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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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동유럽을 여행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해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등을 방문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원래 동유럽의 의미는 소련에게 지배당하는 공산국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한 국가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서 억울하지만, 동유럽 여행 패키지에 오스트리아가 포함됩니다. 


패키지 여행을 하는 동안 방문하는 장소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도시, 궁전, 사냥터, 미술 작품, 건축 등을 구경했습니다. 여행 전에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책을 읽었다면, 훨씬 여행이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궁전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의 베르샤유 궁전에 비견되는 궁전을 갖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성입니다. 당시에 여성이 궁전을 지을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규모가 엄청난 궁전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근친 상혼을 통해 가문의 권력을 유지했지만, 세대가 거듭될 수록 기형적인 외모를 가지고, 결국 후손이 끊긴 가문이라는 정도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합니다. 너무 몰랐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마틴 래디 저자의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를 바로 구입했습니다. 이런 책은 대략 500페이지가 넘고, 역사 책을 읽을 때 지도 보면서 궁금한 것을 추가 검색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더구나 무슨 욕심인지 역사책과 다른 장르의 책 1~2권을 동시에 읽기 때문에 더 지체되었습니다.  



유럽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합스부르크 가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600년 이상 지속하면서 유럽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가문이 역사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베른 북서쪽에 위치한 호수, 발호에서 시작된 아레 강은 스위스 아리가우 주의 아라우를 지나 북쪽으로 나아가서 라인강과 만납니다. 아레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라인강과 만나기 전에 브루그라는 소도시 근처에 합스부르크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 언덕 위에 하비히츠부르크 요새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라트보트라는 사람이 이곳에 요새를 지었는데, 자신의 매를 잃어버려서 찾다가 발견한 장소이기 때문에 매의 성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아리가우 지역이 스위스 내륙의 산악 지대와 북쪽 평원의 저지대를 이어주는 교차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인들이 통행료를 내고, 소작인들이 목초지 이용료를 지불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았지만, 여러 귀족 가문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까지 배출하는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성장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가문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자식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둘째, 유력한 귀족 가문에 자식들을 결혼시켰습니다. 



당시에 어느 한 가문이 대가 끊기면, 아내가 속한 가문이 영지를 이어 받고, 세습 재산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왕도 될 수 있었죠. 

프랑크 왕국의 5대 부족 왕국 중 하나인 슈바벤 공국은 독일 남쪽(슈투트가르트 남쪽)에 위치했었고,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슈바펜 공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이 가문의 대가 끊겼고, 과거에 이 가문의 여인과 결혼했던 루돌프의 손자인 루돌프 1세가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결국, 독일 중앙으로 진출했고,  제휴들의 지지를 받아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첫번 째 독일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스트리아 왕, 보헤미아 왕, 스페인 왕, 로마왕 등을 배출하면서 가문의 영지를 계속 확장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현재 독일,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일부 지역의 왕국, 공국 등의 연합체였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7명의 선제후에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선제후 7명은 쾰른 대주교, 마인츠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보헤미아 국왕, 작센 공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라인 팔츠 백작입니다. 보헤미아는 현재의 체코 지역입니다. 당시에 영향력이 매우 큰 왕국이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은 현재 베를린과 그 주변 지역입니다. 향후 프로이센 공국을 합병하면서 독일 제국을 세우는 프로이센 왕국의 근원지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기 시절 그들이 다스리던 영토를 보면 엄청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는 오스만 투르크를 견제하면서 보헤미아 왕국과 헝가리 왕국을 획득했습니다. 펠리페 2세는 스페인 무적 함대를 이끈 장본인이고, 일본 나가사키에 천주교를 전파하고, 멕시코시티와 라마에 종교재판소를 만들고,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투르크 군대를 물리쳐서 기독교 세계를 지켰습니다. 펠리페 2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에스코리알 궁전을 짓기도 했습니다. 



레오폴트 1세는 오스트리아 빈을 공격한 오스만 투르크 군대를 격파해서 레판토 해전에 이어 신성로마제국과 기독교 세계를 지켰습니다. 



프라하 궁전에 머물렀던 루돌프 2세 휘하에 점성술사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요하네스 케플러입니다. 그의 관측 결과는 행성이 태양의 중력장안에서 움직이는 방식에 관한 최초의 통찰로 이어졌습니다. 칼 세이건 저자의 <코스모스>에서 자세히 소개한 인물입니다. 

