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이 왜 그런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 글을 너무 자전적으로만 읽은 거 아니냐는 퉁박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 허나, 작가가 말했듯이 바람이 주인보다 더 주인 행세를 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도 작가이며, 설사 뼈대만 놓고 모든 걸 꾸며내었다 할 지라도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 살림을 돕느라 또래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려 놀지도 못한 외로움과 옷을 다 입고 아버지 점퍼까지 덮어도 천막을 들추고 기어이 들어오는 바람과 싸워야 했던 고단함은 고스란히 작가의 것으로 보이는 것을 어쩌랴. 아픈 동생 연미와 제 또래 아이들처럼 걱정 없이 뛰어노는 또다른 동생 연경이, 그리고 젖먹이 동생. 이 셋은 고스란히 맏딸인 연재 차지가 된다. 생선을 떼다 파는 엄마는 부드러운 모습을 다 버리고 모지락스러운 아낙네가 되어버렸고 돈이 생길 때만 들어오던 아버지는 소식도 없다. 그나마 연재네 집에 위안이 되는 건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오빠 연후 뿐. 외삼촌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몽땅 잃어버린 재산. 그 때문에 남의 집살이를 하다 이제는 아주 쫓겨나다시피 이모할머니댁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얹혀살아야만 하는 신세가 된 연재네 집. 그 집에 먼저 얹혀 살던 사촌 재순이는 앙칼지다못해 사사건건 연재를 괴롭히려고만 든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어 초가집을 모두 다 불태우는 소란이 일어나면서 연재네는 그 초라한 집에서도 쫓겨나 외삼촌이 대충 지은 판잣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의 집 처마에 잇대어 지은 키가 껑충한 꺽다리 집. 바람이 들어오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그 집에서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없지만 서울로 가버린 병직이 삼촌이 보내온 빨간 책가방과 따뜻한 방을 빌려준 숙이네로 인해 연재는 다시 한 번 견녀낼 힘을 얻는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당당히 서서 마주하리라고 다짐하면서. 겉모습만 반지르르하게 만드는 새마을운동이 결국은 없는 사람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었음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과 장난감을 얻던 그 시절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치에 이렇다할 의견을 가질 나이가 아닌 연재의 눈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럽다. 사실 동화가 갖는 어떤 강박관념 - 이를테면, 아름다운 이야기여야 한다든가, 결말이 좋아야 한다든가 하는-을 과감히 버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된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을 것을 전제로 쓰는 글이긴 하지만, 그 아이들이 현실에 발 디디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도 동화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어른과 아이가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쓸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 바람을 견딘 거친 그 손을 잡아 힘있게 흔들어주고 싶다.
기요즘엔 스스로 10원 한 장 벌어보지 않았을 어린 친구들까지도 때를 가리지 않고 필리핀이나 호주, 싱가포르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가는 판인데 나는 여권도 없으니 대단한 애국자인 셈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느라 돈을 뿌리고 다니지 않으니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그런 내게 애국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빌 브라이슨! 내가 여행기를 즐겁게 읽었던 것은 아이들의 솔직한 글이 빛났던 <솔빛별 세계 여행기> 딱 한 권이었고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건 왠지 좀 배도 아프고 해서 앞으로 남의 여행기 따위는 읽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모임에서 이 책을 다루겠다는 공지를 보고 덜컥 장바구니에 집어 넣게 되었다. 바구니에 있던 책들을 몽땅 샀음은 물론이지만 이 책을 읽은 건 모임이 끝난 다음이니 제대로 토론도 못 해보고 책은 책대로 묵힐 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운이 억세게 좋았는지 출근길에 나가는 내 손에 잡혔고 미용실에서 파마약 냄새에 취한 채 빌 브라이슨과 함께 낄낄거렸다. 오오..진정 유머가 넘치는 작가란 말이다. 나는 의사에게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정말 따분한 곳에 가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이라도 받은 환자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 오로라를 기다리던 함메르페스트에서 지루한 일상중에- 너무 뻔한 가짜 콧수염을 달고서 엉덩이에 고챙이라도 꽂혔는데 그로 인해 연기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결연한 각오라도 한 듯이 점잔을 빼며 걸어다니는 촌스러운 드라마였다. - 역시 함메르페스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한 겨울에 함메르페스트를 간 것을 시작으로 오슬로, 파리를 거쳐 함부르크, 로마, 스위스, 이스탄불까지 유럽 곳곳을 옆집 구경가듯 다녀간 작가의 신나는 여행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탄탄한 번역도 한 몫을 했을 테니 번역을 한 권상미 선생에게도 감사하다.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그렇다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개발된 쌍방향통역기 하나만 가지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쌍방향 통역기의 성능을 시험해본 건 아니고 광고를 보면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이다. 설마하니 과대광고는 아니겠지?) 영어 하나만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닌 빌 브라이슨도 있는데 까짓 거 뭐 해보지 뭐! 문제는 빌 브라이슨이 다녀간 유럽 어디에도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1990년대 여행기라서 지금하고는 많이 다를 테지만 빌 브라이슨에게 유럽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뒤죽박죽 성처럼 보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은 못 찾았지만 나는 기꺼이 애국자의 길을 버리기 위해 조만간 여권을 만들러 구청에 뛰어갈 것 같다.
