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 혹은 침묵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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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그들의 말, 혹은 침묵

◎ 지은이 : 아니 에르노

◎ 옮긴이 : 정혜용

◎ 펴낸곳 : 민음사

◎ 2022년 4월 14일 1판 2쇄, 202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끊어지고, 쓰다 말고, 뒤틀리고, 누구의 목소리인지 명시되지 않은 채 앞뒤 설명 없이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건너뛰는,

비문의 경계에 서 있는 문장들이 엉망진창 뒤엉킨 상태로 나뒹군다. 구사하는 어휘 역시 반듯한 표준어와는 거리가 멀다.

비속어,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은어, 준말.

옮긴이의 말 중에서. 199쪽

딱 이렇다.

이와 더불어 옮긴이는 이 작품의 매력이 '안의 서사 자체보다는 표면에서 진행되는 청소년의 실패한 첫사랑과 그 이면에서 이루어지는 실패한 글쓰기가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완벽한 이중주에 있다.'(199쪽) 라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은 지루했고, 짜증나며, 거북했다. 그래도 청소년기 아이가 겪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부모에 대한 경멸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한 것에는 별 세 개를 얹었다.

-칙칙한 유년기 내내 '그것'만 생각했는데, 말짱 꽝이라면, 더구나 죽을 게 뻔했다면, 예를 들어 전쟁 통이라면,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달려들었을 거다. 학교 친구들, 정 안 되면 보조 교사 프랑수아에게라도.(15쪽)

-그녀가 뭔가 흥미로운 말을 입에 올렸던 게 대체 얼마나 오래전이었던가. 7월 초에, 먹고 자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얻어낼 때를 제외하면, 사실상 어머니가 필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32쪽)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부모란 그들이 바라는 자식의 장래 모습만을 바라보며 걷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일에 대해서 그렇듯이 졸보기가 되거나, 어쩌면 그들은 눈을 뜨기까지 시간이 필요한지도. (144쪽)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처녀를 고수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리고 사회는 부숴 버려야 해. 난 오늘과 마찬가지로 햇볕이 침대를 비추던 어느 날 그걸, 자유를 보았는데, 그 자유라는 것, 그건 코딱지만도 못한 거였나 보다. 그들 역시 규범을 갖고 있었고, 난 그걸 몰랐다. (153쪽)

-내가 찾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7월 이래로 벌어졌던 그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왜 이제는 정말로 못 참겠는지, 이러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인데, 그런 내용은 애정 문제를 다루는 상담 편지에 나와 있지 않다. (167쪽)

가난한 가정의 모범생 안, 중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그 기간에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남자와 자볼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대학생인 마티외와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 주위를 맴돈다. 그가 자신의 친구와 만났던 것을 아는 안은 자신도 마티외의 친구인 얀과 섹스를 하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마티외는 그녀를 남의 손을 탄 물건 취급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은 집중도 못하고 수업이 어렵기만 하다. '이제는 온갖 일이 다 겁나고, 마음속에 아주 모호한 뭔가가, 마치 구름이 낀 것 같다. 작문 과제를 절대 마치지 못할 텐데, 교사는 내게 빵점을 주겠지.'(191쪽)

아니 에르노의 다음 작품『세월』이 기다리고 있는데 솔직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노벨상을 받은 작가라지만 (그래서 훌륭한 작품인 것이 입증이 되었겠으나) 내 취향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어떤 것도 내게 울림을 주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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