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하나 

-김춘수

 

 

어제는 슬픔이 하나

한려수도 저 멀리 물살을 따라

남태평양 쪽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또 슬픔이 하나

내 살 속을 파고든다.

내 살 속은 너무 어두워

내 눈은 슬픔을 보지 못 한다.

내일은 부용꽃 피는

우리 어느 둑길에서 만나리

슬픔이여,

 

 

**

 

산적을 만들 때 고기를 이리저리 잘 꿰어야 삐져나오지 않고

구웠을 때도 볼품이 있다. 내가 하는 걸 잘 보기라도 한 걸까?

감기 기운 하나가 산적꼬치가 되어 내 몸을 이리저리 꿰고 있는데

아무래도 쉽게 빠져나오지 않고 깊숙하게 들어올 모양이다.

덕분에 손님을 치르느라 바빠서 잊고 있던 것들,

얌전히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슬픔이며 우울함들이

조금씩 위로 올라와 좋았던 기분이 대신 내려간다.

올라가는 게 있으면 내려가는 게 있는 게지.

 

내 슬픔이여,

까닭모를 슬픔이라고 쓰고 싶지만

실은 까닭은 다 있는 법.

말로 뱉어버리면 뱉는 순간 먹물이 터져버린 오징어처럼

온 몸을 지저분하게 점령할까 싶어 참는다.

너는 그냥 다시 가라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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