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래
-임영조
옥상에 널린 빨래가
다냥한 햇볕 받아 눈이 부시다.
오랜만에 사람을 벗어버리고
찌든 때를 씻어내고 냄새도 털고
날아갈 듯 가볍게 펄럭거린다
이제는 각자 옷 그만 두고
새나 되어 훨훨 날아가겠다는 듯
온 하루 빨랫줄을 잡고 흔든다
바람이 부추기면 신바람이 나는지
쩔쩔매는 바지랑대 혼자 바쁘다
주인의 흉허물을 싸고돌던 한통속
백주에 속속들이 드러나면 저렇게
서로 다른 색깔로 아우성칠까
자중지란 난파된 갑판에 서서
수기를 흔드는 보트 피플들 같다
다시 보면 가을 운동회 날
하늘에 나부끼던 만국기 같은
저 옥상에 넌 빨래를 보면
아직 덜 마른 내 마음이 무겁다
사람도 때를 씻고 무게를 덜면
저렇듯 깨끗하고 가벼울 수 있다면
제멋대로 부시게 펄럭일 수 있다면
젖은 빨래처럼 몸 무거운 날
나도 눅눅한 마음 꼭 짜 널고 싶다
한 점 얼룩 없는 백기로 펄럭
내 멋대로 세상에 나부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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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덕분에 호흡이 부자유스러운 걸 느꼈습니다.
이쯤 되면 먼지 켜켜이 앉은 가습기를
장롱 위에서 꺼내야 하지만
지난 겨울 그걸 틀었다가
벽지에 곰팡이가 생긴 뒤로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 늦은 저녁에 드드드디리리 거리며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감기는 온도보다 습기 때문이라는데 빨래로라도 습도를 맞춰야지요
사실 내일 아침이면 우리 어머님한테 한 소리 들을 겁니다.
빨래는 햇볕을 받으며 말려야 한다고 말이죠.
저도 사실은 햇볕에 보송보송하게 마른 빨래의 감촉이 좋습니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마당이 제법 넓어서
커다란 다라(이건 왜 적당한 표현이 없는지)에
펌프질을 해가며 시원스레 빨래를 하고
꼭 짜지 않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가지들을 척척 걸쳐놓고
바지랑대로 대충 중심을 잡아 놓기만 해놓아도
요즘 같은 이런 볕이면 뚝딱 마르는데 그 까칠하고 바삭바삭한 느낌이
햇볕을 옷 안에 고스란히 담아둔 것처럼 따스해서
얼른 그 옷으로 바꾸어 입기를 소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너무도 조용한 시각인지라 세탁기 소리가 참으로 요란합니다.
지금 마지막 코스를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뻥 뚫린 코를 위해 약간의 섬유 린스도 넣었습니다.
‘화려한 로즈향’이랍니다. 무얼 넣어도 햇볕 냄새만은 못하겠지만
아쉬운 대로 꽃향기 속에서 잠이 드는 기분도 그리 나쁘진 않겠지요?
다 되었다고 노래를 합니다그려.
기분에 따라 수시로 음악이 바뀌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슈베르트의 숭어입니다. '이렇게 맑은 물에 숭어가 잡힐까?'
더 떠들기 전에 끄고 널어야겠습니다.
참, 이 빨래들은 주인의 몸을 떠나 세탁기 안을 빙빙 도는게
여행같은 느낌이 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