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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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되기 전에 단어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 담긴 단어들 중에는 한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만난 것들이 더 많다. 그때는 재미있고 기발해서 유쾌했던 이야기가 다음엔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기도 했고 이제는 서글픔이 되기도 한다.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어모음집도 단어사전도 아닌 단어로 촉발된 이야기들이며, 생각보다 여러 편의 이야기들을 나는 읽지 못하는 시를 만난 것처럼 멈춰서 거듭 읽고 얼마간의 문해를 유예해두기도 했다. 뻔하지 않은 것, 반가운 놀라움은 고마운 돌발이다.

 

이것은 선의에 기댄 시스템이라기보단 어떤 믿음,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힘에 기댄 시스템이다. (...)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를 지탱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은 저자의 신간 연재를 미리 읽은 것과도 좀 다른 숙성을 거쳐왔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대표 공식처럼 쓰는 문장, 언어가 사유라면, 단어들은 사유의 표현형이자 시대에 따라 변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변 보는 일이 하늘을 나는 일만큼이나 무시무시해졌다.”

 

고요하지만 치열하게 뭔가를 관찰하거나 생각을 다듬는 사람, 그런 풍경, 그런 몰입, 그런 기록이 역시 좋다. 떨린다. 갈수록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어렴풋이 흐려지니, 그런 표현들이 활용된 이야기들을 만나 더 좋다. 잘 통하는 낯선 이와 나눈 짧은 대화가 기뻐서 기쁜 것처럼.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단지 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큰 눈이 와준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엄밀해지고 치밀해지려면 연필과 펜촉만 다듬어서는 안 된다. 정신이 그런 훈련을 견디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런 훈육을 거쳐야 한다. 게으르고 대강 살 핑계는 많고 많다. 나는 대개 매끈한 합리화에 재능이 있는 편이다. 그러니 그렇지 않은 이의 글은 늘 반갑다.

 

어느 쪽 입장이든 개떡같이 말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 찰떡같이 말해주세요.”

 

상황이 변했다고 달라지면 안 되는 것을 잊고 말았다. 마침 그런 이야기가 있어 얼른 다시 기억에 채워 넣는다. 남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 작은 차이를 여전히 남의 일이라 여기는 어리석은 나. 눈을 뜨고도 눈 먼 어리석음.

 

4일 연속 휴일에 느긋해진 틈으로 짜증이 솟았다. 어쩌면 조바심이 차오르는 길로 함께 흘러 나왔나보다. ‘왜 말을 못 알아듣는가는 내 불만은 내 설명이 부족한 탓일 것이고, 상대가 짜증을 부리고 제 방에 들어가며 상황 마무리를 회피하는 무례함은 과거의 내 행태일지도.

 

성실하게 화를 내고 끝까지 다퉈보자.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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