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이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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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울컥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쓰기보다 읽기를 하는 입장이지만 동기화되는 부분이 있다할 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살면서 한 번 화르륵...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몇 달 전 듣고 깊은 공감을 한 말깊은 빡침을 여러 이유로 상처 주기 싫고주목 받기 싫고후회하기 싫고정리 안 된 생각이 싫고 사르르 꿀꺽 삼키는 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한다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많진 않을 듯하다.

 

괜찮아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 이 선량하고 무해한 저자의 문장을 나는 책 읽자 당신은 평생 그렇게 살아.”로 바꿔 읽는다저주하는 버릇 빨리 그만둬야 하는데……책과 영화는 들썩거렸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의식이다책은 나의 속도로 읽을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고 영화는 책장 넘길 기운도 없다 싶을 때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좋다.

 

저자에게는 의식 같은 동아줄이 글쓰기이다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라 흉내내볼 엄두가 안 나는 대단한 방식이다내 의심이 정당(?)했다는 것이 완독 후에 확신으로 증명되었다. ‘어떻게 쓰지 않을 수는 해소가 아니라 충전의 방식으로 작가를 돕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대화, ‘보다는 어쨌든 누군가의 거름망이라도 한 번 거친 이 편하고 그래서 읽기가 편한 나는 저자가 쓰기라는 방식을 을 택한 것을 또한 접점이라 여기고 묘한 동지애를 느낀다그러면서 말하듯 글 쓰는 내 이율배반은 어쩌나…….

 

일기도 아니고 사회과학서와 에세이를 오가며 매서운 타격과 웃겨주는 위트를 겸비한 필력의 글을 두고 이 무슨 건방진 비교인가 싶기도 하다뜨끔한 각성을 일으키는 진지한 글도 많고 재미난 글도 많지만 감탄이 나오는 적절한 어울림은 많지 않다.

 

나이 드니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자꾸 울컥거린다사람에게서 위로를 찾지 않아 혼자인 시간은 더 절실해진다게으른 성격 탓에 남이 다 해놓은 결과물을 적당히 이용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이 책을 읽으니 뭘 써야 할지 모르면서 뭐라도 써볼까 싶기도 하다.

 

내가 보낸 글들은 어디를 헤매고 있으려나언제쯤 당신에게 이윽고 한 끼가 되려나.”


헤매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감사한 여러 끼가 되겠습니다.

 

글을 쓰다 한 번씩 두려워질 때마다 나는 외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글은 결국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글이다.’”


제목에 끌린 이들에게는 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필요가 있을 거라 믿는다비슷한 통증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서로를 잘 알아본다.

 

저자로서글을 썼다기보다는 똥을 쌌다고 느껴질 때 마음을 붙잡는 법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겪고 많이 써본 사람은 수두룩하다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더 많이 알고 겪고 써도 두 개의 프리즘을 가질 수는 없다.”


공들이지 않는 내 글에는 깨소금처럼 뿌려지는 묵은 버릇이 있다원칙은 그냥 써라쓸 말이 없어질 때까지막 써라이지만 아주 오랜 제도권 교육 탓에 나중에 읽어보면 교훈과 권유와 비판 등이 흩뿌려져 있다이 무슨 추태인가 싶지만양질전환이 일어날 때까지 그냥 막 써보기로 했다저자의 프리즘을 통과해서 만난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 을 찾지 못했다.

흔히 책을 읽는 것도 소통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현실 소통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그래서 재밌다행간을 잘못 읽어도 책은 잠적하거라 꾸짖지 않으니까내 멋대로 해석하고 오해해도 내게 피해가 돌아오진 않으니까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까.”

 

요즘 내 삶에 뚜렷하게 등장한 소통말로 하는 소통은 쉬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더구나 나는 낯선 사람의 육성도 처음엔 잘 안 들린다그 점이 외국어 공부할 땐 뻔뻔함으로 도움을 주었다. “난 원래 모르는 사람 말 잘 안 들렸어.” 어쨌든 소통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내 책읽기에는 현실소통이란 진화한 목표는 없다현실에서 가능한 삶이 제한적이라다른 사람들 무슨 생각하는지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이 주목적이다예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어딘가 머물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기도 하며 겪은 것들은 참 느린 과정 같지만 오래 떠나지 않는다그런 경험과 이해는 해를 거듭해서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탄탄한 바닥이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책읽기는 저자의 말처럼 지나치게 쉬운 경험에서 오는 부작용이랄까반응반작용티키타카가 없으니 아까울 정도로 빨리 흐릿해지기도 한다.

