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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꼬마 두 명이 손을 잡고 티격태격하며 어딘가 가고 있더라.

오빠는 한 8살 정도 여동생은 6살 정도로 보였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오빠가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가는 건 엄마가 동생의 손을 놓지 말고 꼭 잡고 가라고 오빠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짠하면서 예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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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면 불안하다.

도대체 불안하지 않을 때는 언제일까.

나의 불안은 고고하다.

높고 깊다.

그래서 쳐다보고 있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강물과 같다.

나는 언제부터 불안했을까.

분명 불안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을 텐데.

늘 불안에 떠니까 어쩌다 불안하지 않으면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불안하다.

불안이 바늘이 되어 여러 곳에서 찌른다.

불안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한다.

몇 시간 못 자는 잠이지만 잠이 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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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총장은 밤이 되면 장막 뒤에서 여자들의 치마폭에서 놀았지만 낮에는 학교 건립을 위해 직접 현장에 나와서 막걸리를 마시며 인부들과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덩치 크고 뚱뚱한 총장은 그런 가식조차 없다.

자신의 눈에 싫은 건 그냥 싫은 것이고 좋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수들도 자신이 싫으면 잘라 버린다.

뚱뚱한 총장이 술을 좋아하는 건 학교 학생들은 다 알지만 막강한 교수들과 함께 폭탄주 자리를 마련한 것을 경비로 처리했다는 의문을 사고 있어서 학총회에서 경비를 까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그러나 학교의 기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술자리의 경비가 공개가 되면 학보사에 의해 64살의 그 덩치의 그 뚱뚱함 때문에 이만큼의 술을 마시게 되면 앞으로 어떤 종류의 질병이 오게 되며 어떤 위험이 온다는 게 다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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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점점 유사종교가 되어 간다.

요즘 뉴스는 진실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진실을 만들어낸다.

진실이 아닌 진실.

뉴스 하나가 진실을 만들어 내면 다른 채널에서 같은 뉴스를 또 내보낸다.

그리고 파뿌리처럼 여러 채널에서 같은 뉴스를 뿌린다.

사람들은 뉴스가 만들어낸 진실을 진실이라 믿어버린다.

종교화되어서 그 믿음에 토를 달거나 의견을 달리하면 죄인 취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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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핍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면 결핍인 상태다.

그건 곧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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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받으면 그대로 통증이 되는 사람이 있잖아.

통증이 가득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야기가 참으로 슬프네.

독도를 우리나라 지도에서 빼버린 우리나라 국방부장관을 보며 경성 크리처를 보고 있으니 존나 슬프고 또 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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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조깅을 하다가 5월에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지금까지 전단지를 붙여가며 찾으러 다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아지를 찾으러 다닌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몹시 슬퍼했다.

내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며 어디서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걱정이 너무 된다고 했다.

나는 유기견 두 마리를 키웠다.

한 마리는 18년을 살았다.

또 한 마리는 뒷다리가 안으로 꼬였고 이전 주인인지 누가 그랬는지, 가위로 혀를 조금 잘라서 그런지 데리고 왔을 때 6개월을 짖지 않아서 수술을 했는지 알았다.

병원에 데려갔을 때 심장이 너무 안 좋아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냥 키웠다.

7개월이 지나가면서 좀 친해져서 그런지 짖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를 주무르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1, 2년 정도 살 거라던 강아지도 11년 정도 살았다.

두 마리를 키우면서 잃어버린 적은 없었지만 만약 잃어버렸다면 끔찍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점점 추워지는데 7개월째 매일 강아지를 찾으러 다니는 아주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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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새해 계획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참 난처하다.

그놈의 계획이란 게 나는 없다.

계획 같은 거 짜봐야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다.

계획이라고 한다면 계획 없이 내년 오늘이 되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다.

새해가 되어서 살뜰하게 계획을 짜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듯이 새해 계획이 없다고 비난하지 말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해 계획 따위 없는 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사강도 그랬잖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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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싫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책만 쓰는 마루야마 겐지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책을 사줘서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싫다지만 사람과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는 게 또 사람이다.

