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 일보다는 동네 일을 먼저 처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죽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아리는 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181쪽)
그리하여,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에 가난까지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빨치산이 입은 세상의 온갖 은혜까지 물려받고 싶지'. (187쪽) 던 아리지만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의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 한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16쪽)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249쪽)
결국 아버지의 유골은 수목장하려던 것을 변경하여 평생 살아온 반내골 노인정 앞에, 젊은 시절 뛰어다니던 개울에, 오거리 슈퍼 앞에, 고등학교 아이와 맞담배를 태우던 골목에, 시간을 죽이던 삼오시계방에, 술을 마시러 갔던 하동댁 가게가 있던 자리에 뿌린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며 돌아다니시라고, '아버지의 유골이 강가 높은 바위 어딘가 딱 달라붙어 황톳물 무시무시 넘실거리는 날, 그 황톳물에 실려 새 길을 열어젖히기를.'(260쪽) 바라면서.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던가. 사람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된다고 했다. 살아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죽은 뒤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인연은 아리에게 또 좋은 인연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