 

글을 쓰려는 마음의 저 어디 한구석에도 '남겨질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살짝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하릴없이 소멸해가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안간힘. '내가 있()'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기록이란 매일 사라지고 있는 인간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 불멸에의 기도와 같다고. 20세기에 태어난 나는 4000년 전에 기록된 수학책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은 짧디 짧은 인간의 수명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까불안이 거센 시절이다전혀 심각하지 않았던 옛날 옛적 질문이오만하고 자신만만했던 내 대답이 자꾸 떠오른다그 대답은 내게 아직 유효한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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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강을 건너가는 징검다리 - 중등수학과 친해지는 방법 종합안내서
김종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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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과서나 학원의 수험서와는 완전히 다른 중점다른 분위기다른 방식으로 들려주는 수학이야기입니다수학을 포기하기까지 괴로워하고 미워하는 감정들이 엄청났을 것이고 누군가 계산할 수 있다면 지구를 다 뒤덮었을 것이지요.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겠지만저자가 수학과 친해질 수 있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점이 색다릅니다설득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니가장 좋은 방법인 사례들을 들어줍니다수학과 친하게 된 사람들의 경험담들누군가 어떤 경험을 했다는 것은 내 자신도 경험 가능한 옵션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

 

바로 수학공부하자 하지 않고 게임들을 먼저 소개해줘서 재밌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수학 교과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는데각 단원 별 의미와 배경을 알려 줍니다왜 항상 집합!부터 시작하는 이런 순서인지 저도 중학생때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삼십년(?) 만에 듣습니다그런데 교과서가 달라졌네요.

 

고등학교 수학과정들까지 파트별도 정리되어 있어서교과서 수학을 다 아우르는 책이었습니다산책이나 갈까 했다 동네 뒷산 올라가고 뜻밖에 연결된 등산로로 북한산까지 등반한 느낌입니다.

 

시험과 성적 올리기 비법 이야기는 전혀 안하면서 수학 공부하라고 부드럽게 둘레길처럼 이야기하는 독특한 책입니다수학이야기책수학교과과정 해설서가이드북혹은 힐링책처럼도 느껴집니다.

 

이유도 모른 채 뭘 자꾸 풀이하라고 하는 수학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화가 날 때 이 책에 담긴 무척 포괄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면기억한다면 격렬한 거부감이 누그러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암기를 잘 못하고 싫어해서 수학은 한 단원에 공식 하나만 이해하면 되니까그리고 풀어본 문제는 다시 풀 수 있으니까 편해서 좋아했습니다문과/이과가 나뉘고선택과목들도 있던 고등학교 시절 역시 물리는 외울 게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암기과목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렸던 심정을거부감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잘 모를 바도 아니지요더구나 친절하고 재미난 설명과 수업이 부족하던 시절계절이 바뀌는 것은 곧 거듭되는 시험들 준비로 바빴던 시절.

 

수학은 재밌고 신기하고 수학이란 언어의 가치는 인류 문명에서 비교대상이 잘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이지만그것과 별개로 학창시절 수고로움과 속상한 마음이 부드럽게 위로 받은 기분도 듭니다.

 

이전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수학은 언어입니다그러니 언어에 사용되는 단어들을 정확히 알아야 어휘를 늘려갈 수 있습니다단어 정의를 정확히 잘 살피고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들을 연습하고남들이 만든 문장들을 정확하게 해석해 보고조금 더 힘들고 조금 더 재밌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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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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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인가 했던 것은 아주 섣부른 판단이었다석기시대의 수영으로 시작하는 도입에 깜짝 놀라고 유쾌했다소위 수영이 놀이나 레저가 되기 전분명 수영은 생존을 위한 채집과 사냥 능력이었을 것이다현대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는 왜 수영을 할까?Why we swim” 이 책에서는 수영의 이유를 5부에 나눠서 다룬다. 생존건강공동체경쟁몰입그저 이론적인 내용을 담은 게 아니었다수영하는 이유를 직접 듣기 위해 여러 국가의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대를 높였고 역사적으로 흥미를 끌만한 주제로 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수영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느낌물 이야기를 한동안 읽다 보면 생각도 물에 녹은 듯 노곤하고 찰랑찰랑 부드러워진다.