나는 여행을 가면 경치 좋은 곳을 가지 않고 늘 도시로 들어갔다.

도시 속으로 들어가 그 도시를 이루는 건물과 그 속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았다.

도시 속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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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내가 사는 곳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일가족 4명 중 3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괴물을 보면 첫 장면에 아파트에 불이 나잖아.

모두가 원하는 아파트에 산다는 건 사실 위험천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살기 싫다며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불을 피워 죽으려다 불이 나면 그 주위 모두가 위험하다.

편리하고 편해서 사람들은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그만큼 위험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아파트에 불이 나는 일이 점점 더 일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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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컨트롤이 안 될 때가 있다.

분명 내 마음은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감정이 먼저 앞선다.

분명 감정이라는 것도 나의 것이고 나인데, 감정은 마치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나와는 다른 기이한 존재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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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에 작은 카페가 생겨서 들어갔는데 공일오비에 ‘H에게’가 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고 노래를 들었다.

날은 흐릴 대로 흐려서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앓는 미술가가 심술궂게 그려 놓은 그림 같고, 난 수많았던 아픔밖엔 없지만 더 큰 아픔 주는 네가 되면 싫다는 가사가 나를 그림 속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갈비탕을 먹고 나면 바닥에 깔린 미미한 찌꺼기처럼 마음속에 늘 남아 있는 건 그리움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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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흐리고 날이 차고 세하다.

여긴 비와 눈이 내리지 않아 건조할 대로 건조해서 누군가 성냥이라도 들고 확 그으면 대기 중에 불이 확 붙어 버릴 것만 같다.

코 안도 마를 대로 말라 푸석푸석한 냄새가 여기저기에서 밀려 들어온다.

사람들은 1월인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리고 무표정으로 걸어 다니고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권태도 함께 딸려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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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드가 어느 날 생겼다.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곳이라 열심히 아무 말을 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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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예전부터 마녀사냥을 해서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유전자가 있어서 몰려들어 한 사람을 죽이는데 적극적이 된다.

죽이는 댓글 한 줄에 정의롭다는 뿌듯함으로 매일을 보내는 사람을 우리는 쓰레기가 부른다.

동료의 죽음을 추모하면 달려가는 쓰레기는 불에 태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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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정점을 찍으면 내려오는 길밖에 없으니 평행선을 이루면서 길게 살아가는 게 좋다는 말들이 많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점을 찍지 않는 것이 아닐까.

비록 떨어질지라도, 바닥까지 추락하더라도 꼭대기에 올라 거기서 밑을 한 번이라도 내려다보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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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죽어야지 같은 말은 정말 거짓말이다.

우리 엄마만 봐도 저 말을 가끔 하는데 막상 아프면 나 죽는다며 주위를 얼마나 괴롭히는데.

나이 든 사람에게 곱게 늙었네요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곱다는 말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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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 단편 소설집을 출간했는데 홍보도 하지 않고 무명인데 500명이나.

2년 전에 밀리의 서재에서 연락이 와서 전자 출간을 하게 되었다.

10년 전에 소설이 쓰고 싶어서 매일 쓰기 시작했다.

전자책 출간이 꿈이었는데 꿈을 이루고 나니 또 다른 꿈이 생길 것 같다.

매일 글을 쓴다는 건 매일 밥을 먹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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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게 별거 아닌 것이 아닌 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 보는데 패딩 소리가 영화 보는데 방해될 정도로 거슬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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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조깅을 함으로써 올해는 5일 빼고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조깅을 했다.

꾸준함이라고는 없는 나였는데 벌써 몇 년째 거의 매일 달리고 있다.

매일 비슷한 거리를 달리지만 늘 다른 사람들과 풍경을 마주하고 계절이 바뀌는 걸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다.

