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아침에 일어날 때면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잘 잤니?"
내가 내게 건네는 인사다.
한동안 내가 들었던 가장 많은 충고가 '너 자신을 사랑해라'였으나
들을 때뿐으로, 나는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험한 인상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도 바락바락 쥐고 문질러야 하는 아욱을 닮아
나도, 남도 지치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만 할 때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달라질 줄 알아야 지능을 가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하여, 나는 조금씩 나를 사랑하기로 하였으나 쉬운 일은 아니어서
늘 미워하다가 사랑하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갈 때는 꼭 이렇게 쓰고 싶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면서 살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