카를 6세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 딸이 마리아 안토니아인데, 그녀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아내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스페인을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로스가 죽고, 후손이 없어지면서 이베리아 반도를 둘러싼 가문의 통치권과 아메리카 대륙 및 태평양에서의 지배권은 종말을 맞이합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판도는 유럽 대륙의 영지에 국한되죠. 또한, 중앙유럽을 다스리던 카를 6세의 아들이 유아기에 죽음으로써 가문의 대가 끊기고 맙니다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란츠 슈테판과 결혼 후 자식을 낳아 계속 가문의 뒤를 잇게 합니다. 프란츠 슈테판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과 권력은 대단했습니다. 








항상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합스부르크 가문도 점차 쇠약의 길로 접어듭니다. 19세기에 들어서 프랑스의 힘이 커지고, 나폴레옹에 의해 가문의 영토는 쪼개지고,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립니다. 이후 프란츠 요제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선포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에 의해 독일 연방에서 퇴출되면서 독일 영토에 대한 영향력도 없어집니다. 프로이센은 독일 연방을 없애고, 독일 제국을 선포합니다. 



프란츠 오제프를 둘러싼 합스부르크 가문의 슬픔은 너무 컸습니다.

1867년 동생 막시밀리안이 멕시코에서 처형됨

1889년 아들 루돌프 자살함

1896년 동생 카를 루트비히 이질로 사망함

1898년 아내 엘리자베트 피살됨

1914년 조카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됨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합니다. 페르디난트는 암살 시도를 피해서 살 수 있었는데, 그의 자만심 때문에 죽었습니다. 부상당한 사람들이 머무르는 병원을 방문하는 도중에 잘못된 길로 접어 들고, 운나쁘게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암살범 앞에서 정차합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27만 4889 마리의 동물을 사냥했다고 합니다. 그가 오래 살았다면 그의 쾌락을 위해 더 많은 동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업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사건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패배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고, 합스부르크 가문도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것도 원인이지만, 민족 주의가 대두되면서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자들은 유럽의 문화, 예술을 발전시키고, 가톨릭 세계를 지켰으며, 민족을 뛰어넘는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유럽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은 초라했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한 가문의 도약기, 성장기, 전성기, 침체기, 쇠락기를 모두 보여준 합스부르크 가문 그 자체가 역사의 일부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19세기에 합스부르크 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프로이센 제국으로 넘어갑니다. 그들의 역사는 과연 어땠을지 기대가 큽니다. 



 





2026.1.25 Ex. Libris. HJK 



호프부르크 궁전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겨울 궁전이었고, 지금은 빈의 주요 관광 명소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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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5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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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저자의 <악령>을 읽었습니다. <악령>은 약 1300 쪽수를 가진 장편 소설입니다.

저자의 책 중 제가 읽은 4번 째 책입니다.





2021년 2월 8일 큰 마음을 먹고, 도스토옙스키 컬렉션을 구입했습니다. 열린 책 출판사에서 만든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이었습니다. 고급 양장본이라서 소장하는 멋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백치> 를 읽고, <악령>을 이제 읽었습니다. 

<죄와 벌>은 다른 출판사에서 만든 책으로 읽었는데,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고, 전집에 포함된 <죄와 벌>을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악령>은 읽기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러시아 당시 사회 상황과 이념 대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권 후반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왜 죽는지도 이해가 안가고, 저자가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그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는데, 왜 그걸 못 막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죄와 벌>, <백치>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악령>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발음하기도 힘들고, 자꾸 바꿔서 표기되는 등장인물을 찾아가면서 힘들게 읽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이해 못해도 다 읽으면 전체적인 맥락이 잡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맥락은 잡았지만, 여전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의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저자는 1869년 모스크바에서 실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을 기반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습니다. 급진적인 조직을 만든 네차예프와 나머지 조직원들이 이 조직을 떠나려는 이바로프라는 학생을 살해해서 대학 교내 연못에 던져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악령>에서 이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전개는 거의 중후반부에 나옵니다. 



주인공인지 잘 모르겠지만, 등장인물 스타브로긴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부록 "티혼의 암자에서"를 읽어야 합니다. 원래 <악령> 하권 처음에 있는 내용인데 저자가 삭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악령>을 읽는다면, 부록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같은 사람을 위해서 <악령> 맨 마지막에 줄거리를 요약한 부록도 있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내가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에게 좋은 책이 나에게도 좋은 책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시간은 유한한데, 이해가 안되는 책을 억지로 붙잡고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악령>이 형편 없는 소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저와 맞지 않을 뿐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다른 책으로 도전합니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것까지 읽으면 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독서를 완료할 수 있겠네요.   