덕분에 십 년 전에 입었던 옷도 아직 입을 수 있어서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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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도 배부르면 앞에 있는 토끼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잖아.

배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밥을 찾아 먹는 건 인간밖에 없다.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재미로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것도 인간밖에 없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존재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감금하는 인간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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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크리처는 무섭고 공포스럽기보다 슬프고 안타깝고 또 슬프기만 하다.

이번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이라고 해서 그런지 경성크리처는 애틋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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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좋은 일 많이 일어나기보다 안 좋은 일이 안 일어나는 게 훨씬 좋다.

행복한 일이 많기보다 불행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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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본 지진 났는데 일본은 독도에 해일주의보를 내리고 우리나라 정부는 독도를 우리나라 땅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KBS에서는 일본 지진 뉴스를 내보내면서 지도에 울릉도까지만 표시를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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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싶을 때 오히려 시끄러움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소음 속에서 하나의 소리를 찾을 수 있다.

소음공해는 시끄럽지만 소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 준다.

아침부터 너무 시끄럽다.

곧 소음이 가득한 sns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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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떨어졌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을 먹어야 할 텐데.

아픈 게 싫어서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이 떨어졌다.

아파서 누워있는 것도 싫고, 아파서 모호한 정신으로 부옇게 보이는 세상도 싫어서 약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약통에 약이 없다.

약이 떨어질 리가 없는데 약이 없다니.

이럴 때 무력감을 느낀다.

아픈 것과 다르게 무력감은 무럭무럭 자라서 생각을 갉아먹고 뇌를 씹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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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증오는 왜 암보다 더 강력하게 세력을 넓혀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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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면 응 그래, 하지 말고 무엇 때문에 그런지 지금 당장 물어보라고!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에 힘이 자꾸 붙어서 공격하게 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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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드에 섹스 이야기는 왜 이리 많지. 전부 섹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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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지 하나만 있는 사람은 좀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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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경상도인데 도대체 경상도에서 누가 키스를 입술 박치기 한 번 조져보까 라고 하나.

아무튼 경상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말도 잘 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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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신질환이라고,

어디에서 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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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면서 화장실은 저쪽이고,

불이 났을 땐 비상구는 저쪽으로 대피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해서 직원도 너무 멋지게 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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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잠을 원하는데 머리를 잠을 거부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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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다.

0과 1 사이의 시간 같은 아침 7시.

하루가 지나가고 하루가 시작하는 시점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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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협박했는데 누구는 협박범이고 누구는 협박여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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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6살짜리 아이를 봐주면서 종이인형을 낑낑 거리며 자르고 있으니 아이가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격려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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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내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소심함이다.

소심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한 사람이라도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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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다들.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건 생각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생각이 비슷해야 이야기가 당연하지만 잘 통할 테니까.

성격도 비슷하면 정말 잘 맞겠지.

그런데 말이야,

이야기가 잘 통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에게 실망하면 그 배신감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는 클걸.

코뮌이 망하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우리는 많이 봤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종교가 불안한 것도 그래.

그래서 삶이 힘들고 인간관계가 어렵단 거야.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 오히려 잘 맞아서 오래오래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

으이그 그 인간이,라며 욕을 해도 어쩌면 나와 맞는 게 잘 없어서 시간을 들여 맞는 걸 찾는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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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차이?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진 게 아니라 싫증이 나거나 싫어진 거지.

한 가족도 서로 성격이 안 맞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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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은? 중대장 집에 갔어?]


[잘 모르겠습니다. 주말이면 보통 집으로 가는데 중대장 차 때문에 어제는 관사에서 잤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집으로 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커튼도 그대로고 인기척은 없습니다. 중대장 어차피 오늘 저녁에 다시 관사에 와야 하는데 집으로 갔는지 관사에 머무르는지 여기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차는? 중대장 차는?]


[차는 없습니다. 차는 아마 어제 카센터에 급하게 들어갔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몰고 집으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행정병에게서도 뚜렷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일단 이거 구워 먹기로 했으니까 출발하자]


[중대장한테 들키면 어떡합니까?]


