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년은 딱 한 줄만큼의 일기를 매일 적어 나간다.

첫 시작은 청량하고 더운 여름이었다.

7월 15일 동생과 선생님과 함께 시냇가에 갔다.

7월 27일 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

7월 28일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소년은 애벌레를 발견하고 하늘의 비행기를 바라본다.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여름을 지난가을로 접어들 때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된다.

9월 1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9월 7일 독일 사람들이 XXXX를 점령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적힌 글씨는 9월 14일 바르샤바는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1939년 폴란드에서 8살 소년이 연필로 쓴 일기는 긴 시간이 지나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온다. 다행인 것 하나는 저자 소개에 적힌 바로 이 문장이다. 지금은 고요한 노인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미하우 스키빈스키의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봄과 함께 찾아온 전쟁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암담하고 불안한 마음이 봄을 장식하고 있다. 이전 두 번의 봄은 코로나와 함께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전쟁 소식까지 접하게 되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나라의 전쟁이라 나는 나 할 일을 하며 그저 평소처럼 지내면 되는데 컴퓨터 우측 하단에 습관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영상을 틀어 놓으니 어쩔 수 없이 전쟁 속 그들의 모습을 매일, 매 시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들에게 빵과 물을 주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러시아 군인들 모습이 비쳤다.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전쟁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일까.


평온하고 고요한 날 속에 봄을 알리는 햇살이 비치고 있다. 봄이란 무엇인가. 봄이면 나는 늘 그렇듯 무력감을 느낀다. 생명이 동트는, 세상이 온통 멍들기 시작하는 봄이면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봄이 오는 걸 막을 수 없다. 한 인간이 계절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무력감은 대단하다. 텅 비어 있는 소리를 듣는다. 텅 비어 있는 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점점, 조금씩 텅 빈 소리는 나의 몸으로 파고 들어온다. 텅 빈 소리는 텅 비어 있기에 진짜다. 하지만 정말 괴로울 때는 텅 빈 소리가 깨지는 소리다. 그건 이를테면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리처드 막스의 노래를 틀었다. 리처드 막스의 노래는 사랑에 관한 노래가 많다. 리처드 막스에 관해서는 저 앞에서 한 번 했었다. 리처드 막스는 아내를 무지막지하게 사랑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만든 곡들이 있다.


아내는 배우였다. 아내가 영화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로 떠나고 그곳에서 몇 개월이나 영화를 촬영해야 했다. 리처드 막스는 그 기간을 참을 수 없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혼자 있는 시간이 지옥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불안함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자신과 아내를 갈라놓을 것만 같은 불안. 불안은 끝내 리처드 막스를 아내가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자를 신청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렸지만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만든 곡이 ‘Right Here Waiting’이다.


바다만큼이나 멀어져 가요.

매일매일 그리고 난 서서히 미쳐가고 있죠.

전화로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만 이 고통을 멈추진 못하는군요.

내가 당신을 거의 볼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이 노래는 그저 혼자서만 부른 곡인데 친구가 앨범에 넣자고 했고, 리처드 막스가 받아들여서 지금 우리가 듣게 되었다. 리처드 막스와 아내의 사랑은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엔 ‘영원’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은 2014년에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꽃을 피우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렸던 것들에게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는 것.



Right Here Waiting https://youtu.be/S_E2EHVxN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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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06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애절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왠지 그 제목 뒤에 다른 노래인 Now and forever 을 붙여도 이야기가 이어질것 같은 느낌이네요.

교관 2022-03-07 11:02   좋아요 0 | URL
리처드 막스의 노래들은 참 듣기 좋은데 따라 부르기 너무 어려운 ㅋㅋㅋ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근래에는 줄어들었다. 필시 코로나가 세계를 덮친 후 소확행이 줄어들고 있다. 나의 소확행은 정말 별거 아니어서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글로 적는다면 열심히 말할 수 있지만 구어로는 말하지 못한다. 나의 소확행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지는 라디오를 듣는 것, 좀 더 정확하게는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집중적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 커피를 마시며 라디오를 들을 때에는 주위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지디(정지영 디제이)도 세상의 온갖 것들의 방해로부터 보호막을 펼치듯 멘트를 하고 노래를 들려주기 때문에 이런 소확행을 매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확행이 언젠가부터, 딱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근래에는 주위로부터 의식의 방해를 받는다. 두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에 관한 문제라든가, 백신의 후유증이라든가. 후유증은 심해서 미접종자로 분류되어서 아예 식당이나 카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게 되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지금, 오늘에 이르렀다. 백신을 맞고 부작용에 불편하다가 지금이야 괜찮아졌지만 언제 또 무슨 증상이 생길지는 모른다. 내 심장이 그렇게 몇 시간씩 쿵쾅거리고 요동을 치는데도 심박수는 80이고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는 걸로 나오는 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10년 넘게 매일 조금씩 조깅을 해서 심장을 단련시켜 그렇지 않을까. 단지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뿐이다. 그러는 와중에 오늘 오전에는 지디도 가족의 코로나 문제로 인해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소확행을 느끼고 싶을 뿐이지만 생각처럼 안 된다. 24시간 중에 의식의 방해로부터 2시간 정도만 동떨어져 있어도 좋으련만.


