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위대하다고 느끼는 건 고등어를 구워 먹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말 위대한 존재이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느낄 때가 고등어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야이 고등어 같은 놈아,라고 할지 모르지만 루시드 폴의 [고등어]를 들어보면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을 지켜준 반찬이라면 고등어 같은 놈이라도 좋다. 노라조의 [고등어]를 들어보면 고등어는 ‘푸른 꿈과 푸른 등, 푸른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새우등을 터트린 고래처럼 힘이라면 킹왕짱 물개처럼 굳은 심지 굳은 깡 굳은 의지로 거친 파도 헤쳐 헤쳐’ 그런 존재가 고등어다.


고등어는 구워 먹으면 맛도 좋고 분명 몸에도 좋다. 그건 정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이컨, 이 베이컨을 아침마다 먹는 미국인들에게 베이컨이 좋은 음식으로 파고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에드워드 버네이스에 따르면, 일정한 자극을 반복해서 가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는 것이, 바꾸어 말해 어떤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 확신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 행동주의 심리학의 학성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의 영업인이 정육업자의 위탁을 받아 베이컨 판매 촉진을 모색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면 광고를 반복해서 무수히 내보냈을 것이다.


“베이컨을 많이 드세요. 가격 싸고, 몸에도 좋고, 여분의 에너지를 비축해 줍니다. 베이컨 드세요.”


새로운 영업인은 사회의 집단 구조와 대중심리학의 원리를 이해하기에 우선 이런 질문부터 던질 것이다.


“사람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누굴까?”


그 답은 명확하다.


“그래, 의사들이지.”


그러고 나면 새로운 영업인은 의사들을 찾아가 베이컨 섭취가 건강에 좋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의사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충고를 따르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아침 방송은 전 세계 어느 나라나 가정의 중심에 있다. 그런 아침 방송에서 의사들이 나와서 오전에 먹는 베이컨에 대해서 칭찬을 늘어놓는다. 매일, 자주, 여러 의사들이 그런 말을 한다. 미국인들은 빵과 빵 사이에 베이컨을 넣어서 먹기 시작했다. 베이컨은 미국인들의 국민적인 사랑을 얻게 된다. 점점 세계를 확장하더니 많은 나라의 호텔 조식에도 베이컨은 빠지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베이컨이 몸에 좋지 않고, 몸에 좋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해봐야 한 번 굳어진 베이컨의 세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저 앞에서 먼저 쓴 생활 속의 오류에서 영양제에 대해서 한 번 언급을 했는데 과연 매일 몇 알씩 먹는 영양제는 내 몸에 좋은지 어떤지 제대로 알고 먹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


베이컨처럼 영양제 역시 이런 광고와 선전을 통해서 하나의 완전한 세계가 되었다. 그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는 지금이 되었다.


좀 다른 얘기로,

지드래곤은 머리카락, 손톱 발톱 모두 음성이 나왔다. 마약에 대해서 무죄다. 지디에 대한 기사는 수십 곳의 언론이 지드래곤의 무죄는, 지드래곤의 마약 혐의는 무죄가, 지드래곤은, 지드래곤, 지드래곤 라며 꼭지에 지드래곤이 무죄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와도 사람들은 애초의 떠들썩한 기사와 인터뷰 때문에 마약을 하지 않은 지드래곤보다 마약을(하지 않았어도) 한 지드래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지디는 마약을 꾸준하게 하는 가수로 인식을 할 것이다.


누군가 지디는 마약을 하지 않았다고!라고 하면 뭐? 그래? 그렇지 뭐. 같은 반응으로 사람들은 일관할 것이다.


버네이스는 말한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자동차의 어떤 면을 보고 구입하는지. 보통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 구입을 하지만 자동차의 종류를 고르는 건 그것과는 무관하게 얼마 전에 그 형님이 이 자동차를 구입하여 자랑을 하더라, 아내나 애인이 이 자동차를 좋아하더라, 이 차를 몰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볼 것이다, 같은 생각이 자동차를 구매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보통 자동차는 나의 월급 곱하기 넉 달 치가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적절한 자동차의 가격이지만 대부분은 훨씬 비싼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간 우리가 철썩 같이 믿어왔던 것들이 뭐야? 아니잖아? 하는 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29/0002839278


인간은 이렇게 수월하게, 집단적으로, 단체적으로 혹 넘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고등어를 구워서 먹는 유일한 존재다. 인간은 위대하다는 말이지.