[일단 짐은 애들 시켜서 청소하는 척하며 동초 뒤로 옮기고 우르르 몰려가지 말고 한 명씩 조용하게 가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철조망을 넘어 부대 뒤에 있는 호숫가로 갔다. 주말에 가끔 와서 고기를 구워 먹는 장소가 있다. 국방부의 일반 군인이 아니라 우리는 법무부 소속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어서 육군과는 좀 달랐다. 중대장은 국방부의 중대장처럼 군인신분이 아니라 일반인 공무원이다. 그래서 관사에서 평일에 지내다가 주말에는 보통 집으로 간다. 소대장들 역시 일반 공무원으로 돌아가면서 바뀐다.


내가 완고여서 나를 꼬신 녀석이 있었다. 굴이 이만큼 있는데 일요일에 호숫가에서 글을 구워 먹자는 나보다 한 기수 밑의 녀석이 자꾸 나를 꼬셨다. 이 녀석 때문에 한 번은 대학교 앞까지 가서 맥주를 마시고 오기도 했다. 그때 여자 후배들이 거기까지 왔었다. 따지고 보면 탈영이었다. 몰래 나가서 한두 시간 맥주를 마시고 또 몰래 들어왔다. 들킨 적은 없었다. 들킬 리도 없었다.


날이 좋은 주말에 와서 닭도 구워 먹고 고기도 구워 먹는다. 온통 산이라 누가 올 리도 없고, 누군가 온다고 해도 이 부근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그 사람들의 배농사를 도와주고 있어서 우리에게 나무라는 일도 없고 눈도 감아 주었다.


우리가 여기 오게 된 이유는 때마침 겨울이지만 날이 좋고, 통영 출신 희철이 부모님이 먹으라고 굴을 잔뜩 보내주었다. 굴이 너무 많아서 행정실에도 한 냄비 주고, 각 내무반에도 한 냄비씩 돌렸다. 그래도 한 박스나 남았다. 우리는 라면에 넣어서 끓여 먹다가 주말에 굴이나 구워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보통 중대장은 주말에 집으로 가니까 왕왕 철조망 건너 호숫가에서 우리만의 주말을 만끽하곤 했다. 사실 중대장에게 걸려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바뀐 중대장은 규칙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날이 맑고 청아한 겨울날이었다. 호숫가에 비친 햇살이 튕겨 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명당자리다.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를 넣어서 불을 땐 다음 고구마나 닭을 포일에 싸서 넣어 두기만 하면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같이 마실 요량으로 운전병을 시켜서 소주를 피티병으로 사 와서 쟁여 두었다. 피티병의 소주는 독해서 물에 조금씩 타서 마셨다. 불을 지피고 불판을 올린다. 그리고 그 위에 굴을 초장에 찍어서 올렸다. 초장은 이 세상 모든 소스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소스다. 굴의 겉면에 바른 초장이 불에 타들어가면서 단맛과 짠맛이 익어가며 굴에 스며든다. 잘 익은 굴을 하나 집어서 차가운 소주와 함께 먹으면 겨울에는 그야말로 별미다.


나이가 엇비슷한 애들이 군대라고 와서 계급으로 나뉘어 지내다 보면 기분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아예 구타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중대장, 소대장이 같은 군인신분이 아니라 일반 공무원인 경우 군대에서 당하는 부조리에 대해서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럴 때 고참이 수위조절을 해줘야 한다. 가끔 이렇게 호숫가에 나와서 소풍처럼 고기를 구워 먹으며 화합의 시간을 가진다. 여름에는 돌아가면서 배 밭에 거름을 준다. 농민들이 전부 나이가 많아서 대민지원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호숫가가 배 밭 옆에 있어서 숨어서 소풍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굴은 겨울에 먹는 굴이 최고다. 초장에 찍어 그대로 먹어도 맛있고 초장을 묻혀 불판에 직화로 구워 먹어도 맛있다. 굽는 족족 사라졌다. 뜨거운 굴이 입 안에서 바다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소주를 한 잔씩 마셨다. 희철이는 고참들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희철이에게서 아버지의 굴 자랑이 이어졌다.