 

“(수영은책 읽는 것과 같아요책에 빠져들면 바깥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잖아요.”

 

수영도 그런 면이 있지만 더 완벽하게 나와 내 호흡만 존재하는 명상의 순간과도 같은 경험은 다이빙을 했을 때이다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듯혹은 보호받는 듯 묘한 경계의 세계.

 

네덜란드 아이는 필수적으로 수영 수업을 받아야 공공 수영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그 수업을 거쳐 옷과 신발을 모두 착용한 채 수영하는 능력을 인정하는 수료증을 받아야 한다나는 네덜란드의 5학년 학생들이 수영 수업에서 옷을 다 입고 물속에 들어가 있는 사진 한 장에 매료되었다. (...) 원래 우리는 항상 옷을 입고 살지 않은가? (...) 요컨대 물과 함께 사는 법을 익혀야지물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생존수영이라 불리며 학교에서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판데믹 이후에는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물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그러면 가능성이 열린다처음에는 물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영한다. (...) 하지만 일단 살아남는 법을 익히면 물은 더 큰 무언가를 선사한다우리는 물과 함께 살고 물과 함께 번창할 수 있다.”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늘 물속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니 조심해야겠지만어떤 의미인진 조금은 알 것 같다물속에 머무는 일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것이 세계를 확장하고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현재도 인종 간 수영 실력의 격차가 크다흑인 아이가 익사하는 비율은 백인 아이가 익사하는 비율의 5배가 넘는다다른 여러 분야처럼 수영 인구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돈이 중요하다미국에서는 수입이 5천 달러 미만인 가구에서 자란 자녀의 약 80퍼센트가 수영을 아예 못하거나 잘하지 못한다.”

 

수영과 인종소득격차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놀랐다한국의 상황도 궁금하다어느 나라건 수영이 의무교육의 필수과정이 되면 좋겠다출발선의 차이는 좁힐수록격차는 메워질수록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경외감믿기 힘들거나 불가해하거나 자기보다 더 큰 무언가를 목격할 때 느끼는 이 감정은 시간 개념을 환기하고 확장한다. (...) 경외감의 효과는 강렬해서 현재를 넘어선다여유롭고 조급할 것이 없다고 느끼며 더 너그러워진다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는 awe가 있다. aweful로 먼저 만난 이와 awesome으로 만난 이는 이 단어에 대한 느낌이 아주 다를 것이다우주공간을 들여다 볼 때 느낄 것만 같은 그런 기분, awe는 본원적이고 본능적이고 대체불가해서 멋지다.

 

태아는 자궁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폐를 키워나간다몸에는 턱과 기도의 일부를 이루는이른바 아가미구멍gill slit’이 있다아가미로 호흡하는 수생 척추동물에서 진화한 흔적이다바닷물과 인체 혈장의 무기질 함량이 유사해서 백혈구는 바닷물에서도 한동안 살아서 기능할 수 있다.”

 

아가미폐와 아가미 모두 기능하면 좋았을 것을그랬다면 혹 바다로 돌아갈 인간들도 꽤 많았을지도.

 

“2002년에 콕스는 수온이 0도인 남극대륙 바다에서 1. 6킬로미터 이상 수영했다그리고 이 조건에서 수영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2007년에는 수온이 영하 2. 7도 이하인그린란드의 디스코Disko만에서 수영했다. (...) 콕스는 구드라우구르처럼 의학 연구에 기여했다덕분에 연구자들은 다발성 경화증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통찰을 얻고(차가운 물에서 수영하면 물에 들어간 이후 장시간 근긴장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심장과 척추와 뇌 질환에 대한 치료 절차를 크게 개선했다(몸을 차갑게 하면 붓기와 외상이 감소할 수 있다).”