2026.1.19 Ex. Libris HJK


지금까지 어떤 특별한 일도 없던 우리 도시에서 최근에 발생한 매우 이상한 사건들을 서술함에 있어서, 나는 나의 능력 부족 탓에 이야기를 약간 돌려, 다름 아닌 재능 있고 널리 존경받는 스테판 트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의 몇 가지 신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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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 전5권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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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키가하라 전투 1권 ~ 5권을 완독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절판되어서 구매는 할 수 없었고, 주변 도서관에도 없어서 상호 대차를 통해 대여를 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서군, 동군으로 나누어져서 세키가하라 지역에서 전투를 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을 좋아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 왜란을 반대했고, 조선으로 출병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서군은 임진 왜란에서 살아 돌아간 다이묘들이 참전하고, 동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반대한 다이묘들이 가담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역사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수하로 많은 이득을 챙기고, 임진 왜란에서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충성을 다짐했던 많은 다이묘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6살 아들 히데요리를 버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머리를 수그렸습니다.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 명에게만 충성할 뿐이었고, 그에 대한 충성도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60만 석 영지를 거느린 최고 다이묘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감히 대항을 못하고, 그를 위해 전투에서 싸우면서 자신들의 영지를 보존할 생각만 했습니다. 동군이 승리함으로써 임진 왜란에 참전했던 다이묘들이 모두 제거되기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걸고 전투를 할 때 주변에서 함께 싸우면서 주군을 지켰던 7명이 있습니다. 

그들을 칠본창이라고 부릅니다. 7명 중에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토 기요마사, 가토 요시아키는 동군에 가담해서 선봉 부대로 서군과 싸웁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임진왜란 당시 제5군 사령관이었고, 가토 기요마사는 제2군 사령관이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3대 왜성 중 하나인 울산 왜성에서 조명 연합군을 물리친 다이묘였습니다. 가토 요시아키는 임진왜란 당시 수군 지휘관이었는데,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패하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에서 승리한 다이묘였습니다. 

영화 한산에서 왜군 총사령관 이었던 와키자카 야스히루도 칠본창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충청도, 전라도 관군을 무찌렀고,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는 세키가하라에서 서군으로 참전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서군을 배신하고, 공격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과 동군 군대 규모는 비슷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군단 3만 2천 명은 세키가하라에 도착했지만, 2군단 3만 8천 명은 우에다 성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막혀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을 못했습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직속 군대가 7천 명 정도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직속 군대만 7만 명이었으니, 비교할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그래도 서군에 모리 가문, 시마즈 가문, 고바야카와 가문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승리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루 만에 끝날 전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리 히데모토, 시마즈 요시히로가 전투에 참전 안하고, 중립을 지키고, 고바야카와 히데야키가 배신하고, 서군의 측면을 공격함으로써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에 군대만 싸운 서군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 당시 제4군 지휘관이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제1군 지휘관, 우키타 히데이에는 제8군 지휘관이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영화 노량에서 사천 왜성을 지키다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순천 왜성 앞바다로 공격을 진행한 장수였습니다. 물론, 이순신에게 패배를 합니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19만 석 다이묘였습니다. 

도요토미 가를 지키겠다고 하면, 많은 다이묘들이 의를 내세워 서군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50만 다이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다이묘들을 포섭해서 동군으로 참여하거나 중립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권모술수의 대가라고 부릅니다. 의를 생각한 이시다 미쓰나리를 치사한 권모술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리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쟁 경험도 별로 없는 문관 출신이면서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고, 지휘하겠다고 생각한 이시다 미쓰나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의를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다 가문의 지위를 박탈시킨 장본인 이었으니깐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아니었다면,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가문이 멸망했다고 해도 조선의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조선인을  죽인 많은 왜군 장수들이 무사히 일본으로 넘어가 서로 편을 나누어서 싸웠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에 모리 가문의 조슈 번과 시마즈 가문의 사쓰마 번이 합심하여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정한론을 앞세워 다시 한반도로 진출합니다.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서군 주요 다이묘



  1. 이시다 미쓰나리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5대 부교 중 행정 담당, 19만 석, 오미 사와 산성