개학을 앞두고 초등학생 방역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사에 댓글이 수두룩했다. 교육부 장관을 나무라며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꼬집으며 윤은혜 장관은 뭐라 뭐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랬더니 그 밑에 윤은혜는 베이비복스의 멤버가 윤은혜이며 커피프린스 1호점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밑에 누군가 베이비복스의 노래 가사를 댓글로 달았고 누군가는 그 밑에 후렴구를 댓글로 또 달았다. 여러 사람들이 그 후렴구에 맞게 얼씨구 하며 리듬을 맞추었다. 그 밑의 또 다른 댓글에는 커피프린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밑에는 공유의 이야기가 있었고, 공유는 역시 부산행이지 하며 가지치기로 부산행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우리 학교는 까지 이어졌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어서 웃음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려나.


속보를 매일 접하다 보니 속보라는 단어에 둔감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속보가 떴다. 오미크론과 전쟁과 대선에 관한 뉴스가 분당 단위로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코로나 시기에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 때문에 집을 버리고 길을 떠나기에 피난민이 아니라 피란민이다. 전쟁이 나면 미사일이나 총을 맞아서 죽기도 하지만 그 외의 변수에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어느 책에는 그 나라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동물원부터 폭발하라고 되어 있다. 굶주린 육식 동물들이 기어 나오게 되면 군인들의 전투력에 해를 끼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피란길에 오르면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그에 따른 질병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전쟁이 끝이나도 후유증을 앓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유튜브를 통해 피란길의 그들을 보게 되었다. 겁에 질린 얼굴과 힘이 없는 발걸음. 그 어디에서도 희망이라는 것을 엿볼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겁을 집어 먹고 어딘가 도망이라도 가고 싶지만 그곳에서는 도망도 함부로 칠 수가 없다. 피란길에 코로나라도 걸리게 되면 이건 정말 치명타다. 코로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잘못으로 탓하고만 싶고, 전쟁을 일으킨 푸틴에게는 분노가 인다. 대통령이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걸 알지만 모른 채 지내다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곧 대선이다.


인스타그램 중에 한 분은 암에 걸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병상일기를 꼬박꼬박 올리고 있다. 병실에서의 처절하리만치 암과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상세히 매일 올리고 있다. 풍성하던 머리숱이 정말 거짓말처럼 숭덩숭덩 빠지는 걸 보여주는데, 그러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꼭 표현하려고 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은 정말 그 고통이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달이 되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 시기에 암에 걸려 항암치료라든가 수술을 받으며 보내다가 열이 오르면 코로나 검사까지 겸해야 하니 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암 치료를 하면서 들러야 하는 진료과목은 늘어만 가고, 새로운 의사를 만나고, 간호사를 잘못 만나 팔이 온통 멍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렸다. 그 마저도 유쾌하게 사진을 찍어 넘겨버린다. 그런 모습에서 인간은 비록 하찮은 존재지만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암에 걸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면서 스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짜증을 내지 않고 원래 가지고 있던 밝고 유쾌함을 낼 수 있는지. 이 코로나 시기라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요즘은 뜨거운 밥을 마른 김으로 말아서 간장에 찍어서 먹는다. 어릴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그렇게 먹지만 추억을 온전히 되살리기는 어렵다. 어릴 때는 그렇게 먹고 부른 배를 잡고 방바닥의 요만큼 볕이 드는 공간에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실컷 음악을 들었다.


예전에 느낀 소확행은 지금 느끼기에는 이미 시공간이 바뀌고 몸과 마음이 나이가 들어서 방해를 받고, 오전의 소확행은 주위의 방해를 받는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거야.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재미있잖아,라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삶이 재미없어도 상관없다. 꼭 재미있고 다이내믹하지 않아도 된다. ‘나’라고 하는 인간 자체가 재미가 없는 인간이라 꼭 재미있는 인생은 필요 없다. 매일 그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고 그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약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박연준 시인의 ‘김밥 예찬’을 읽어보면 김밥이란 누군가에게 소확행이다. 김밥에 대한 애정은 나도 여러 번 드러냈다. 김밥은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음식이다. 젓가락, 숟가락 질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귀찮음이 없기 때문이고 맛있기 때문이다. 한 손에 들고 먹으며 다른 한 손으로 뭔가도 할 수 있다.