루시드 폴의 고등어나 들어보자 https://youtu.be/vTOLyOlVCD0?si=WpoMO_5zx2oyBZ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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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 문턱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에도 조안나골드는 주로 겨울에 먹었다. 하드는 여름에 먹었는데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밤에 따뜻한 방에서 두툼한 내복을 입고 동생과 함께 퍼 먹었다. 아버지가 겨울이면 가끔씩 아이스크림을 퇴근할 때 사 오셨는데 그게 뭐든 간에 그렇게 맛있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요즘 고르고 고른 아이스크림은 이상하게 생각만큼 맛이 안 난다. 방대한 자유가 주어져도 불안해서 제대로 놀지 못하는 꼴과 비슷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실험에서 골라주는 음식을 먹는 군과 자유롭게 사 먹게 했던 군의 만족도에서 전자가 더 높게 나왔다. 인간은 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 자유라는 게 권력 안에서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말 그대로의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 정말 전두광이 노태우를 향해 한 말이 맞는 말일까.


오늘, 날이 추워졌다. 본격적인 겨울 여정의 시작이다. 그런데 일기예보에서 떠드는 것처럼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조깅을 하는데도 등에는 땀이 났으니까. 이렇게 추운 날, 오전에 집에서 밀어내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일하는 건물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일하는 건물의 화장실은 비번이 달려있고 비데가 있고 매일 두 번 청소를 하기 때문에 깨끗하다. 모든 층의 화장실이 비데가 있고 다 그런 건 아니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어서 밀어내기를 하고 세척을 누르면 따뜻한 물이 나온다. 기분 좋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도 따뜻하다. 겨울에는 정말 일어나기 싫다. 하지만 여름에도 엉덩이는 따뜻하고, 물이 더워서 힘을 주면 땀도 함께 난다는 문제가 있지만 지금은 겨울이니까.


얼마 전에 나의 트위터 라인에 이런 트윗이 떴다. 젊은 여성인데 치과 건물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세척을 눌렀는데 너무 뜨거운 물이 나와서 놀라서 그냥 일어나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찝찝한 마음을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거기가 계속 쓰라리고 따가워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병원에 갔더니 그 안이, 그 주름진 부분에 1도 화상을 입었다고. 1도 화상 별거 아닐지 몰라도 주름진 그 부분은 또 말이 다르다. 그 여성은 트위터로 자신의 깊은 빡침과 함께 고뇌를 쏟아냈다.


그 야들야들하고 속된 곳이 화상이라니. 살면서 그곳에 화상을 입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말 신경이 쓰일 것 같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만난 5세 조카가 반갑다며 히히히하며 응침을 놓는다면, 오 마이 갓. 생각만으로 너무 끔찍하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모습이 촤르르 필름이 되어 흐른다. 주식이 폭망하고 집이 사기에 넘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과 무관하게 이런 일상의 문제와 고민과 불행이 우리 인간의 삶에 따라온다. 응응의 그곳에 1도 화상이라니. 고소할 거라고 하던데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 밀리의 서재에 있는 나의 단편 소설을 리뷰해 주었다. 이렇게 정성 가득한 리뷰를 보게 되다니. 기분이 좋다. 특히 위로가 되었다니, 그리고 받은 위로를 연료 삼아 열심히 파이팅 하겠다고도 했다. 아마 그분의 리뷰를 보니 아주 힘들 때 나의 단편 소설을 읽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에, 주인공들에게 위로를 받은 모양이다. 이 소설은 사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썼던 소설이다. 처음에는 아주 긴 소설이었고 주인공들이 다 죽는 결말이었는데 행복하게 끝나도 괜찮잖아, 하면서 대거 줄이고 줄여 읽기 쉬운 짤막한 이야기가 되었고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될 거라는 결말로 끝난다. 내가 쓰면서도 주인공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면서 동시에 나도 힘을 받게 되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 좌절을 하게 되는데 그때 쓰러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쓰러지고 자꾸 쓰러져도 괜찮다. 털썩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어제 라디오를 듣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나왔다.


서두를 필요 없어요

반짝일 필요 없어요

자기 자신 말고는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요

-버지니아 울프


누군가들이 부러워 허둥지둥되던 마음을 살짝 가라앉혀보자면서 디제이는 말했다. 매일 조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가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때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 그들의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 달리기라는 건 나만의 보폭과 호흡이 있어서 그걸 꾸준하게 유지하면서 달리면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까지 달려가게 된다. 자칫 누군가를 따라서 달리다 보면 근육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리가 꼬여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서 달리는데 노력과 폼이 든다.