그때 행정병이 산으로 우리를 찾으러 왔다. [주, 중대장이 다 집합하랍니다. 중대장이 여기로 가는 걸 보고 있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중대 전부 운동장에 모여 있습니다. 불시 인원점검입니다]


큰일이 난 것이다. 내려가니 전부 연병장에 모여 있었다. 다른 내무반 아이들이 일요일에 불시 점검한다고 불려 나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날 중대장은 우리 모두를 영창을 보내려고 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튼 군대에서 몰래 나가면 탈영이다. 굴 한 번 구워 먹으려고 하다가 난리가 난 것이다. 굴은 요즘에 먹어도 맛있다. 굴 국밥도 맛있고, 라면에 굴을 넣어서 먹어도 맛있다. 김치에 들어간 굴도 맛있고, 초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굴 그대로의 맛이 좋다. 굴의 비릿한 맛과 함께 터지는 굴속의 시원한고 명쾌한 맛이 좋다.


굴을 좋아한다고 숟가락으로 막 퍼먹지는 않는다. 굴은 하나씩 집어서 입 안에서 그 맛을 느끼면서 먹는 게 좋다. 굴은 아무튼 그런 매력이 가득하다. 굴을 저렴하게 자주 먹을 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굴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영차영차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중대장은 안 그래도 법무부 소속으로 군 생활을 하는 우리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제대로 걸린 것이다. 그때 중대장에게 내가 다 벌린 일이니까 나 혼자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애들은 야간 근무도 해야 하니 이 많은 인원이 전부 영창을 가면 중대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전부 뒤집어쓰겠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나를 꼬신 그 녀석(도 바로 내 밑의 투고이기 때문에 영창을 가도 된다)도 같이 무릎을 꿇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이들을 배경삼이 뒤로 슬쩍 물러갔다. 저 새끼, 저거 내가 죽이고 만다.


중대장은 나의 말을 듣고 더 노발대발했다. 예전에 잠시 행정업무를 맡아서 보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 중요한 서류를 청에 보내야 하는데 그만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적이 있어서 중대장이 펄떡 띈 사건이 있었다. 중대장이 하루종일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연신 굽신굽신거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샘통이던지. 중대장은 안 그래도 나에 대한 미움이 컸다.


[그래, 좋아. 너 혼자 영창 가!]


아, 나는 망했다.


굴 한 번 맛있게 구워 먹으려고 하다가 이게 무슨 난리인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뒤로 숨어버린 그 녀석은 내가 죽이고 만다. 그 녀석 때문에 부글부글했는데 소대장들이 중대장을 말렸다. 일요일에 잠깐 호숫가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 한 것뿐인데 영창은 너무했다는 식으로 중대장을 달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막내들이 근무하는 동초근무 일주일로 끝낼 수 있었다. 동초 근무를 할 때 또 하필 사고가 터지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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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1-0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비슷한 일로 군기교육대 일주일 가서 돌군장에 폐타이어 끌다 왔지 말입니다.

교관 2024-01-08 11:23   좋아요 0 | URL
지옥도를 경험하셨군요 ㅎㅎ 고생하셨어요
 


미국의 한 구석에서 자매가 노래를 불렀다. 월슨 자매 중 언니 앤은 동생 낸시에 비해서 통통한 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말을 할 때 더듬거리거나 잘하지 못했는데 글쎄 노래를 부를 때에는 전혀 떨지 않았다. 동생 낸시는 언니와 다르게 날씬했고 기타를 잘 쳤다. 자매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끈다. 우리 밴드를 하자. 그래서 윌슨 자매는 자신들이 노래를 부를 밴드를 찾아다닌다.


