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자 친구는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이 되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여자 친구가 교회에 가는 게 별로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교회를 나가야 가끔 명수와 일요일에 시간이 맞으면 동생을 보러 오는데 같이 올 수 있다. 그러나 명수와 약속이 없는 일요일에 여자 친구가 교회에 가면 나는 나대로 혼자 보내야 했다. 여자 친구가 교회를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명수와 동생 면회를 오는데 동행할 수 있으니까.      

여자 친구가 가는 교회에는 남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청년부에 주로 남자들이다. 지난번에 한 번 같이 교회를 간 적이 있었다. 유독 남학생들이 여자 친구에게 와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싫어서 다시는 가지 않는다. 여자 친구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종교를 핑계대로 치근대는 남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남자애들 앞에서 여자 친구는 유독 활짝 웃었다. 일본에는 교회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교회가 많을까. 신이 정말 살아 있다면 한국에 있는 교회를 전부 다니는데 정신이 없을 것이다.      


여자 친구에게 명수 동생에 관해서는 몸이 불편해서 요양소에 있다고만 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한 번 가면 늦게 돌아오는 곳으로 가는 내가 미울지도 모른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건 반드시 멀리 떨어져 지내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자 친구를 좋아하다. 여자 친구도 나를 좋아한다. 여자 친구가 교회에 가게 된 건 순전히 여자 친구의 악몽 때문이다. 꿈속에 날개 달린 개미들이 왕창 나오는 꿈이다.


그 꿈을 꾸는 날이면 아침에 몸 여기저기가 마치 개미들에게 물린 것처럼 피부에 벌건 오돌토돌한 상처들로 가득했다.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치료는 치료대로 받으면서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상담받기를 꺼려하던 여자 친구는 결국 악몽을 자주 꾸는 바람에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상담받는 의사에게 기도 같은 것을 해보라고 권유받았다. 여자 친구는 그래서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라고 해서 별 건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 눌러 담았던 말들을 끄집어내는 정도였다.

     

여자 친구가 악몽을 꾸고 올 때면 어딘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뒤집어쓴 것처럼 힘이 없고 연약해 보였다. 그때 그저 가만히 어깨를 빌려줘서 머리를 기댈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자 친구의 머리에서 바람 냄새가 났다. 포도를 정제해서 잘 말렸다가 풀어놓은 듯한 기분 좋은 바람의 냄새였다. 이후 바람을 타고 포도의 미미한 향을 맡으면 여자 친구의 머리 냄새가 떠올랐다.      


여자 친구는 그렇게 어려운 자세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밤새 칼과 방패를 들고 날개 달린 개미들과 격렬한 싸움을 한 것이다. 여자 친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싱그러움이다. 깨끗한 얼굴이 그러했다. 하지만 악몽을 꾼 날이면 그 싱그러움이 한 움큼 빠져나가 있었다. 한 없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꿈속에서 작은 숲 속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날개 달린 개미들과 결투를 한다. 물론 우세한 쪽은 날개 달린 개미 쪽이다. 그러나 여자 친구는 작은 숲 속 사람들을 지켜주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깨끗한 피부에 상처가 나는 일을 감수하면서 칼과 방패를 휘둘렀다.      


[나 악몽이 심해지면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몰라. 나 정신병이라고 아이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지?]     


여자 친구는 악몽에서 날개 달린 개미들이 수백 마리가 나오다가 어느 날은 수천 마리가 나올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몸에 과부하가 걸렸다. 걷는 것도, 먹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같이 있어주었다. 목 넘김이 좋은 죽을 같이 먹고 부축해서 조금씩 걸었다. 여자 친구는 매미처럼 나에게 바짝 붙어 있었다. 여자 친구의 몸에서 흙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어깨를 꽉 껴안았다.   

   

[악몽이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없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너는 내가 귀찮지 않아? 모두가 나를 귀찮게 여기는데]라고 여자 친구가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물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옆에서 아픈 곳을 내내 어루만져주고 힘들 때 안아주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라고 명수가 말했다. 그러나 명수는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동생을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 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오는 것도 부모님 대신 명수가 꼭 왔다.


[너도 숲 속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날개 달린 무시무시한 개미들과 싸웠잖아. 너도 힘들지만 하잖아. 너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거 같아?]


[바보구나 너, 그건 꿈이고 말이야]라며 여자 친구는 힘없지만 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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