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고양이는 우리 집에 한 마리밖에 없었다. 우리 큰 언니.

식구들 중에 원산이 고향이신 울 아버지와 함께 딸 넷 중 유독 큰 언니만 생선을 즐겨먹었는데

본인은 정작 비린내를 못 참아 하시면서도 두 명이나 되는 사람이 좋아하는 지라

항상 밥상에 생선 반찬을 올리시던 울 엄마 덕분에 나도 구경은 실컷 하면서 자랐다.

어릴 때는 대문을 열기만 해도 맡아지는 갈치 굽는 냄새, 조기 굽는 냄새, 고등어 조림 냄새

갖가지 생선 반찬 냄새에 인상을 잔뜩 찡그리기부터 했는데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나와는 다르게 생선을 좋아하니까 울 엄마처럼 나도

생선 반찬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난 우리 엄마의 발 뒤꿈치도 따라가기 어렵다.

가끔은 억지로도 하지만 싫은 건 정말 싫어서 생선 냄새 안 맡아도 되는 멸치만 이렇게 볶아대고 있다.

이것도 생선이라고 자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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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속에 정말 생뚱맞게 들어선 7080콘서트 뭐 어쩌구..

동생네 집으로 들어설 때마다 너무 안 어울리는 건물이다 생각을 했는데

어제는 드디어 그곳에 가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건물의 1층인 한우식당에 간 것인데

깨끗해 뵈는 외관과 더불어 북적이는 인파가 우리를 이끌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정육코너에서 일단 고기를 사가지고 자리에 들어가

서비스로 나오는 (다른 곳은 서비스라는 개념보다는 기본 찬으로 나오지만) 야채들과 소스를 받은 후

마음대로 구워먹는 식이다.

얼마 전 횡성에 갔을 때 엄청난 가격(200g 에 25,000원)에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 했는데

여기는 거기보다 더 비쌌다. 100g에 15,000원 !

어른 4명에 아이들 세 명이서 먹어치운 가격은 220,000원 어치.

그 돈이면 책이 몇 권이냐..머릿속으로 그런 계산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우리의 MB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

 

일본 화우는 우리 쇠고기 값의 10배다. 소 한 마리 가격이 1억원 하는 소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도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으면 일본처럼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가 많아질 것..

 
  앞서가는 축산농가는 개방을 해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말대로만 된다면 그렇단 말이지. 어제 먹은 그 비싼 고깃값이 생산자에게 그대로 돌아간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먹겠지만, 유통과정에서 중간상만 이익을 보는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게 말처럼 쉬울까?

"빚, 사료값, 소값 3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인데 무슨 경쟁을 해서 이기라는 말이냐.."

축산농가에서 터져나오는 한숨이다.

맛은 솔직히 기가 막힌 우리 한우, 

우리가 먹는 그대로 축산농가에게 돌아간다면 비싸도 기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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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철원은 추웠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우산을  쓰다가 접었다가..그리고 잃어버렸다.

틀림없이 백마고지 어디 쯤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내려놓았다가 두고 온 것 같은데

워낙 우산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가 별로 아쉽지는 않은 걸 보면

나도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물건 챙기기가 생활화되었던 옛날 일을 잊은 거다.

그래도 사진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저녁 어스름이 내려 앉으려는 시간 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고석정에

우리들이 우르르 몰려 갔을 때 이상권 선생님이 물수제비 뜨기 시범을 보여주셨다.

다섯 번이나 통통통 튀는 돌멩이가 얼마나 날렵해뵈던지

다들 돌멩이 한 개씩 들고 따라해봤지만 물에 닿자마자 바로 잠수를 감행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웃음만 터졌지만 덕분에 아이들이 되어 다들 신나는 유희를 즐길 수 있었다.

<똥이 어디로 갔을까>를 읽을 때 느꼈던 이상권 선생님은 굉장히 쾌활하고

사람들하고 섞여 있는 일을 즐겨하실 것 같았는데,

실제로 뵌 선생님은 조용하고 수줍음도 많으시지만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하시고

은근히 재미있는 분이셨다.