그리고 리뷰를 해 준 분은 나에게 감사하고 인사까지 남겼다. 나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나는 매일 글을 적고 있지만 주위에서 가끔씩 듣는 말이 너의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그런 힘이 있는 글을 써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좀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쓸 뿐이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은 서점에 엄청 많이 있다. 굳이 나까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쓸 필요는 없고 그럴 자신도 없다. 리뷰를 해 준 분이 나의 글에게 위로를 받았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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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의 그 유명한 담배를 든 여성의 뒷모습이다


지금 이 세계는 프로파간다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거짓이 아닌 세계가 되었다. 이렇게 ‘선전’을 통해서 대중의 마음이 움직이는 세상은 오래전부터였다. 지은이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선전의 아버지라 불리며 프로이트의 조카라는 점도 자신을 알리는데 한몫을 했다.


유튜브가 세상에 도래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새로운 단어 ‘바이럴’도 이 사람,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탄생시켰다. 선전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버네이스는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모든 분야에 사용되는 프로파간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소설만 그동안 읽어서 그런지 너무 어렵다. 단어도 어렵고 내용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이, 일반 대중은 거의 모두가 프로파간다에 알게 모르게 흡수되어 있다. 한 번 프로파간다에 빠져들게 되면 아마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프로파간다를 잘 보여주는 책 표지


여기 ‘땡전뉴스’라는 게 있다. 모두가 봤을 ‘서울의 봄’의 그 전두광, 그가 집권했을 무렵, 밤 9시만 되면 뚜 뚜 뚜 땡 하면서 맨트가 “전두환 대통령~”라고 시작을 했다. 거의 신격화시켰다. 이렇게 신격화시키는 프로파간다 방법으로는 책에도 나오지만 거대한 그림 같은 것들이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백마를 탄 그런 큰 그림이나 히틀러의 거대한 그림 같은 것들이다.

 https://youtu.be/SZwWwAUMNsg?si=h3_KNc0wase_2SMm


히틀러의 옆에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있고 괴벨스는 대표적인 프로파간다이다. 땡전뉴스에서 전두환 집권 시절 9시만 되면 ‘뚜 뚜 뚜 땡~ 전두환 대통령~~’ 이걸 바로 괴벨스가 만들어 낸 것이다. 히틀러가 집권 당시 전 국민에게 작은 라디오를 배포하고 9시만 되면 뚜 뚜 뚜 땡 하고 나면 히틀러 어쩌고 하면서 독재자 중심의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괴벨스는 날 때부터 골수염인가?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되는데 가난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해 결국 다리가 나을 수 없게 되었다. 가난으로 인해 아버지가 대학교 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말에 괴벨스는 자신이 알아서 학비를 벌겠다 했다. 그는 키도 크지 않아서 160 정도 되었는데 대학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순수하게 사랑을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서 반대를 한다.


그녀가 부자와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괴벨스는 그녀에게 화가 나서 유서까지 쓰면서 결혼을 반대했다. 괴벨스는 자신 같은 노동자는 죽어라 일을 해도 돈이 쉽게 벌리지 않는데 자본가 유대인들은 펑펑 노는 거 같은데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큰 분노를 느낀다.


후에 히틀러가 법정에서 하는 연설을 듣고 반해 버려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오른팔이 되어서 유대인 징벌과 독일 정복을 위해 언론을 장악한다. 그게 정권이 국가와 국민을 잡으려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지금 현재 대한민국도 언론 장악, 그런 비슷한 세계가 되어 간다.


괴벨스는 프로파간다로 많은 것을 만들었는데 주인공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도 괴벨스가 만들었다. 이전에는 가장 중요한 인사가 먼저 등장했겠지만 괴벨스는 히틀러를 가장 늦게 등장시킨다.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모두가 왜 히틀러가 나오지 않지? 보고 싶은 히틀러를 빨리 불러라 할 때에도 등장시키지 않다가 사람들이 조금씩 화가 치밀 때 그때 히틀러를 등장시켜 사람들을 환장, 환호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사라진 극장에서 영화 상영 직전 대한늬우스 역시 괴벨스 작품이다. 정부찬양 뉴스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틀어 주는 것이다. 집에서는 뉴스를 선택해서 보지만 극장에서는 전부 몰입해서 보게 된다.


