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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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아버지의 해방일지

◎ 지은이 : 정지아

◎ 펴낸곳 : 창비

◎ 2022년 12월 28일, 초판 20쇄, 268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이 책이 작년 서점가를 잠식했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표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두 번째는 제목 때문이다. 손석구가 나와서 좋았는데 내용이 엉망으로 흘러가더니 나중에는 짜증이 났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연상된 탓이다. 내게는 일종의 동류로 취급되어 보기도 전에 삭제된 꼴이다. 그랬는데 이웃들이 하나둘 좋다는 평이 나왔고 결정적으로 친구가 올린 리뷰가 나를 움직였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7쪽

첫 문장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와, 이게 뭐지? 아버지가 죽은 것은 특별할 게 없으나(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어 있으므로) 그 뒤를 따라 붙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가 인상적이다. 머리를 '부딪혀서'가 아니라 '박고'란다. 분명 의도했다는 얘긴데 무슨 이유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아주 영특한 출발이다.

두 장을 넘어가기도 전에 나는 환호했다. "새농민이 원제 김을 매라고 하면 풀이 암만, 허고 그때꺼정 잘도 지둘레주겄소. 새농민이 뭐라거나 말거나 풀이 나먼 난 대로 뽑아야제, 워디 농사가 문자로 지어진답디까?" (8쪽) 농업잡지 <새농민>의 정보에 따라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일갈이다. 언뜻 이기호가 떠오른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구례에서 태어났다는 작가소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례, 내가 좋아하는 곳인데!

말이 살아있는 글은 마음을 잡아챈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나는 태생적으로 주어져야 했을 뭔가를 빼앗긴 기분이 들어 억울하다. 마치 사투리를 쓸 줄 알면 사람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고, 그만큼 글을 더 잘 쓸 수 있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런 나에게 오늘 <다산, 어른의 하루 일력>이 한방 먹인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마음부터 수련해야 한다."라고. 흥.

시작은 아버지가 죽었다, 인데 죽음에 따르는 무거움 없이 무심하게 지난 날들을 회상하고 있어 박장대소를 하며 읽었다. 특히나 자신을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면,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궁금증이 더해진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나는 아리라는 이름 따위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딱 벌어진 어깨에 소도 때려잡을 듯 강건한

육체를 지닌, 그러니까 혁명전사의 딸에 참으로 걸맞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흔한 경숙이 혜숙이 같은 이름이었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당황과 모멸의 순간을, 나는 당신들의 청춘을 기념하고자 했던 부모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며 살아왔고, 살아내는 중이었다.

30쪽

이렇게 신나게 웃기던 그녀가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 급소를 겨낭해서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든다.

"신우형, 복례누이, 복희누이, 상욱아. 총을 쏠 때마다 손이 떨려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네. 총구를 하늘로 겨눠도 재수 없으면 떨어지는 내 총알에 누군가 죽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누구도 내 총에 죽는 일만 없기를 날마다 기도한다네.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게. 살아서, 꼭 살아서, 다시 만나세." (49쪽)

형이 아버지와 빨치산 동료였던, 자신은 수도사단 소속으로 지리산에 파견된 박선생이 비닐에 꽁꽁 싸서 미군 전투 식량과 함께 묻어두었던 편지다.

-아버지는 난생처음, 자식에게 돈을 요구했다. 고작 삼만원을. 자식이든 남이든 절대 신세 지지 않는다는 평생의 원칙을 깨뜨리게 만든 것이 고작 삼만원, 이것이 늙은 혁명가의 비루한 현실인 것이다. 삼십만원을 보냈다. 이 정도가 이 대학 저 대학 기웃거리는, 늙은 혁명가보다 나을 것 없는 빨치산의 딸의 비루한 현실이었다. (54쪽)

사회주의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리, 빨치산의 딸이라는 이름을 쓰고 연좌제에 묶여 고통을 받아야 했던 그녀와, 친척들의 아픔은 또다른 작가를 불러냈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작가에 이름을 올린 이문구와 김성동. 그들도 연좌제로 인해 아픈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빨갱이 새끼….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침뱉고 발길질하고 그리고 아무나 찢어죽여도 좋은 빨갱이 새끼였던 것이다. 나는 왜 빨갱이 새끼로 태어났을까. 그때처럼 아버지가 미웠던 적도 없다. 아버지는 어쩌자고 사람들이 침뱉는 빨갱이가 되어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풀기 빠진 헛바지처럼 주눅들게 만드는 것일까….”(김성동, <엄마와 개구리>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일까. 연좌제로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야 했던 아리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어릴 때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했던 그 소녀는 아버지가 감옥에 간 후 사이가 틀어져버렸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 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 그저 지나간 첫 남자가, 지나갔음으로 가장 그리운, 뭐 그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1쪽)

-"자네 혼차 잘 묵고 잘 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뭣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 (61쪽)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68쪽)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76쪽)

-한편으로 아버지는 입만 열면 옳은 말하는 잘나고 똑똑한 양반, 또 한편으로는 잘나서 빨갱이짓 하다가 집안 말아먹은 양반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인 것이다. (90쪽)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252쪽)

자신의 집 일보다는 동네 일을 먼저 처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죽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아리는 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181쪽)

그리하여,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에 가난까지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빨치산이 입은 세상의 온갖 은혜까지 물려받고 싶지'. (187쪽) 던 아리지만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의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 한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16쪽)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249쪽)

결국 아버지의 유골은 수목장하려던 것을 변경하여 평생 살아온 반내골 노인정 앞에, 젊은 시절 뛰어다니던 개울에, 오거리 슈퍼 앞에, 고등학교 아이와 맞담배를 태우던 골목에, 시간을 죽이던 삼오시계방에, 술을 마시러 갔던 하동댁 가게가 있던 자리에 뿌린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며 돌아다니시라고, '아버지의 유골이 강가 높은 바위 어딘가 딱 달라붙어 황톳물 무시무시 넘실거리는 날, 그 황톳물에 실려 새 길을 열어젖히기를.'(260쪽) 바라면서.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던가. 사람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된다고 했다. 살아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죽은 뒤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인연은 아리에게 또 좋은 인연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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