김밥의 얼굴을 보려면 잘라야 볼 수 있다. 김밥의 얼굴은 태어난 곳에 따라 참 별나고 각각이다. 마치 인간의 얼굴과 흡사하다. 누구에게나 김밥에 대한 추억 하나씩은 있을 텐데 박연준 시인은 김밥 사면 떠오르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전혀 상관도 없는 김승옥 단편의 ‘차나 한 잔’에 나오는 이 형이 떠올랐다. 순간 파도처럼 생각이 났다. 아무튼 박연준 시인의 말마따나 특별해서, 평범해서, 슬퍼서, 기뻐서 더 어울리는 김밥이다.


김밥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고 싶다. 존 쿳시의 말처럼 “힘든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라디오를 켜고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나 근사하고 지적인 대화를 듣는 일”라고 한 것처럼 매일 오전의 라디오를 듣는 건 나에게는 소확행인 것이다. 그런 소확행이 근래에는 줄어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소확행에 있어서 방해받지 않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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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WAR


하루키는 노몬한 전쟁에 대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정말 암담한 심정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러하리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오래전 오늘 우리도 일본의 침략에서 독립을 한 날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름도 한 번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죽어갔을까.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보면 죽음이 대량 생산된다. 우리가 매일 만지고 보고 먹는 것들이 대량 생산되는 것들인데 죽음의 가장 좋은 방법이 대량 학살이다.


차별이라는 말도 사라져야 하는 말이지만 무차별 역시 없어져야 하는 말이다. 대량 생산된 미사일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우크라이나의 어린이가 사망한 사진이 기사에 올라왔다. 너무 암담하다. 따분하지만 고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고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없었으면. 전쟁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유튜의 ‘원’을 크게 틀어 놓았다.


보노와 메리 제인 블라이즈가 부른 원 https://youtu.be/ZpDQJnI4O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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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컵라면만 한 게 없다. 날이 헤실헤실 거리며 바람을 동반하여 하늘이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보일 때에는 고민할 필요 없이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몸이 국물을 갈구할 때 이것저것 엄청난 것을 떠올리려 해 봐야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고민 없이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으면 그만이다. 빠르고, 간단하고, 무엇보다 맛있다. 근래에는 컵라면에 계란을 넣지 않지만 컵라면에도 계란을 하나 톡 넣어서 먹었었다. 겨울에 컵라면을 먹을 때는 계란을 하나 넣어야지. 끓이는 라면과는 다른, 계란이 풀어진 맛이 좋았다. 매운맛이 싫어서 컵라면을 더 그렇게 먹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학교 벤치에 앉아서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의 겨울은 분명 고드름이 꽁꽁 열리는 추운 겨울일 텐데 기억 속에서는 따뜻한 겨울의 모습이 가득하다. 아직 방학 전이었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후후 불어서 웃으면서 컵라면을 맛있게도 먹었다. 걔의 이름은 남자 이름 같아서 늘 놀림을 받았는데 집이 한 동네에 있어서 같이 등하교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에도 컵라면만큼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뜨거운 물에 데쳐진 후레이크를 서로 보이며 낄낄거리던 겨울이었다. 우리의 손에는 작은 컵라면이 있었다. 초4부터 아바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는데 컵라면 옆에는 아바의 치키티타가 흐른다고 생각을 하자. 겨울이지만 해가 쨍하게 떠 있고 바람이 없어서 포근했다고 하자.


아바의 노래를 듣게 된 건 순전히 특별 활동하는 부서의 선생님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형도 없고 누나도 없으니 내가 팝을 자연스럽게 듣게 된 건 아무래도 그 선생님 덕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 동화부라고 하는 특별활동반이 있었다. 나는 4, 5, 6학년 내내 동화부였다. 동화부라고 해서 특별히 동화를 배우거나 파고는 건 아니고 그냥 모여서 이야기하고 논다. 좋게 말해서 동화 이야기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늘 다른 길로 새 버린다. 동화부 선생님은 늘 팝을 들었고 우리에게 팝 가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팝송도 가르쳐 주었다. 이를테면 ‘워스~ 돈 컵이지 투미~’ 같은 노래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선생님은 뜨거운 물을 끓여 우리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이라는 게 각자 하나씩 들고 먹을 뿐인데 마치 다 같이 끓인 라면을 떠서 먹는 것처럼 친밀감이 있었다. 교실의 난로 주위를 빙 둘러앉아서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4, 5, 6학년 때에는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았다. 학교가 재미있었다. 학교가 재미있다니.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학교 시절 먼지처럼 보내서 그렇지 또 고등학교 시절에도 꽤나 드라마틱하게 보낸 것 같다.


