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랭보를 훔쳤는가 - 드 스말트의 사건이야기 & 비텔뤼스의 진짜 이야기
필립 포스텔 & 에릭 뒤샤텔 지음, 정미애 옮김 / 해냄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이렇게 쓸 때가 제일 웃긴다. 운율을 맞추는 것도 아닌데

해냄 펴냄이라니..

 

어쨌거나 이 책은 지은이가 두 명이다.

필립과 에릭은 파리에서 의사로, 문학교사로 일하면서

동시에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들로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이 책은 드 스말트의 사건이야기 &비텔뤼스의 진짜 이야기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진짜 재미있다

앞부분은 경찰 서장인 드 스말트가 사건을 풀어가는 형식이고

뒷부분은 촌뜨기인 비텔뤼스가 우연히 신문에서

소설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파리에 상경하여

자신의 소설과 똑같이 귀가 잘린 채 살해된 프랑스 최고의 작가

조르주 베르데의 죽음에 연관이 되면서

그 사건과 얽힌 일련의 사건들에 얽혀 들어가고

결국은 전말을 알아낸다는 식이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아, 그러려니 입이 간질간질하다)

 

추리소설 형식을 띠고 있으되 결코 경박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신화를 살짝 살짝 섞어 놓아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으며

이야기의 결말까지도 범인이 아리송한 상태가 좋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합작하여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부럽다. 역시 혼자보다야 둘이 낫지...

나도 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는 사람과 함께

책을 한 권 쓰고 싶다는 소망이 마구 솟아오른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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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제1차 세계대전 무렵.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은 전쟁도 비껴가고

이 마을 주민들은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다.

그런 조용한 마을에서 열 살짜리 여자 아이가 살해된다.

이름 그대로 아주 어여쁜 ‘벨 드 주르(햇님같이 예쁜이라는 뜻).

그 아이의 죽음을 파헤치는 나(경찰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검사였던 ‘데스티나’, 마을의 선생님으로 머물렀던 ‘리지아 베르아렌’

‘나’의 아내인 ‘클레망스’와 가죽 아줌마로 불리우던 ‘조세핀’

판사인 ‘미에르크’와 그와 죽이 잘 맞았던 ‘마치예프 대령 ’

v시의 식당 주인이자 벨의 아버지인 ‘부라슈’ 등등


이 모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덤덤하게 이어지는데

신기한 것은 마치 술에 잔뜩 취한 어떤 이에게서 듣는 것처럼

뒷부분을 먼저 이야기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가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죽었다고 툭 뱉었다가 살아있을 적에는......하는 식이다.

결말을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 대부분 맥이 빠져서

뒷부분을 읽고 싶지 않은 게 보통이지만,

이 소설은 그런 맥빠짐을 허용하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지만 내 옷을 누군가가 잡아당기고

있음을 느낄 때와 같다.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

그렇다고 누가 범인일까에 골몰하지는 않는다

이미 누구일지는 모두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 많은 등장인물들의 삶에 얽혀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묘한 책이다.


표지는 칙칙한 회색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금두건을 쓴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아이가 바로 벨이다. 순교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벨.

순수하고 맑았던 아이 벨을 죽인 것은

이미 사람들 마음속의 선함이 죽어버렸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남은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자기 몫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지금 시대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잘못이 바로 내게로 돌아와

나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닮았다.



인생은 참 이상하다.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왜 계속 살아가는지는 영영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내가 ‘사건’을 들쑤셨던 것도 사실은 나 자신에게 진정한 질문을

던지지 않기 위해,

입에 올리거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조차 마다할 그 질문을 던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우리의 영혼, 진정 그것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회색일 뿐이다.

........나,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살아온 게 아니다.

그냥 살아남은 거다.


화자인 ‘나’의 독백처럼 나도 이런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듣는 게

두려워서

혹은 대답을 못 얻게 될 경우의 무력감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에 몰두하며 산다.