괴벨스보다 더 한 사람이 그의 아내 마그다이다. 괴벨스보다 더 나치였고 히틀러가 죽기 진적 그 사실을 알고 히틀러에게 죽지 말라고 애걸하기도 했다고. 공식적인 아내가 없던 히틀러는 마그다를 내세울 정도로 마그다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마그다 역시 나치가 되어 목숨을 버리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애인과 결혼식을 하고 그다음 날 아내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인 다음 자신도 자살을 하는데 죽기 직전 괴벨스에게 전화를 해서 총통 자리를 물려주고 자살을 한다.


공식적으로 하루동안 총통이었던 괴벨스는 다음 날, 1945년 5월 1일에 그 유명한 가족 몰살을 한다. 그때 아직 어린아이들 6명에게 사탕이라며 청산가리를 먹이는데 큰 딸은 그게 뭔지 알고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억지로 먹는다. 청산가리를 먹는다고 해서 바로 죽지 않는다. 굉장히 고통스럽게 죽는다. 속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거품을 물고 아이들이 벌벌 떠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그다는 집 앞에 있는 나치들에게 가서 우리가 죽고 나면 전부 불에 태워라고 했다. 죽어서 연합군의 노리개가 되기 싫다며 괴벨스와 함께 죽는다.


여러 매체나 영화, 티브이에도 괴벨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까 찾아보면 재미있다. 마그다는 히틀러를 너무나 사랑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왜냐라면 괴벨스와 결혼한 이유가 그가 가장 히틀러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파간다에 흡수되면 왜 빠져나오기 힘드냐면 동네 어르신들이 KBS 9시 뉴스에 대통령이 영국방문 한 장면을 5분 넘게 했는데 그걸 보면서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다. 아직도 어르신들 중에는 전두환 집권 당시 경제가 발전했다며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는 기업과 대중의 관계의 프로파간다가 중요하다. 더불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 역시 프로파간다에 의해서 움직이거나 소비가 되는 경향이 아주 짙어졌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일인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기능적으로 효율적이지만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냉전, 이념, 흑색선전 같은 단어가 뜻하는 바를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프로파간다를 파보면 된다. 미국은 반전 국가였는데 오랫동안 그래왔다. 1916년 우드로 윌슨은 반전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미 마터 역시 반전 공약으로 1976년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하여 폭망 분위기였다. 세계 최강 미국이 아시아의 뭐? 베트남이라는 이름도 모를 나라의 호찌민이라는 할아버지에게 전쟁을 졌다니,라며 충격과 침울한 분위기였다. 더 이상 아시아의 문제에 미국은 신경 쓰지 않겠다 했다.


다음 해인 1976년 지미 카터라는 듣보잡이 나오게 된다. 지미 카터는 당시 정치경력이라고는 조지아주 주지사 4년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의의원이나 하의의원 경력도 없는. 그런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반전공약 때문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에 주둔한 미군철수였다. 주. 한. 미. 군. 철. 수.


한국에 주둔한 3만 명의 젊은 미군을 다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하면서 미국 내에서 인기를 얻는다. 제럴드 포드 현직 대통령이 지고 만다. 엄청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진짜 주한미군을 빼내려고 하고 박정희는 당시 지미 카터를 부르고 박근혜와 마중을 나가고. 이 장면이 유튜브에 컬러로 된 좋은 화질로 영상이 있다.


예전에 지미 카터 이야기를 한 번 했었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집권을 하면서 지미 카터는 재선을 노리고, 그 사이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 김대중은 감옥이 있고. 그는 감옥에서 정말 죽는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지미 카터가 재선이 되어야 풀려나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되면 사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전두환이 레이건에게 나를 워싱턴에 불러 전두환 정부를 미국에서 인정해 준다면 김대중을 풀어주겠다고 전화를 건다.


94년 김일성이 죽기 직전 지미 카터가 김일성과 만난 일화가 유명하다. 둘이 보트 위에서 웃으며 앉아 있는 장면을 연출한 사람이 바로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었다. 김우중 회장도 어떤 면으로 대단한 프로파간다였다. 이야기하면 너무 기니까 여기에서 그만하고.


이쯤에서 봐야 할 영화라면 '트럼보'다. 미국의 천재 작가 달튼 트럼보의 이야기. 정부의 탄압에서 굴하지 않고 미국 할리우드 명작 시나리오를 썼던 달른 트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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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안성탕면이야!


