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누각
-송찬호
처음 삶은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모래를 한 줌 깔아놓
고 그 속에서 자기 몫의 모래 한 알을 가려내야 하는, 잠
시 숨죽이고 들여다보면 세상에는 모래알만큼 많은 희
망들이 있었다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와 아우성치며 살
다 간 바닷가, 물결이 흘러와 또 한 세상을 흔적없이 지
워놓은 모래 위로 물에서 나온 벌거벗은 사내와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그들 뒤를 길게 따라가는 모
래 발자국들 숙명처럼 따라가는 맨발자국들
넓고 넓은 바닷가에 하룻밤 새 대체 누가 저런 고래등
같은 누각을 일으켜세웠을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
래알만큼 작아지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로 저 모래 언
덕을 쌓아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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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멋진 집을 볼 때마다 다짐하곤 한다.
나도 꼭 저런 집을 지어서 살아야지.
내가 아직도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집은
빨간 머리 앤이 살던 초록지붕 집의 다락방과
이윤기 아저씨의 서재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타라'의 농장에 있던 그 서재
넓고 환한 창이 가득한 거실.
그리고 '가타카'에서 우마 서먼이 살던
바다가 보이던 그 침실.
뭐 합쳐 놓으면 꼴이 이상해지려나?
어쨌든 이런 집을 짓고 살아야지.
로또가 맞으면 말이야
실컷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많이 사고, 칠렐레 팔렐레 너풀대는
치마도 많이 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말이지
내가 혼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산책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하고
...
...
이렇게 나도 모래알로 수많은 사상누각을 짓고 산다
그러면 어떠랴..
내 삶에 모래알이 가득해서 신발을 신을 때마다
거꾸로 뒤집어 털어내야 한대도
이런 희망 마저 없다면 삶은 막막하지 않은가
물 맞은 개처럼 몸을 부르르 털어
어제 치의 모래알을 다 없애버리고
나는 오늘 세워야 할 사상누각을 세우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