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송찬호
아가야, 우선 식탁을 짜고
둥글고 하얀 접시를 짜고
멀리서 떠도는 너희 아버지의
모자와 모자 위의 구름을 짜고
그리고 아버지의 닳고 닳은 구두를 짜고
아가야, 네게는 무엇을 짜줄까
그래,네가 갖고 싶은 것
그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커다랗게 너의 몸을 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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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을 이용한 모든 것들은 나를 떨게 한다.
주사는 말할 것도 없고 바느질, 뜨개질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지금도 단추가 떨어지거나 어디가 뜯어지면 밖에서 볼 때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꿰매는 일조차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그런 일은 잘 하게 태어난 사람이 하면 된다는 게 내 주의다보니
엄마나 동생들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매번 투덜대면서도 기꺼이 해주어
내 고통을 덜어주니 나는 참으로 복도 많다.
나에게 바느질 잘 하는 유전자는 하나도 물려주지 않은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곧잘 뜨개질로 스웨터나 조끼, 가방, 모자, 장갑 등을 떠서
우리에게 안겨주곤 했는데 사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남들처럼 앙고라라고 불리던 털이 복실복실하고 세련된 스웨터를 사주면 좋으련만
투박한 빨강이나 색색깔이 골고루 들어간 색동 스웨터를 떠주시니
싫단 소리도 못하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입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 패셔너블한 옷들이었는데 희귀성이란 걸 모를 때라
그저 친구들과 비슷한 옷이 탐났었는데 지금은 그때 떠주셨던 꽈배기 무늬가
전체적으로 들어간 벽돌색 스웨터가 입고 싶다.
눈이 어두워 이제는 뜨개질을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바늘을 놓으신 게
벌써 십 년은 된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개 정도는 기념으로 남겨두는 건데..
버리기 좋아하는 습관때문에..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