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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모든 개 ㅣ 흄세 에세이 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8월
평점 :
일요일 저녁 기차 안은 낯설었다. 기억 출력이 잘 되지 않으니 애써 상기해보려 하진 않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금방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창 밖 덕분에 책을 펼쳤다. 눈물바람을 하지 않으려면 공공장소가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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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출간작이라는 것에 놀라고, 무척 담담하게 쓰인 개‘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해서 또 놀랐다. 놀랐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감정적이 되는 내 태도 때문일 것이다. 모든 만남의 밀도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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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개들은 덤덤하게 별 의미 없이 생각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작가의 삶이 뜨겁고 아프고 농도가 진해서, 그 곁에 말없이 함께한 개들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덜 눈이 띄는 것뿐일 지도.
“밤낮없이 온 우주가 포효하는 것 같았을 때 코코가 없었다면 나는 그 어둡고 시끄러운 고독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 코코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내 발에 코코의 부드러운 발이 놓이면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
개들은 대개 인간보다 작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하다. 쓸데없는 말도 행동도 적다. 그러니 더 현명하다. 어쩌면 인간도 다섯 살에는 개처럼 집중력도 뛰어나고 뭐가 지금 가장 중요한 지도 다 알았을 것이다.
“온전한 정신이란 뭘까? (...) 자기한테 없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현명하고 분별 있는 개. (...)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청키보다 덜 이성적이고 덜 건전하며, 어떤 타격이 오기도 전에 먼저 꺾인다면 몹시 부끄러울 것 같았다.”
웃고 우는 아이처럼 개도 오직 전면적인 사랑을 한다. 인간은 그런 방식의 사랑과 관계를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어떤 다른 전략들을 진화시킨 것일까. 온통 불행한 이들 투성이지만, 80억이 넘었으니 어떤 성공이라 불러도 좋을까.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지만 생이 남아 있기에 고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기쁘다. (...) 확실히 너무 빨리 삶을 놓아버리기보다는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 기다려보는 것이 현명하다.”
나의 복슬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구원과 사랑은 오래 전 나를 떠났다. 남은 건 사진들뿐이다. 어린 내가 내 개와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 펼쳐든 책을 덮으니 곧 도착이다.
“사랑했지만 더는 내 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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