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편지 4

문정희

최후의 통첩처럼
은사시나무 숲에 천둥번개
꽂히니
천리만리까지 비로
쏟아지는 너,
나는 외로움의 우산을
받쳐들었다.

*****
외로움의 우산이라면
내게도 열 개쯤 있다.
우산 한 개가 살이 부러져도
다음 놈으로 바꿔 쓸 수 있다.
다 부러지고 나면 화수분처럼
자꾸만 생겨난다.

그래서일까?
내 외로움은 좀처럼
사그러들 줄을 모르니..

외로움의 우산 같은 거
자꾸만 생겨나게 하지 말고
내가 넣어둔 동전 한 닢이나
자꾸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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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양쯔강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9
진 프리츠 지음, 강전희 그림, 서남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은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제일 중요한 건 역시 공통된 관심사인 것처럼

내가 살기 전 어느 시대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 시대든 어딘가에는 반드시

저 인물이 살아서 숨쉬고 있었으리라는 그런 공통점 찾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진 프리츠는 실제 인물인 데다가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리운 양쯔강> 역시

거의 대부분이 겪은 이야기라고 한다.

중국에서 태어난 부유한 미국인 이야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자란 미국인이 보는 시각이라

처음엔 상당히 거부감이 들어서 사사건건 트집잡기에 골몰했지만

읽어나가는 동안 그녀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인생을 살면서 내내 중국에서 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 건 단순히 어린 시절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그녀를 둘러싼 중국이라는 특이한 배경과 친구들, 그녀를 사랑했던 유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그래도 높은 점수를 주기 싫다.

흔들리는 가마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걸어다닐 때 느끼는 풍경과는 너무나 다르니까.

특이한 그녀만의 체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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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내 친구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7
노경실 지음, 심은숙 그림 / 시공주니어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아버지도 있겠지만

현호 아빠처럼 겁도 많고 운동도 못하고 목욕탕 가서도 때 밀기 싫어서 아들과 타협하는

그런 아빠가 요새 대부분의 아빠들 모습이 아닐까?

휴일에는 늘어지게 자는 걸 즐기고 운동 하루 했다가 그 다음날 드러누울 만큼 체력은 빵점이고

맨날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 코를 잡게 만들어도 돈을 버느라 너무 늙었다고 속상해하는

현호같은 아들, 딸들이 있어서  아빠들은 힘을 얻는다.

라면 먹기 시합을 하다가 온통 입천장을 덴 현호 옆에 앉아서 아빠 자격 없다고 침통해하는데

현호는 '우리는 친구잖아요' 한다.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버지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버지.

아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아빠는 행복하다.

아빠들이여, 권위는 버리고 아이들과 친구가 되시라!

 

*2학년에게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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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도
-이문재

몸에서 나간 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 나갔는데 벌써 내 주소 잊었는가 잃었는가
그 길 따라 함께 떠난 더운 사랑들
그러니까 내 몸은 그대 안에 들지 못했더랬구나
내 마음 그러니까 그대 몸 껴안지 못했더랬었구나
그대에게 가는 길에 철철 석유 뿌려놓고
내가 붙여댔던 불길들 그 불의 길들
그러니까 다 다른 곳으로 달려갔더랬구나
연기만 그러니까 매캐했던 것이구나

********
이문재 시인은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때>
이미 마음에 들었었다.
오늘, 하릴없이 서가를 빙빙 돌다가
한국의 시인들이 죄다 모인 그 좁은 골방 속에서
이사람 저사람 얼굴 품평하다가
또다시 그를 붙잡았다.

식도를 지나 위주머니 속을 들락거렸다가
핏줄을 한 바퀴 돌아준 다음 소장이니 대장이니
그나머지 창자 속을 들여다보고
생기다 만 근육 혹은 지들끼리 모여 낄낄대는 지방 덩어리를 지나
어디를 둘러봐도 다른 곳 하나 둘 곳 없는 내 몸 속에
지도를 둘 만큼 복잡한 마음이라니

엄격히 생각하면 마음은 뇌 속에 있어야 하거늘
굳이 심장을 마음이라고 칭하는 것은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과 관계가 있으려나

어쨌거나,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자기 자리인양 시침떼고 앉은
네 마음 속 길들은 누구의 길인지 참으로 눈도 밝다
길치인 나를 닮아 아직도 헤매고 있을 내 가여운 길들은
집으로 오는 길도 못 찾아 울고 있지나 않을까
그들을 위해 등불이라도 켜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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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
-임영조

말이란 이미 뱉은 말보다 아직
혀끝에 숨긴 말이 더 궁금하고 두렵다
허나, 여름 내내 속끓이던 앙가슴
그 주체 못할 충만을 터뜨려
영롱한 아픔을 지상에 쏟는 석류여
네 고통의 축제가 눈부시고 뜨겁다
남모를 가슴속 오랜 꿈과 슬픔이
한여름 땡볕과 비바람 속에서
얼마나 부대끼고 견뎌야
그토록 절실한 언어로 익어
누구나 눈여겨볼 홍보석이 되는가
새겨들을 비유가 되는가
스스로 익어 고개 숙인 이삭들
땅에서 얻은 이름 제 무게대로
땅에 다시 내려놓는 이 가을
내 오랜 그리움을 방생하노니
가서 부디 누군가의 시(詩)가 되거라
가장 간절하고 뜨거운 언어로 눈떠
가을산 다 태우는 정염이 되거라
아니면 더욱 쓸쓸해진 사랑의 불씨
까만 분꽃씨로 여무는 고독이거라
이 고요 깨우는 노래로 남거라
그대 영혼 적시는 국향(菊香)으로 피거라
내 오랜 외로움도 방생하노니.

****
무슨 재주를 얼마나 지녀야
내가 가진 외로움을 방생할 수 있는 걸까?
아직 살아계신 이 시인을 찾아가 비결이라도 들어봐야 하나

아주 오래 전에 방생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방생하는 곳에서 진을 치고 장사하는 이들이
내어놓는 거북이(자라나 남생이인들 내가 알아볼 재주가 없으니)
그거 하나씩 사서 물가에 내어놓는 대대적인 행사였는데
그렇게 놓아주면서 그놈들이 다시 장사치 손에 잡히리란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린 무엇을 위해 방생을 한 걸까?
내가 지은 죄를 이런 식으로 속죄하나이다?

나도 이젠 방생을 다시 하고 싶어졌다.
이번엔 訪生.
다들 바쁜 터에 누구에게 내 삶을 찾아다 달라겠는가
내가 가야지.
가자.가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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