라면을 끓인 건 순전히 토마토 때문이다. 근 몇 년 동안 일반 토마토를 먹지 않고 대부분 방울토마토만 먹어 왔는데 얼마 전에 일반 토마토를 구입을 했다. 일반 토마토지만 방울토마토보다는 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토마토보다는 좀 작은, 그런 토마토였다. 그러니까 한 세 번 베어 먹으면 다 먹어지는 정도의 토마토다. 근데 너무 맛있는 것이다.


방울토마토도 요즘은 너무 달아서 이거 뭐야? 할 정도가 되었다. 좀 가격이 저렴한 방울토마토는 아따 마 정말 맛에서 멀어졌고. 그래서 중간 토마토를 먹었는데 예전 어린 시절 여름에 엄마가 쑹덩쑹덩 썰어서 설탕을 착 뿌려주던 그런 토마토의 맛이었다. 그래서 우걱우걱 하루에 한두 개씩 먹게 되었는데.

이걸 다시 사러 갔더니 없었다. 그래서 큰 토마토를 구입했다. 야심 차게 한 입 콱 깨물었는데 너무 딱딱했다. 그리고 맛이라고는 어후. 맛이 없어도 이렇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그냥 산에서 뜯은 풀을 먹는 맛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다 먹으려면 라면에 넣어서 같이 끓여 먹는 수밖에 없다. 일단 라면에 들어가서 같이 폴폴 끓게 되면 맛있게 된다.


내가 라면을 많은 종류를 먹어본 건 아니지만 몇 종류 먹어본 내 나름대로의 결과 계란을 풀어 먹기 에는 안성탕면이 최고다. 안성탕면에 계란과 파가 잘 어울린다. 거기에 토마토를 넣어서 끓였는데도 맛있다. 저기 하얀 거, 살포시 드러나는 저 하연 저거, 저건 바로 떡국떡이다. 젓가락으로 휘저으면 넙치처럼 바닥에 떡국떡이 먹음직스럽게 붙어 있다.


라면은 언제 먹을 때 가장 맛있을까. 지금이다. 바로 지금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라면을 먹으며 그만 실수를 한 것이 뉴스를 보고 말았다는 것이다. 뉴스를 절대 보지 않으려고 정말 애쓰고 있는데 느닷없이 불어 닥치는 바람처럼 뉴스를 보고 말았다. 사흘 만에 행정업무는 다시 망가졌고, 빠니통렬은 헤헤 즐겁게 해외에 있고, 한국에서 열심히 이전에 행정업무 마비되었을 때 원인을 찾고 있을 줄 알았던 장관은 여기에 없고, KBS 뉴스에서는 영국방문한 장면을 5분 넘게 보여주고, 네이버 사회면에도 정작 나와야 할 뉴스(마약에 관련된 검사 의혹 뉴스는 1도 보이지 않는다)보다는 황의조 이야기만 도대체 몇 꼭지야. 세계에서 제일 물가가 비싼 뉴욕에서 파는 식빵보다 한국에 7배인가 더 비싸고. 정치인과 장관은 지방을 다니면서 총선에 관련된 행보를 하면서 전부, 모두 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현재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보에 국민은 전혀 없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무시무시한 대사가 떠오른다.

"밖에 나가 보세요, 바뀐 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 대. 로. 야."


좀 이상한 한국에서 무너지지 않고 매일 열심히 한국을 굴려가고 있는 일반인들, 국민들이 대단할 뿐이다. 개콘이 다시 나왔지만 왜 망하는지 정말 잘 보여주는 요즘이다. 영화가 왜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당기지 못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뉴스가 매일 쉬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는 요즘, 안성탕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유튜브를 뒤져 레이를 보자. 레이를 보면서 그냥 행복하자.


레이 아가씨 T예요? 큐티? 프리티? 애프터눈 티~☕️ https://youtu.be/rWY98qqgrBs?si=RWYZ3ifFOGIhx8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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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생활 속 오류들에 이어 오늘도 생활 속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딱히 과학적이거나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저 생활 속에서, 나의 주위에서 또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상 속 오류를 말하는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귤이 언젠가부터 당도가 강해서 별로라는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 그래서 쎄그랍고, 씨그러운 옛날의 귤이 지금의 당도가 강한 귤보다 낫다고 했는데, 누군가 댓글에 귤 농민들을 다 죽이는 글이라며 비난을 엄청 하고 갔는데 오버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모든 과일이 전부 당도가 강한데 겨울 한 철 먹는 귤 정도는 그렇게 달지 않아도 괜찮잖아.


