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리커버 특별판)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아래는 나의 경험담이다. 


유튜브를 보면, 순식간에 1 ~2 시간이 지나간다. 홈에 나온 동영상만 시청할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동영상 시청하는 옆에 관련 동영상 리스트가 나오고, 하단에 댓글도 있고, 심지어 동영상 끝난 후에도 관련 동영상이 화면에 나온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시청하도록 해야 하니 제목은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내용은 보잘것 없는데, 제목은 마치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낚시질이 많다. 도움을 받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목적을 가지고 유튜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시간 보내기 용도로 유튜브를 시작한다면, 아무 의미 없이 계속 유투브를 돌아다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지 않는다. 물론,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사진과 글을 올릴 때마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의 댓글, 좋아요는 그냥 내 만족일 뿐이다. 내 만족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행동이 문제이다. 물론, SNS에서 유명해져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콘텐츠가 없는 상태에서 신변잡기에 불과한 사진이나 글은 아무 생산성이 없다. 자기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올리기 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음식, 장소, 취미, 구입한 물품, 애완동물만 올릴 뿐이다. 게임을 좋아해서 네이버 카페 하나를 주요 이용하는데, 어쩌다 한 번 이곳에 글을 써도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이 쓰인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을 소개한다. 뇌의 뉴런, 시냅스, 해마 등을 설명하면서, 많은 사회과학 실험 결과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펼친다. 저자가 언급한 부작용의 예제 중 하나는 전자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이 2009년, 한국은 2011년에 출판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전자책이 앞으로 대세를 이룰 것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출판 형태, 독서 방식,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뀐다는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전자책은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책은 더 나은 읽기의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종이에 검은색 잉크로 찍힌 문자들은 깜밖이는 스크린 위에 여러 개의 픽셀로 만들어진 문자보다 읽기가 편하다. 온라인에서는 잠시만 읽어도 눈에 피로를 느끼지만 책으로는 수집 장 또는 수백 장을 읽어도 끄떡없다.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는 일도 간편하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의 말을 빌리자면 더 직관적이다. 가상 페이지와 비교해 진짜 책장은 더욱 빠르고 유연하게 넘길 수 있다. 또한 책 모서리에 메모를 할 수도 있고 감명 깊게 읽은 부분에 밑줄을 칠 수도 있다. 책 앞면에 저자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책을 다 읽으면 책꽂이에 꽂아 빈 공간을 채울 수도 있고, 친구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P.151)



나는 전자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이런 내가 종이책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형평성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독서는 시각, 촉각, 후각을 동반하는 행위이고, 이는 종이책이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활자를 읽고, 손으로 책을 느끼고, 종이의 냄새를 맡는 행위가 책을 읽는 동안의 사고, 상상력과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스티브 존슨은 새로운 킨들로 전자책을 읽자마자 "디지털 영역으로의 책의 이동은 단순히 잉크를 픽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고 쓰고 책을 판매하는 방식을 상당 수준 바꿀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킨들이 손끝에서 책의 세상을 확장할 수 있고, 웹 페이지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검색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이 디지털 기기는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인 다른 세상, 즉 저자의 사고 속 세계에 완전히 젖어드는 것을 잃게 될 것이 두려웠다. 우리는 점차 잡지와 신문을 읽는 데 이용하고 있는 방식, 즉 정신의 일부는 이곳에 두고 또 다른 일부는 다른 곳에 두는 방식을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P.156)



구글은 2002년부터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스캔해서 전자 도서관에 만들고, 구글 북서치를 통해 순식간에 검색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진행했고, 2009년에 저작권 문제로 제동이 걸렸지만, 이 꿈을 버렸는지는 모른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 수많은 책을 검색하고, 필요한 내용을 바로 찾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감각을 느끼고, 온전히 한 권의 책에 빠져서 상상하며 생각을 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를 절대 구글 북서치가 대신할 수는 없다. 구글 북서치 뿐만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구글에 대한 이미지는 선보다 악에 가깝다. 



독서에 더 많은 효율성을 부여하려는 구글의 노력에 숨겨진 역설은 우선 이 같은 노력이 책의 기술이 독서(그리고 우리의 사고)에 가져다준 다른 종류의 효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서를 해석하는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킴으로써 양피지나 종이에 쓰여진 글은 우리가 더 깊이 있는 독자가 되도록, 집중을 기울이도록, 그리고 의미 해석에 우리 뇌의 힘을 기울이도록 했다.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글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문서를 재빨리 해독할 수 있겠지만(오히려 예전보다 더 빨리 읽는다) 문서가 함축한 바에 대한 깊고 사적인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또 다른 관련 정보의 조각으로 그리고 또 그다음, 또 그다음 조작을 향해 서둘러 달려든다. 이 '연관 콘텐츠'에 대한 노상 채굴은 의미 해석을 위한 느린 발굴을 대체하고 있다. (P.244)



한 번쯤 자신의 SNS, 유투브, TV 시청, 게임 플레이 등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남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하는 것이 아니고, 나만의 콘텐츠가 있는지,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뇌가 이것들에 적응하면서 나를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2020.6.2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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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7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