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의 약속>
-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
내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난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쓰레기는 잘 치우고, 필요없다 싶으면 물건도 잘 버리면서
나는 유독 내 마음 속을 채우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구석으로 몰아넣어
이젠 끄집어 내려고 해도 너무 깊이 박혀 꺼내기도 어렵게,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이젠 너무 많이 몰아 넣어 저희들끼리 꽁꽁 뭉쳐버린
우울함, 쓸쓸함 같은 것들
올해가 가기 전에 모두 끌어내어 깨끗이 청소하고
'착한 사진사 같은' 내 마음을 나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