오늘 이야기할 오류는 “어? 내 귀가 왜 그래?”이다. 내 귀가 왜 양쪽이 이렇게 다르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의 한쪽 귀가 다른 쪽 귀에 비해 많이 눌려 있거나 위치도 수평이 아니라 다른 쪽 귀에 비해 밑이나 위로 올라가 있다.


뭐야? 도대체 양쪽 귀가 왜 이렇게 달라?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양쪽 귀가 똑같기가 사실 참 힘들다. 양쪽 귀가 같아야 정상인데, 양쪽 귀가 똑같으면 그게 좀 이상하다. 무슨 말인가 한다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한쪽으로 누워 잔다. 그러다 보면 누운 쪽 귀가 눌려 있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귀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통감이 없다. 그래서 귀를 많이 뚫어도 아픈 줄 모르고, 엄지와 검지로 귀 앞뒤를 있는 힘껏 눌러도 전혀 아프지 않다. 마치 “그래? 한 번 해 볼 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그런데 머리는 몸에서 가장 무겁다. 책상에 엎드려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면 10분 만에 팔이 저려 일어나야 한다. 그만큼 무거운 머리가 피를 통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서운 머리로 매일 7시간에서 8시간씩(뒤치닥 거리기도 하지만) 귀를 누르는데, 아프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귀는 그대로 머리의 무게에 눌릴 수밖에 없다.


보통은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리고 있으니까 양쪽 귀에 대해서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다가 귀를 드러내고 정면에서 보면 어?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손거울로 귀를 볼 때에는 귀가 잘 보이도록 얼굴을 약간 돌려 귀를 본다. 증명사진을 찍듯 정면으로 머리를 걷고 정확하게 보면 귀는 양쪽이 짝짝이다. 오른쪽 귀가 왼쪽 귀보다 약간 위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모양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고, 한쪽 귀가 뭔가를 움켜잡듯 오므라든 귀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오류가 발동한다. 그렇게 양쪽 귀모양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다. 자신의 상황을 난생처음 접하기 때문이다. 양쪽 귀 모양이 달라지게 되는 건 한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데 오늘 뭔가에 의해서(그 뭔가는 딱히 정해져 있진 않지만) 그렇게 달라졌다는 오류를 행한다. 이렇게 귀모양이 양쪽이 다르게 되는 건 긴 시간 동안, 오랫동안 꾸준하게, 매일매일 서서히 귀 모양이 그렇게 달라지게끔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몸이 왼쪽 오른쪽이 같아야 정상이겠지만 같으면 그건 너무나 이상하다는 거다. 양쪽 귀모양이 다르듯 목길이도 왼쪽 오른쪽이 대부분 다르다. 습관 때문이다. 여러 잘못된 습관이 있겠지만 대체로 한쪽으로 음식을 씹는 습관이 목길이를 왼쪽 오른쪽 다르게 하고, 한쪽으로 턱을 쏠리게 만들고,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라가게 만들고, 입술이 한쪽이 더 길게 된다.


솔직히 양쪽으로 골고루, 한 번에 스무 번 이상씩 음식을 씹어 먹을 수가 없는 현재다. 일단 양쪽으로 골고루 씹으려면 먹는 음식이 그만큼 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멸치볶음이라든가. 고사리무침, 스테이크(레어면 좋지만 다 익어도 많이 씹을 수 있는)나 장조림, 생당근처럼 입에서 오랫동안 씹을 수 있는 음식을 자주 먹어야 하는데, 주로 찾는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 입안에서 잘 허물어지는 음식들이다. 스파게티, 부대찌개, 설렁탕, 어묵, 만두 등, 그리고 정크푸드 – 햄버거나, 감자튀김 같은 음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몇 번 씹지 않고 넘긴다. 그렇게 대부분 한쪽으로 씹을 수밖에 없다.


