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는 황량했다.

나무들이 모두 타버린 자리에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과 아직 푸르게 돋아나지 못한 풀들 사이

누렇게 말라버린 지난 해 풀들은  거칠게 부는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화마로 인한 손실을 다 메우지 못한 탓에 군데군데 공사현장이 되어버려

사람들 발길이 많이 닿는데도 불구하고 썰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수관음상만 큰 키에 자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계실 뿐 그 넓은 절 안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한 구석 따뜻한 온기를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었던 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국적도 불문하고, 종교도 불문한 여러 사람들의 바람이

한데 뭉쳐 훈훈한 온기를 뿜어내는 기와불사하는 장소였다.

저 기와들이 낙산사 지붕을 잇는 데 쓰이면 따뜻함도 함께 올라가

그게 보호색이 되어 또다른 나쁜 일이 생길 지라도 거뜬히 견뎌낼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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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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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엔 뿌리가 있어야 돼. 열망은 너무 매혹적이지만 순수하기도 해서 부패하기 쉽거든.

뿌리가 있는 열망은 열정으로 연결되지만 뿌리가 없는 열망은 부초처럼 떠다니다 썩어버리고 말아.

네 열망은 어떤 건지 한 번 생각해 봐. "

가수가 꿈인 재은에게 기획사 대표가 던진 말이다.

 

잘난 얼굴로 길거리에서 캐스팅 된 후 가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착각했던 민기와

노래부르는 걸 열망하면서도 엄마처럼 될까봐 가수 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했던 연호,

공개입양아인 게 아픔으로 다가온 준희, 비록 꼴찌를 도맡아 놓고 하지만 쾌활하고 배짱 좋은 현중이가

노래를 매개로 빙글빙글 맞물려 돌아가면서 고민과 열정, 조금씩 내비치는 희망을 보여준다.

준희가 오랫동안 자신을 짓누른 문제를 내려놓고 나서 갑자기 꿈이 없음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지금부터 생각하면 돼'는 뭐가 될지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하던 친구가 서울대라는 이유 만으로 학교에게, 부모님에게 떠밀려

원하지 않은 과에 합격을 한 후 결국 다시 재수의 길에 들어섰다는 얘기를 듣고 어른들이 참 미웠는데

그렇게 미워하던 어른이 되고 보니 나도 어른들처럼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뇌의 힘도 있을 테지만,  자식을 내 소유물로 여기고 있음이다.

나도 어릴 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쳤으면서 왜 아이들의 인생을 그애들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순을 보여주는지 새삼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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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구'에서의 유덕화는 얼마나 멋지던가.

그 당시 열혈팬이었던 나는 유덕화가 주인공으로 나온대서 참으로 반가웠다.

가벼운 코미디 물에서의 유덕화가 마음에 안 들었던 지라

묵직한 이 작품에서 그의 활약을 기대했던 것인데,

삼국지에서 제갈량 다음으로 좋아했던 조자룡으로 분했다 해서 더 기뻤는데,

이 영화는 오로지 조자룡을 지나치게 영웅으로 그리려다보니 다른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나 떨어져

제갈량도 장비도 관우도 책 속 이미지와 너무 다른 게 실망스러웠다.

거기다 중간중간 흐르는 음악은 또 어떻고!

완전히 7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는 듯하여 보는 내내 하품을 하고 허리를 비비 틀었으니

이런 영화에 돈을 댄 우리나라 제작자가 과연 누굴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아, 돈 아까운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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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메타포 3
제리 스피넬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메타포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투명인간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 무서웠어."

어느 영화에선가 또래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봐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그룹의 아이들에게

내키지 않은 일들을 해주던 등장인물이 주인공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다.

그 세계가 전부인 아이들이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그 세계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게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는

겪어보지 않아도 매일 신문에서, 방송에서 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나와 성향이 같지 않아도, 내 맘에 들지 않아도, 그저 그 그룹들이 학교를 대표하는 경우

거길 들어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홉살인 파머도 그런 아이였다.

먹다 남은 사과와 오래 된 담배꽁초, 썩은 내가 풀풀 풍기는 양말을 생일선물로 받아도,

지독하게 아픈 생일빵을 파커에게 받아야만 나이 한 살을 먹은 것으로 쳐주는

빈즈와 머토, 헨리의 그룹에 들어가 행복해진 아이.

매년 열리는 '비둘기의 날'에 사람들은 참가비를 내고 비둘기에 총질을 해대고

열 살이 되면 남자아이들이 자동적으로 자격을 부여받는 '링어'는

죽은 새를 거두거나 죽지 않은 새들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걸 할 수 있지만

파머는 링어가 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비둘기 날이 다가오는 걸 두려운 마음을 지켜본다.

어느 날 파머에게 다가온 비둘기 '니퍼'와 우정을 쌓으면서 링어가 되고 싶지 않노라고 선언을  하게 되고,

아이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을 지키느라 안간힘을 쓴다.

드디어 다가온 '비둘기의 날'에 날려보냈던 니퍼가 잡혀 온 걸 보고는

사격수의 손에서 니퍼를 구해낸다.

 

또래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걸 감수하면서 지켜낸 '니퍼'는 파머가 군중 가운데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데 필요했던 결정적인 원인제공자다.

부모님이 알려준 길대로 똑바로 가는 것은 부모님에게는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이겠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어쩌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나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이다.

만약 파머가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 싫어서 관례대로 '링어'가 되었다면

일 년에 한 번 다가오는 '비둘기의 날'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을 비둘기 목을 비틀어 죽이는 악몽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우기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면

용기를 내어 내 목소리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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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네'는 요즘 들어 내가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꼼장어구이가 전문인데, 쭈꾸미도 일품이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음식들에 열을 올린 건 아니다. 먹기 시작한 건 한 2년 전부터?

친구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입속에 한 개 두 개 밀어넣다보니

먹을 수록 고소한 데다가 오돌오돌 씹히는 맛과, 함께 나오는 부추양념장이 어우러져

상큼한 향을 내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입맛 까다로워서 다른 집 김치를 입에도 안 대고 수학여행 내내 쫄쫄 굶어

입가에 허옇게 버즘까지 피었더라는 엄마의 제언이 아니어도

나 스스로 아무 음식에나 덥석덥석 젓가락을 집어 넣지 못하는 비위 약한 중생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던 것이 이제 세월이 좀 지났다고 아줌마스러워져서

징그럽게 생긴 외모와 구울 때 삐질삐질 비어져 나오는 내장이 속을 머슥하게 만들던 건

다 잊어버리고 내가 먼저 먹으러 가자고 친구들을 끌어당길 지경이 되었으니

사람은 참 변화하기 좋아하는 종족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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