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요즘엔 스스로 10원 한 장 벌어보지 않았을 어린 친구들까지도 때를 가리지 않고 필리핀이나 호주, 싱가포르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가는 판인데 나는 여권도 없으니 대단한 애국자인 셈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느라 돈을 뿌리고 다니지 않으니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그런 내게 애국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빌 브라이슨!

 

내가 여행기를 즐겁게 읽었던 것은 아이들의 솔직한 글이 빛났던 <솔빛별 세계 여행기> 딱 한 권이었고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건 왠지 좀 배도 아프고 해서

앞으로 남의 여행기 따위는 읽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모임에서 이 책을 다루겠다는 공지를 보고

덜컥 장바구니에 집어 넣게 되었다. 바구니에 있던 책들을 몽땅 샀음은 물론이지만 이 책을 읽은 건

모임이 끝난 다음이니 제대로 토론도 못 해보고 책은 책대로 묵힐 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운이 억세게 좋았는지 출근길에 나가는 내 손에 잡혔고 미용실에서 파마약 냄새에 취한 채

빌 브라이슨과 함께 낄낄거렸다. 오오..진정 유머가 넘치는 작가란 말이다.

 

나는 의사에게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정말 따분한 곳에 가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이라도 받은 환자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 오로라를 기다리던 함메르페스트에서 지루한 일상중에-

너무 뻔한 가짜 콧수염을 달고서 엉덩이에 고챙이라도 꽂혔는데 그로 인해 연기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결연한 각오라도 한 듯이 점잔을 빼며 걸어다니는 촌스러운 드라마였다.

- 역시 함메르페스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한 겨울에 함메르페스트를 간 것을 시작으로 오슬로, 파리를 거쳐 함부르크, 로마, 스위스,

이스탄불까지 유럽 곳곳을 옆집 구경가듯 다녀간 작가의 신나는 여행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탄탄한 번역도 한 몫을 했을 테니 번역을 한 권상미 선생에게도 감사하다.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그렇다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개발된 쌍방향통역기

하나만 가지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쌍방향 통역기의 성능을 시험해본 건 아니고 광고를 보면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이다.

설마하니 과대광고는 아니겠지?)

영어 하나만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닌 빌 브라이슨도 있는데 까짓 거 뭐 해보지 뭐!

문제는 빌 브라이슨이 다녀간 유럽 어디에도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1990년대 여행기라서 지금하고는 많이 다를 테지만 빌 브라이슨에게 유럽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뒤죽박죽 성처럼 보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은 못 찾았지만 나는 기꺼이 애국자의 길을 버리기 위해

조만간 여권을 만들러 구청에 뛰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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