[노래의 시대별 순서라든가 윌슨 자매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전문 리뷰어들의 영상 보기를 권합니다. 이 이야기는 학창 시절 음악 감상실에서 디제이가 하는 이야기를 입을 벌리고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내 마음대로 적는 이야기입니다]


윌슨 자매가 그렇게 찾아간 그룹이 ‘하트’였다. 하트는 형제 밴드가 하고 있었는데 자매 밴드가 합세를 하게 되었다. 이 멤버들의 조합이 희한한 게, 동생 낸시와 하트의 동생이 사귀게 되고, 언니 앤이 하트의 형과 사귀게 되면서 잘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조합이 된다. 형제와 자매가 사귀게 된 꼴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이 붙어서 만들어내는 곡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하트 하면 ‘얼론(언론 아니다)’이 가장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졌지만 70년대에 만들어진 ‘크레이지 온 유’는 정말 최고다. 특히 낸시의 기타 실력이 엄청나다. 끝장내버릴 어쿠스틱의 연주를 낸시는 과감하게 보여준다. 3분 가까이 전주를 어쿠스틱 하나로 연주해버리고 난 뒤 등장하는 앤의 보컬은 말해 뭐 해였다.  


Heart - Crazy On You - Ann & Nancy Wilson Live 1976  최고다!!

https://youtu.be/9kRf0DpWUP0?si=12rucJI0GCWtRCLi



꿀 떨어지는 커플이 두 팀이나 되니까 곡들이 마구 분출한다. 낸시의 기타는 남자들만의 세계였던 록 세계에 경종을 울렸고 앤의 보컬은 우주까지 뻗어나갔다. 좋은 곡들이 너무 많은데 설명하려니 힘들고, 시간이 죽 흘러 낸시의 남자 친구가 약을 하고 뭐 그러면서 불화가 터진다. 결국 한 팀에서 사랑을 하게 되면 나락으로 가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언니 앤도 헤어지면서 하트에는 원래 형제 멤버가 나가고 앤과 낸시만 남는다.


이상하지만 두 사람이 활동하며 만들어내는 노래는 좋은데 4명이었을 때만큼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죽 활동하다가 결국 11집인가? 아무튼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중단한다. 그러나 밴드 크루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어떤 레코드사도 윌슨 자매와 계약을 하지 않는다. 먹고사는 것 때문에 당시에 무슨 광고에도 출연하게 된다.


그 당시에도 언론은 앤과 낸시가 사귄다는 식의 사진과 글을 게재한다. 아무튼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쓰레기 언론은 늘 있기 마련이다. 윌슨 자매는 여러 레코드사를 찾아가지만 다 퇴짜를 맞다가 한 군데에서 계약을 하자고 한다. 단 조건은 레코사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활동을 하는 것이다.


기본의 선 머슴아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낸시를 섹시하게 홍보한다. 낸시의 트레이드 마크인 어쿠스틱을 버리고 전기기타로 바꾸고 앤 역시 자꾸 통통 해지는 몸을 커버할 수 있는 화장과 헤어스타일로 무장을 하고 활동을 한다. 그때 나온 노래가 ‘얼론’이었다. 대박인 것이다.


완전 대박이었다. 앤은 당시 악마와의 계약이지만 어쩌구 같은 이야기를 얼마 전에 한 것으로 안다. 이때가 한창 엠티비가 세계의 인기를 독차지할 때라 듣는 것 못지않게 보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다. 얼론과 함께 나온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는 하트를 알리는데 최고였다. 앤은 토르 같은 의상을 입었지만 헤어와 화장 덕분에 정말 화려하고 예뻤고 낸시는 미국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섹시하면서 멋졌다. 낸시가 기타를 들고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면 그 모습이 마치 바브 와이어의 파멜라 앤더슨 같았다. 그렇게 하트를 홍보했다.


