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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책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코널리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0월
평점 :
잊어버린 것은 소중했을(기억나지 않으니 평가하기 어렵지만) 추억 혹은 기억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는데
잃어버린 것이라!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려나?
연필, 지우개, 10원짜리 동전, 우산, 지갑, 손수건, 종이쪽지, 스티커, 작은 수첩들.
생각해보면 그닥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과연 이 자잘한 것들을 뭉쳐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인 606쪽을 덮으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여기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어찌나 이야기에 잘 빠졌는지
하루종일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곧잘 꿈꾸곤 했다. 그때 읽었던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빨간 모자> <그리스로마신화><골디락스>
<생명의 물> <미녀와 야수><룸펠스틸트스킨><거위 소녀><헨젤과 그레텔><세 명의 군의관>
등의 이야기들이 모두 망라되어 나타나는데
이야기는 원형 그대로가 아니라 (하긴 내가 읽은 이야기도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데이빗의 마음 변화에 따라 조금씩, 혹은 끔찍하게 변형된다.
데이빗은 병으로 엄마를 잃은 뒤 새엄마를 맞이한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새로 태어난 동생 조지에게 알 수 없는 적의를 느끼다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이들이 책 속 인물들이며,
그들은 데이빗을 죽이려들기도 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기도 한다.
결국 죽을 고비를 몇 차례씩 넘기면서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고
동생 조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게 되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데이빗에게 처음 그 세계에서 만났던 '숲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곳으로 돌아온단다"
꿈인지 실제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데이빗이 죽으면서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갔을 때 거기에선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게 된다.
죽음이 순수함을 되돌려준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
이 책은 우리가 읽는 책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결국 유물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은 기억 하나, 그때의 감정 하나, 그때의 상상력 하나 ..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혹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런 것들의 집합체는 아니었을까?
그 많은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하면서 하나도 유치하거나 어색하지 않게
장대한 판타지를 그려나간 작가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삽입된 이야기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참 친절하게도 뒷부분에는 부록을 실어서
장면 장면이 어떤 이야기를 모티브로 가져왔는지, 원형의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까지
알려준다. 이것만 놓고 보면 논문 한 편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