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황동규
베란다 벤자민 화분 부근에서 며칠 저녁 울던 귀뚜라미가
어제는 뒤켠 다용도실에서 울었다,
다소 힘없이.
무엇이 그를 그곳으로 이사가게 했을까,
가을은 점차 쓸쓸히 깊어가는데?
기어서 거실을 통과했을까,
아니면 날아서?
아무도 없는 낮시간에 그가 열린 베란다 문턱을 넘어
천천히 걸어 거실을 건넜으리라 상상해본다.
우선 텔레비 앞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저녁마다 집 안에 사는 생물과 가구의 얼굴에
한참씩 이상한 빛 던지던 기계.
한번 날아올라 예민한 촉각으로
매끄러운 브라운관 표면을 만져보려 했을 것이다.
아 눈이 어두워졌다!
손 헛짚고 떨어지듯 착륙하여
깔개 위에서 귀뚜라미잠을 한숨 잤을 것이다.
그리곤 어슬렁어슬렁 걸어 부엌에 들어가
바닥에 흘린 찻물 마른 자리 핥아보고
뒤돌아보며 고개 두어 번 끄덕이고
문턱을 넘어
다용도실로 들어섰을 것이다.
아파트의 가장 외진 공간으로......
......오늘은 그의 소리가 없다.
**
가을이 깊어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던 귀뚜라미 소리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하는 그때 최고조에 달한다.
하루종일 고생하셨군요, 라든가
집으로 돌아오니 편안하니? 라든가
어서오세요 고단하지요? 라든가
제 소리를 자장가 삼아 푹 주무세요. 등의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래, 그래. 대답해주고 11층으로 올라오면
건성으로 대답한 걸 귀신같이 알고는
11층까지 소리가 다시 따라온다.
정말이죠?
내 얘기 잘 들으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