 

물속에서 몸의 통증이 사라진다는 내 경험은 이렇듯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물론 이 정도로 차가운 물에 들어 간 적은 없고 안 그럴 수 있다면 평생전혀경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따뜻한 물에 들어갈 때도 원기가 회복된다연구에 의하면 약 32도 물에서 1시간 동안 머리를 내밀고 있으면 심박수와 혈압이 떨어지고 몸이 이완된다같은 시간 동안 14도의 물에 들어가 있으면 신진대사율이 350퍼센트 상승하고 도파민이 250퍼센트 증가한다.”

 

선택할 수 있다면 이 편이 더 좋겠다.

 

한국에서 생존 수영이 떠들썩하게 거론된 시기는 한국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참혹한 사고와 구조실패가 발생한 이후였다여름의 바다 휴가도 물만 봐도 눈물이 나는 시간이 짧지 않았다지인들 중에는 바다가 배경인 영화를 보다 못 견디고 중간에 나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척 좋아했던 바다를 떠올리기만 해도 탈상을 못 끝낸 심정으로 눈이 뜨거웠다그래서 이 책 속에 빠져 여러 곳의 물을 들여다보며 나는 모르는 많은 이들이 물과 보낸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죽음의 장소로 가장 먼저 떠오른 지 오래된 물이 갖가지 삶의 모습들로 기록된 책을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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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부를 때 - 영화 「김복동」이 일깨워준 세상을 기록하다
송원근 지음 / 다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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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말이지만 해본다자연재해전쟁폭행사고살인은 겪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다예방하고 피해야하는 일들이다왜냐하면 나는 완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경험적으로도 다친 곳들은 절대 완치되지 않는다흉터가 눈에 띄는 물증이라면 통증은 나만 아는 후유증이다.

 

몸도 그렇고 정신도 마찬가지이다덮고 가리고 대체하고 잊었다 믿고 살 수는 있지만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어리석은 말이라 한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극복기를 잘 못 읽는다낫지 않은 이들이 나았다고 하는 말은 서럽고 눈물겹다나아야 할 사정이 있었을 뿐이다같은 일을 겪어도 반응은 다 다르고나만 빼고 다른 이들은 다 지혜롭게 잘 이겨내는 듯도 보인다.

 

가장 놀라운 이들은 그런 것쯤 계기로 삼아 참 멋진 존재로 대단한 삶을 사는 분들이다그렇다고 망가진 채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모욕하고자 하는 뜻은 전혀 없다몸의 상처는 어쨌든 아물겠지만 정신적 상해는 더구나 극복할 자신이 나로선 전혀 없다.

 

다쳤을 때 가장 중요한 치로 단계는 가장 가까운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들에게 알리고가능한 전문가의 치료를 받고일상으로 복귀해서 살아 보는 일이라고 한다그런데 이런 위로를지원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사신 분들이 계신다.

 

그런데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증거 삼아 다른 이들에게 그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며 사신 분들이 계신다어떤 심정이고 생각이셨을지 나는 짐작할 도리가 없다.

 

이 상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나는 이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내 삶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죽기 전에는 사과 받을 수 있을까그때 나는 무엇이었는가언니는 왜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을까미안하다는 말로 내 상처가 나을 수 있을까세상 어디에내 속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며 전 세계를 다니며 싸우는 중에제 나라 정부는 대신 돈 받았으니 끝났다하고정권이 바뀌어도 유구히 살아남은 친일 세력들은 일본 극우와의 거래를 통해 공항에서 속옷까지 뒤집히는 모욕을 당하게 하고,

 

<그 이름을 부를 때> 소리 내어 제목을 말해도 이렇게 글로 써도 눈이 뜨거워진다. 10월 1일에 처음 읽고 호들갑스럽게 울기만 했다헤아릴 길 없는 김복동 할머님의 시간을 헤아리려 하지도 않고 영화나 보고 말았다는 자책이 컸다피해자 일인도 생존자 일인도 아닌 인권운동가로 사시다 가신 분의 뜻을 헤아리지도담담하고 진중하게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쓴 송원근 피디/작가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현실은 차가웠지만김복동의 삶은 사람이 품은 온기로 따스했다그것이 영화 속에 녹아 있다차가운 현실과 연대의 따스함이 색 보정 작업을 통해 잘 구현되길 바란다고 김 감독에게 말했다. ‘현실은 차갑되사람은 따뜻하게.’ (...) 사실 뉴스타파에서는 색 보정 작업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색 보정에도 테마가 있다는 것을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닫는다.”