‘콩나물무침밥’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주위에는 일단 존재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대부분 분위기 좋은 스파게피, 파스타, 돈가스 가게들이 죽 나올 뿐이다. 기사식당에서는 많이 씹을 수 있는 음식이 가득 하지만 기사식당을 찾아서 먹으러 가지 않는 이상 힘들다. 주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심각김밥에 컵라면은 정말 천상의 맛이지만 많이 씹을 수는 없다. 1인 가구가 4인가구를 넘어버린 현시점에 홀로 집에서 많이 씹어 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는 없다. 라면을 끓여 먹다 보면 알겠지만 한쪽으로 대충 씹고 넘기게 된다. 어쩌다 괜찮은 식당에서 좋은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어. 쩌. 다.이다.


그럼에도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이 대칭인 사람, 입술의 양쪽과 콧구멍(이 의외로 한쪽 콧구멍이 큰 경우가 많다. 조심하자), 그리고 귀 모양이 양쪽이 비슷하다면 그 사람은 남들에 비해 열심히 양쪽으로 씹는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인보다는 연예인은 정도가 덜하다. 왜냐하면 카메라에 한쪽은 잘 나오는데 한쪽이 잘 나오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회사입장에서 계약을 한 연예인은 상품이기 때문에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매니저를 두어 늘 자세를 바로 잡게 하고, 음식도 골고루 씹어 먹게 한다. 관리를 해준다. 그럼에도 간혹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연예인이 카메라를 켜고 개인 방송에서 나는 이쪽 얼굴이 더 잘 나온다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관리를 철저하게 받는 연예인들도 때로는 한쪽이 더 나은 경우가 있을 정도로 얼굴의 양쪽이 같아야 정상이지만 같으면 이상한 현실이다.


우리의 오류는 더 나아가 다리길이가 양쪽이 같은 줄 알고 있다. 다리 길이는 오전에 같더라도 오후에 다를 수 있고, 많이 걷는 날에 다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쇠로 된 철길도 여름에 늘어나고 겨울에 줄어드는데 인간의 다리 정도가 왼쪽 오른쪽이 매일 같을 수 있을까. 확인하는 방법은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난 후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체크를 해보면 된다. 어제 같더라도 오늘 다를 수 있고, 오늘 같더라도 내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뭘 해야 해? 당연하지만 운동을 해야 한다. 스트레칭을 매 시간 해주면 좋고 – 한 시간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몸은 한 시간 동안 망가지게 된다. 화장실에 갈 때 그때 3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7분 똥을 싸고 오면 된다. 똥은 어지간하면 5분 미만에 끊는 게 좋다. 여하튼 사람들 중에 똑바로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장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자. 걸음걸이가 전부 이상하다. 가방, 핸드백을 한쪽으로 매고 들지, 높은 굽의 신발에, 걸음걸이가 천차만별이다. 가끔 뒷짐 지고 천천히 동네를 걷는 어르신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어쩌면 그게 바른걸음일지도 모른다. 모델처럼 걸어야 하지만(십일 자로 교차하듯이) 친구나 동료나 가족과 함께 걸어야 할 때는 절대 그렇게 걸을 수 없고, 아이들이나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걸을 때 역시 제대로 된 걸음걸이로 걸을 수 없다. 뒷짐을 지면 무게 중심이 앞이 아니라 뒤로 약간 젖혀져서 괜찮은 자세라고 한다. 


그리고 뉴스를 볼 때 아나운서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어깨나 얼굴의 비대칭이 심한 아나운서도 있다. 옷이 한쪽으로 쏠려 있거나 턱이 한쪽으로 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깝게 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정말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게 인간이지 싶다. 가만 내버려 두면 이상하게 진화할 것이 분명하다. 나의 귀가 양쪽이 같은 것이 어쩌면 평범한 것인데, 이 평범하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알게 된다. 평범한 것을 지키려면 처절할 정도로 노력을 해야 겨우 유지가 된다. 잘못된 습관과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은 죽기만큼 힘들 수 있지만 그렇게 힘들게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생화 속에서 드러난 나의 오류는 빨리 받아들이고 제대로 돌리려고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 24시간 중 많은 시간을 앉아서 편안하게 보내니까 어쩔 수 없다. 편안할수록 나의 몸은 비틀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오늘은 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김선우 -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멀리 갔다 돌아오는 새들  

   

날개 끝에서 흩어지는 불꽃들     


어딘가 도착하기 위해선

바람을 탄 채 바람에 저항하며

스스로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보다 묵직한 장엄은-     


날기 위해선 어딘가에 발 디뎌야 한다는 것

생명은 몸 닿을 곳이 필요하다는 것

‘새처럼’이 아니라 ‘새조차도’라는 것

날개는 발 다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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