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독
-이문재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단하다
내가 고단해서 그리 보일 테지만 길도 분명 한숨을 쉬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통해 집으로 갔으랴
무거운 발걸음으로 인해 길은 점점 더 땅속으로 파고 든다
그리하여 그리도 자주 아스팔트 보강 공사를 하는 거겠지
어제 못 잔 탓인지 집으로 오는 길이 유난히 힘들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마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오는 약 100미터가 그리 길 수 없었다
길이 구부러지며 울퉁불퉁해지며 내게 그러더군
"야, 임마..몸무게 줄여"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이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하기야, 늦은 저녁을 위에 넣고 있었더니 무거운 게지
허둥지둥 소화를 시키려고 뱃속이 갑자기 꾸루룩 거리기 시작한다
길이야 뭐라고 하건 말건 조용히 있을 일이지.
이 놈들은 주인인 나보다 길이 무서운가 보다.
마지막 발걸음 끝에 길에게 나는
내일은 길너머를 그리워하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길 위에서만 그리움을 갖고 있겠노라고 다짐했다
그걸 위안으로 들은 걸까
길은 내게 집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지금 난 무사히 집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