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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나는 '엄마'라는 말을 할 줄만 알았지 듣는 법은 모르면서 산 것 같다.
내게는 엄마가 필요하면서도 아이에게 엄마 노릇을 하려고 들지 않았다는 말이면 설명이 될까?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산 13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고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엄마의 삶을 다시
'박소녀' 개인의 삶으로 생각하게 되는 걸 보면서 나도 내 엄마를 생각했다.
겨울이 되자 엄마는 코트를 새로 사고 싶다 하셨다.
길이가 길어 치렁치렁한 느낌이 나는 것들만 고르는 엄마에게
"엄마는 키가 작고 통통해서 이런 건 안 어울려" 퉁박을 주었다.
다른 해에도 풍경은 비슷했으나 결국은 그러냐고 하면서 우리가 골라주는 옷을 집어들었을 엄마가
이번에는 완강하게 버티셨고 마음에 든 것을 사셨다.
아버지 앞에서 예쁘냐고 입어보이시던 엄마를 보면서 생각한 건
엄마도 엄마의 삶이 따로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였다.
시점이 모호하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다 읽어갈 즈음에야 화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고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이 떠올랐다.
신경숙의 글은 늘 어둡지만 강했는데 이번 작품은 거기에다 애잔함과 부드러움이 겹쳐 있었다.
<외딴방>때문에 그가 쓴 글들은 항상 자기 이야기일 거라는 오해를 가지고 읽었는데
오랜만에 자신에서 벗어난 (물론 <리진>도 그랬지만) 데다가 잘 익은 김장김치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릴 땐 모든 걸 다 의지하다가 이제 좀 컸다고 잔소리 하는 엄마가 귀찮아진 내 나이가 부끄러웠다.
될 수 있으면 멀리 떠나가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부끄러워졌다.
돌아오는 주말엔 못난 딸 생일이라고 챙겨주실 텐데 가슴 속에 있던 한 마디 말을 하고 와야겠다.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