계절이 바뀌면 입지도 않은 엄마 옷들을 세탁하고 다림질까지 해서 서랍에 넣어두고, 옷장문을 아예 잠근 채 엄마 물건을 보여주려하지도 않고 매주 침대보를 갈아 씌우면서도 침대에서 편히 자지 못하고 침낭에서 새우잠을 자는 아빠를 보는 은우도 아빠만큼 쓸쓸하고 아프다. 단짝 친구인 선주가 떠나서 아프고 웃지 않는 아빠를 보는 것도 아프지만 내색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게 겉으로만 의젓하게 살아가고 있는 은우에게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자폐증세가 있는 동생 동빈이를 위해 가족신문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형빈이, 시간이 가는 걸 직접 보고 싶다면서 자명종까지 들고 다니는 괴짜 동물 박사 찬기는 자연스럽게 은우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감싸 안는 좋은 친구들이 된다. 동빈이의 사회 적응 훈련을 도와주기 위해 형빈이가 만들어 나누어주는 가족신문 '따로 또 같이'는 세 친구에게뿐만 아니라 은우 아빠에게도 자책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형빈이가 만든 가족신문은 처음에는 단순히 동빈이와 형빈이네 가족 이야기였지만 세 친구가 동참하면서부터는 온 마을 신문으로 확대되어 간다. 가족이라는 작은 범주에 갇혀 있지 않고 마을 안으로 울타리를 확대해 갈 수 있는 이 아이들이 부러웠다. 일정한 크기,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런 마을 개념이 퇴색해버린 지 오래라고 느끼는 건 내 착각일까? 조끼 아저씨나 떡볶이집 아줌마, 털보 문방구 아저씨. 우리 곁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성폭행이나 유괴가 두려워 어른들이 길을 물어봐도 가리켜주지 말라고 가르치는 우리에게는. '따로'만 알고 '같이'를 모르는 우리에게는.
편식하는 습관을 많이 고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문학쪽으로 기우는 저울을 바로 잡을 추들이 필요하다. 그런 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여러 명이지만 이번에 새롭게 참여한 이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제자 Y다. 과학을 그 자체로 좋아하는 그 아이는 꿈이 정재승처럼 되는 거라고 했다. 과학을 연구하면서 글도 이렇게 멋지게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일찌감치 자기 길을 발견한 그 애가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긴 하지만 벌써부터 과학고를 가기 위해 여기저기 학원을 가느라 보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그 녀석 얼굴을 보면 같은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꼭 과학고등학교를 가야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애 부모님이 결정한 일이고 그 아이 역시 그 결정을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므로 나는 격려만 해 줄 뿐이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하고 싶은 일을 꼭 하길 바란다. Y! Y 덕분에 요새 내가 읽은 책은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1>,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2>, 그리고 이 책이다. 하리하라 시리즈를 쓰고 있는 이은희 씨도 물론 과학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뛰어나지만 정재승은 한 가지 매력이 더 있는 듯하다. 웃음코드를 살릴 줄 아는 능력이 그것인데 두껍고 무거운 이 책을 전철에서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웃음을 터뜨렸을 정도라서 옆에서 힐끗 나를 본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대충 짐작해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과학적 오류를 짚어나가고 있는데 딱딱한 공식이나 이론들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 눈높이에서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으니 읽고나서 모든 걸 다 기억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뭐, 물론 이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볼 필요는 없다. 간이 덜 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심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이건 순전히 입문서 수준으로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할 달콤한 당근 조림인 것이다. 어떤 것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과학적인 오류라도 영화가 재미있게 만들어졌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내가 과학적인 오류를 짚어낼 수가 있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영화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이 책을 권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독특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다는 소리가 기억날 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도, 가재도구도 하나 남김 없이 몽땅 애인이 가지고 떠나버린 텅 빈 방안에 남은 거라곤 할머니가 물려주신 겨된장 항아리 하나. 돈을 모아서 음식점을 하나 차리는 게 소원이었던 링고는 그 꿈을 접은 채 항아리를 껴안고 중학교 때 이후로 가 본 적 없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무르'라는 술집을 경영하는 엄마와는 도무지 맞질 않지만 비어 있는 건물을 빌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식점을 열기로 한다. 이름은 '달팽이 식당' . 집을 지고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꿈을 향해 가고 싶었던 거다. 하루에 한 팀 손님을 받기로 하고 미리 면접을 본 후 그들에게 어울리는 음식을 만든다는 그런 설정이다. 언젠가 재미있게 본 일본드라마와 닮아 있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는 그닥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 드라마가 혹시 이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링고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변화한다는 발상. 사랑을 이루고 싶었던 커플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마음을 닫아걸고 살았던 '첩' 할머니는 죽어서 남편 곁으로 가기 전까지 입으리라던 상복을 벗고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한다. 거식증에 걸린 토끼까지 입맛을 찾는다니.. 참으로 귀여운 생각이다. 딱 '일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지라 기분 좋게 읽었지만 그걸로 끝이다. 뭐. 이런 책도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