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墨정원8

-대숲

 

                                       장석남

 

해가 떠서는 대숲으로 들어가고

또 파란 달이 떠서는 대숲으로 들어가고

대숲은 그것들을 다 어쨌을까

밤새 수런수런대며 그것들을 어쨌을까

싯푸른 빛으로만 만들어서

먼데 애달픈 이의 새벽꿈으로도 보내는가

 

대숲을 걸어나온 길 하나는

둥실둥실 흰 옷고름처럼 마을을 질러 흘러간다

 

***

 

이번 여행은 잠도 못 자고 차를 오래 타는 바람에 내겐 참 피곤하고

아릿할 만한 추억 한 개도 없이 너무도 밋밋했지만

내게 남은 몇 개 잔상 중 하나가 바로 대숲이다.

 

광주에서 구례로 가는 길에 스쳐가던 담양.

흩어지지 말라고 손으로 뭉쳐 던져두던 솜뭉치마냥

대숲이 그렇게 군데군데 수군대며 서 있었다.

머리끝만 염색한 머리카락이 남은 부시시한 여자애들처럼

녹색의 몸체에 노란 빛을 약간씩 갖고서..

 

나뭇잎을 다 떼어낸, 물건으로 만들어지 전에

대나무는 너무나 탄탄하고 억세 보여서 남자 같은 이미지라면

땅 위에 발을 딛고 이리저리 바람에 쓸리는 머리카락을

걷어올리는 내가 본 대나무들은 십대 여자애들처럼 명랑했다

 

그 숲에 달이 떠오르는 걸 보았으니 한 가지는 건질 게 있었네

이번 여행에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