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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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하는 능력은 분명히 뇌에 들어있는데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가슴이 아파. 마음이 아파..하면서 자기 심장 부근에 손이 간다.

머리로 손이 올라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음이 아파..하면서 손이 뇌에 닿아있다면 아마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마음을 다치면 사람은 쉽게 상한다.

사람이 변하는 건 마음을 다치는 경우와 치료되는 경우. 둘 뿐이다.

정확히 들여다볼 수 없고, 그래서 확실하게 집어 얘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마음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인데 이 짐작이 어그러지면

1mm의 차이가 1m가 되는 무서운 일도 벌어진다.

과학이 발달하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나노 단위를 볼 수 있다지만

아무리 정교한 현미경을 놓고보아도 마음은 절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무섭고 어려운 일이 마음 읽기이다.

 

우리는 참 많은 시간을 상대방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줄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줄까?

저 사람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말이 주는 어감으로, 눈빛으로, 얼굴 표정으로 짐작하고

대부분의 경우 비슷한 행동양상을 보인다는 수치만을 믿고 그걸 추측할 뿐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잘 숨긴다.

주인공인 내가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 오랜동안 교류를 하면서

큰 사건이라고는 아버지의 병환을 겪으면서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동안

특별히 선생님이 왜 그런 행동을 보이지는 지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감추고 있는데 그 감춤이 지루하지 않도록 조율을 너무 잘했다.

마지막에 가서야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진부할 수 있는 내용을

끝까지 긴장을 놓치 않고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어찌 보면 엔도 슈샤쿠의 <깊은 강>과도 닮았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를

담담하면서도 힘있게 그리고 있다.

눈에 보이는 상처야 치료할 수 있지만 마음을 다친 경우에는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토록 극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인간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마음도 다치지 않아야 하고, 남의 마음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처럼 극복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피해야한다.

나는 상처 받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내버려 둬. 내 행동은 상처 때문이니까 옳은 거야.

정말?

우리가 힘든 이유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지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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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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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껍질 한 개를 벗었다.

역사소설이라는 돌담 속에서 급격한 시간과 공간 이동을 한 셈이다.

너무 똑같아서 지루했던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좋았다.

물을 건너길 잘 하신 듯.

 

기자생활을 했던 작가의 이력이 곳곳에서 노련하게 묻어나는데

문정수가 야근을 밥먹듯 하며 발가락 사이에 난 무좀을 스프레이로 진정시키면서 만난 사건들은

굉장히 방만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곳을 향하고 있다.

기자 문정수가 군대생활을 한 곳,

소방수였던 박옥출이 화재현장에서 훔친 보석을 처분하고 눌러앉은 곳,

아들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은 후 어미 오금자가 잠적한 곳,

학원소요사태에 연루된 장철수가 등 떼밀려 앉은 곳,

베트남에서 팔려온 신부 후에가 외마디 한국말로 용케 살고 있는 곳이 모두 해망이다.

모두들 숨막히는 도시, 죽어가는 도시 해망으로 집결한다.

한 곳으로 몰아넣어 불안감을 극대화시켰지만

어느 장소이건 죽음과 삶이란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생물학적인 죽음과 삶이야 눈에 명확히 보이니 다르다고 하겠지만

정신적인 죽음과 삶은 그 경계가 모호한 때문이다.

"다시는 오지 마. 여기는 올 데가 아니야. 여긴 다들 떠나는 데라구."

잡혀온 바다사자를 바다로 돌려보내며 번영회장이 한 말은

해망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문정수가 노목희에게 때때로 말해 주었던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고 육하 六何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세상의 바닥'을,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진실되다"는 그 말을 걸고 우리에게 알려주려 한다.

어찌 보면 온갖 추잡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훈훈한 미담 한 가지라도 건져 그나마 사람이 살만 한 곳이라는 걸 각인시키지 않으면

인간의 더러움과 추함에 숨막힐 것 같은 이 세계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하면서도

원효와 의상이 도를 구하러 가는 길에 들렀다가 원효가 도를 깨우치게 된 동굴이 해망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똑같이 해골이 썩은 물인데 갈증을 해소해준 시원한 물이냐,

구역질을 유발하는 더러운 물이냐는 모두 마음 먹기 달렸다는 일체유심조.

그야말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순전히 내 몫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노목희는 여옥처럼

"그냥 내버려 둬. 그냥 내버려두는 게 가장 옳은 거야." 했고

문정수는 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훔친 박옥출, 신장매매를 한 박옥출,

아이의 죽음 앞에 나타나지 않은 비정한 어미 오금자,

딸의 사고 위로금을 받고 잠적한 방천석을 기사화하지 않는다.

