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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평점 :
<니클의 소년들>이라는 엄청난 작품을 쓴 저자의 신작이다. 역사적 배경 자체로도 충격이 크고 관련된 한국의 다른 사건들이 떠올라서 겨우 읽고 기록으로 남기지도 못했다. 쉽지 않은 글을 쓰는 저자의 묵직한 작품이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내게 무척 낯선 작품이다. 소설은 그런 경험을 해보라고 마련된 멋진 기회이고, 대체로 시공간여행은 설레고 즐겁다. 그리고 잘 쓴 문학작품이란 늘 그렇듯 독자가 잠시만 참고 읽다보면 자신의 세계로 쑤욱 옮겨다 주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강도, 약탈을 소재로 하는 케이퍼 픽션이 주는 현실감이 두렵다. 거절을 제대로 못하는 약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범죄에 휘말리는 것이 슬프고 무섭기도 하다. 아무리 개인이 굳은 다짐을 한다 해도 살아가는 환경이 털어내지 못하는 끈끈이처럼 달라붙는 것이 무참하다.
그런데... 시작부터 조마조마하며 언젠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불안한 기대를 품으로 읽다 지쳤는지 신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놓았다 들었다 애를 쓰며 계속 읽었지만 중단이 잦았던 탓인지 이야기들이 온전히 떠오르지 않아 속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1VREP-5Rg8
[할렘 블루스Harlem Blues]를 연속 재생 시켜두고 명상을 하듯 집중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할렘가의 모습이 영화 이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장면들에서는 긴장하며 읽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미국식 블랙 코미디 잘 이해 못하는 사람이었어, 난.
제대로 된 지식보다 조각난 지식정보가 대부분인 삶이라서 특정 분야에 대한 식견은 아주 모라자거나 전무하기도 하다. 그 탓에 비판만이 아니라 풍자 역시 예술적으로 갈무리해 문학을 잘 읽어 내지 못해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지면 조금 더 잘 이해할 그런 행운도 생길까.
“카니가 보기에 인생은 지금껏 배웠던 방식대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온 곳은 정해져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세월이 그들을 원래의 모양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게 실수였다. 그를 만들어낸 환경이 상관없다고 믿은 게, 혹은 그 환경을 넘어서는 게 더 나은 건물로 이사 가거나 똑바로 말하는 걸 배우는 것만큼 여긴 게 실수였다.”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대목은 그만두고 싶다고 고민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대신 무척 당당해진 모습의 자기합리화를 마주하던 순간이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이 공고해지고 세련되어가고, 합리화하는 방식 역시 절대 평생 안 쓴다는 자신도 없고, 해결책이 아니라 대체하는 임시방편인줄 알아도 그 순간 힘들고 지친 상태면 끝까지 반대도 못하고. 그런 내 자신과 현실 탓에 부정하고픈 마음이 묘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용감한 사람으로 내내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게으르고 비겁하고 나태한 선택을 자주 한다. 내 상상으로 담을 수 없었던 시절과 환경을 살았던 이들, 혹여 <할렘 셔플>의 리듬을 전혀 몰라서 삶의 흐름도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한참 음악을 들어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PG5zRd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