  • 임진왜란 때 병력 이동, 군수품 운송 총 책임자

  • 전투 경험 미약하고, 군대 통솔 역량이 부족함. 자신의 신념과 주장에 매몰됨

  • 히데요시가 규슈 지쿠젠 국, 지쿠 국 100만 석 다이묘로 영지를 주려고 했지만, 거절하고 오미 국 시와 산성으로 만족함. 히데요시를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실책이었음. 만약 100만 석 다이묘가 되었다면, 3만 명 직속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음

  • 주요 가신 : 시마 사콘(사망), 가모 사토이에(사망)

  • 병력 6천 명

  •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후일을 기약한다며 도망감

  • 결국, 붙잡혀서 교토에서 처형당함



  1. 모리 데루모토

  •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 5대 부로

  • 주코쿠 지방 서쪽(현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 120만 석

  •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오사카에서 머무르면서 참전 안함

  • 세키가하라 전투는 모리 히데모토, 깃카와 히로이에가 참전하지만, 중립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음

  • 모리 히데모토, 깃카와 히로이에 병력 2만 명



  1. 시마즈 요시히로

  •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4군 지휘관

  • 노량 대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함

  • 조명 연합군으로부터 3대 왜성 중 하나인 사천 왜성 방어

  • 규슈 최남단 사쓰마 국, 오스미 국을 통치하는 다이묘(현 가고시마 현)

  •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 서군으로 참전하여 전투를 했지만, 이시다 미쓰나리의 부족한 역량에 실망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중립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음

  • 서군의 패배가 확정되자 철군을 시도했고, 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동군의 포위를 뚫음

  • 시마즈 가문의 군대 규모는 작았지만, 전투 능력이 뛰어났다고 함

  • 시마즈 가문이 규슈 전역을 점령한 적이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함

  • 에도 막부 시대에 사쓰마 번이었고, 모리 가문의 조슈 번과 함께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끔 



  1. 고니시 유키나가

  •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1군 지휘관

  • 한양, 평양성 점령

  • 3대 왜성 중 하나인 순천 왜성 방어하다가 노량 대전 당시 이순신 장군을 피해 도망감

  • 규슈 히고 국 다이묘(현 구마모토 현)

  •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으로 참전하여 적극적인 전투를 한 3대 다이묘 중 하나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에)

  • 병력 6천 명

  •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배신 이후 서군이 무너지고, 도주함

  • 붙잡혀서 교토에서 처형당함



  1. 우키타 히데이에

  •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 5대 부로

  •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8군 지휘관

  • 주고쿠 비젠 국, 미미사카 국을 통치하는 다이묘(현 오카야마 현), 57만 석

  • 병력 1만 7천 명

  •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배신 이후 서군이 무너지고, 철수함



  1. 오타니 요시쓰구

  • 이시다 미쓰나리 맹우, 장님

  • 오미 국 다이묘, 5만 석

  •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고, 배신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군대를 막으려고 노력함

  • 전면의 동군과 후면의 배신한 고바야카와 히데야키와 전투를 하는 와중에 와키자카를 비롯한 소다이묘들도 배신함으로써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할복을 통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함



  1. 와키자카 야스히루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칠본창 중 한 명

  • 임진왜란 당시 용인 전투에서 충청도/전라도 관군을 무찌름

  •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함 

  •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으로 참전하지만, 배신하고, 서군을 공격함



  1.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 고바야카와 타카카게 양자

  • 고바야카와 타카카게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6군 지휘관이었고, 5대 부로. 33만 석. 벽제관에서 명나라군을 무찌름. 웅치, 이치 전투와 행주 대첩에서 조선군에게 패배함 

  • 규슈 지쿠젠 국, 지쿠 국 다이묘(현 후쿠오카 현), 52만 석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처조카. 자식이 없어서 히데요시가 양자로 입양하지만, 히데요리가 태어나서 고바야카와 타카카게 양자가 됨. 당연히 히데요리에게 좋은 감정이 없음

  • 지능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함

  •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자 서군을 배신하고, 공격함

  • 병력 1만 5천 명



  1. 조소카베 모리치카

  • 시코쿠 도사 국 다이묘(현 고치 현)

  •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중립을 지키면서 전투를 하지 않음



  1. 나쓰카 마사이에

  • 도요토미 히데요시 5대 부교 중 재정 담당

  •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중립을 지키면서 전투를 하지 않음




동군 주요 다이묘



  1. 도쿠가와 이에야스

  • 도요토미 히데요시 5대 부로, 동군의 수장

  • 간토 8국 다이묘, 256만 석

  •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3만 2천 명을 이끌고 참전함. 주나곤 히데타다 병력까지 포함하면 총 7만 명 병력이었으므로 최대 규모의 군대였음