공무도하. 물을 건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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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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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머리가 복잡할 때면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오는 게 여행이다.

마흔여덟의 중년 교수 아슈케나시 또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하나 들고

섬으로 여행을 간다.

섬이라는 게 빙 둘러봐야 바다밖에 없는 구조이고 보면

물에 대한 경건함에서 시작해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아는 이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해방감에서

안 해 본일에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슈케나시도 다르지 않은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끊임없이 안에서 제기되는 물음 '왜 사는가'를 곱씹으며 이리저리 헤매다니지만

그가 찾는 답은 보이지 않는다.

도발적인 행동과 그에 따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

끈적거리는 땀이 자꾸만 살갗에 달라붙는 느낌으로 끝나버리는 아슈케나시의 여행은

과연 삶의 의미를 꼭 찾아만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갖게 했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대답했던 어느 시인처럼 우리는 왜 사냐는 물음에

어느 누구도 시원스런 답을 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최선인 것처럼 자신을 속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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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안느 실비 슈프렌거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림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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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라는 제목에 붙어 있는 귀신처럼 저 눈이, 저 얼굴이

자꾸만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께름칙한 마음에 안 읽고 처박아 둔 책이다.

숙제를 하듯 읽은 책.

 

스물일곱살이고 프레데릭을 사랑하고 신을 믿는 클라라 그랑이 

왜 아귀가 되었는지를 조금씩, 그러나 잔인하고 거북하게 알려준다.

찬장이나 냉장고를 열고 닥치는 대로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가

그걸 또 다시 게워내느라 눈물까지 맺히는 딱한 여자.

딱딱한 나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던 것처럼 자세를 자꾸만 바꿔줘야 하고

누가 볼 새라 힐끔힐끔 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적나라함이 정말 불편했다.

상처가 아물지 않고 벌어져 하얀 뼈가 드러나고 벌건 피는 쉴새 없이 흘러내려

혈액을 공급받고 있지만 또다른 피주머니를 옆에 준비해둔 것처럼

클라라는 채워지지 않는 육체와 영혼의 허기에 죽을 지경이다.

이런 허기를 만들어낸 처음의 그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못한 채

출렁거리는 뱃살과 육중한 몸으로 계속 살아간다는 내용인데

충격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딱 맞을 책이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송두리째 망친다는 걸

다른 작가들이 쓰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는 용기를 보였으니 감탄해야 할까?

모든 작품이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개인적인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 놓고

나는 이 책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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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외침 에버그린북스 20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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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과 동물에 특유한 생득적 행동능력(生得的行動能力).

본능은 경험으로 습득할 수 없는 능력으로서 학습과 대립하여 논의되지만

실제 행동에서 본능과 학습을 구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동물의 발전단계가 고등화됨에 따라서 성숙(成熟)에서 오는 본능행동과

학습에서 오는 행동은 구별하기 어렵다.

교육으로 잠재워진 본능. 내 이면에 잠자고 있는 본능은?

사회의 무리 속에 끼지 못하는 경우,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경우.

내 본능은 혼자이기를 원하지만 잘 살아가기 위해, 낙오자로 남지 않기 위해,

고독한 상태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을 향해 미소 짓고 이야기를 건네고 친절을 베푼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나지만 그만둘 상황은 아니다.

외로운 걸 참아내기 어렵다.

여기서 그만두면 왕따라는 울타리에 갇혀 고독한 존재가 된다.

석가가 그랬지. 왕궁을 버리고 고행의 길을 간 사람.

안락함을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책은 처음에는 밀러판사 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지내다가 타인에 의해 썰매 개로 살게 되고

그 이후 손톤에게 구해져 자유로워졌을 때조차 먹이와 잠자리가 제공되는 안락한 삶을 거부했다.

자유의지를 높이 산 셈이다. 직접 먹이를 구하고 행동을 결정하며 마음대로 사는 삶.

 피속에 들끓던 야심을 되찾은 것이다.

‘ 벅은 신문을 읽지 않았다’라니! 잭 런던은 참으로 유쾌하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개인 것을 오래 숨기는 법도 없으니 그 태연함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다양한 삶을 살았던 잭 런던의 경험이 알래스카에서 있었던 경험이 그대로 보이는 책이다.

당당한 벅. 인간에게도 늑대에게도 당당한 벅의 모습은 영웅 같다. 자신을 넘어선 벅.

여기에는 기록 단축을 위해 자신과 경쟁하는 많은 운동선수의 모습도 있고

높은 지성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도 있다.

정말로 ‘위버멘쉬’를 그려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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