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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 전5권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세키가하라 전투 1권 ~ 5권을 완독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절판되어서 구매는 할 수 없었고, 주변 도서관에도 없어서 상호 대차를 통해 대여를 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서군, 동군으로 나누어져서 세키가하라 지역에서 전투를 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을 좋아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 왜란을 반대했고, 조선으로 출병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서군은 임진 왜란에서 살아 돌아간 다이묘들이 참전하고, 동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반대한 다이묘들이 가담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역사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수하로 많은 이득을 챙기고, 임진 왜란에서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충성을 다짐했던 많은 다이묘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6살 아들 히데요리를 버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머리를 수그렸습니다.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 명에게만 충성할 뿐이었고, 그에 대한 충성도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60만 석 영지를 거느린 최고 다이묘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감히 대항을 못하고, 그를 위해 전투에서 싸우면서 자신들의 영지를 보존할 생각만 했습니다. 동군이 승리함으로써 임진 왜란에 참전했던 다이묘들이 모두 제거되기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걸고 전투를 할 때 주변에서 함께 싸우면서 주군을 지켰던 7명이 있습니다.
그들을 칠본창이라고 부릅니다. 7명 중에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토 기요마사, 가토 요시아키는 동군에 가담해서 선봉 부대로 서군과 싸웁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임진왜란 당시 제5군 사령관이었고, 가토 기요마사는 제2군 사령관이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3대 왜성 중 하나인 울산 왜성에서 조명 연합군을 물리친 다이묘였습니다. 가토 요시아키는 임진왜란 당시 수군 지휘관이었는데,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패하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에서 승리한 다이묘였습니다.
영화 한산에서 왜군 총사령관 이었던 와키자카 야스히루도 칠본창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충청도, 전라도 관군을 무찌렀고,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는 세키가하라에서 서군으로 참전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서군을 배신하고, 공격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과 동군 군대 규모는 비슷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군단 3만 2천 명은 세키가하라에 도착했지만, 2군단 3만 8천 명은 우에다 성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막혀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을 못했습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직속 군대가 7천 명 정도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직속 군대만 7만 명이었으니, 비교할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그래도 서군에 모리 가문, 시마즈 가문, 고바야카와 가문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승리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루 만에 끝날 전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리 히데모토, 시마즈 요시히로가 전투에 참전 안하고, 중립을 지키고, 고바야카와 히데야키가 배신하고, 서군의 측면을 공격함으로써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에 군대만 싸운 서군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 당시 제4군 지휘관이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제1군 지휘관, 우키타 히데이에는 제8군 지휘관이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영화 노량에서 사천 왜성을 지키다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순천 왜성 앞바다로 공격을 진행한 장수였습니다. 물론, 이순신에게 패배를 합니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19만 석 다이묘였습니다.
도요토미 가를 지키겠다고 하면, 많은 다이묘들이 의를 내세워 서군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50만 다이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다이묘들을 포섭해서 동군으로 참여하거나 중립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권모술수의 대가라고 부릅니다. 의를 생각한 이시다 미쓰나리를 치사한 권모술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리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쟁 경험도 별로 없는 문관 출신이면서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고, 지휘하겠다고 생각한 이시다 미쓰나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의를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다 가문의 지위를 박탈시킨 장본인 이었으니깐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아니었다면,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가문이 멸망했다고 해도 조선의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조선인을 죽인 많은 왜군 장수들이 무사히 일본으로 넘어가 서로 편을 나누어서 싸웠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에 모리 가문의 조슈 번과 시마즈 가문의 사쓰마 번이 합심하여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정한론을 앞세워 다시 한반도로 진출합니다.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서군 주요 다이묘