 

과거에 머문 건 오히려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일갈을 던지던 이들이었다김복동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았다지금 피해를 입은 곳 소식을 들으면 당장의 현실에서 돕고 사셨다돌아가신 후 전 재산은 재일동포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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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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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이라는 엄청난 작품을 쓴 저자의 신작이다역사적 배경 자체로도 충격이 크고 관련된 한국의 다른 사건들이 떠올라서 겨우 읽고 기록으로 남기지도 못했다쉽지 않은 글을 쓰는 저자의 묵직한 작품이었다.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내게 무척 낯선 작품이다소설은 그런 경험을 해보라고 마련된 멋진 기회이고대체로 시공간여행은 설레고 즐겁다그리고 잘 쓴 문학작품이란 늘 그렇듯 독자가 잠시만 참고 읽다보면 자신의 세계로 쑤욱 옮겨다 주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강도약탈을 소재로 하는 케이퍼 픽션이 주는 현실감이 두렵다거절을 제대로 못하는 약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범죄에 휘말리는 것이 슬프고 무섭기도 하다아무리 개인이 굳은 다짐을 한다 해도 살아가는 환경이 털어내지 못하는 끈끈이처럼 달라붙는 것이 무참하다.


그런데... 시작부터 조마조마하며 언젠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불안한 기대를 품으로 읽다 지쳤는지 신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놓았다 들었다 애를 쓰며 계속 읽었지만 중단이 잦았던 탓인지 이야기들이 온전히 떠오르지 않아 속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1VREP-5Rg8

 

[할렘 블루스Harlem Blues]를 연속 재생 시켜두고 명상을 하듯 집중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할렘가의 모습이 영화 이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장면들에서는 긴장하며 읽었지만새롭게 알게 된 사실... 미국식 블랙 코미디 잘 이해 못하는 사람이었어.


제대로 된 지식보다 조각난 지식정보가 대부분인 삶이라서 특정 분야에 대한 식견은 아주 모라자거나 전무하기도 하다그 탓에 비판만이 아니라 풍자 역시 예술적으로 갈무리해 문학을 잘 읽어 내지 못해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다조금 더 나이가 많아지면 조금 더 잘 이해할 그런 행운도 생길까.


카니가 보기에 인생은 지금껏 배웠던 방식대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온 곳은 정해져 있지만그보다 중요한 건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세월이 그들을 원래의 모양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게 실수였다그를 만들어낸 환경이 상관없다고 믿은 게혹은 그 환경을 넘어서는 게 더 나은 건물로 이사 가거나 똑바로 말하는 걸 배우는 것만큼 여긴 게 실수였다.”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대목은 그만두고 싶다고 고민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대신 무척 당당해진 모습의 자기합리화를 마주하던 순간이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이 공고해지고 세련되어가고합리화하는 방식 역시 절대 평생 안 쓴다는 자신도 없고해결책이 아니라 대체하는 임시방편인줄 알아도 그 순간 힘들고 지친 상태면 끝까지 반대도 못하고그런 내 자신과 현실 탓에 부정하고픈 마음이 묘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용감한 사람으로 내내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게으르고 비겁하고 나태한 선택을 자주 한다내 상상으로 담을 수 없었던 시절과 환경을 살았던 이들혹여 <할렘 셔플>의 리듬을 전혀 몰라서 삶의 흐름도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한참 음악을 들어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PG5zRd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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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2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공도서관 구매신청해놔서 한 달쯤 기다릴 셈이었는데, 미국식 블랙 코메디 쫌 아시는 분이라면 더 느낌 오는 소설인가보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poiesis 2021-10-27 19:43   좋아요 0 | URL
저는 아는 게 없어서 조금... 문해력이...ㅠㅠ 뉴욕에 사는 지인에게 권했는데 그 지인도 60년대 할렘과 미국식 유머를 잘 알아들으려나 자신은 없다고 하네요. 생각해보니 한국의 60년대도 지금과 천차만별... 이런 거 다 문제 안 되고 잘 읽으실 수 있는 독자들도 많으실 거라 믿습니다. 혹 읽으시게 되심 무척 즐겁게 읽으시게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