책 읽기에 골몰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이런 시시껄렁한 류의 글도 끊임없이 써대면서 산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아 이런 질문이 나를 옥죄어올까봐

나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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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샤토브리앙 


폴 오스터의 글을 읽다가 보면 어떤 인물이 실존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모두 진짜처럼 여겨지는 껍질들을

둘러쓰고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분에 인용된 이 글도 진짜 인물일까 싶어서 부러 찾아볼

정도로..이 샤토브리앙은 실제 인물이다.

작중 인물인 데이비드 짐머가 번역하던 책



헥터 만..무성영화 시절 반짝하고 사라진 배우였다는데 그가 출연한 영화도 그렇거니와 그가 만년에 만들어 놓은 여러 편의 영화에서도 그는 실제 인물이다.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 인물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나중에 그들이 폴 오스터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인물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싹할 정도다.


줄거리는 폴의 책들이 늘 그렇듯이 아주 간단하다.

데이비드 짐머는 비행기 사고로 아이들과 아내를 잃은 뒤 보험금을 잔뜩 갖게 되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죽음뿐인 교수이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헥터 만의 연기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 후

그에 관한 연구에 매달리고 한 권의 책을 집필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책이 발간되고 얼마 안 있어 헥터 만의 부인이라는 여자에게서

자신들을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종이 묘연해서 죽었을 거라는 헥터 만이 살아있다는 소리를

짐머는 믿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도중에 앨머의 방문을 받고

헥터의 그간 행적을 대강 들은 뒤 죽어가는 그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그가 만들어놓은 영화를 보고 평가를 해달라는 헥터와 만난 다음날 헥터는 죽고, 그의 유언이라며 그의 영화, 시나리오, 그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들을 모두 없애버리는 아내 프리다.

심지어는 앨머가 7년동안 쓴 헥터의 자서전까지 태워버려

프리다 자신과 앨머까지 죽음으로 몰고 가버린다.


책의 대부분은 헥터의 종적을 따라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늘 그렇듯 이 책도 역시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숨어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당황하지도 않을 만큼 나는

폴 오스터의 이런 형식이 마음에 든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보지도 않은 영화,

있지도 않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배우들의 몸짓이나 대화들이 치밀해서 이런 영화가 정말 있는 건 아닐까,

묻혀진 어떤 필름을 찾아내어 폴이 이런 글을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작가로서 장점이다. 부럽다.



인간은 하나의 삶을 사는 게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샤토브리앙의 말을 빌어 쓴 이 말들이 책 전체를 흐르고 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이 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어느 순간들은 비극일지 몰라도 그들의 인생이 전부 비극으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인데, 혼자 내린 결론은 폴 오스터가 인간은

하나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여러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만을 가져오고 싶었을 거라는 것. (내 맘이다 뭐)

헥터와 데이비드, 앨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헥터는 어린 아들이 벌에 쏘여서, 앨머는 자연사이긴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를, 데이비드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람들은 뭔가를 상실하게 되면 삶 자체가 피폐해진다.

상실의 대상이 사람일 경우가 가장 고통이 심한 일이며 이럴 땐 다른 무엇인가에 기대게 되는데 종교나 일이 가장 보편적인 대응책이다. 몰두함으로써 잊어보려고 하는 것...

상실로부터 새로운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쉽다는 말이 되는 건가?

빈 집에 도배를 하는 일이, 짐이 가득한 집에 하는 것보다 쉽다는

걸로 비유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은 완성된 그 무엇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발표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간에 그것들은 단지 실종된

것뿐이고 조만간 어떤 사람이 우연히 앨머가 그 필름들을

숨겨 놓았던 방문을 열 것이고 그 이야기는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데이비드는 앨머가 죽기 앞서 헥터의 필름들을 어떻게든 복사를

해놓았을 것이고, 헥터의 삶이 파헤쳐져 자신이 알게 된 것처럼

누군가가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고 말하고 있다.