이시다 미쓰나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5대 부교 중 행정 담당, 19만 석, 오미 사와 산성
임진왜란 때 병력 이동, 군수품 운송 총 책임자
전투 경험 미약하고, 군대 통솔 역량이 부족함. 자신의 신념과 주장에 매몰됨
히데요시가 규슈 지쿠젠 국, 지쿠 국 100만 석 다이묘로 영지를 주려고 했지만, 거절하고 오미 국 시와 산성으로 만족함. 히데요시를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실책이었음. 만약 100만 석 다이묘가 되었다면, 3만 명 직속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음
주요 가신 : 시마 사콘(사망), 가모 사토이에(사망)
병력 6천 명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후일을 기약한다며 도망감
결국, 붙잡혀서 교토에서 처형당함
모리 데루모토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 5대 부로
주코쿠 지방 서쪽(현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 120만 석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오사카에서 머무르면서 참전 안함
세키가하라 전투는 모리 히데모토, 깃카와 히로이에가 참전하지만, 중립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음
모리 히데모토, 깃카와 히로이에 병력 2만 명
시마즈 요시히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4군 지휘관
노량 대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함
조명 연합군으로부터 3대 왜성 중 하나인 사천 왜성 방어
규슈 최남단 사쓰마 국, 오스미 국을 통치하는 다이묘(현 가고시마 현)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 서군으로 참전하여 전투를 했지만, 이시다 미쓰나리의 부족한 역량에 실망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중립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음
서군의 패배가 확정되자 철군을 시도했고, 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동군의 포위를 뚫음
시마즈 가문의 군대 규모는 작았지만, 전투 능력이 뛰어났다고 함
시마즈 가문이 규슈 전역을 점령한 적이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함
에도 막부 시대에 사쓰마 번이었고, 모리 가문의 조슈 번과 함께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끔
고니시 유키나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1군 지휘관
한양, 평양성 점령
3대 왜성 중 하나인 순천 왜성 방어하다가 노량 대전 당시 이순신 장군을 피해 도망감
규슈 히고 국 다이묘(현 구마모토 현)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으로 참전하여 적극적인 전투를 한 3대 다이묘 중 하나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에)
병력 6천 명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배신 이후 서군이 무너지고, 도주함
붙잡혀서 교토에서 처형당함
우키타 히데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 5대 부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8군 지휘관
주고쿠 비젠 국, 미미사카 국을 통치하는 다이묘(현 오카야마 현), 57만 석
병력 1만 7천 명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배신 이후 서군이 무너지고, 철수함
오타니 요시쓰구
이시다 미쓰나리 맹우, 장님
오미 국 다이묘, 5만 석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고, 배신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군대를 막으려고 노력함
전면의 동군과 후면의 배신한 고바야카와 히데야키와 전투를 하는 와중에 와키자카를 비롯한 소다이묘들도 배신함으로써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할복을 통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함
와키자카 야스히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칠본창 중 한 명
임진왜란 당시 용인 전투에서 충청도/전라도 관군을 무찌름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함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으로 참전하지만, 배신하고, 서군을 공격함
고바야카와 히데야키
고바야카와 타카카게 양자
고바야카와 타카카게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6군 지휘관이었고, 5대 부로. 33만 석. 벽제관에서 명나라군을 무찌름. 웅치, 이치 전투와 행주 대첩에서 조선군에게 패배함
규슈 지쿠젠 국, 지쿠 국 다이묘(현 후쿠오카 현), 52만 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처조카. 자식이 없어서 히데요시가 양자로 입양하지만, 히데요리가 태어나서 고바야카와 타카카게 양자가 됨. 당연히 히데요리에게 좋은 감정이 없음
지능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함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자 서군을 배신하고, 공격함
병력 1만 5천 명
조소카베 모리치카
나쓰카 마사이에
동군 주요 다이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5대 부로, 동군의 수장
간토 8국 다이묘, 256만 석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3만 2천 명을 이끌고 참전함. 주나곤 히데타다 병력까지 포함하면 총 7만 명 병력이었으므로 최대 규모의 군대였음
주요 가신 : 혼다 마사노부,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주나곤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명령에 따라 3만 8천 명을 이끌고 에도를 출발함
이에야스는 도카이도를 따라서, 히데타다는 나카센도를 따라서 진군함
신슈 우에다 성 사나다 마사유키와 전투를 하느라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 못함
후쿠시마 마사노리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라
구로다 나가마사
구로다 요시타카의 아들
구로다 요시타카는 절음발이로 한산 영화에서 일본군 모사로 나옴
규슈 부젠 국(현 후쿠오카 현 일부, 오이타 현 일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3군 지휘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르던 다이묘 중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동군에 가담함
2026.1.17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