  • 주요 가신 : 혼다 마사노부,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1. 주나곤 히데타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명령에 따라 3만 8천 명을 이끌고 에도를 출발함

  • 이에야스는 도카이도를 따라서, 히데타다는 나카센도를 따라서 진군함

  • 신슈 우에다 성 사나다 마사유키와 전투를 하느라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 못함



  1. 후쿠시마 마사노리

  • 도요토미 히데요시 칠본창

  •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5군 지휘관

  • 혼슈 주부 오와리 국 다이묘, 24만 석

  •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동군 선봉 부대로 활약함



  1. 도도 다카토라

  • 이요 국 다이묘, 8만 석

  • 임진왜란 당시 수군 부대 지휘관, 옥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함

  • 명랑 해전에서 왜군 총 사령관이었지만, 가토 요시야키, 와키자카 야스히루,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함께 이순신에게 패배함



  1. 가토 요시아키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칠본창

  • 임진왜란 당시 수군 부대 지휘관,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함,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을 무찌름



  1. 구로다 나가마사

  • 구로다 요시타카의 아들

  • 구로다 요시타카는 절음발이로 한산 영화에서 일본군 모사로 나옴

  • 규슈 부젠 국(현 후쿠오카 현 일부, 오이타 현 일부)

  •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3군 지휘관

  •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르던 다이묘 중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동군에 가담함




2026.1.17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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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마지막 주에 구입한 책도 있지만, 함께 정리했습니다. 



1. 토지 1권

아직 토지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구매했습니다. 엄청난 장편 소설인데, 긴 호흡이 필요하겠죠.



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025년 12월 구마모토로 여행을 갔는데,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기대가 됩니다.



3. 국화와 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6월 미국무부의 요청에 의해 루스 베네딕스 작가가 일본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교보문고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책을 구경하다가 구매했습니다. 가끔 생각지도 않게 책을 구매하네요.  



4. 센고쿠 시대 무장의 명암

시바 료타료 작가의 <세키가하라 전투> 시리즈를 읽다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구매했습니다. 많은 다이묘들이 서군, 동군으로 나누어서 세키가하라에서 싸웠습니다. 임진왜란에 출전한 다이묘들이 거의 출전을 했습니다. 임진왜란에 관심이 높은 저로서는 전후의 일본 변화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구매 후 살펴보니 굳이 구매할 만한 책은 아닌거 같습니다. 



5. 일본 전국시대 130년 지정학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전국시대 주요 전투에 관한 책입니다. 많은 지도가 있어서 당시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당시에 국으로 나누어진 지도와 현재 현으로 나누어진 지도를 한 눈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6. 겨울어 사전

아내가 독서 모임 참석을 위해 구매한 책입니다. 독서 모임보다는 친목 도모인데, 그래도 이런 만남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항상 느끼지만,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이 별로 없고,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기 때문에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26.1.16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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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50만 부 뉴에디션)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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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기존 사고의 잘못된 점과 언론과 전문가의 잘못된 관행에 휘둘렸을 수도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는 다른 차원입니다. 이 책은 13개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답한 후에 채점을 했더니 5개만 정답이었습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과거의 통계를 알려주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어보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Factfulness> 는 무엇일까요? 한국어로 '사실충실성'이라고 번역했지만, 어색합니다. <Factfulness> 를 팩트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뜻하는 용어로 설명하면, 비로소 이해가 쉽습니다. 팩트는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볼 때 소규모, 제한적, 단일 데이터를 보면 안된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데이터는 적습니다. 그저 데이터를 분석한 언론이나 전문가가 알려 주는 결과만 봅니다. 그들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비교하면서 정확한 분석을 하면 좋겠지만,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합니다.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결과에 유리한 데이터만 의도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언론과 전문가가 전달하는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결과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이해하고, 필요하면 다른 결과와 데이터를 찾아보는 태도와 관점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태도와 관점입니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태도와 관점이 잘못되면, 그 현상을 개선하려는 목표와 방향이 달라지고,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Factfulness> 가 중요합니다. 