생전에 출간되는 것은 막겠다는 짐머나 헥터나 샤토브리앙의 말들은 내게 따끔한 일침처럼 느껴진다. 쉽게 이름을 내려고 욕심내지 마라.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글을 쓴다는 일은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생전에 출간하려는 욕심을 버리다 보면 끊임없이 퇴고를 할 수 있을 테고, 그만큼 완성된 책을 만들 수 있으리라..

뭐, 책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지만...

폴 자신도 이렇게 왕성하게 써대는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아닐까?

한 편의 글.. 샤토브리앙처럼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글 한 편 남기는 것이 그의 최대 목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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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러면서 이 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신 몰리토 파텔..

자신의 이름이 '소변 보는(피싱)'이라고 들리는 게 싫어서

'파이'라고 고쳐불러주길 바라는 남자.

나도 이해한다.

나는 반대로 내 이름이 흔한 게 싫어서

늘 편지에 쓰는 이름을 바꿔왔으니까.


캐나다로 가려던 '침춤'호가 침몰하고

얼룩말과 호랑이, 하이에나, 오랑우탄이 탄 배에

먹이로 내던져진 파이는

227일간을 바다위에서 살아 남는다

삶을 위협하고 삶의 동반자가 되어준

리처드 파커와 함께.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 배구공 '윌슨'이

그저 외로움을 달래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라면

리처드 파커는 파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살아있도록

만들어준 훌륭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


난 요새 물을 참 많이 마신다.

의식적으로 먹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원하는 것이다.

내 몸에 들어오는 물은 참 좋아하지만

물 속에 내 몸이 들어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물 속에 몸을 담그는 수준은 좋은데

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경우는 싫다. 무섭다.

227일은커녕 27일도 못 버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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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아리스토텔레스 - 아테네의 피
마가렛 두디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뚜껑을 열면 책 날개에 잠시 안내가 있다.


1978년 영국에서 처음 선을 보인 이래 최근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아 20여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마가렛 두디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보인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현재 '탐정 아리스토텔레스' 시리즈를 집필중이다.


검은 속 뚜껑을 또 한 장 넘기면 아주 야리꾸리하고

속이 다 비치는 흰 트레이싱페이퍼에 이렇게 써있다.

'여동생 메리 엘리자베스 하월-존스에게

진정한 고전 마니아를 만족시킬 수 있기를 바라며'


참 오랜동안 들고 다니다가 드디어 오늘 새벽에 다 읽었다.

오래 읽을 수 없도록 무진장 재미있는데 할 일이 많아서 중간중간

시간을 점령당하다 보니...


이 소설은 정말 나를 위한 소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정한 고전 마니아! 후후)

구서구석에 그리스 신화가 어찌나 자주 등장을 하는지

각주도 안 보고 혼자 잘난 척 주절거리면서 신나게 읽었다.

('듄'을 볼 땐 그놈의 각주 찾아 읽느라고 진전이 느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잘 모르지만

이 사람이 철학자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이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니지, 거기서 살인 사건이 하나 일어난단 말씀!

살인사건을 저지른 적이 한 번 있다는 사실 만으로 범인으로 지목된

억울한 사촌 필레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우리의 주인공

스테파노스는 잠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찾아가 의논을 하게 된다.

스승의 조언을 들으며 증거를 수집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과

아테네 거리를 내가 걸어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묘사들

거리 거리에 숨어 있는 신화들의 들먹거림과

마지막 20쪽에 걸쳐 일어나는 반전은 가슴이 벌렁거릴 지경이었다.

이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으므로 결말을 말씀드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련다.


타임즈는 이런 평을 실었단다..

'지금까지 이런 소설을 창안한 작가가 왜 없었을까?'

동감, 동감!

이젠 아리스토텔레스가 괜히 친근하게 느껴진다.

무지하게 싫어해서 철학책은 개론서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 했는지 그의 말을 듣고 싶어진다니까


나도 키톤 입고 강의실에 앉아 위트 넘치는 그의 강의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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