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정해진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고, 처음에는 다른 이들을 간병을 하다가도 결국 기증자로서 삶을 마치게 결정되어 있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 그런 사실들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면 기꺼이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은 어렴풋하게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들이 커서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 '그 시기의 우리에게 헤일셤 너머의 장소는 어디가 되었든 간에 환상 속의 세계와 흡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외부 세상에 대해, 그곳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 당시 우리는 극히 막연한 개념만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99쪽)'
캐시 H, 샤로트. F, 신시아 E 로 불리며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한 그들이 근원자를 찾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자신의 근원자가 어디선가 근사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정도는 다르지만 자기가 복제되어 나온 근원자를 보게 되면 진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앞으로의 삶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197쪽)'
배경음악처럼 등장하는 Judy Bridgewater의 'Never Let Me Go'라는 곡에서 따온 제목은 캐시가 갖고 있던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에 걸쳐 간절하게 아기를 바랐으나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여자는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면서 “베이비, 네버 렛 미 고 …….”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편으로 몹시 행복한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아기가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 아기를 빼앗아 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있다.(중략) 내게 있어서 그 노래는 바로 그런 의미였다. (105쪽)'
이런 캐시의 모습에 대해 마담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자기도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 거란다. 그건 실제 네 생각이나 행동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372쪽)' 라고 말한다.
제목이 풍기는 향기는 마담의 말과 일치한다. 어떻게 보면 또 자신의 현재 삶을 살 수 있게 기증자로 보내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물론 캐시는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만 ) 실제로 노래를 들어봤을 때는 담백할 것 같았는데 끈적해서 어리둥절했지만 뭐, 음악도 듣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담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받아들이는 루스나 토미, 캐시, 그리고 그밖의 많은 '학생'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장기이식과 안락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오래도록 살기 위해 장기 이식을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만일 자식들에게 나쁜 병이 있어서 복제인간의 장기를 가져와야 할 경우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됐고, 우리는 모두 그렇다면 눈 감고 그쪽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라는 답변들을 내놨다. 내 자식에 관한 것이라면 논리적, 윤리적 판단따위는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져버린다. 이러니 우리는 평생 인간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