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당을 나온 암탉>이 왜 그런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 글을 너무 자전적으로만 읽은 거 아니냐는 퉁박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

허나, 작가가 말했듯이 바람이 주인보다 더 주인 행세를 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도

작가이며, 설사 뼈대만 놓고 모든 걸 꾸며내었다 할 지라도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 살림을 돕느라

또래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려 놀지도 못한 외로움과 옷을 다 입고 아버지 점퍼까지 덮어도 천막을 들추고

기어이 들어오는 바람과 싸워야 했던 고단함은 고스란히 작가의 것으로 보이는 것을 어쩌랴.

 

아픈 동생 연미와 제 또래 아이들처럼 걱정 없이 뛰어노는 또다른 동생 연경이, 그리고 젖먹이 동생.

이 셋은 고스란히 맏딸인 연재 차지가 된다. 생선을 떼다 파는 엄마는 부드러운 모습을 다 버리고

모지락스러운 아낙네가 되어버렸고 돈이 생길 때만 들어오던 아버지는 소식도 없다.

그나마 연재네 집에 위안이 되는 건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오빠 연후 뿐.

외삼촌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몽땅 잃어버린 재산. 그 때문에 남의 집살이를 하다 이제는 아주 쫓겨나다시피

이모할머니댁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얹혀살아야만 하는 신세가 된 연재네 집.

그 집에 먼저 얹혀 살던 사촌 재순이는 앙칼지다못해 사사건건 연재를 괴롭히려고만 든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어 초가집을 모두 다 불태우는 소란이 일어나면서 연재네는 그 초라한 집에서도 쫓겨나

외삼촌이 대충 지은 판잣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의 집 처마에 잇대어 지은 키가 껑충한 꺽다리 집.

바람이 들어오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그 집에서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없지만

서울로 가버린 병직이 삼촌이 보내온 빨간 책가방과 따뜻한 방을 빌려준 숙이네로 인해

연재는 다시 한 번 견녀낼 힘을 얻는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당당히 서서 마주하리라고 다짐하면서.

 

겉모습만 반지르르하게 만드는 새마을운동이 결국은 없는 사람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었음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과 장난감을 얻던 그 시절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치에 이렇다할 의견을 가질 나이가 아닌 연재의 눈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럽다.

사실 동화가 갖는 어떤 강박관념 - 이를테면, 아름다운 이야기여야 한다든가, 결말이 좋아야 한다든가 하는-을

과감히 버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된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을 것을 전제로 쓰는 글이긴 하지만, 그 아이들이 현실에 발 디디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도

동화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어른과 아이가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쓸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 바람을 견딘 거친 그 손을 잡아 힘있게 흔들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