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너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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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가을이'라는 시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독한 기운이
이 시에도 조금쯤 뻗어 있지만
왠지 나는 그녀가 안간힘을 쓰며 팔을 뻗는 거 같아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오..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나보다 한참이나 먼저 태어나신 분한테
그것도 문단의 한 자락을 걸치고 있는 분한테..
낄낄..
그러나, 시를 읽는 건 독자의 몫이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건
마지막 두 문장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이 시를 고른 건 요새 읽고 있는
<백년 동안의 고독> 때문이다.
책이 없어져서 다시 사야만 했지만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르께스..대단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