정면에서 찍은 사진보다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다음에 또 뵙게 되면 이 사진을 건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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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카니스탄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 비극, 불쌍한 아이들, 나와 먼 나라 사람들, 관계 없음.

이런 것들이 전에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아미르와 하산, 연 날리기와 케밥의 향이 가세해

조금 더 푸근하고 친근해진 느낌이다.

수니파 파쉬툰인 부잣집 도련님 아미르와 시아파이자 하자라인 하인 하산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는

한 달 차이로 같은 집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아들을 낳다가 죽은 부인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 바바에게서 사랑을 받아보려고 안간힘 쓰던 아미르는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그 기회를 찾지만 형제와도 같았던 하산이 아세프의 공격을 받을 때

침묵했기 때문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짊어지게 되고, 더 나아가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쫓아낸다.

전쟁 중에 쫓기다시피 미국으로 건너와 결혼도 하고 성공한 삶을 살던 아미르에게

어린 시절 친구처럼 대해주던 아버지 친구 라힘칸의 전화 한 통화는 가슴 밑바닥에 자리한 죄의식을

털어버릴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절망 끝에 다시 날려보는 노란 연은 한가닥 희망이 되어 하늘에 떠다닌다.

 

작가의 처녀작이고, 생소한 아프가니스탄 이야기에다 무지하게 긴 소설이지만 흡인력이 강하다.

그렇다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글을 써야 합니다.

탈레반이 우리나라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세요.

아미르가 작가라는 걸 알고난 와히드의 주문이다.

광주민주항쟁이 떠오른다.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알리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제 모두 그게 무엇인지 안다.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작가는 아미르와 하산, 소랍을 통해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하기 이전부터

9.11 미국 테러사건 이후에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해

미국이 탈레반 통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시점까지를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인 파쉬툰인과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인 하자라인 사이의 인종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인종 문제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터. 다민족 국가로 바뀌어가는데도 아직도 단일민족 운운하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규모와 의미는 다르지만 중국과 티베트의 이야기가 여기서도 벌어지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은 우리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겠다.

다들 지적하는 것처럼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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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양장) 사계절 1318 문고 37
이경옥 옮김, 이광익 그림 / 사계절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항상 허겁지겁 먹는 게 버릇이 돼서 속으로 자꾸만 나를 타이르지 않으면 10분만에 밥을 다 해치우는데,

한 입이 들어가면 서너 번 씹을까 말까 하니 음식 맛을 제대로 알 리도 없거니와

어떤 때는 먹고 돌아서도 배가 헛헛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밥을 먹은 뒤에도 고소한 빵 냄새에 이끌려 먹고 싶단 생각을 하거나

새콤한 소스 냄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

기록한 걸 보니 이 책은 2006년 5월 15일에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이 새로 나왔다는 게 너무 좋아서

그야말로 허겁지겁 읽어버리고는 맛을 음미할 새도 없고, 포만감을 느낄 수도 없어 실망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천천히 잘 읽어보자 마음 먹고 빨라지려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붙들었다.

그리고 포만감과 함께 '역시 미야자와 겐지야' 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 속 두 이야기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와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는 닮았다.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가 좀더 앞선 시기에 쓰여졌으니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바탕이 됐다고 할 수도 있다.

구스코 부도리나 펜넨넨넨넨 네네무는 기근으로 부모를 여의고 여동생을 잃어버린 후

큰 일을 해내는데 구스코 부도리가 자신을 희생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펜넨넨넨넨 네네무는 갑작스럽게 재판장이 된 후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인간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실수를 하고는 그 지위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야기는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펜넨넨넨넨 네네무는 요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고,

구스코 부도리의 경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해도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떻게 보면 두 이야기는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요괴 세상의 펜넨넨넨넨 네네무가 인간세상의 구스코 부도리로 바뀌는 것.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건 재미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오히려 중학생 이후, 혹은 현실에 잡혀 사는 어른들을 위한 일종의 '귀신의 집' 쯤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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