인구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하게 증명된 방법은 극빈층을 없애고, 교육과 피임을 비롯해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삶이 나아질 부모는 자녀를 더 적게 낳는 쪽을 선택했다. (P. 131)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걱정을 합니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큰일이라고 떠듭니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출산을 막거나 인구 통제 정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몇 가지 데이터를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 중 0~5세 아동은 20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2100년은 어떨까요? 그리고,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극빈층과 인구 증가 억제하고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과연 강제적으로 출산을 막거나 인구 통제 정책이 맞는 방향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좋은 접근 방법을 알려줍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소득 수준으로 4단계를 구분해서 각 단계 기준으로 데이터를 보는 것입니다. 각 단계의 생활 방식, 수준, 사고 등을 분석하고 파악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면서 현상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으로 데이터를 봐야 합니다. 비교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중요성을 오판하지 않으려면 수를 하나만 잡고,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로 하나의 수 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믿으면 절대 안된다. 수가 하나라면 항상 적어도 하나는 더 요구해야 한다. 그 수와 비교할 다른 수가 필요하다. (P.185)



큰 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흔히 그 수를 총합으로 나누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총합이 총인구일 때가 많다. 어떤 수(홍콩인구)를 다른 수(홍콩의 학교수)로 나누면 비율(홍콩의 학교수)이 나온다. 총량은 구하기 쉬워서 쉽게 알 수 있다. 누군가 무언가를 세면 그만이다. 하지만, 비율이 더 의미 있을 때가 많다. (P. 196)



언론과 전문가에만 의지해서 어떤 현상에 대한 결과를 듣고,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직접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와 정보가 한정적이니 그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은 해야 합니다. 




언론에 의지해 세계를 바라본다면, 내 발 사진을 보고 나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발도 내 일부지만, 꽤 못 생긴 일부이다. 내게는 그보다 나은 부위가 여럿 있다. 팔은 대단하지 않지만 꽤 괜찮으며 얼굴도 그럭저럭 괜찮다. 내 발 사진이 나에 대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내 모습 전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P. 265)




가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은 그 전문성을 활용할 곳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더러 어렵게 얻은 지식과 기술을 본래의 활용 영역을 넘어선 곳에도 적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수에 집착하고, 기후 활동가는 틈만 나면 태양 에너지를 강조한다. 의사는 예방이 더 나을법한 경우에도 치료를 장려한다. 훌륭한 지식은 해결책을 찾는 전문가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여러 해법이 모두 그 나름대로 특정 문제를 훌륭히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은 없다. 따라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P. 273)


얼마전에 한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하는 중에 기자 간담회를 하는데, 조선비즈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쿠팡 사태에서 중국인이 관여해서 불편한 감정이 있는데, 중국이 이런 배경을 알고 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한심한 질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니 기레기라는 용어를 안 쓸 수가 없죠. 쿠팡 사태에서 중국인이 관여해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나요? 많은 사람들은 사건 발생 후 제대로 대응을 안하고, 한국 사람을 무시하는 미국 CEO나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직원들 때문에 더 화가 난 것이 아닐까요? 백번 양보해서 중국인이 관여해서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양국 정상과 논의할 주제인가요? 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쿠팡 CEO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고 논의하자고 하죠? 미국 방문할 때 이렇게 물어보라고 할건가요?


하나의 데이터만 가지고,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이런 해석과 주장을 하니 어처구니 없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동행해서 전세기까지 타고 갈 정도이면, 최소한의 상식과 전문성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희망합니다. 물론, 과거 데이터이기 때문에 현재는 모르겠습니다. 온화한 기후, 멋진 집, 편리한 쇼핑, 여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총기 사용, 의료비 지출, 인종 갈등 등의 이슈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연한 정보보다 정확한 데이터 기반으로 비교하고, 나누어서 본인 판단에 활용해야 합니다.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약 9400 달러로 다른 4단계 자본주의 국가의 약 3600 달러보다 2배가 넘는데, 미국 시민은 이 많은 돈을 쓰고도 다른 나라보다 기대 수명이 3년 짧다. 미국의 1인당 의료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미국보다 기대 수명이 긴 나라는 39개국이나 된다. (P. 284)



전체 국가와 비교하지 말고, 같은 수준의 4단계 자본주의 국가와 비교합니다. 전체 의료비 지출이 아니고, 1인당 의료비 지출을 비교합니다. 비교하고, 나누어서 데이터를 파악합니다.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데이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자세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저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이터는 절대적인 열쇠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어서 데이터의 신뢰성과 그 데이터 생산자의 신뢰성을 보호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데, 사용해서는 안된다. (P. 337)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데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P. 357)



2026.1.11 Ex. Libris HJK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5년 10월 어느날 저녁, 수업이 끝나고 세계를 둘러싼 오해와 맞선 일생일대의 싸움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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