5학년 때 담임은 싫었다. 담임은 장난감이 많은 나에게 자신의 어린아이들에게 줄 거라며 이사할 때 버리려거든 장난감을 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아버지에게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버리지도 않을 거면서 내 장난감을 5학년 담임에게 꽤나 주었다. 나는 미술작품 활동에 적극적이었는데 담임은 나를 부려 먹기도 했다. 자신의 어린아이들 숙제 같은 것도 같이 만들기를 바랐고 그림도 같이 그려주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교실에 와서 담임의 부탁으로 커튼을 갈아주기도 했고 손재주가 좋은 아버지는 교탁이나 책상 같은 것들도 손봐주었다. 나는 뒤에서 뾰로통하게 서 있었다. 어린 눈에도 담임은 밉상이었다.


무엇보다 담임이 가장 밉게 보일 때가 내가 컵라면을 먹을 때 나의 컵라면을 꼭 한 젓가락씩 먹었다. 계란이 들어있는 그 부분에 젓가락을 넣어서 면과 계란을 가져가서 먹었다. 내색은 못했지만 담임이 아주 싫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아니면 나는 늘 동화부에 가서 동화부 선생님과 아이들과 놀았다. 그곳에는 미운 사람도 없고 팝송도 있고 내가 컵라면을 먹을 때 한 젓가락씩 뺐어 먹는 사람도 없었다. 겨울이면 일주일에 몇 번은 컵라면을 먹었다. 동화부에서는 여러 가지 것들을 했다. 방패연을 만들어서 날리기도 했고, 학교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같이 다녔는데 그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했다.


동화부 교실 하면 늘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창으로 투과되어 들어오는 빛이 따뜻한 자리에 앉아서 컵라면을 물에 붓고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이 아주 좋았다. 컵라면의 맛있는 냄새가 동화부 교실에 퍼지고 그 애와 컵라면 3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이 정말 기가 막힌 시간이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그 애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은 기억이 난다. 컵라면의 뚜껑을 열기 직전까지의 그 시간. 그리고 우리는 호로록 거리며 맛있게 컵라면을 먹었다.


요즘은 컵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지 않는다. 대신 오징어도 넣고, 치즈를 넣기도 하고, 김치를 넣어서 휘휘 저어서 먹기도 한다. 조깅을 하다가 편의점을 지나치면 그곳에 앉아서 초등학생이 컵라면을 세 개를 놓고 먹고 있는 모습은 왕왕 본다. 그냥 컵라면, 마라탕 컵라면, 불닭 볶음면 컵라면, 이렇게 3개를 먹더라. 편의점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세계가 격하게 갈라졌다. 나이가 든다는 건 컵라면 하나 정도를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면 배가 부르다는 것이다. 거기에 밥까지 말아먹으면 뒹굴뒹굴하게 된다. 나도 한 번에 세 개의 컵라면을 꼭 먹으리라.


사랑의 달콤함을 알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길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터무니없이 짧다고 했는데, 컵라면도 주로 먹는 것만 먹게 된다. 수많은 컵라면을 다 먹어보기에는 나의 인생이 짧아도 한참 짧다고 생각된다.

또 먹고 싶네 컵라면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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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유튜브 자막, 근래의 일본 드라마에도 자막에 ~~ 하달까, ~~ 한달까, 같은 말이 많이 보인다. ~~ 하달까, 같은 말을 분명 몇 해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파란만장하달까, 이번 주는 어마어마하달까, 뿌듯하달까 같은 말이 여러 곳에 쓰이고 있고 또 대체로 다 어울린다. 약간의 의문스럽지만 긍적으로 말을 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전혀 알 수 없는 말에도 사용된다. ‘아방 아방 하달까’ ‘슭이한달까’ 같은 말은 큭큭큭 웃음이 나오면서 무슨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하달까, 이 말을 내가 처음 본 건 몇 해 전에 사진동호회 사이트에서였다. 내가 올려놓은 사진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는데 ‘달달하달까’라고 되어 있었다. 세상의 변화가 많고 그 폭이 있기 때문에 그 변화의 폭 안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 하달까 같은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에서 많이도 쓰이고 있어서 지금은 “오늘 몸이 상쾌한 건 운동 때문이랄까”라고 한 번 내뱉어야 할 것만 같다.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위 사진은(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연출한 사진이다. 그때 한창 사랑, 반가움, 그리움을 주제로 사진을 담고 있을 때라서 그에 맞는 사진을 찍고 다녔다. 둘 다 여자이고 한 명에게 남자 청바지를 입히고 남자 운동화를 신겨서 막 사귀는 연인처럼 확 덮쳐야 해! 해서 찍게 되었다. 좀 더 자연스러운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으로 올린 것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녀가 여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인해 다리가 나무처럼 뻣뻣해진 것이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속았다. 그래도 재밌었달까.