Heart - Never https://youtu.be/zWzy5q_M5Ho?si=6iNdHdxOyU7vZG5r


Heart - What About Love? https://youtu.be/KE5GGMhmo-M?si=Sqdv_A-24QCLwchl


역시 얼론을 들어봐야겠지

Heart - Alone https://youtu.be/1Cw1ng75KP0?si=eOD1TEyTpuNRQWL1


최근에 원년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서 공연을 했다. 크레이지 온 유를 부르는데 소름 돋았다. 정말 너무 멋졌다. 가장 최근에는 앤의 남편이 낸시의 아이들을 폭행해서 자매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가정사는 참 어렵고 힘들다.


2016년 Crazy On You https://youtu.be/e282K74eTLY?si=VDCWkTLfI-Cal6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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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머니의 등살에 며칠 묵게 된 외삼촌의 아파트는 거대했고 주택이었던 우리 집처럼 춥지 않았다. 외삼촌은 저녁에 잠깐 볼 뿐이었지만 사촌동생과 노느라 즐거운 것도 잠시 저녁이 어스름 다가오면 나는 외삼촌을 마주하는 게 무서웠다.


자다가 일어나 새벽에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에 나왔다가 배를 벌리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가오리는 마치 그 벌어진 배로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새벽에 보는 가오리는 너무나 컸다. 어둠의 열매를 먹고 살아나서 날개를 펄럭이며 나를 덮칠 것처럼 보였다. 화장실에 가려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가오리들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게 무서웠다. 중학생이나 되어서 무서운 게 왜 이리도 많은지.


그럭저럭 3일이나 외삼촌 집에서 보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사촌동생은 학원에 갔고 막내는 도우미에게 맡긴 채 외숙모는 나를 데리고 저녁에 나왔다. 저녁이면 외삼촌이 퇴근해서 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숙모는 괜찮다는 얼굴을 한 채 나의 손을 잡고 63 빌딩으로 데리고 갔다. 63 빌딩을 보니 밝게 빛나고 있는데 길쭉하고 아름다운 성 같았다. 차가운 겨울 저녁을 밝히는 찬란한 불빛에 놀랐고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서 또 놀랐다. 외숙모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나를 빌딩 안으로 이끌었다.


지하에 있는 아쿠아리움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서 거대한, 정말 거대한 가오리를 봤다. 서서히 움직이는 비행물체처럼 보였다. 머리 위에서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꼼짝없이 서서 가오리를 보고 있으니 외숙모가 가오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오리가 왜 그런 톡 쏘는 맛이 나는지 알아? 가오리는 온몸으로 소변을 배출하는 거야. 가오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온몸을 전부 사용한다.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는데 입으로만 하잖아. 그런 점에서 가오리는 너무나 멋진 생물이야]


외숙모는 외숙모 같지 않았다. 가오리는 보기와는 달리 ‘시’적이었다. 수족관에서 나와서 외숙모는 나를 데리고 63 빌딩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는데 외숙모는 내가 잘 먹을 수 있게 고기를 썰어 주었다. 그리고 63 빌딩 모형을 사주었고 초라한 나의 외투를 벗기고 좋은 패딩도 사주었다. 팝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프린스 앨범도 사주었다. 프린스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마이클 잭슨과 나이가 같으며 라이벌 같아서 두 사람이 늘 비교된다고 했다. 한국에는 프린스가 마이클 잭슨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외숙모는 키가 작은 프린스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노래도 마이클 잭슨보다 프린스의 노래를 더 좋다고 했다. 아마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프린스의 음악을 꾸준하게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반짝이는 불빛 아랫 누나 같은 외숙모에게 몇 개의 질문을 했고 외숙모는 큰 웃음을 보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그날 밤 외숙모는 사촌동생과 나를 욕실에서 목욕을 시켰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고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이후 무섭기만 했던 외삼촌과 대적하듯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다. 거실에 널려 있던 가오리가 밥상에 올라왔을 때 가오리 한 점을 집어 먹었다. 난생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야금야금 코끝으로 퍼지는 킁함을 느끼며 씹어 먹었다. 그해 겨울을 지내면서 조금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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