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는 황량했다.

나무들이 모두 타버린 자리에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과 아직 푸르게 돋아나지 못한 풀들 사이

누렇게 말라버린 지난 해 풀들은  거칠게 부는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화마로 인한 손실을 다 메우지 못한 탓에 군데군데 공사현장이 되어버려

사람들 발길이 많이 닿는데도 불구하고 썰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수관음상만 큰 키에 자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계실 뿐 그 넓은 절 안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한 구석 따뜻한 온기를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었던 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국적도 불문하고, 종교도 불문한 여러 사람들의 바람이

한데 뭉쳐 훈훈한 온기를 뿜어내는 기와불사하는 장소였다.

저 기와들이 낙산사 지붕을 잇는 데 쓰이면 따뜻함도 함께 올라가

그게 보호색이 되어 또다른 나쁜 일이 생길 지라도 거뜬히 견뎌낼 것을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