이파리들.
돌아와 그것이 추억이 되면 훨씬 아름다운 법인지
비석치기 하면서 깔깔대던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던
그 녀석들 지금 보이는 듯 합니다.
굴참나무.
그 숲에도 무시무시한 고문위원이 있었던지
몸에 온통 굵게 굵게 채찍질 모습이 그대로 남은 나무
그 나무로 너와집을 만든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워낙 뒷전에서 딴짓을 하느라 잘은 못 들었지만요.
우리는 일생 무언가에서 연결 고리를 찾느라 시간을 보냅니다.
너와 나의 고향을 찾고, 학교를 찾고, 동네를 찾고
취미를 찾고, 심지어 머리 길이, 좋아하는 색깔, 운동,
음악, 미술 등등..
어떻게든 연결을 지어 나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달아야
안심을 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지금 그 짓을 했습니다.
너와집, 산음, 굴참나무..
또다시 지금은
나와 가을을 같은 방향에서 바라보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