사실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는 ~~ 하달까 라는 말을 지금 이 피드를 빼고는 써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딱히 글에서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유라면 익숙하지 않아서이고 익숙해지지도 않을 것 같고, 익숙해지기도 싫다. 이런 고집은 왜 나오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달까.


이것이 유행이라면 이 유행에는 흥 하고 만다. 딱히 유행을 싫어하지는 않는데 휩쓸리기 싫은 유행도 있다. 영화도 사람들이 너무 한 목소리로 말하면 보기 싫어진다. 근래에 본 킹메이커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들 해도 크게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예전에 DC의 수어사이드가 나올 때는 이상하게 보기 싫었다. 너도 나도 마고 로비의 할리 퀸 이야기뿐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만 봐도 한참 못 미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방구석 1열에 패널로 나온 감독(영화 괴물에서 박해일의 선배 뚱게바라로 나오는)마저 그놈의 할리 퀸 퀸 퀸 퀸 최고! 하니까 더 보기 싫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듣기 싫을 때도 있다.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그 목소리가 꼭 못으로 유리병을 긁을 때 나는 소름 돋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몸이 거부를 한다. 라디오에 그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거나 소리를 제거한다. 문제는 너무 인기가 좋아서 라디오에는 아주 많이 노래가 나오며 광고에도 나온다. 맙소사랄까.


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도 많다. 외국에는 조니 미첼의 목소리가 정말 좋다. 가수 비의 음색도 좋아하고, 이소라의 소리도 좋아한달까.


~하달까, 이 말도 유행처럼 느껴져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하달까, 라는 말을 글로 읽어도 뭔가 웃긴데 초등학생의 입에서 말로 하는 걸 들으니까 하하 웃음이 나왔다. ~~ 하달까, 도 토착화가 될까. ‘너무’도 원래는 부정 의미의 부사였다. 너무 크고, 너무 밝고, 너무 깊고, 너무 춥다에 쓰였는데 ‘너무 좋다’가 모든 사람들에 의해 쓰이다 보니 부정적인 의미의 ‘너무’가 긍정적 ‘좋다’와도 나란히 할 수 있게 토착화가 되었다. 그리하여 몇 해 전에 ‘너무 좋다’가 되었다. 그래서 다 합쳐보면 ‘아 너무 좋달까.’


이런 말줄임은 어디까지는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고 어디부터는 안 되는 것일까. 스카, 생파, 아카, 버정 정도는 괜찮은데, 핑크 플로이드를 핑플이라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좀 그렇달까.

한 폭의 그림이랄까



노을과 하늘의 보색이 아름답달까



해넘이 직전이 멋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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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2-28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관님 이제 보니 음란하지 않고 매우 건전하신 분이시로군요!ㅋㅋ
사진 멋집니다. 나중에 전시회 하세요.^^

교관 2022-02-28 18:03   좋아요 1 | URL
저 사진 전시회만 한 열 번 했을 걸요 ㅋㅋ 작년에는 시에서 지원받아서 소설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푸로젝트 빔을 쏴서 소설을 영화처럼 볼 수 있게요. 하지만 작년에는 10명 나오던 확진자가 느닷없이 500명이 넘게 나오는 바람에 폭증이라서 사람들 거의 못 오게 해서 망했지만요 ㅋㅋ 요즘을 보면 500명은 참 병아리 수준이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22-02-28 19:45   좋아요 0 | URL
앗, 사진 작가시군요! 몰라 뵈었네요. 어쩐지!ㅋ
와, 빔 프로젝트 쏴서 소설을 영화처럼요? 정말 볼만했겠어요.
안타까워라.ㅠ 조만간 다시하세요.
혹시 유튭에 올리시지 않으셨나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